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2/111)

LESSON 4 

- 재 회 

"하하하! 그래? 참 이상한 할아버지네? 음, 근데 왠지 인상착의가 낯익단 

말이야… …." 

벤치에 앉아 녀석과 대화하던 도중, 나는 녀석에게 방금 전 까지 만났던 

노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성진이 녀석은 흥미롭다는 듯 이야기를 들으 

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분명 내가 아는 사람 같긴 한데… …, 에구, 모르겠다. 그건 그렇 

고… …." 

결국,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며 생각하기를 포기한 성진이는, 씨익∼ 하고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웬일이야?" 

"응?"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짧은 시간이나마 지켜봤었던 내가 아는 너의 성격 

은, 괜히 누구의 얼굴을 보려고 먼 곳까지 올 녀석은 결코 아니야. 그렇다면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 또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조금의 성의라도 보이려 

고 내가 다니는 학교까지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 되는데… …." 

… … 저런 귀신같은 녀석. 

나에 대한 평가가 약간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사실 그것이 틀린 말이 아 

니었기에 나는 아무런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염치없게 웃어 보이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뭐냐? 어떤 부탁을 하려고 나를 찾아온거야? 부담 가지지 말고 말해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내 사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뭐든지 들어 줄 테 

니." 

녀석은 큰 인심이라도 쓴다는 듯,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오른 쪽 다리를 

꼬며, 거만한 포즈를 만들었다. 나는 내 어깨에 올라온 녀석의 오른 손을 살 

짝 깨물어 주고는 녀석이야 비명을 지르던 말건 간에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별 건 아니고… …, 너, 혹시 우리가 처음 만났었던 그 때를 기억하냐?" 

"아고고∼ 망할 녀석… …, 그래! 기억한다 이 녀석아!" 

"후후, 그래. 기억하면 됐어." 

"됐다니? 무슨 소리를… …." 

나는 녀석에게 나름대로는 득의에 찬웃음을 지어 보였고, 그것을 어리둥절 

해 하며 바라보던 성진이는,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 지, '설마… ' 하는 표정 

을 지었다. 

"너 설마… …." 

아무래도 눈치 챈 것 같군. 역시 엘리트는 다르다는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의 추리를 칭찬하려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 

"나, 난 돈 없다! 나한테 돈 꾸러 온 거라면 너 큰 실수야! 돈 없어! 난 

돈 없어!" 

"… …." 

이 녀석… …, 이것을 개그라고 한 걸까? 확 때려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도 자기 행동이 얼마나 재미없었고 또 

썰렁했는지를 아는 것 같았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헤헤헤, 미, 미안하다. 간만에 한 개그였는데… … 안 웃겼나 보지? 그, 

그래. 무슨 일이야?" 

"… 후우. 그래. 지금 모든 것을 세세하게 말하기에는 너무 사연이 기니 

깐, 간단히 요약을 해서 설명해 줄께. 그러니깐 어떻게 된 거냐 하면… …." 

- 띵∼동∼댕∼동. 

그런데 그 때.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막 입을 열려던 나 

는 황당함에 못 이겨 입을 쩍 벌린 상태로 굳어버렸고, 성진이 녀석은 '하 

하… 거 참.'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괜찮아. 너무 좌절하지는 말고… …." 

"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나 또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거야?" 

나는, 설마 아니겠지? 라는 간절한 표정을 내비치며 성진이 녀석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성진이는 더욱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 …, 아∼! 아니다! 안 그래도 되겠 

다!" 

"응? 뭔 소리야?" 

그러나 내 바램은 어쩔 수 없이 꺾여져야 한다는 듯, 잔뜩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입을 열던 녀석은, 무엇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탄성을 발하며 얼굴 

을 활짝 펴고는 다시 황급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에는 특별한 날을 정해 놓지 않고 언제 어느 때든, 열린 수업을 

지향하는 뜻으로 수업을 공개하거든. 그래서 교무실에 가서 다음 참관할 과 

목 담당 선생님에게 신청서를 제출하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참관인으 

로서 수업에 참여를 할 수가 있어." 

"그, 그래?" 

