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SSON 16
- 절 망 -
“안 돼!”
“예? 아~ 그러지 말고 아저씨! 저 진짜로 일 잘할 수 있다니까
요?!”
“네가 아무리 헐크라도 안 돼! 이유야 어떻게 되었건 고등학생
을, 특히 이런 막노동판에서 채용하게 되면 법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단 말이다! 나는 괜히 동정에 이끌려 너를 고용했다
가 피해를 보고 싶지는 않다. 자~ 딴 곳으로 가서 알아봐. 뭐,
딴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아, 아저씨! 아저… …, 후우.”
음, 막노동판에서만 벌써 5번째 퇴짜인가? 후우, 제길, 그놈의
미성년 채용 금지법이 무엇인지… ….
2010년부터 시작된 모든 업소 미성년 채용 금지법의 첫 반응은
‘설마’ 였다. 그것은 학생들에게도 그랬지만 특히 업소 주인들
에게는 더욱 그랬다. ‘학생’ 이라는 타깃만큼 값싸고 효과적으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은 없었던 탓이었다. 거의 모든 업소들은 ‘
설마 진짜로 뭐 어떻게 하겠어?’ 라는 마음에 별 거리낌 없이 이
전처럼 계속 미성년자들을 채용했고 미성년자들 또한 별 신경 쓰
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점차 시
간이 흐르면서 법의 재재가 조금씩 강력해짐에 따라 하나 둘 씩.
많은 업소들이 적잖은 처벌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덜컥 겁을
느낀 업소들은 하나 둘씩 미성년자들을 채용하지 않기 시작했고
채용했던 업소들을 그들을 내보내며 채용해도 아무런 탈이 없
는 성년들로 물갈이를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1년.
1년 만에 미성년자 채용 금지법은 엄청난 효과를 보게 되어 지
금, 수호가 직면한 상황은 아주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제길.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 어떻게 받아주는 곳이 한 군
대도 없냐! 이거 너무한 거 아냐!?
“후우우… … 제길.”
돈을 버는 것에만 전념하겠다며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한 나였
다. 죽기 살기로 노는 시간 없이 돈만 벌기로 했고 하루 빨리
수술비를 마련해서 더 늦기 전에 지훈 이의 수술을 감행해야 했다
. 하지만 지금 이 꼴은 무엇인가. 아무리 뜻이 좋고 오기가 좋
아도 일자리를 못 구하면 하늘 위의 구름 밖에는 되지 않는다. 만
약 이 상태가 지속되어 일자리를 못 구해 돈을 못 마련하게 된
다면? 그래서 수술이 더욱더 늦춰지게 된다면?
‘… … 세상에서 고개를 들고 살 면목이 없어지는 거야. 절대
로… … 포기할 순 없어!’
나는 다시금 이를 꽉 악물고 두 눈을 부릅뜨며 각오를 다졌다.
그래. 여기서 이렇게 낙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한 시라도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다음은… ….”
어느 새 나의 머릿속과 눈은 다음 장소를 그리고 있었다.
“제길! 더럽다 더러워! 망할!”
시간이 꽤 흘렀고, 나는 꽤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나를 흔쾌
히 써주겠다고 나서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액수가
높은 곳만 찾아다닌 다고 화물 운송부터 시작해서 백화점, 노가
다 판. 등등 적어도 한달 일당이 100만원을 넘기는 곳만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고등학생인 나를 쓰겠다고 나서는 곳은 단 한 군
대도 없었고, 기어코 자잘한 금액들이라도 좋으니 일단은 벌고
보자라는 생각에 패스트푸드 점. 식당, PC방. 오락실 등등 많게는
50만원 대부터 최저 10만 원대까지도 다양하게 돌아다녀 봤
지만… …,역시나. 나는 만족할 만할 결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몇 군대, 내가 할 수 있는 곳을 찾기는
찾았지만… …, 그래도 더 좋은 뭔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
각에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더 좋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헛된 망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9시가 넘은
어두컴컴한 저녁이 되고나서부터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좋고 편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나.
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피아
노와 커피 』 가 너무도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없
는 동안 미모 뛰어나고 몹시 성실하고 착한 다른 아르바이트생
이 들어왔다는 소문도 들리고… …, 무엇보다도 주인 누나에게
너무도 면목이 없었던 터라 선뜻 누나에게 아직도 자리가 남았냐
는 둥의 말을 할 수 있는 염치가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 “
힘이 쭉 빠진다. 나는 어깨가 힘없이 내려앉는 것을 주체 못하
고 터덜터덜 밤거리를 걸었다.
- 빵! 빵!
어둠이라는 것은 사람을 고요하고 차분하게 해 준다. 그러나 생
명체의 감정을 평소보다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도 하는 것은 부
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두운 공기를 해치고 경적을 울리며
힘차게 달리는 자동차들과 화려하게 번쩍이는 네온사인들.
