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1/111)

LESSON 4 

- 재 회 

"음? 나 말인가? 

그럼. 내 앞에 누가 또 있나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은 간신히 참아내며 나 

는 노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거 참… …, 인상이 정말 좋은 노인이다. 

"내가 누구냐라… …, 그 전에 자네, 뭔가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순서? 아! 실수! 

"아, 예, 예. 제 이름은 강수호라고 하고, 해광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입니 

다. 이 곳에는 친구를 만나러 왔습니다." 

"호, 해광 고등학교? 그곳이라면 나도 들어본 적이 있지. 그리고 더불어 자네 

이름도 말이야. 자네, 자네 동생 이름이 혹시 강지훈 학생이 아닌가?" 

"예? 그, 그것을 어떻게… …." 

정말로 깜짝 놀랐다. 이 노인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그것을 물어보기도 전에 노인은 허허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거 다리가 아프군. 

자네도 먼 길을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 일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떤 

가?" 

"예? 안으로요?" 

"그래. 안으로. 생각 있으면 따라오게." 

"저… …!" 

노인은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정문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 

했다. 나는 슬쩍 한숨을 내쉬고는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는 노인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확실히 다른 학교와 틀렸다. 다른 학교가 정문 앞에 바로 널따란 

황토색 운동장이 자리를 잡은 것에 반해, 이 학교는 정문 앞에는 잘 포장된 도 

로와 여러 종류의 푸르른 나무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길다란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후문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고, 교실에 가려면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이 갈 수가 있는 것 같았다. 

"참 멋진 곳 아닌가?" 

"예? 아… …." 

한참을 말 없이 걷던 노인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주위의 경관에 정신을 

파느라 미처 대비를 하지 못했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푸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 곳에 올 때마다 항상 새로운 느낌이 든 다네. 언제나 오는 곳이지 

만… …, 나는 이 곳에서 인생의 젊음과 신선의 향락을 동시에 누리지." 

"아… …." 

미처 대꾸할만한 말이 없던 탓에, 나는 그저 감탄이 섞인 어조로 탄성을 대답 

을 대신했다. 

노인은 계속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의 학생들을 가리켜 '천국에 갇힌 죄수들' 이라고들 칭하 

더군. 아마 이렇게 멋진 환경을 가지고 있는 학교에서, 지옥과도 같은 수업 일 

정을 견디는 것에 비추어 그렇게 표현한 것인 것 같네 만… …, 실상은 그렇지 

가 않지. 단지, 배움에 대한 열정과 화려한 미래에 대한 갈망이 다른 이들과 남 

다른 뿐인 것을… …, 타인들은 이 학교를 대표하고 있는 교육자들을 뒤쪽에서 

욕하고 비난하고 하더군." 

노인의 눈빛에는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 얼굴이 절로 

측은한 표정이 되어 가는 것을 애써 억누르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노인은 말했다. 

"어느 날, 타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우리 학교에 대한 글들을 봤었을 

때… …, 난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네. 설마 우리 학교가 이 정도로 인식되 

어져 있었다는 것에 대해 벌려진 입도 다물어지지 않더군. 상상도 못한 욕과… 

…, 작성자의 이름도, 그리고 출 저도 밝혀지지 않은 허위로 꾸며진 학교의 실 

태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화는 나지 않더군. 뭐라더라… …, 출세에 

미친 고등학생들의 집합소… …, 명예에 환장한 교사들의 소굴?" 

노인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우, 내가 왜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지는 모르겠네. 그런데, 그런데 말 

이야… …." 

노인은 살짝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는 내 쪽을 돌아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 

었다. 

"자네와 계속 있으니까 괜히 포근해지더군. 그러면서 터져 나오기 시작하지 

뭔가? 그동안 가슴에 응어리 졌었던… …, 썩혀 두었었던 불만들이 말이야." 

"하하… …." 

나도 모르게 어색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노인은 더욱 짙게 웃으며 내게 말했 

다. 

"그냥 다 늙어 죽어 가는 노인네의 허심탄회한 푸념이라고 생각하게. 노인들 

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 바로 쓸모 없는 헛소리처럼 들리 

기만 하는 말들을 들어주는, 편안한 이야기 상대이니깐 말이야. 혹여, 귀찮게 

생각했었다면 사과하겠네." 

"아니요. 저도 할아버지와 마찬가지인걸요?" 

"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고, 노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나를 쳐다보았 

다. 