"그래. 그러니까 바로 가서 신청서를 작성한 다음에 수업에 참여를 하면 

돼. 종종 이런 일이 많이 있어서 그렇게 신기하게 쳐다보지도 않을 테니깐, 

반 아이들의 시선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 나보고 같이 수업을 듣자고?" 

"뭐, 쉽게 말하면 그런 거지. 자, 빨리 가자∼!" 

"어, 어어∼?!"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로 다급히 이끌었다. 

후우, 그 유명한 서울 종합 예술 고등학교의 참관 수업이라니… …, 뭐, 

공부하는 거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거 왠지 기대가 되는 걸? 좋다∼ 

좋아! 어디 한번 들어보자!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어느 새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난 시간에 미리 예고했던 대로, 오늘은 모의 실기 평가를 보는 날이다. 

모두들, 연습은 많이 했나?" 

"예∼!" 

"좋아." 

교무실에 가서 수업 참관 신청을 한 우리는 실기 시험을 본다는 강의실로 

갔다. 그곳은 마치 미국의 대학 강의실처럼, 반원의 형태로 넓고 깔끔하게 

자리가 배치되어 있었고, 그 반원의 중심에는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와 대형 

화이트 보드, 그리고 빔 프로젝트용 스크린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미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이런 엄청난 광경을 보니 절로 입을 딱 벌려지는 것은 연 

약한 인간인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실기 시험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은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상당히 부드 

러운 타입의 남자였다. 그의 포인트는 노란색의 털 새타와, 얇은 금테 안경 

이었는데… …, 음, 멋을 아는 남자랄까? 내게는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젊 

은 선생님은 손 마디로 안경을 슬쩍 치켜올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있는 것 같은데… …, 어느 분의 손님이신가?" 

선생님은 내게 시선을 맞추며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괜히 당황스러워져서 황급히 대답을 하려던 찰나, 성진이가 손을 높이 들 

며 외쳤다. 

"제 친구입니다!" 

"음? 성진이 친구? 오∼ 그렇군. 그렇다면 친구? 자기 소개를 부탁해도 될 

까?" 

그는 내게 부드럽게 웃어 보였고, 나는 교실 뒤쪽에 마련된 참관석에서 일 

어서며 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강수호. 현재 해광 고등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그리고… …, 

이상입니다." 

더 소개를 하고 싶어도, 긴장 탓인지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가 되지 않았 

다. 결국 나는 그렇게 짧게 내 소개를 마친 뒤 제자리에 앉았고, 그런 나를 

향해 성진이네 반 아이들이 악의 없는 야유를 퍼부었다. 선생님 또한 내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런, 이렇게 짧고 간단한 소개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군. 친구 

는 잘 몰랐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워낙에 손님을 좋아해서… …, 그렇게 짧 

게 소개를 마치면 무척 실망을 하지. 안 그러냐 너희들?" 

"예∼!" 

"그러니까. 취미라던가 잘 하는 것이라던가… …, 그런 것들도 좀 세세하 

게 소개를 해 주면 고맙겠군. 후후, 아, 그리고 우리 과목에 참관 수업을 하 

게 된 이상, 노래 한 곡은 꼭 불러야 하는 것 또한 우리 과목의 불문율이자 

전통이니, 그것도 잊으면 안 된다네. 흠, 우리 과목의 참관 손님도 무척 오 

래간만이라서 그런지 나도 기대가 되는 걸? 자, 그럼 다시 한번 부탁해볼까? 

모두 박수!" 

"와아아아아∼!" 

"휘이익∼! 휘익∼!" 

엄청난 박수소리와 환호성, 그리고 휘파람 소리가 정신 없게 쏟아지며 나 

를 잠식했다. 크윽, 또 이러면 거절을 못하는데… …. 그래! 하자! 해! 

- 드르륵. 

어쩔 수 없이 다시 의자에서 일어난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 

을 열었다. 