“자자! 오세요~오세요! 아가씨! 여기 물 진짜 좋아요! 한번 와
보세요! 에이~ 그러지 말고 와 보시라니깐요? 한번 만요!”
흰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 바지, 그리고 검은색 조끼로 멋을 낸
어둠의 사나이들은 거리를 지나다니는 아가씨들과 청년들을 꼬
드기기에 여념이 없다. 하다못해 저들도 족히 100만원 이상은 받
을 텐데… …, 후우, 나는 뭐냐.
“자자! 오세요! 오세요! 과일이 참 싱싱하고 쌉니다! 세월은 흘
렀지만 이 과일 만은 흐르지 않습니다!”
“밤이요 밤! 군밤이 왔어요!”
“터키에서 직속으로 온 케밥입니다! 일단 구경이라도 한번 해
보세요!”
여기저기서 장사꾼들의 외침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대부분 20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시간은 남지, 할 일도
별로 없으니 한번 용돈이라도 벌어보고자 저렇게 자리를 벌린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게 묻는 다면 나
는 저들의 너무도 평온해 보이고 재미있어 보이는 얼굴을 보고
알았노라고 대답해 주겠다. 저 빌어먹을 면상들을 한대 쳐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여서.
“제길!”
이렇게 되니 느는 것은 욕밖에 없다. 누구는 시간도 많고 여유
도 많아서 저렇게 노닥거리고 있고… …, 에이! 그만두자 그만둬.
나 왜 이렇게 삐뚤어져 가는 거지?
“어디 좋은 자리 없나?”
내가 그렇게 툴툴거리며 지나가고 있었을 때였다.
- 우우웅 ― !
- 두드드드!
“음? 이건… …?”
익숙한 소음. 이것은 공사 현장의 소음소리이다. 이 늦은 시간
에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 있었나? 음, 좋아! 일단 가보자!
- 탁탁탁!
나는 힘껏 뛰어 소음이 들리는 곳을 향해 뛰었다. 한 블록을 돌
고 조금 뛰어가니 소음이 점차 확실하게 들려왔다.
“헉! 헉!”
역시! 예상대로 그곳은 공사 현장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올려!”
“자! 올라갑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굵은 외침들과 활기가 넘치는 여러 사내들
의 모습은 마치 대낮을 연상시킬 만큼이나 밝았다. 지금 이 순간.
분명 다른 곳은 어두운 밤이었지만 이 곳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좋아! 바로 여기다! 이번에는 기필코 놓치지 않는다.
“흠흠!”
난 슬쩍 헛기침을 하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무래도 효과적으
로 이목을 집중시키지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찾고
물어보는 것 보다는 알단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
은 그렇게 하여 시선을 모으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을 하게 되건,
또는 어떤 말을 하게 되건 간에 조금 더 호의적인 시선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파악할 수가 있었
기 때문이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게 성격들이 화끈하고 호탕한
지라 좀더 거침없고 스스럼없는 자신들과 같은 타입의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기 마련이다.
좋아! 이번에야 말로 꼭 일자리를 따내고 만다!
“하아~!”
나는 깊게 한숨을 들이쉰 뒤, 그것을 강하게 내뱉으며 힘차게
외쳤다.
“안녕하세요오~!! 제 이름은 강수호! 강수호 라고 합니다
아~!! 일자리를 구하러 왔습니다아아아~!”
짧은 외침이었지만 일꾼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은
듯 했다. 일꾼들은 저마다 하던 일들을 멈추고 저마다 황당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모았다. 공사 현장은 소음이 잦아들어 순
식간에 고요해졌고 어색한 기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하하… …, 내, 내가 조금 오버했나?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고 있는 내게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갈색의 가죽 재킷을 큰 덩치의 남자가 다가왔다.
“일자리를 구한다고 했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데?”
“아, 예! 하지만 집안의 사정상 학교는 그만뒀습니다.”
“음. 뭔가 큰 사정이 있어 보이는 군. 하지만 미성년자는 고용
할 수가 없다는 것, 알고 있을 텐데… ….”
“여,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그러니 꼭 써주세요! 급히 돈이 필
요해요!”
“음, 그래도 좀 걸리는 데… ….”
사내는 거무스름한 턱을 어루만지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러다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내의 키가 꽤 컸던 터라 높은 산을 바라보는 등산객 마냥,
고개를 들고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침묵 후, 사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뭔가 절박한 사정이 있어 보이는 군. 좋아 일단 날 따라와
봐. 사정을 들어보지.”
“예? 예! 가, 감사합니다!”
돼, 됐다! 먼진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
호의성 70%. 나머지는 내가 얼마만큼 대답을 잘 하느냐에 달렸
다. 뭐, 남에게 동정 받는 것은 성격상 맡질 않지만… … 그래도
치료비 전액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판 남에게 기부 받는
것 보다야 낮지. 면접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뭐해? 이제 곧 끝날 시간이니 빨리 따라와.”