"할아버지와 경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없지요. 음, 제가 말 안 해도 어떻게 된 건지 제 속을 다 들여다보 

는 것 같은 무뚝뚝한 동생이 한 명 있기는 하지만… …, 저에게는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을만한 친구가 한 명도 없거든요. 단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있 

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때문에 제 속마음을 이야기 해 본적도, 그리고 들어본 

적도 없었죠. 뭐, 초등학교 다닐 때야 두 명이 있기는 했지만… …, 하하, 지금 

은 그 녀석들도 멀리 떠나가 버리고 없어서, 한 명도 없다고 해야 하는 편이 옮 

겠네요. 뭐,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예요. 저도 저에게 속 마음을 털어놓 

을 수 있을만한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 음, 이 정도면… … 대충 답변이 됐나 

요?" 

왠지 횡설수설 한 것 같다. 혹여, 못 알아들었을까 조심스레 노인의 옆얼굴을 

쳐다보았지만, 아까부터 얼굴에 미소를 달고 다니는 이 노인이 도대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잇는 지를 모르겠다. 결국 노인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 

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 

한참 후, 침묵을 깨고 노인이 입을 열었다. 

"충분하네. 왠지 이산가족을 만난 듯한 기분이구먼. 허허허!" 

걸걸하지도 않았고 힘차지도 않은 목소리였지만, 왠지 유쾌하게만 느껴지는 

웃음소리였다. 나도 내 입가에 살며시 떠오르는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참 마음에 드는 학생을 만났어. 거, 요즘 학생들은 도통 어른들 

에 대한 예의가 부족해서… …, 내 손자 녀석도 그렇지. 도통 이 할아비에 대한 

예의가 너무 부족해." 

"따끔하게 혼을 좀 내지 그러셨어요? 

"혼을 내? 허허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들 중 한 종류가.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사람 

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했더라 라는 말을 전해듣기만 

해도 치가 떨릴 정도로, 나는 윗사람들에게 특히 부모님들이나 친척 분들에게 

버릇이 없이 구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 하지만 노인의 어투에는 진심으로 

손자가 괘씸하게 생각되어져서 그렇게 말을 내뱉는 다는 느낌이 들어있지가 않 

았다. 나는 장난스레 말했고, 노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젓고 말했 

다. 

"그래도 가끔가다가 예쁜 짓을 하며 나를 즐겁게 해 주는 단 하나뿐인 손자 

녀석인 것을 어쩌겠나? 후후, 그저 모든 것이 다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일 뿐이 

라네. 아, 그러고 보니 자네, 2학년이라고 했었나?" 

"아, 예." 

"음, 내 손자 녀석하고 나이가 비슷하군. 이거, 언제 기회가 되면 소개시켜 

주겠네. 참 괜찮은 녀석이라 자네하고는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걸세." 

"예. 감사합니다." 

"허허허." 

손녀면 더 좋았을 것을… …, 쩝. 아쉽긴 하지만 뭐, 어차피 이 노인과 계속 

만날 것도 아닌데 그리 큰 미련을 둘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걷던 나는, 길가의 오른 쪽에서 그 

당당한 위풍을 차지하고 있는 중세시대의 궁전 모양을 띄고 있는 흰색 계통의 

건물을 볼 수가 있었다. 

노인은 잠시 걸음을 멈춘 뒤,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나?" 

"예." 

"몇 학년 몇 반. 그리고 무엇을 전공하는 지는 알고 있고?" 

음, 성진이 녀석이 2학년 B반의 성악 전공이라고 했었지?" 

"예. 반은 B반이고 성악을 전공한다고 들었어요." 

"호, 성악 전공이라고 했나? 그럼 더 멀리 갈 필요 없겠구먼, 성악 전공자들 

은 바로 이 건물에서 특기 활동을 하니깐 말일세." 

"아, 정말 잘됐군요." 

그래. 정말 잘 됐지. 그렇지 않아도 슬슬 다리가 아파 오던 참이었는데 말이 

야. 

"어차피 다음 쉬는 시간까지, 끝나려면 멀었으니 관광하는 셈치고 이 건물을 

쭉 둘러보는 게 어떻겠나? 내 이야기 상대도 해줄 겸 말일세." 

"예. 좋죠." 

"좋네. 그 대가로 관광 안내는 내가 직접 해 주겠네. 자, 들어가세." 

"예." 

노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운이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힘찬 걸음으로 건 

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살짝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었고, '뭐하나? 어서 오게!' 라는 노인의 외침에 따라 건물 안으로 뛰 

어갔다. 

"후와." 

오늘 여기 와서 정말 많이 놀라는 것 같다. 

처음 이 곳으로 들어와서 한 내 첫 행동은 이 한마디의 말이었다. 

'완전히 궁전이네.' 

내가 실제로 궁전을 본 일이 없어서 딱히 판단할 기준이 없었지만, 지금 이 

건물의 내부는 중세 시대의 그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내 입에서 절로 '억' 

소리가 튀어나오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번쩍거리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1층 

의 넓은 공간에서부터 시작하여, 타원형으로 계단이 위로 말려 올라간 그 모양 

은 꿈에서나 그려보았던 그 모양 그대로였다. 

