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이민자의 도시 (2)
* * *
오크 친구로 시작된 이야기.
골든 리트리버와 닮은 그녀와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컨벤션 센터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서 같이 운동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는 오크인데도 보디 빌딩을 하더라구요. 이세계에 적응한 다른 오크들과 확실히 다르죠."
"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래브라고 불러 주세요."
내게 손을 내미는 그녀.
개 수인 답게 손도 복슬복슬한 털이 있었다.
"저는 태수예요. 부르기 어려우시면 존이라고 부르셔도 돼요."
"태...태스...미안해요. 존이라고 부를께요."
영어로 발음하기 어려운 태수.
어쩔 수 없이 영어 이름도 구비해 두어야 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래브. 우리 오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죠?"
"네. 오크들이 얼마나 이 세상에 잘 적응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죠."
그녀는 웃으며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번식력이 강한 오크들.
이들은 이 종족들 중에 가장 빠르게 현대 사회에 적응했다.
유치원들은 오크 어린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신설해야 했고,
식당들은 오크 전용 메뉴를 준비해야 했다.
"오크 사이즈라니. 그들의 몸을 생각하면 이해되지만요."
엄청난 대식가들인 그들.
그들은 고칼로리의 음식들을 끝없이 먹어 치웠다.
그래서 일부 식당들은 노 오크존을 만들었는데 인종차별이라며 주정부 최고법원에 2 심까지 올라간 내용이었다.
현대 사회에 적응한 오크들은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때와 달리 셀룰라이트로 가득한 몸을 이끌고 다녔다.
배가 나오지 않은 오크를 본 적이 없었다.
그걸 보면 제임스는 인간다운 오크들에 반해 몇 안 되는 오크다운 오크였다.
오크다운 오크라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발상이었다.
"개 수인인 저희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웃음.
그녀와 살짝 친해진 느낌이었다.
"개 수인의 삶은 어떤가요?"
"음...매일 같이 비염에 시달리는 것을 빼고는 만족스러운 삶이죠. 아, 진드기들도 제외하구요."
수인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귀나 꼬리 같은 일부분만 동물인 수인들도 있고 사람과 비슷한 몸을 제외한 전체적인 부분이 털로 뒤덮여 있는 수인도 있었다.
래브씨는 후자에 속한 수인.
그녀의 고충이 이해가 되었다.
"밴쿠버에서 진드기나 배드버그는 흔한 일이죠."
오래된 가구나 옷들을 통해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들.
이전 집에서도 배드버그로 인해 고생한 걸 생각하면 끔찍했다.
"그리고... 취업도 힘들구요. 제 말은 이 분야에서 말이죠."
그녀가 보여 주는 그녀의 메모장.
그 안에는 여러 그림들이 그러져 있었다.
"수인들에 대한 편견이 좀 있죠."
"멍청한 인간들...미안해요. 당신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괜찮아요. 저도 인간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잘 알고 있거든요."
"...?"
"개 수인들이 자신들이 기르는 개들처럼 색맹이라 착각하곤 하죠."
"개들도 적색 녹색은 구분할 줄은 알아요. 그리고 지성체인 우리는 사람들과 똑같이 색을 구분할 수 있죠."
한 숨 쉬는 래브 씨.
그녀가 시달려온 부분들이 꽤 많아 보였다.
"애니메이터의 일은 힘들죠?"
"네... 랩탑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긴 한데 대부분 콘티 작업은 구시대의 방식이니까요."
연필과 종이.
시대가 지나도 이것만한 도구는 없었다.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최근은...음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있어요. 팀원들과 마찰이 잦아서 이렇게밖에서 작업하곤 하죠."
"팀 작업의 고통은 저도 잘 알죠."
"팀 작업은 눈부신 결과물을 낳지만 산고의 고통이 따르죠...그게 절 너무 스트레스받게 하구요."
"표현이 이상하지만 무리 생활이 어려우신가요?"
"웃긴 표현이네요. 무리 생활이라... 맞아요. 현대사회에 적응하면서 가장 먼저 잃어 버린 것이 그거로 생각해요."
음료를 마시는 그녀.
그녀의 입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였다.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도 존재하겠죠?"
"맞아요. 존."
"설명해주실수 있나요?"
"연애 같은 것들 말이죠."
개 수인의 연애라.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제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는...그러니까 다른 세계에서는 연애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연애가 없었나요?"
"네, 보통은 소개? 어떻게 설명하죠?"
"한국에서는 비슷한 개념으로 중매라는 것이 있어요."
"매치메이킹이라...비슷한 느낌이겠네요. 부모님이 결정해준 상대와 결혼해야 하는 운명이었죠."
"연애는 불가능한 일이었나요?"
"대부분은 불가능하죠. 그런데 이곳에 적응한 뒤로 가능해졌어요. 신나는 일이죠."
"실례지만 연애를 하고 계시나요?"
"네, 물론이예요. 곧 결혼할 예정이구요."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녀.
그녀는 자랑스럽게 자기 파트너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친절하고... 저를 진심으로 아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정말 좋더라구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그쵸? 그런데... 솔직히 마음에 걸리는 게 살짝 있어요."
"어떤 거죠?"
"종족에 대한 걱정이죠."
개 수인인 그녀.
그녀의 파트너는 수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내가 눈치를 채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는 인간이예요. 수의사죠. 제가 비염으로 고생했을 때 방문했던 병원에서 만났어요."
"운명적인 만남이었네요."
"신기하죠? 누구보다 절 잘 알고 그 짧은 시간에 절 위로해 주더라구요. 그때다 싶었죠."
"운명적인 만남이라...그런 게 존재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말이죠."