“예? 아~! 예!”
사내의 재촉에 난 퍼뜩 정신을 차리며 뒤를 좇기 시작했다. 사
내는 공사 현장 정 중앙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음, 걸으면서
본 건데… … 이곳은 나이든 사람도 많긴 하지만 나만큼이나
어려보이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다. 저 나이에 이런 곳에서 일할
정도라면 아마 나만큼이나 돈이 절박하게 필요한 사람들이겠지?
“뭐야? 신참인가?”
“음, 어려 보이는데? 언뜻 고딩이라고 들은 것 같아.”
“그런가? 하아, 하여간 우리 두목, 사람이 너무 좋다니까.”
“뭐, 그건 우리에게도 남 이야기는 아니잖아? 우린 거지잖아.
돈 없는 알거지.”
“큭큭! 됐다. 빨리 일이나 하자,”
2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몇 무리들이 나를 힐끔 보
며 잡담을 나누었다. 음, 역시나 내 예상이 맞은 것 같다.
“자, 여기다. 들어와라.”
잠시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작은 컨테이너 박스였다. 그곳에
는 건축 도면들로 보이는 여러 장의 종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중국집을 비롯한 여러 음식점들의 전화번호 적힌 스티
커들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었다.
사내는 꽤나 튼튼하게는 보이지만 그 외의 것에서는 전혀 신경
을 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 목조 의자에 앉은 뒤, 사무용 책상에
팔꿈치를 지탱하여 턱을 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을 오면서 봤겠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꽤나 젊은 녀석들
이 많지. 개 중에는 대학을 다니다가 학비를 마련하려 잠시 휴
학을 하고 일을 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고, 없는 살림에 그나마
가족들을 부양할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일을 하고 있는 나이
든 분들도 있지. 그리고… …,”
사내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지금 까지 유지되어 왔었던 무표정
을 지우며 말했다.
“너처럼, 개인 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관두고 돈을 벌고 있는 고
등학생 녀석들도 몇 명 있다.”
“저, 정말요?!”
우와! 그, 그렇다면 나도 채용해 줄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가
만, 하지만 2010년부터 시작된 미성년자 채용 금지법이 있는데?
특히 이런 공사 현장 같은 곳은 단속이 더욱 심할 텐데… … 뭐
가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난 궁금했던 것을 바로 입 밖으로 꺼냈다. 물론 그것에는 두목
이라 불렸던 이 사내의 어조에서 빨리 이 질문을 해 봐라 라는
것을 느꼈던 이유도 있었다.
예상대로 사내는 내가 질문을 던지자마자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미성년자 채용 금지법을 생각하자면 여기에 펼쳐진 이
상황은 불가능하지.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 법에 대한 체
제와 단속만큼은 질리도록 철저했으니까. 이 법은 공포(公布)되
어 지고 난 직후에는 별 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그저 형식상의
법으로만 기억되어 질 줄 알았지. 하지만 철두철미한 단속과
무거운 처벌은 불과 1년 만에 사람들의 의식 속에 확실히 정착되
어 지고 말았어. 그래서 그 후부터는 어느 곳이든지 인력이 필요
한 곳이면 반드시 성년 여부를 따져보게 되었고 미성년자들은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의 가게가. 그리
고 사업장이 안전할 수가 있기 때문에 설마 유흥가나 더 심하게
면 창녀촌이라도 미성년자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지.”
여기까지는 나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여기에 미성년자가 일을 하고 있는 거랑 뭔가
상관이 있는 건가?
사내는 작게 한숨을 내 쉰 다음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리며 계속
해서 입을 열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미성년자들의 윤락 및 타락 행위를 막는 데
에 큰 공로를 했지만, 또 다른 엉뚱한 문제를 낳게 되었다. 그
것은 바로 스스로 돈을 벌어 집안 살림을 지탱해야만 하는 소년
?소녀 가장들에 대한 문제였다. 법이 시행되고 난 후, 분명 사회
악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반대로 소년 소녀 가장들은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법이 시행되어 버렸으니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가장들은 꼼짝없이 굶어죽게 되어
버린 것이 바로 그것이지. 더 기가 막힌 것은 정부였다. 채용
금지법은 그렇게 단속도 열심히 하며 신경을 썼으면서 정작, 돈
없고 힘없는 사회에서의 최대 약자인 그들에 대한 법률은 전혀 신
경도 쓰지 않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 아니었겠나
? 결국 정부는 악을 가까스로 억누른 대신 선을 악을 변모시
켜버리는 비극을 창출해 내었지. 가장들은 거지가 되어 구걸하며
먹고 살거나 또는 스스로 폭력단체, 등등에 자신의 삶을 던지게
되었지. 물론 그런 일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이들도 있어서
결국 처절한 발악 끝에 자살, 아니면 영양실조 등등으로서 죽음
을 맞게 되었지만 말이다. 일이 그렇게 되자 시민단체들을 비롯한
, 여러 자선 단체들은 소년 가장들에 대한 구호 대책을 외치게
되었고 결국 정부는 복지에 대한 자신들의 무관심함을 통탄하며
또 다른 하나의 대책을 내놓게 되었지.”