"그렇게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다네, 빨리 따라오게." 

노인은 이 대단한 광경들을 보고서도 별 감흥이 없는 언제나처럼 나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인 다음에 걸음을 옮겼다. 

"우선 1층에 있는 전시물들을 소개해 주겠네." 

지금 우리가 있는 1층은 넓기도 상당히 넓었지만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 

은, 유리 속에 전시되어 있는 중세 악기들이었다. 바이올린부터, 오르간, 하프 

등등… …, 전시되어 있는 악기의 수는 꽤 많았고, 심지어 나도 모르는 악기들 

도 상당수 존재했다. 

노인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그 악기들에 대해 설명했고, 이 모든 악기들이 진 

품이라는 것과 값 또한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을 내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아직도 도난 당하지 않고 있는 것이 용하다고 말했더니, 이것도 투자의 성 

과 중에 하나라고 말하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 이제 1층 구경은 웬만큼 끝난 것 같으니, 슬슬 학생들이 실습을 하고 있 

을 교실들로 올라가 보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상에… …, 엘리베이터도 있냐? 

- 띠잉! 

짧은 음을 내며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처음 내 

눈에 뜨인 것은 너무도 깨끗하게 정리된 대리석의 복도와, 짙은 갈색의 통나무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진 것 같은 고대 풍의 교실 문들이었다. 

"이 건물에서는 각각, 성악 전공, 바이올린 전공, 그리고 피아노 전공들이 특 

기 활동을 하고 있다네. 학교 처음 설립 당시에는, 이 세 가지 파트를 한 곳에 

넣었더니 워낙에 시끄러워서 수업시간 때마다 말썽이었었는데… …, 돈을 좀 들 

여서 방음 장치 공사를 했더니, 조용해지더군, 여기 2층에는 총 다섯 교실이 있 

고, 각각, 이론 강의실, 실습 강의실, 개인 연습실, 관련 서적 도서관. 그리고 

제일 공간이 넓은 다목적 강의실로 이루어져 있지. 아, 참고로 이곳은 피아노 

전공자들이 공부하는 곳이라네. 우선 이곳은 이론 강의실이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교실 안을 쳐다보았다. 

나 또한 노인을 따라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학교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런 저런 복잡한 용어들과 수식들이 칠판에 

난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졸거나 앞·뒷사람 등과 떠드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 

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지금 칠판에 쓰며 강대 상에서 강의를 하고 있 

는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이미지에 맞지 않게, 여인은 무 

척이나 아름다웠다. 폭포수처럼 허리까지 흘러내린 체로 윤기를 발하고 있는 저 

검은 생 머리… …, 크으! 정말 공부할 맛나겠다! 

젠장! 부러웟∼! 

"허허, 그렇게 억울한 표정은 짓지 말게나." 

헉! 내 표정이 그렇게 눈에 띄었나? 내 표정을 봤는지, 노인은 재미있다는 미 

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 다음으로 가세나." 

다른 곳으로 돌리는 시선과 발걸음이 지금 만큼 억울하고, 또 아쉽게 느껴졌 

던 적은 내 삶에 맹세코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노인의 설명들을 들으면서 층의 구석구석 까지도 견학을 할 수가 

있었다. 

"하아. 참 멋있는 곳이군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허허허. 나도 마찬가지라네." 

잠시 쉬고자, 밖으로 나온 우리는 마침, 길가에 마련되어진 벤치에 앉아서 쉬 

기로 했다. 마침 우리가 앉은 벤치 옆에 음료수를 판매하는 자판기가 있던 터 

라, 뜨거운 커피 두 잔을 뽑아들고 한잔은 노인에게 건네주며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노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자네를 만난 것이 하늘의 인도하심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의 이 만남이 결코 단 한번의 스쳐간 좋은 인연일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네." 

노인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종이컵을 만지작거렸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선 지 모든 것이 다 힘들게만 느껴지고… …, 혼자 있을 

때면 너무도 공허하게만 느껴진다네. 자네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겠지만… …, 

돈이 아무리 많고 명성이 높으면 뭐하겠는가? 나이가 들고, 곧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은 깨달은 우리 늙은이들에게는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된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절실히 통감하고 있는 것을… …. 허허, 가끔은 젊었을 때의 그 뜨거웠 

던 열정이 그리워지는 때도 있다네." 

노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허' 하고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계속 이 

어서 말했다. 

"내가 자네를 계속 보면서… …, 그리고 자네에 대해 들으면서 느낀 것이 한 

가지 있었네." 

"그게… … 뭐죠?" 

"음, 뭐라고 말해야 하나… …." 

