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4
- 재 회
"제길! 그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말을 못
알아들을 수가 있는 거지? 멍청한 녀석… …, 제길! 그 멍청한 사장 녀석!"
파란색의 와이셔츠와 단추를 잠그지 않고 풀어 해친 검은색의 정장 마의.
"젠장… … 젠장!"
무엇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주목케 하는 것은, 찬란하게 흘러내리는
황금빛 폭포수를 연상케 하는 허리까지 닿는 길다란 생 머리와, 무척 여리고
고운 얼굴선, 그리고… …, 왠지 냉정해 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고집스러
워 보이기도 하는 그의 날카로운 눈매였다.
무척이나 인파가 들끓는 시내였건만, 이상하게도 이 사내의 존재감은 유독
그의 곁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내의 이름은 김수겸. 올해로 연애계 스카우터 생활 10년째를 맞이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요, 프로 중의 프로였다.
에이스 엔터테이먼트.
현재 김수겸이 종사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상당히 유명한 곳이었고, 또 연애인을 지망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입단하고 싶은 곳 Best 3 중의 하나에 들 정도로 인지도 또한 높았다. 올해
로 창립 20주년. 이곳은 타 엔터테이먼트들과는 달리 역사도 있었고 또한 이
름을 말하면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
을만한 스타들도 많이 배출한, 정말 남부러울 것 없는 곳이었다. 이 기획사
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직원들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
에 걸맞는 능력과 책임감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 한가지. 그런 이들에게도
불만족스러운 단 한가지의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라를 뒤 흔들만한 톱스타는 배출하지 못했었다는 것.
그럭저럭 유명한 스타들을 많이 키웠고 또 배출한 곳이었지만, 그것으로
다였다.
키울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운이 안 따라 주는 건지… …, 그것은 모
든 것을 총괄하고 또 결제하는 하위 직원들에게는 배일에 쌓인 존재로만 인
식되어져 있는 '사장'만 알 일이다.
김수겸은 바로 이러한 점이 고민이었다.
자신은 분명히 톱스타가 될 수 있을만한 자질을 지니고 있는 두 명을 똑똑
히 눈으로 봤었고, 또 분명히 그에 대한 보고서를 사장이라는 인간에게 올렸
다. 하지만 그 사장이라는 인간은 그저 조금 멋있는 공연을 보여줬다고 해서
정체도 모르고, 또 출신도 모르는 그런 일개 고등학생에게 돈을 들여가며 투
자를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더 이상 그에 관한 사항을 언급을 하지 말 것
을 명령했다. 이에 하다 못에 오디션이라도 한번 보게 해달라고 아예 매달리
다시피 요청하기는 했지만, 그것 또한 안 된단다.
이유를 물어보니, 지금 소속되어 있는 연애인들만으로도 제정과 인력이 모
자랄 지경이니, 더 이상 신인을 받아들이게 되면, 회사가 위태해 질 수도 있
다는 것이다. 에이스 엔터테이먼트에서 10년 이상을 열심히 뛰어왔었던 김수
겸에게는 그 말은 기가 차다 못해 웃기지 않은 헛소리였지만, 사장이 그렇다
고 하고 또 비서까지 맞는 말이라고 하는데 일개 스카우터에 불과한 자신으
로서는 더 이상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스카우터와 매니저.
이 둘은 정말 미묘한 관계였다.
엔터테이먼트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단 하나의 꿈이 있다면, 괜찮은
신인을 발굴하고 키워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트린 다음, 벌어들인 돈으
로 자신만의 기획사를 차리는 일이다.
스카우터와 매니저는 바로 그 꿈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평사원으로 열심히 알해서 실적으로 쌓으면 바로 스카우터로 승격이 되는
데, 바로 그 때부터 스카우터들은 열심히 거리를 돌아다니는 어디를 돌아다
니든 해서, 자신이 키울 인재를 찾아다니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찾아내게
되면 그들을 기획사 오디션 팀이나 사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오디션과 면접을
보게 한 다음, 합격이 되면 이제 그 때부터 스카우터는 매니저로서 승격 아
닌, 승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약 자신이 찾은 인재가 톱스타
가 되었거나 해서, 소위 말해 '뜨게 된다면' 거기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따로
독립을 하여 개인적인 사업을 하던지, 또 무엇을 하던지 하겠지만, 보통, 이
렇게 성공한 매니저들은 개인의 기획사를 차리곤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이 찾은 인재가 뜨지 않게 되면? 과연 그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인
가.
별 다를 것 없다.