“그런 것도 있었나요? 몰랐는데… ….”
“물론. 바로 여기서 보터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더군.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 그것은 바로 지극히 제한적인 몇 군대에
한하여 미성년자의 고용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단, 여기에서
또 커트를 하자면 그 대상이 미성년자 중에서도 부모가 없는 완
벽한 소년 소녀 가장들에 한해서라는 것으로 좁혀지지만 그것만
으로 충분히 소년 가장들이 먹고 살 길을 열리게 된 거지.”
“음, 그렇군요. 아, 그럼 그 사람이 소년 소녀 가장이라는 것은
어떻게 확인하는 거죠?”
“뭐, 간단하지. 주민등록등본 한통만 있으면 다 처리되는 문제
아니겠나?”
“아~ 그렇군요! 주민등록등본!”
“음. 그렇지.”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창가에 시선을 계속해서 고정시켰다. 표
정이 워낙에 덤덤한 지라 도대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자, 그럼… ….”
생각을 마친 건지, 사내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내게로
고정시켰다. 사내는 오른 쪽 주먹을 꽉 쥐고는 왼손으로 살며시
어루만졌다. 사내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의미를 알 수 없
는 미소가 맺혔다.
이, 이거 왠지 불안한데?
“어디한번 들어볼까?”
윽! 드디어 올게 왔구나.
자~ 그럼, 뭐라고 대답을 한다지?
어 둠
“음. 오늘도 역시… ….”
수한을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을 지금 이 순간 하나의 감정을 공
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차마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 못할
답답함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덧 12월 접어들었지만 아직 하늘을 청명하기만 했다. 그래
서인지 자신들의 가족이나 친우를 찾아 병원으로 온 인파가 상
당했다. 병원에 마련되어 있는 푸르고 넓은 정원은 입원으로 인
해 단란한 피크닉을 즐기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있어서 고마운
휴식처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볼수록, 수한
을 비롯한 상찬과 성진, 그리고 홍일점인 혜미는 답답함과 울분
만이 계속해서 쌓일 뿐이었다.
그 이유를 찾자면.
“크으! 이 녀석은 도대체 뭘 하며 다니기에 잠복을 한지 이주일
이 지났는데도 옷자락조차 보이지 않는 거야?! 으아아! 답답해!
이거 정말 미치겠네!”
그렇다. 벌써 2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는 수호가 그들
의 답답함의 원인이었다.
“연락 온 것 없어?”
수한은 분노를 콱콱 억누른 얼굴로 성진을 향해 짧게 질문을 던
졌다.
“없어.”
역시 대답 또한 간단명료했다. 그러나 그 짧은 문답 속에 보통
사람들로는 상상도 못할 수많은 의미와 감정이 담겨 있었다는
것은 거론한 여지조차도 없으리라. 수한은 묶지 않고 길게 풀어
헤친 탓에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
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쉬며 탄식을 터트렸다.
“후우~! 제길! 벌써 2주일 동안 저녁 12시까지 집 앞 쪽에서
잠복을 했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니, 수호 이 녀석! 진짜
만나기만 해 봐라. 아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테다! 으
아아아!”
그간 수호 문제로 받은 스트레스 인해 성격이 상당히 날카로워
진 수한이었다. 수한은 남들이야 쳐다보든 말든 조금이나마 가슴
속에 가득 쌓인 이 답답함을 달래보고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에 처음에는 움찔하던 성진 또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수한과 같이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둘은 얼굴을 붉히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
며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행위는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주위 사람들의 황당한 반응들을 이끌어 냈으며
그 중 몇몇 자신들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빙글 빙글 돌려가며
킥킥대기도 했다. 일행 중 아직까지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혜미와 상찬뿐이었다.
“후아아! 좀 시원하구만! 아아, 진작 한번 이렇게 해 볼 것을.”
“좋다! 앞으로 종종 애용해주자. 이히~!”
이제 좀 개운해진 듯, 그들은 환한 표정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
다. 그런 둘을 보며 역시 포커페이스의 대명사. 상찬은 살짝 한
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 녀석, 괜찮으려나? 제 정신이 아닐 것 같은데… ….”
문득, 성진이 하늘을 쳐다보며 걱정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에 동감한다는 듯, 상찬과 수한, 그리고 혜미는 고개를 끄덕
이며 동의를 표했다.
수한은 벤치에 오른 쪽 팔을 걸치며 성진의 말에 화답했다.
“뭐, 반쯤은 돌아있겠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동생이 다 죽을
지경인데 제 정신일 여유가 있겠어?”
“뭐, 그렇긴 하겠지만… …, 에이. 괜히 내 기분까지 칙칙해지
네.”