노인은 검지로 이마를 툭툭 치며 인상을 쓰다가 다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바로 절망 속에 숨겨져 있는 빛이라고 할까나?" 

"예?" 

그게 뭔 소리여? 

노인의 말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지 몰라, '나 지금 황당합니다.' 라는 표 

정을 지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겠지만… …, 일찌감치, 수호군. 난 자네를 본 적이 있고, 또 자 

네 형제에 대하여 이것 저것 많이들은 바가 있었다네. 처음에 내가 자네를 어 

떻게 알아봤었는지 자네는 아마 이제껏 궁금함 들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었을 

거네." 

"… …예." 

사실이다. 어떻게 나에 대해서 알았는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내 위치상. 그리 

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 교육받아왔었던 웃어른들에 대한 예의범절들이 너무 

나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탓에, 직접 해답을 말해주기까지는 조용히 참고 

기다리기로 했었기에 지금까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말해주 

겠다니… …. 

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음, 별거 아니라네. 사실, 그 동안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너무 바쁘고 힘들 

었다네. 그런데 손자 녀석이 나보고 같이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제의를 해서 그 

것도 좋겠다 싶어 나갔었는데… …,그 때 자네를 봤다네." 

나를 봤다면… …, 에구, 뭔 말이야 도대체? 

"허허, 그런 표정 짓지 말게나. 왜 있지 않은가? 강남에서 열렸었던 무슨 행 

사에서, 자네 다른 세 명의 청년들과 노래를 불렀지 않은가? 거기에 우리 학교 

의 학생이 껴 있던 것으로 기억하네 만… …, 아닌가?" 

"아… …!" 

그 때서야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이 노인이 누구인지를… ….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설마… …." 

- 띵∼동∼댕∼동! 

그 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노인은 금빛 손목시계를 보더 

니, '어이쿠!' 하고 탄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잠깐만 머리 좀 식힌 다는 것이, 아주 농땡이를 피운 것이 되어 버렸 

구먼. 허허허! 난 이만 가보겠네. 자네와 나는 다음에 반드시 만날 날이 있을 

걸세.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 군." 

"예.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이 노인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오래간 만에, 마음 속이 평안해지는 것 

을 느낄 수가 있었나 보다. 

"악수 한번 해볼까? 

"좋죠." 

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노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럼 이만 가보겠네. 만나서 반가웠네." 

"저도요." 

"잘 있게나. 아, 그리고 누구를 찾는 다고 했었지? 쓸데없이 건물 안으로 들 

어가서 찾는 것보다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훨씬 낳을 걸세. 성악 

반 아이들은, 목을 많이 쓰기 때문에 거의 모든 아이들의 맑은 공기도 쐴 겸, 

또 음료수로 목을 축일 겸, 이쪽 벤치들로 많이 쉬러 나오거든. 그럼 진짜로 가 

보겠네." 

노인은 그 말을 남기고는 위쪽 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커피 한잔을 다 마 

시고 봤을 때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하하하! 하여튼 그 교수님 강의는 너무 따분하다니까. 실력은 분명 있으신 

데… …, 에구에구. 정말 피곤하다 야." 

"어휴∼! 누가 아니래냐? 나도 마찬가지야. 어찌나 피곤하던지… …." 

수업종이 치고 약 1분의 시간이 흐르고, 깔끔하고 순결한 흰 백색의 교복 정 

장을 입은 학생들이 나오면서 조용하던 주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그들 중에서, 혹시라도 끼어 있을 성진이를 찾으려 자리에서 일어 

섰다. 한 참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나는, 마침내 눈에 익숙한 한 인영을 발견하 

고는 크게 소리쳤다. 

"한성진∼!" 

"음?" 

누가 나를 부르나? 성진이는 그런 딱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러다가 내가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보이자,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 

정으로 뛰어 오기 시작했다. 

"이야∼! 강수호! 네가 여기는 웬 일이야?" 

"웬 일은, 너 만나려고 이렇게 몸소 찾아온 것 아니겠냐?" 

"그러냐? 하하하! 짜식∼!어쨌든 반갑다! 반가워 녀석아∼!" 

녀석은 그렇게 반가운 듯 웃음을 함박 지으며 나를 꽉 껴안았다. 녀석이 너무 

힘을 주어 안은 탓에 조금 갑갑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등을 한 대 세게 쳐버 

릴까 하고 고민을 하던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마찬가지로 녀석을 껴안았다. 

어쨌든 반가운 것은 반가운 거니까. 

"으으윽… 야, 야!" 

하지만 반가운 것과, 화가 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 암. 

그렇게, 서로 꽉 껴안으며 서로를 힘껏 조이던 우리들은, 문득, 주위의 분위 

기가 상당히 이상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멋쩍게 미소를 지으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 아이고 무안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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