"취미는… …, 혼자 기타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때로는 코드들 이 

것저것을 엮어서 내 멋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합니다. 그것이 제 유일 

한 취미이고 또 특기이죠.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 조용하고 슬픈 분위 

기의 락. 예를 들어, she's gone 같은 종류의 분위기랑 채색이 확실하게 잡 

혀있는 노래나, 아니면 화음이 들어간 보이 그룹들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뭐, 그것들말고도 여러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 우리나라 가수들의 

노래들 빼면, 음악다운 음악은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말을 마친 뒤, 슬쩍 한숨을 내쉰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됐나요?" 

"우오오! 맘에 든다! 음악다운 음악을 좋아한다니∼!" 

"동감이다 동감! 이야∼ 한성진! 너 웬일이냐! 너에게 저런 지극히 정상적 

이다 못해 멋져 보이기까지 하는 친구도 다 있고!" 

"좋아∼좋아∼! 노래 못 불러도 봐 줄 테니까 멋지게 한번 불러보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금 엄청난 환호성이 내 고막을 자극한다. 꽤나 시끄 

러웠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기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선생님은 그런 아 

이들의 함성을 몇 번 박수를 침으로서 잠재우더니, 그랜드 피아노를 가리키 

며 나를 초청했다. 

"자, 이제 노래를 들어봐야겠지? 모두,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로써 친구를 

이 앞으로 초대하자. 박수!" 

- 짝짝짝짝 ― ! 

- 와아아아 ― ! 

반 학생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으며, 나는 어색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앞으 

로 나아갔다. 선생님은 피아노 앞 의자에 앉은 뒤, 천천히 어깨와 손목 돌리 

며 굳어진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음, 피아노에서 손을 땐지 꽤 된 것 같은 

데… …, 잘 칠 수 있을까? 

"자, 어느 곡을 치겠나? 가요든 뭐든 말만하게. 이래봐도 왠만한 곡들은 

다 칠 수 있으니 그것은 걱정하지 말고." 

선생님은 그렇게 말한 뒤,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피아노로 연주하기에 딱 좋은 곡이라… …, 

"으음… …." 

한참을 생각해도 딱히 '이거다!' 라고 할 만한 곡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분위기에서 댄스곡은 좀 그렇고… …, 그렇다고 어설프게 R&B를 불렀다가는 

한국 최고의 엘리트들에게 왠지 망신을 당할 것 같고… …, 캬아! 이거 미치 

겠네∼! 

"음, 곡이 잘 안 떠오르나 보구나. 괜찮으니 천천히 생각하렴. 어차피 특 

기 활동 시간은 담당 교사의 임의대로 끝내는 거니깐 말이야. 아이들도 오늘 

만큼은 이해해 줄 거란다. 너희들! 그렇지?!" 

"예에∼!" 

"오늘이 아니면 언제 이런 시간을 가져 보나요! 하루 종일이라도 괜찮으니 

천천히 생각하세요!" 

"맞아요∼맞아!" 

"하하하핫!" 

음, 엘리트들이라고 하기에 거만하고 사람 깔보고… 이럴 줄 알았더니, 그 

게 아니었다. 이들은 배려심이 깊었고, 또 예술을,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답 

게 마음이 선하고 착하기까지 했다. 뭐, 음악을 한다고 다 착하다는 이야기 

는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들은 그랬으니까. 

"예. 그러면 조금만 더 생각해 볼 께요." 

"얼마든지." 

결국,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고, 선생님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 

수많은 곡들이 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으며, 또 그 곡에 대한 구상이 

엄청나다 싶을 속도로 짜여지고 완성되어지다가… …, 다시 허물어지고 또 

처음부터 짜여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 후. 

"… … 예. 곡을 정했어요." 

"오오오∼!" 

"드디어!"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고, 기다렸다는 듯, 기대가 가득 담긴 탄성음 

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 무슨 곡을 부를 거니?" 

선생님은 건반에 손을 가져가며 당장이라도 피아노를 칠 듯한 자세를 취하 

며 내게 말했다. 나는 수십 번의 구상작업 끝에 결정한 곡을 떠올리며 말문 

을 열었다. 

"곡의 이름은… …." 

천천히 내 입술에서 나오는 그 곡의 제목은… …. 

" A WHOLE NEW WORLD." 

- 오오오∼! 

순간, 여기저기 탄성이 터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