“후훗.”
성진은 골치 아프다는 듯한 표정으로 지으며 머리를 거칠게 긁
적였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혜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웃
음을 터뜨렸다.
- 삐리리리~!
“음? 뭐야?”
그 때 단음의 익숙한 클래식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수한은 바
지 주머니에서 은색의 작고 동그란 핸드폰을 꺼낸 뒤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보세요?”
- 촤락!
수한의 음성이 떨어지자마자 작고 둥글납작하기만 하던 은빛 핸
드폰이 부드러운 마찰음을 내며 마치 목도리 도마뱀의 그것처럼
크게 펼쳐졌다. 동시에 익숙한 얼굴이 허공에 그려지며 마치
실물과도 같은 영상을 만들어내었다.
- 여보세요? 아. 형. 저에요.
“아, 형섭이구나.”
그 영상의 정체는 바로 형섭이었다. 수한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
며 입을 열었다.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니? 후우, 뭐, 예상했지만 오늘도 역시
별다른 소득을… ….”
수한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수한의 말을
자르고 다급히 이어진 형섭의 말은 잠시 그들의 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 형! 수호 형을 찾았어요!
“하하, 그러니까… …뭐?”
“수호를… … 찾았다고?”
- 예! 수호 형이 방금 막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들이 그토록 기다려왔었던, 그러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소식에 모두가 할 말을 잊어버린 채로 눈만 크게 떴다. 형섭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황급히 말했다.
- 드디어 수호 형이 나타났어요! 방금 막 집으로 들어갔어요!
빨리 오세요! 빨리!
잠시 후, 그들의 입에서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
“으아아아아!”
“아, 형~! 여기요! 여기!”
형섭 일행은 미친 듯 크게 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뛰어오는 수
한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특히, 기합이 팍팍! 들어간
수한과 성진의 모습에 형섭 일행은 섬뜩함을 느끼며 일부는 식
은땀을 삐질 흘리기도 했으나 그들의 저런 반응의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또한 통감하는 그들이었기에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어
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헉! 헉! 어디 있어?! 어디야?!”
“우오오! 강수호! 넌 죽었어!!”
마치 먹이를 노리는 늑대의 그것처럼, 눈을 번뜩이며 주먹을 쥐
었다 폈다 하는 그들의 모습에 형섭은 다른 이들을 쳐다보며 다시
한번 어색한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여 보인 다음 수한 일행에
게 말했다.
“방금 집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
“음?”
“그런데 뭐?”
“그런데 좀… ….”
형섭은 미간을 찌푸리며 흐렸던 말을 잇기 시작했다.
“뭔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저희들도 멀리서 봤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 뭔
가, 조금 불편해 보였었어요.”
“그래? 뭐, 만나보면 알겠지. 자, 일단 들어가자.”
“네. 얘들아 들어가자!”
그들은 초록색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좁은
것은 둘째 치고 깨진 화분들과 정리가 안 된 화단들의 영향에
꽤나 지저분해져 있는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을 본 듯
만듯하며 수호가 살고 있는 방으로 다가가는 수한 일행과는 달리
, 형섭 일행은 얼굴을 찌푸리거나 살짝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자신들이 존경하는 수호가 이런 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을 약하게나마 표현했다. 물론 지금이 처음 방문하는 것
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로운 것은 도저히 어
찌할 수가 없었다.
- 탕탕탕
일행들의 대표로 수한이 노크를 적당히 힘을 조절하여 문을 두
드렸다. 그러자 방문은 갈색의 페인트 톤에 엷게 니스 칠이 되어
있었는데 수한의 노크 탓이었던지 아니면 세월의 흔적 탓이
었던지, ‘똑똑똑’이라는 정상적인 소리 대신에 문이 울리며 적잖
은 타격 음이 들려 왔다. 그에 형섭과 경원을 비롯한 일행들이
서로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작게 감탄이 가득한 음성을 발했다.
“이 녀석, 자고 있는 건가? 뭐, 그럼 할 수 없지.”
이름을 부르며 몇 번을 두드려도 별 다른 대답이 없었다. 결국,
수한은 다행히 문도 잠겨 있지 않으니 일단 들어가고 보자라는
심정에 조심스럽게 문을 연 뒤 얼굴을 열린 틈 사이에 들이밀기
시작했다. 성진과 형섭도 수한과 같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 뭐야!”
“이런!”
“젠장!”
그리고 그 순간. 그 세 사람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며 커다란 탄
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 그들의 얼굴은 경악
으로 크게 물들어 있었다.
- 쾅!
“수호야!”
“젠장! 이 미친 녀석!”
부엌에 죽은 듯 쓰려져 있는 수호의 모습은 세 사람을 비롯한
나머지 이들로 하여금 경악을 가지게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
었다.