그냥, 그 인재는 원래 없던 것처럼… …, 조용히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매니저에서 다시 스카우터로 떨어진 사람은 이전처럼 자신이 맡아
키울 인재를 찾아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래서 스카우터처럼 불안정하고 오래 못 가는 직업은 현 시대에 있어서
그 적수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라고 사람들은 농담 삼아 누누이 이야기를
하곤 한다.
김수겸. 이런 점에서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보통의 스카우터들이 5년을 넘기지 못하는 것에 반해, 그는 벌써 10년을
넘기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방송국에서도 꽤 유명했고, 심지어는 가수를 지망하는 일반인
들에게도 그의 이름은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그가 발굴해 내었
던 인재들이 지금은 TV에서나 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대단한 스타
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기획사 내에서도 그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발굴해내었고, 또 키웠던 가수들이 모두 당당하게 그 깃발을 날렸
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로 2년 이상을 맡지 않았다.
왜 그런지 자세한 속사정은 본인과 사장밖에는 모른다.
하지만 누누이 퍼지고 있는 소문은, 발굴해 내었던 모든 이들이 김수겸 그
가 바라는 이상형에 맞지 않은 탓이라고들 설명한다.
물로 그 소문에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지만… …, 그 소문이 진짜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그는 차가운 냉소와 함께,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
뿐. 더 이상을 반응은 보여주질 않았다.
벌써 스카우터 생활을 한지 십 수년, 이제 까지 마음에 합당한 이들을 찾
지 못해 내면적으로 많이 방황을 하던 그였지만… …, 그 때. 그는 자신의
일생을 변화시켜 줄 대단한 인재를 결국, 발견하고야 말았다.
바로, 빌리진의 그 소년과, 스테키타네의 그 성별을 모를 정체 불명인.
아마 눈 있는 스카우터들이 그 공연을 봤었더라면, 앞 뒤 가리지 않고 달
려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자신도 모든 행사가 끝나자마자 그 두 명을 찾아
무대 뒤쪽으로 갔었지만, 그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후였다. 그는
그 일을 두고, 무척이나 안타까워했으며, 때문에 미련이 남아 사장에게 말을
해 보기도 하였지만… …, 결국, 그는 큰 미련을 접어둘 수 밖에 없는 상황
에 처하게 되었다.
자신이 반드시 찾아오겠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쳐대기는 하였지만,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생각해 보라, 이렇게도 인구가 많은 대한민국의 땅 덩
어리에서 단지 이름만 가지고 사람을 찾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
가? 이건 쉽게 말해, 사막에서 한 알의 금가루를 찾는 것과도 비유될 수가
있었고, 또 바다에서 어렸을 적 놓아주었던 거북이를 찾는 문제와도 같았다.
"쳇. 이제 담배도 다 떨어졌군. 그나저나 이거 배가 고픈데… …, 오래간
만에 고급스럽게 놀아 볼까나… …?"
그는 슬슬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며 이리 저리 건
물들을 둘러보았다. 시내라서 그런지, 확실히 수많은 음식 전문점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어느 곳에 시선이 멈췄다. 그의 눈에 이채가 가
득했다.
"오호∼? 저 레스토랑 왠지 눈에 띄는 걸? 『 뮤즈의 장막 』 이라… …,
왠지 땡기는데? 한번 들어가보자."
그곳은 어느 건물의 2층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무척이나 비싸 보이는 곳
이었으나, 어차피 그에게 있어서 돈이란, 넘치고 넘치는 강물과도 같은 것이
었고, 또 그도 어찌 보면 상류층이라고 볼 수 있는 계층이었기에 항상 돈은
두둑하게 지니고 다니던 터였다.(돈 없으면 스카우터 노릇도 못한다.)결국,
그는 그곳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고는 성큼 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 피아노 연주회인가? 분위기도 있고… …, 여기 꽤 괜찮은 곳인데?"
레스토랑에 들어온 수겸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이곳이 자신의 취향이 딱
맞는 곳이라는 것에 감탄과 찬사의 탄성을 질렀다. 울창한 숲 속의 아늑한
통나무집 분위기는 그가 평소에 그토록 바라던 이상형이었다.
그 때.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흰 색 와이셔츠와 갈색의 조끼를 입은 청년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혹시, 예약 하셨습니까?"
"아∼ 아니, 예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
입니까?"
왠지 불안한 마음에 슬쩍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런 그의 걱정을
괜한 기우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아르바이트 청년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
며 말했다.
"설마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하하. 자, 저 쪽에 앉으세요."
"아, 예."
그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르바이트생이 가리킨 테이블에 가서 조용
히 안착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수겸이 테이블에 앉자, 아르바이트생이 갈색의 가죽이 덧 씌워진 얇은 매
뉴판을 건네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그것을 펴서 잠시 훓어 본 뒤.
