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10화 (10/292)

〈 10화 〉 늑대와 춤을 (1)

* * *

늘 북적이는 아침.

그래도 오늘은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평소보다 덜 바빴다.

훨씬 나아진 근무 환경.

내 허리도 기쁜지 아프지 않았다.

애슐리 씨의 도움.

카페일이 처음인 그녀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손님들과 소통을 할 때도 항상 친근하게 대했다.

모든 게 완벽한 상황.

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애슐리 씨의 복장.

메이드 복장을 한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침의 몽롱함을 확 깨어 주는 메이드 복장.

다행히 이것을 컨셉이라 생각하는지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참에 메이드 카페로 변경하는 건 어때?"

"커피를 잘못 탄 건 아닌데..."

아침부터 히히덕대는 인물은 제임스.

예전에 방문했던 손님인 래브 씨와 했던 대화의 주인공이었다.

여전히 근육이 빵빵한 녀석.

오크임에도 멋들어진 몸매에 괜히 위축되었다.

"너도 운동 다시하지 그래?"

프로틴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는 녀석.

뼛속까지 헬 창이었다.

"퇴근하고 쉬는 게 낙이야."

"이봐 브로, 그러다가 하체 부실로 인해서 스쿼트를 못하면 어떻게 하려고?"

"...내 알바냐."

"그건 그렇고 여기에 래브가 왔다면서?"

"맞아. 너랑 아는 사람인지 몰랐어. 다운타운은 좁다니까."

"이 구역의 애니메이터들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야."

어깨를 으쓱하는 제임스.

그의 승모근이 꿈틀거렸다.

음료를 마시면서 멍하니 애슐리 씨를 보는 제임스.

나는 이 녀석이 이상한 생각하는 것 같아 먼저 선수를 쳤다.

"애슐리 씨는 건들지 마라."

"그런 생각하고 있던 거 아니야. 메이드 카페, 그거에 생각하고 있었어."

"...제발."

"들어봐. 내가 애니메이터 일하면서 말이야..."

그가 하는 일은 래브 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청을 받고 그림을 그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 쪽에서 외주가 많이 들어오다 보니 자연스레 일본과 미국을 자주 오갔다.

"저번에 일 때문에 일본에 방문한 적이 있었어."

영어를 하는 오크 남자가 일본에 입국한 이야기.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니까, 일본에는 어떻게 갔는데?"

"뭐, 캐나다 여권 있으니까. 무비자로 여행체류 한 것뿐이야."

일본에 90 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한 캐나다 비자.

검문관이 캐나다 여권을 들이미는 오크를 어떻게 봤을지 궁금했다.

이것도 인종차별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서 회사측 사람인 야마모토 씨를 만나고...일이야기도 하는 중에 제안을 받았어."

"제안?"

"일본 문화를 알려주겠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하고 따라나섰지."

"설마..."

"맞아. 그게 메이드 카페였어."

영어를 쓰는 캐나다 출신의 오크 남자가 일본의 아키하바라의 메이드 카페를 가는 일.

내 표정을 무시한 제임스는 자기 여행담을 이어나갔다.

머릿속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아득이 넘어선 여행기.

내 머리는 이것을 이해하는 것을 멈춰버렸다.

"그래서 결론은?"

"밴쿠버에도 메이드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지."

"...헛소리 하지마 임마."

제임스의 헛소리를 듣다 보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 근무가 끝나는 대로 바로 애슐리 씨의 옷을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많잖아."

"뭐?"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는 제임스.

그의 말대로 애슐리 씨 주변에는 그녀에게 흥미를 보이는 여성분들이 많았다.

보기 힘든 메이드복.

그걸 입은 귀여운 여종업원은 남녀를 떠나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밝은 표정의 애슐리 씨.

보는데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기분이었다.

"헤에..."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추임새 넣지마라."

나는 제임스를 뒤로하고 애슐리 씨에게 다가갔다.

혹여라도 그녀가 불편하지 않을까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귀여운 애슐리 씨를 잠시 모두에게서 떨어뜨려 놓자 주변 사람들의 원망 어린 시선을 받았다.

"존 씨?"

내가 따로 부르자 당황한 애슐리 씨.

그녀에게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애슐리 씨 괜찮아요?"

"어떤...? 아, 메이드 복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맞아요."

메이드복에 홀린들 몰려드는 사람들.

그것 때문에 혹시라도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아니예요. 사람들은 친절하고... 무엇보다 제게 관심을 가져 주는 걸요."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를 뽐내는 애슐리 씨.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비 오는 날.

우리 카페 앞에 앉아 슬퍼하던 그녀가 이렇게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에도 그녀는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어떠한 관심도 가져 주지 않았다.

지금은 달랐다.

모두의 관심을 받는 상황.

애슐리 씨는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좋아요. 애슐리 씨.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나만 말할게요."

"네?"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꼭 말해 줘요. 알겠죠? 특히 저쪽에 저 험상 궃은 오크놈 같은 애들 말이예요."

"푸흡. 제임스 씨 말하는 거죠? 알겠어요."

제임스 이 녀석...

언제 애슐리 씨와 통성명을 했는지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름을...?"

"제임스 씨가 존 씨에 대해 묻더라구요. 그래서 그때 알게 되었어요."

"아, 그렇군요. 알겠어요."

이후 몇 가지 더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만약 인종차별자가 나타날 경우에 대한 대처법이라던지.

손님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올 때라던지 같은 것들 말이다.

애초에 손님에게 커피를 내주는 역할을 하는 애슐리 씨.

음료 제조나 계산 같은 것은 아직 내가 하고 있어서 크게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다.