“젠장! 형섭이 너와 경원이. 너희들은 빨리 방안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깔아! 일환이, 너는 물수건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같이
수호 좀 방안으로 옮기자! 수호 녀석, 몸이 뜨겁다! 빨리 움직여
! 빨리!”
“네!”
“알았어요!”
“야! 조심해서 들어올려!”
“하나 둘, 으쌰!”
그들은 수한의 지시에 따라 황급히 움직였고, 덕분에 오랜 시간
이 지나지 않아 집안은 정리 될 수가 있었다.
“이 녀석 그 많은 수술비를 혼자 감당하려고 그 동안 꽤나 무리
했던 것 같아. 얼굴이… … 젠장. 진짜 말이 안 나오네.”
성진의 말에 통감을 하듯, 방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침울한 기
분으로 아무 말 없이 수호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죽은 듯 누워있는 저 모습이 이렇게 낯설 수가 있다니… …, 심
하게 야윈 얼굴과 눈 밑에 뚜렷히 나있는 검은 기미는 그들 모
두의 가슴을 뜨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중에서도 수호를 가장
존경하고 또 너무도 좋아하던 일환과 형섭은 치솟아 오르는 울
분에 못 이겨, 그만 눈물을 흘리기 까지 했다. 다른 일행들 또
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뿐이지,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애써 참
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 새근새근
방안은 수호의 숨소리와 그것을 듣고, 또 그 본연을 보고 있는
이들의 슬픈 침묵으로 가득했다.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일생에 있어서 두 번 다시는 없을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픈 삶을 가진 친구가, 동생이, 그리고 형이 바로 여기에 있
었다. 세상의 그 어떤 위인들보다도 위대하고 훌륭하다고 칭송받
아 마땅할 이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들은 보고 있었다.
단신으로 기댈이 하나 없이 홀로 생계를 유지하고 올바르고 훌
륭하게 동생을 키우며 살아왔던 이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상관없다. 그의 일생을 한번이라도 들어본다면
세상의 그 어느 누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단순히 책임감이
강해서라는 말로는 그의 일생을 표현할 수가 없다. 그 누구보
다 열심히 살아왔으며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실로 존경
스러워 마지않을 그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
“후우우, 젠장!”
바로 이 자리에, 너무도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존재하지 않고 대상을 찾을 수가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해, 그 누
군가에 대한 원망은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친 욕설을 허공
에 떠돌게 하였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계속해
서 침음성을 흘렸고 두 주먹을 꽉 쥐어보기도 하였다.
너무나 원통하고 분했다.
그리고 무력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있어 원통한 일은… ….
“우린… … 충분히 힘이 있으면서도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건가?”
충분히 힘이 넘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
다는 것. 도와주고 싶어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들이 착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맹세코 단 한번도 없었다. 세
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거칠게 놀아보았던 그들이
었고 또 그렇게 살아왔던 그들이었다. 그것은 수한 일행들도 마
찬가지였다. 자신이 하고 싶으면 했고, 또 가지고 싶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져 보았다. 그들은 힘이 있었고 그만한 재력과
인맥이 있었다.
소위 스폐셜 리스트라는 호칭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
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이 좁디좁은 방안에 누워있는 너무도 볼품
없고 나약한 한 소외 계층인 한 사람 때문에 너무나 깊고도 넓은
무력감과 슬픔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해어 나오지 못하
고 있었다.
단 한 사람.
바로 강수호 일개 고등학생 때문에.
“제길… …, 이게 무슨 꼴이냐.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힘이 충
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멍청히 앉아 있으면서 무력감에
빠져 있는 꼴은 대체 뭐야? 이런 기막힌 상황은 도대체 왜 일
어나는 건데? 제길. 제길!”
일환의 말은 그들의 울적한 심정을 다시 한번 자극했다. 머리가
좋고 사리 분별을 잘할 수 있는 자신들의 머리가, 이 순간, 이
렇게도 원망스럽고 한스러울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부모의 재력
만 믿고 설치는 3류 양아치들이었다면 차라리 낳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나름대로 도움을 줄 수가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도움이라는 것은 상대가 원할 때, 그리고 간
절히 필요를 할 때야 비로소 줄 수 있는 것, 도움의 대상인 수호
가 그렇게 거부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들이 움직이게 된다
면 그것은 도움이 아닌, 권력을 지닌 자의 횡포요 또한 만용 밖에
는 되지 않을 뿐이다. 상대가 원치 않는 도움은 그런 것이다.
“으으음… ….”
그렇게, 그들이 한참 무력감과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수호에게
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퍼뜩 고개를
치켜들어 서로를 쳐다보다가 신음의 대상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호야! 수호야!”
“야! 괜찮냐! 괜찮아?!”
“형! 형 괜찮아요?!”
“형 저에요! 저 일환이에요!”
그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수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
다. 그저 힘없이 가늘게 뜬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 시간이… ….”