다시 접어 그것을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네며 말했다.
"해물 스파케티."
"예. 감사합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수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조심스러운 걸음으
로 물러났다.
"후우,"
수겸은 테이블 위에 놓여진 나무 재질의 컵을 들어 물을 마신 뒤 조용히
한숨을 내 쉬었다.
'흠… …, 사람이 꽤 잘 되는 걸 보니, 꽤 이름 있는 곳인가 보군. 흠, 이
런 딱딱한 시대, 그것도 시내에 이런 곳이 있다니… …. 앞으로 종종 애용해
야겠군.'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그의 생각대로, 이 곳은
꽤나 넓었는데, 또 그만큼 사람 또한 많았다. 대략 30평 남짓 되어 보이는
규모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고인돌 식 통나무 테이블. 거기에 감미롭
게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 이런 곳에 손님이 없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
상할 것이다.
그는 무대로 시선을 옮겼다.
무대에서는 피아노 연주가 한창이었다. 잠시 모든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연주를 감상하던 그는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로군. 흠, 리스트 곡들 중 최대의 기교를 가지고 있
는 곡이라고 하던데… …,실수 하나 없이 잘 하는 걸? 후후, 여기서 또 한
명의 인재를 발견하는 군."
그는 눈빛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듯 입맛을 다셨다.
"보아하니, 절대로 신념을 저버리고 외길로 빠질 타입 같지는 않고… …,
이런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보니, 꽤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은
데… …, 뭐, 어쩔 수 없지. 아무리 마스크가 괜찮고 음악적 재능과 감각도
풍부하다고 해도, 본인이 싫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결국 요점은 그것이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본인의 의향이 없으면 말
짱 도루묵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일초라도 빨리 아쉬움을 버리는 것이 서
로에게 이로운 일이다.
"음식 올 때까지 간만에 피아노 연주를 감상해 볼까나."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고… …,
모든 것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이 수겸에게 느껴졌다.
그리고 피아노 연주가 수겸의 귓가와 마음 속을 부드럽게 감싸기 시작했
다.
곡의 제목처럼, 크고 작은 종소리들이 마치 살아서 활발하게 뛰노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 순간은 격렬하게… ….
어느 순간은 활발하게… ….
어느 순간은 경쾌하게… ….
어느 순간은 은은하고도 구슬프게… …,
전문가가 아닌 탓에, 이 곡의 탄생 배경과 그 속에 담겨있는 일화는 알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음악은 곡을 만든 이가 꼭 그가 정한 의도에 따라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감상을 하고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
어 작곡자가 숲 속을 배경으로 한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을 만들었다 치자.
그 곡이 전해지고 전해져, 음악을 즐기기는 하지만 전혀 음악에 대한 지식과
또 다른 이에 비해서 감각이 부족한 이가 그 음악을 듣게 되었다고 할 때,
과연 그 곡을 들으면서 그 사람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아마 마을 처녀와 청년의 유쾌한 사랑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장면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한 것은, 듣는 이의 감상은 작곡자가 의도한 곡의 분위기에는 절대 벗어나지
를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서 전쟁 후의 참
혹한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는 것과도 같다.
이 곡의 제목이 종소리라고는 하지만 은은하고 고요한 밤하늘 위에서, 마
치 수많은 별들이 즐겁게 뛰노는 장면이 떠올려지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수겸은 지금의 연주에서 바로 그것을 떠올렸다.
아름답고 고요한 밤하늘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별들의 대 향연… ….
옛날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펼쳐지면서 지금은 먼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동
심의 세계로 수겸을 초대한다.
초대된 그곳에서, 반짝이는 여러 색깔, 크기의 종들과, 또 별들과 함께 수
겸은 모험을 했다.
아기자기한 여러 모양과 색들의 종들이 열려있는 아름다운 나무들의 숲을
지나며… …, 밤하늘 아래서 아름다운 오색의 빛을 발하고 있는 이름 모를
숲을 거닐며… …,
어쩔 때에는 급격히 요동치는 호숫가 위를 혹여라도 풍덩 빠질까 두려워
다급히 뛰어가며, 또 어떤 때에는 밟으면 종소리가 나는 나무로 된 계단들
위를 거닐며… …,
그렇게 전혀 듣도 보도 못했던 환상의 세계.
- 띠리리링… …,
그렇게 한참을 빠져 지내던 그는 아쉬움을 접어두고 그만 현실로 빠져나오
게 되었다.
연주는 끝났다.