"조금 더 상상력을 갖는 게 어떠세요?"
래브 씨의 장난기 어린 말.
나는 그녀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 미안해요."
"아니예요. 이 종족들과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새롭거든요."
"그러면 개 수인의 질문도 받아주시나요?"
"다음 손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가능할 거 같네요."
아침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카페가 가장 바빴다.
점심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나요? 그러니까..."
"파트너 분을 위한 질문. 맞죠?"
"네, 조금 있으면 그의 생일이거든요.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생각나는 게 마땅히 없네요."
어느새 손님의 고민을 들어 주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조금 더 필요했다.
"남자에...수의사에... 저랑 비슷한 나잇대인가요?"
"맞아요.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따로 하는 취미 생활 같은 것이 있나요?"
"그는...음... 낚시와 자전거를 타는 걸 좋아해요."
"밴쿠버에 사는 사람들의 흔한 취미죠."
"솔직히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낚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바다에 무언가를 던지고 기다리는 것을 말이죠?"
"정확해요."
그녀는 웃으며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저는 그의 곁에서 가만히 앉아 있곤 하는데 그때 그가 저를 쓰담아 주는 것이 좋아요. 그것만 아니라면... 낚시를 따라가지도 않았죠."
"꽤 현실적인 이유네요."
이해할 수 없는걸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녀.
그런 걸 보면 이런 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워치를 사는 건 어때요?"
"낚시 도구나 자전거 도구가 아니라요?"
"요즘은 스마트 워치에 기능이 많거든요. 그에게 도움이 될거예요."
"낚시에도 도움을 준다구요?"
"물론이죠."
내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그녀.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하는 게 좋겠네요."
"도움이 되어서 좋네요."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편안한 분위기에 자상한 사장님이라... 자주 찾아와야겠네요."
"단골 고객은 언제나 환영이죠. 저희는 쿠폰도 있답니다."
"뭐예요 그게. 하하."
그렇게 이야기하는 중 한 손님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손님.
남자는 래브 씨를 힐끗힐끗 보더니 내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여기는 수인도 받나?"
"네, 물론이죠. 퍼블릭 커피 바니까요."
"아니...내 말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멈추는 남자.
내 뒤에 적혀 있는 CCTV 주의 문구가 있는 걸 보고는 말을 멈추었다.
"아닐세. 크흠."
입을 다물어 버린 남자.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시 나와 래브 씨만 남은 상황.
그녀의 표정은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정말 기분이 나쁘네요."
"기분 상하게 해서 미안해요."
"아니예요. 존 씨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있다니..."
분노하는 그녀.
그녀가 분노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인종차별주의자들.
5 년전만 해도 동양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카페들을 괴롭히는 악질 같은 놈들이었다.
지금은 수인들이 있거나 그들이 운영하는 영업장을 방해하곤 했다.
주정부에서 발의된 인종차별방지법.
5 년 밖에 안돼서 사각지대가 많았는데 이걸 방지하기 위해 CCTV 설치를 권고하고 있었다.
한국과 달리 CCTV설치가 거의 없는 캐나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인종차별 때문에 몇몇 시위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되었다.
시범 운영중인 밴쿠버.
게리 호건이 속한 신민당의 영향이 컸다.
"그거 아세요?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저희들을 애완동물법으로 속박하고 있다는 걸요."
애완동물법.
밴쿠버에서는 개를 보유하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개 면허를 보유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250의 벌금을 내야 했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점.
맨 처음 포탈이 생기고 수인들이 이 세계에 넘어왔을 때 이들의 신원은 명확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적 생명체'이지만 외형으로는 동물에 가까웠으니 이 방식으로 접근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민자들의 나라 캐나다.
이들이 정식으로 캐나다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비자가 필요했다.
여권도 없는 이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가중된 혼란에 주정부는 잠시 마비되었고 이 틈을 노린 이기적인 인간들이 나타났다.
수인들을 자기 애완동물로 등록 하는 것.
사람의 소유물이 될 경우 이상한 법률이지만 일할 수 있었다.
신원을 보증할 수 있는 사람.
이로 인해 초기 수인들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성적 착취, 노동 착취, 수인 권리 침범등.
이러한 부분들이 다른 종족들과 확연히 다른 수인들에게 벌어졌다.
불법적인 일과 이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범죄들.
이로 인해 인간들은 수인들에 대한 편견이 생겨 버렸다.
홈리스, 수인, 오크들.
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이었다.
5 년후 주정부가 관련 법안을 신속하게 발의하고 피해 받은 수인들이 해방되었다.
포탈 사건 이전 캠프루프스 인디언 기숙학교 학살 사건과 같은 수준으로 캐나다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발의되었다는 점과 7년 전 빠르게 발의된 대마초 합법화와 맞물려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끔찍한 일이예요."
내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
수 천 년의 차별의 삶을 살아온 인간들이지만 새로운 종족이 나타나자마자 이용해 먹기 시작한 이들.
이런 잔혹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인간은 원래부터 사악한 존재인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몇몇 수인들은 이미 관상용으로 해외에 팔려 나갔다고 들었어요."
관상용 수인.
이것과 비슷하게 기형으로 태어난 이들을 모아 동물원을 만들었던 프릭쇼.
사람들은 변한 것이 없었다.
"제가 미안해지네요."
"아니예요. 제가 너무 흥분했어요. 미안해요."
래브 씨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짐을 다챙긴 그녀.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미안한 감정이 맴돌았다.
"이건 제 잘못이예요. 제가 너무 흥분했거든요. 이해해주길 바라요."
미안한 표정을 짓는 그녀.
래브 씨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텅 비어 버린 카페.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