한참을 그러고 있던 수호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시계가 걸려 있
는 곳을 향해 힘겹게 시선을 옮겼다. 수호의 그러한 모습은 수
한과 다른 일행들이 자신의 주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일행은 더욱 애간장이 탔다.
“다, 다섯 시… …, 느, 늦었어. 어서 다음 일을 하러가야…
….”
“수, 수호야!”
“임마! 너 지금 뭐해!?”
“일, 일을 하러 가야지. 이, 일어나야… ….”
역시나, 수호는 주위에 수한 일행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
고 있었다.
“형! 오늘은 그냥 쉬세요!”
“수호 형! 제발 좀 쉬세요!”
“형! 형! 제길!”
너무도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는 수호를 일행이 기겁을 하며 말
렸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수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무리를 하며 몸을 일으키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었다.
“으으… …으아아! 가야해! 일하러 가야 해! 으아아아!”
“제길! 형! 제발 정신 좀 차려요! 형!”
“돈을 벌어야 해. 지훈이, 우리 불쌍한 지훈이… …, 어서 일을
하러 가야해. 이, 일을 하러 가야… … 으아아아!!"
“수호야! 제길! 수한이 형! 상찬이 형! 어떻게 좀 해봐! 이 녀
석, 완전 미쳤어! 제 정신이 아냐!”
“으아아아아!!”
“야! 정신 차려! 제길! 형! 어서!”
“으아아아아! 으아아아!!”
“형!!”
어디서 힘이 나는 건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강한 수호의 괴력
에 형섭 일행을 비롯한 성진은 그 힘을 감당 못하여 수한과 상
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분명 두 사람이라면 수호를 진정시킬
수 있으리라는 묘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수호에게는 나중에 사과를 하기로 하고… …,
상찬아.”
“음.”
수한은 안타까운 눈빛을 지운 다음, 단호하게 상찬의 이름을 불
렀다. 상찬은 수한의 신호를 이해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일행들을 비켜서게 했다.
“음? 뭘 어떻게 하… ….”
- 퍼억!
“커… 허어어억… …!”
상찬은 주먹을 꽉 쥔 뒤, 수호의 배를 향해 힘차게 구겨 넣었
다. 그 모습에 수한을 제외한 모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상찬은 다른 이들의 그러한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한번 같은 부분에 주먹을 강하게 구겨 넣었다.
“커어억… ….”
- 털썩.
몹시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과 짧은 신음성을 마지막으로 수호
는 털썩 방바닥에 엎어지며 기절을 했다.
일행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담담한 모습의 상찬을 쳐다보았으나
그것도 잠시, 다시금 관심을 수호에게로 돌리며 엉망진창으로
흩어져 있는 이부자리를 제대로 펴고 수호를 그 위에 눕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상찬은 결국 묵묵히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이젠 더 이상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군."
"그, 그러면… …?“
“애초에 기획했던 대로 수술비는 우리가 마련한다. 그 외 모든
것은 나와 수한이 알아서 처리하지.”
“네! 제가 절반 정도는 마련해 볼 수가 있어요!”
상찬의 말에 일행의 얼굴을 활짝 펴졌다. 특히 일환은 드디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활기가 가득 얼굴로 상찬에게 말했다.
그러나 상찬은 조용히 고개를 저은 뒤 말했다.
“아니, 저번에 말했다시피 부모님에게 의지하여 나오는 도움은
진정한 도움이 아니다. 누구를 도우려면, 특히 그 대상이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너의 힘으로 도울 줄 알아야 한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간단하지. 가능한, 너희들이 정당하고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모두가 돈을 모아라. 모금도 좋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좋다. 너희들의 힘으로, 당당하게 돈을 모아라. 절대 너희
들 부모님의 도움은 얻지 마라.”
“예? 그, 그러면 모을 수 있는 돈은 얼마 안 될 텐데요? 나머지
는 어떻게… ….”
의문이 가득한 형섭의 말에 상찬은 다시 한번 담담히 입을 열었
다.
“나머지는 나와 수한이가 마련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수한이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충분히 있다.”
“으음… …, 네. 그렇다면 그렇게 하죠.”
“좋아. 그렇다면 빨리 움직여라. 지금 당장.”
“네? 네. 얘들아! 가자!”
“알았어!”
가차 없는 상찬의 말이지만 그들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부모님에 의존한 도움이 아닌 순수하게 자신들의 힘으로 모은
도움.
그리고 그것의 엄청난 차이.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상찬은 그 차이를 알려주려 일부러 그
렇게 처신한 것이었다.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그것을 느낀 그들
이었기에 형섭 일행은 별다른 항의 없이 자존심을 꺾고 상찬의 말
에 따라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들이 자리를 떠나자 성진은 아까부터 묘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던 혜미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기, 누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에요?”
“… ….”
성진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혜미는 수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성진은 더 이상
말을 걸 엄두를 못 내고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수한과 상찬을 향
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 벌떡.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혜미는 문득 몸을 일으켜 자리
에서 일어섰다. 수한과 성진은 의아한 눈빛으로 혜미를 올려다
보았다.