하지만 레스토랑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모든 이들은 방금 전 까지 자신들이 만끽했었던 그 환상의 여운을 곱씹느
라 아직 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 짝… 짝짝짝!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박수 소리는 그들을 다시 한번 현실의 나락
으로 되돌려 놓았다. 모든 이들은 안타까움을 접으며 자신들에게 이런 멋진
시간을 마련해준 고등학생의 소년에게 감사함의 박수를 보내었다. 수겸 또한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냈다.
- 꾸벅.
피아노를 연주했던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서 손님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
이며 박수에 대한 답례를 해 보인 뒤, 무대 뒤쪽에 마련된 통로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원래 대로라면 오늘은 특별히 외부의 음악가 분을 모셔야 했
었지만, 방금 피아노를 연주했었던 김기경 군이 바로 어제 저희 레스토랑의
가족이 되었기에 여러분들께 소개를 하고자 일정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자, 멋진 음악을 들려준 김기경 군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짝짝짝짝.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그는 손님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미소를 잃지않은 얼굴로 마지막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레스토랑은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은은하게 피어나고 있는 따뜻한 미소였다.
"하아, 잘 먹었다."
음식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 오늘 하루는 정말 행복 그 자체다.
음, 잘 사는 인간들의 삶이란 바로 이런 거로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왠지
처연하기만 한 내 현실에 화가 나가도 했지만, 어쩌랴. 이것이 지금의 내게
주어진 삶의 일부분인 것을!
"맛있지 잘 먹었어?"
"응. 정말 잘 먹었어. 휘유∼! 배불러 죽겠는데? 봐봐 이거, 하하하!"
나는 괜히 배까지 걷어 보이는 행동을 하며 내가 정말 만족스러웠다는 것
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이래야 비싼 돈을 쓰며 거하게 한턱을 낸 녀
석의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녀석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녀석아. 괜히 오버하지 말고 그냥 앉아있어. 적어도 후식까지는 먹
고 가야할 것 아냐."
후식? 후식도 나오나?
"후식도 나오냐?"
나는 내가 생각한 바를 그대로 성진이에게 전했고, 성진이는 고개를 끄덕
이며 말했다.
"정확히는 추가금을 낸다고 해야겠지. 자, 여기에서 아무거나 골라."
성진이는 자신의 뒤쪽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고, 나는 성진이가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시선을 옮겼다.
그것은 벽이었다. 우리가 앉아있는 쪽이 뒤쪽이었던 탓에 성진이 녀석의
바로 뒤에는 나무 무늬의 벽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걸려진 메뉴판
들을 쭉 내려다보았다.
"흠, 아이스크림도 있고… …, 샤베트도 있네? 오호∼ 쉐이크도 종류가 이
렇게 많다니, 몰랐네? 나는 밀크, 초코, 딸기 이 세 가지 맛만 있는 줄 알았
는데… …,"
"알았으니 빨리 골라 이 놈아. 너 오늘 내로 수한이 형과 상찬이 형에게도
간다더니, 이래서야 시간이 되겠냐? 빨리 고르고, 빨리 먹자. 응?"
내가 이런 저런 쓸데없는 말만하며 정작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를 않자, 성
진이가 넌지시 충고를 했다.
음, 깜빡했군. 빨리 고르자.
"난 딸기 쉐이크, 너는?"
"그럼 나도 같은 것으로 하지 뭐. 여기요∼!"
"예∼."
순식간에 고른 우리는 손을 들어 점원을 불렀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다 할
정도로 순식간에, 그렇지만 품위있게 우리에게 다가온 점원은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예, 여기 딸기 쉐이크, 소(小)자로 두 잔만 주세요. 빨리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쉐이크가 나오고 우리는 그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음미하며 대화
를 나누었다. 제일 처음 입을 연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가는 어투로 성진이에게 아까부터 궁금했었
던 것을 물었다.
"아까 그 김기경이라는 애 말이야, 친동생이라고 했었지? 그게 무슨 소리
야?"
"음? 아∼ 그거?"
"그래. 네가 친동생이라고 했잖아.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었어."
"음, 그건 말이야… …."
녀석은 빨대로 쉐이크를 한 모금 빨아들인 뒤,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녀석은 내 친동생이야."
이 녀석이 지금 장난하나… …, 그러니까 왜 친동생이냐는 것이 내 질문이
잖아!
내가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려 보이자, 녀석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뒤,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어렸을 적… …,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었어. 그게 어느 정도였냐∼ 하
면, 하루에 밥 한 공기를 챙겨먹기가 무척이나 힘들 정도였지."
과거를 회상하는 듯, 성진이의 표정은 조금씩 슬픔의 감회에 젖어들기 시
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