"애슐리 씨도 조금 쉬어둬요."

"네, 헤헤."

웃음 짓는 그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제임스가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천사야."

제임스의 한 마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임스...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네가 말하니까 묘한 거부감이 드는 거 있지?"

"그거 오크혐오야. 조심해."

"날 인종차별자로 만드네."

"장난이야 친구. 솔직히 너같이 우리를 잘 이해해주는 인간은 많지 않거든."

커피를 홀짝이는 제임스.

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오크에 대한 편견.

그는 오크라는 것 때문에 인종차별받은 적도 있었다.

"그 쓰레기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를 왜 처벌하지 않은 거야?"

"지난 일이야. 그리고 난...너 같은 친절한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들을 다 처벌할 수는 없잖아."

덤덤히 말하는 제임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부터 3 개월전.

그와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고 있었을 때였다.

중년의 남성.

그는 제임스에게 다가와 원숭이 흉내를 내었고,

이어서 오크 따위가 피트니스 센터에 왜 있냐고 비아냥 댔다.

제임스는 무관심으로 무시했지만,

그의 괴롭힘은 집요했고 보다 못한 내가 경찰에 신고했다.

도착한 경찰들.

내 증언에 따라 일단 남자를 구속했다.

잡힐 당시 그는 없었던 상처를 들이밀며 오크가 날 때렸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캐나다에서는 흔한 일.

더군다나 대부분의 오크들은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렇게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편견.

경찰은 제임스에게 폭행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짓으로 점철된 사람들.

나는 가장 먼저 나서서 그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 안에서 있던 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CCTV가 있다는 것을 경찰에게 알렸다.

CCTV를 확인한 경찰들.

그제야 제임스의 결백을 인정하고 미안하다 말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

흔한 일이었다.

드러나는 증거들.

중년의 남성은 자신이 약물을 복용중이며,

정신이 이상하다고 변명하기 시작했다.

CCTV로 확인된 내용.

그는 이미 자기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영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제임스에게 이 남자를 처벌할 것을 원하냐고 물었다.

무신경한 사람들의 침묵.

그리고 경찰들의 행동들까지.

나는 제임스보다 더욱 화가나 난동을 부렸다.

연신 사과하는 경찰들.

하지만 제임스는 오히려 날 말렸다.

중년의 남자는 풀려났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기 일로 돌아갔다.

그때의 일을 내가 아는 신문사 친구에게 알리겠다고 했었다.

제임스는 날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난 선함을 믿어. 너 같은 사람들을 말이야.'

...

"지금 생각해도 화가나네."

"괜찮아.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고. 무엇보다 이렇게 나 대신 화를 내주는 친구도 있잖아?"

장난스럽게 말하는 제임스.

그의 덤덤한 대답이 슬프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중국인이라며 놀리던 이들.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해,

내게 건네며중국어로 말해 보라고 했던 놈들도 있었다.

세상은 나쁜 놈들이 많았다.

그걸 인내하는 건 언제나 우리의 몫이었다.

"진정해. 친구."

"...휴우. 미안. 내가 너무 몰입했나 봐."

그저 대답 없이 웃는 제임스.

그는 날 보더니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봐봐."

애슐리 씨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

수인, 오크, 엘프, 인간 상관없이 그녀 주변에 모여 들었다.

"잘 지내는 거 같지?"

"너는 저런 세상을 믿어?"

"아니."

제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믿는 건 너무 추상적이야. 나는 만들고 싶어."

"서로 이해하는 세상 말이야?"

"너와 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오글거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임스를 노려보았다.

"왜? 나름 고민해서 말한 건데."

"넌 너무 감성적이여서 문제야."

"그러니까 애니메이터지. 하하."

제임스는 넉살 좋게 웃었다.

그렇게 제임스와 이야기하는 사이.

잠시 놓친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다.

새로 들어온 손님.

애슐리 씨는 그 손님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잠깐. 애슐리 씨좀 도와주고 올게."

"이상한 놈이면 날 불러줘."

"방금 전에 이상적인 세상을 말하던 사람은 어디 갔나?"

"애슐리 씨에 관련된 일이라면 다르지."

제임스는 웃으며 말했다.

카운터에서 쩔쩔매고 있는 애슐리 씨.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세요?"

"아... 존 씨. 미안해요. 조금 실수를 많이 해서요."

눈앞에 있는 한 남자.

차가운 외모에 파란색 머리카락 쫑긋한 늑대 귀까지.

딱 봐도 까탈스러운 고객처럼 보였다.

"애슐리 씨. 여기는 제가 맡을게요."

"고마워요."

애슐리 씨와 자리를 바꾸고 먼저 고객을 향해 사과부터 했다.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차가움이 뚝뚝 묻어나는 말.

어떻게 이렇게까지 말이 차가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주문하시겠어요?"

"제 주문은..."

해비 크림.

무유당 우유.

밴티 사이즈 컵.

물 없이.

설탕 대신 꿀.

엑스트라 카라멜 시럽.

엑스트라 바닐라 시럽.

35.2 도의 커피온도.

거품 많이.

유기농 딸기 추가.

초코 프라페칩 추가.

아몬드가 들어간 휘핑크림 0.3 추가.

두유 0.5샷 추가.

크림 0.14 추가.

얼음 없이.

엑스트라 코코넛 가루.

녹차가루.

바나나 조각 추가.

프로틴 파우더 두 스푼.

등등...

주문만 무려 27 개가 넘었다.

일 전에 오셨던 레드 드래곤 손님보다 더 까탈스러운 주문.

애슐리 씨가 쩔쩔매는 이유가 있었다.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이 늑대가 원하는 대로 춤을 춰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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