혜미는 무언가를 굳게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일행에게 말했다.
“미국에 다녀올게요.”
“네? 미국에는 무슨 일로… ….”
“아무래도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저렇게
정신이 나가있고 예전과는 달리 의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고 있는 수호에게 불을 지피려면… … 강력한 그 무언가가
필요해요.”
“아… …,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 것 같네요.”
수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적어도 4일 내에 다시 올 테니
수호를 잘 부탁해요.”
“네. 맡겨두세요.”
성진의 듬직하면서도 장난끼가 다분히 엿보이는 대답에 혜미가
풋 짧게 웃음 터트렸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렇게 혜미 또한 나가고 이제 방안에는 수한과 상찬, 그리고
성진, 이 셋. 아니, 수호까지 합하여 네 사람 만이 남아있게 되
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 이렇게 서로 만나게 된지 얼마 안 됐
지?”
“음, 생각해 보니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네? 하하~ 진짜 신기하
다.”
수한의 말에 성진이 맞장구를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우리가 만난 지는 한달도 채 되지 않았지. 그런데 왠
지… … 벌써 10년은 더 된 사이 같지 않아?”
“그래 맞아. 이유가 뭘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 나 같은 경우는 이래. 뭐랄까?
만나면, 만나는 그 자체로 즐겁고 좋다는 것? 생각해 보니 우리가
만나게 된 것도 결코 평범한 이유는 아니었잖아?”
“음, 그렇지. 서로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대 위, 그리고
하나의 음악과 노래로 이어진 인연이라는 것이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지.”
“그럼~!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지. 암~!”
성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수한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수한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
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느끼는 건데… …, 세상이라는 것은 그런 것 같아.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장소와 처해진 상황 같은 것은, 사람의 인
연을 만들고 또 그것을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보너스 트랙 같은 것
? 아니, 부속품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것. 내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하지?”
“아, 물론!”
“그래. 사람이 세상을 살다가 어떤 특별한 만남으로 인연을 갖
게 될 때, 그리고 그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될 때야 비로소
진정한 삶의 푯대가 세워지는 것 같아. 뭐, 그것이 특별한 인
연인지, 아니면 이것을 계속 지속시켜야 되는 것인지는 그 당사
자의 선택이겠지만 말이야. 뭐, 이런 말이 있잖아? ‘사람에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들이 반드시 찾아온다. 의사로서의 일
생 학자로서의 일생, 연예인으로서의 일생 선생님이나 교수로서의
일생, 그리고 심지어 대통령의 일생까지. 그 일생들로 갈 수
있는 선택의 갈림길이 사람에 따라서 특별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
니라, 모든 사람에게, 모두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 말이야.
그 선택의 갈림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은 아주 특별한 상황으로 찾
아올 수가 있고, 또 어떤 것은 아주 어이없을 정도의 작고 세세
한 상황으로 찾아올 수가 있게 된다고 하더라. 이 말을 꽤나 어렸
을 적에 어떤 책에서 읽었었는데… …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지금 이 때 까지 계속 마음에 간직하고 있
었지. 내가 상찬이 너에게는 종종했었던 말이지?”
“음.”
“이 말의 영향 때문인지, 난 사람의 일생은 하늘이 운명처럼 결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결정한다는 것을 믿게 되
었지. ‘사람의 일생은 어떠한 인연을 선택하고 또 그것을 붙잡아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라는 것. 이것은 내가 가
지고 있는 내 삶의 몇 가지 진실중의 하나야. 언젠가는 특별한
인연으로 반드시 찾아오겠지 라고 그냥 막연하게만 믿고 있었
던 진실인데… …, 웬일인지 난 지금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게
바로 그 특별한 인연이… … 내가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을,
너무나 마음에 드는 인연을 찾은 것 같다라는 것.”
“헤헤. 나도. 형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찾은 것 같네?”
“그래? 후후후. 상찬아 너는 어때?”
“음… …,”
상찬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 없이 수호에게로 시선을 돌렸
다. 그 모습에 수한과 성진이 서로를 바라보고 피식 미소를 지
으며 역시 수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수한은 안쓰러움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조용한 어조로 수호를
향해 질문을 던지듯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제는 너의 대답만 남았어. 물론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들어 결
단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 이제는 너도 너의 인연을 찾고
너의 인생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와 같다면 더
욱 좋겠지만 말이야. 지금 당장 대답하라고 재촉하지 않으마. 인
연은 서로가 원할 때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거니까. 기다릴게.
그러니 힘을 내라 수호야. 힘내.’
맑고 청명했던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며 붉었던 하늘은 어둠의 장막으로 뒤덮여
지기 시작했다.
깊고도 깊은… …, 슬픔과 통탄만이 가득했던 하늘은 어느 새,
별빛이 작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하늘로서 뒤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