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3
- 가수왕 선발대회 -
"정말… 대단하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 …."
정말 오늘은 놀라기 위해 준비되어진 날인 것 같았다.
프리덤.
이쪽 바닥에서는 단연 최고로 꼽히는 아마추어 댄스 팀인
그들.
춤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안 뒤질 자신이 있었으며, 또 공
식적인 무대에서의 공연이라면 프로에게도 안 뒤질 것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오늘의 무대는 더욱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더 높은 벽을 올려다 볼 수가 있었고, 또
그 위로 솟은 거대한 산봉우리를 바라 볼 수가 있었다. 그들
의 자신들보다 출중한 이들의 공연을 볼수록, 그들의 자존심
은 깨어졌고, 자신들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다.
사실, 누구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리고 자신에게 다
가올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으로 이 세계에 처음 입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누구에게
도 뒤지지 않겠노라 하는 결심만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자
신도 드넓은 창공을 날아다닐 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정작 들어서고 본 이 세계의 현실은 결코 자신들이
상상했었던 그런 만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도 험하
고 치열했으며 더러는 삶이라는 너무도 귀중한 한 단어를 이
세계 때문에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베테랑이 되어 갈수록, 마음은 점점 퇴색해져 갔으며, 결국,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심히 해보겠다는 열정, 그리
고 푸른 창공의 꿈은 산산이 부셔져 버리고 말았다.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도 자신들의 공연에 대한 당연한 대가
로 여기게 되었으며, 이제는 그로 인해 기뻐하는 마음들도 점
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벌써 이 세계가 지겹다고 평범한
일상으로 떠난 수많은 친구들도 있었다. 자신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 날은 자신도 알지 못하
는 때에 마치 도적같이 찾아오리라는 것은 프리덤이라는 이름
으로 뭉친 그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떠도는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
"이거… …, 연습 좀 해야겠다."
"화나는데… …?"
분노의 불길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타오른다.
저렇게 멋진 공연을 해내지 못하는 자신들에 대한 분노와,
괜히 저런 공연을 보여줘서, 자신들을 타오르게 만든 강수호
라는 소년에 대한 분노.
"정말… …, 짜증난다."
"후우… …."
이제는 온 몸이 부들 부둘 떨린다. 그냥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동안 너무 교만했었고 나태했었던 것 같다. 자신들도 알
지 못하는 사이, 춤과 음악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결과는 지금 이렇게…
…, 비참한 기분으로서 다가오고야 말았다.
"형, 저희들은 먼저 가보면 안될까요?."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어요."
결국, 분노는 뜨거운 열정으로 승화되어, 그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고야 만다. 진영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웃을 수만은 없었다. 저들이 느끼는 감정을 진영, 자신
또한 똑같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돼. 아직 공연이 끝나지 않았다. 지금 자리를 뜨는 것
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는 저 소년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무릇, 프로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실력에 대한 프라이드만큼이나 그에 상응할 만한 예의
도 갖춰야 하는 법이지. 너희들의 심정은 잘 알겠다만… …,
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참아라."
그리고 새겨둬라. 지금의 이 분노를… …, 이 한 마디를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진영이 거기
까지 이야기 한 뒤, 다시 고개를 돌려 무대를 바라보고야 만
다. 그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진영은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군주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좋아, 잘 했어 수호야. 이번 게임은… …, 우리들의 승리
야.'
무대의 반사 조명에 비춰진 수호를 향한 진영의 미소는 더
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혜정은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어. 하지만…
….'
처음에는 그저, 지루했었던 자신의 삶을 그나마 재미있게
해줄 것 같았던 장난감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미국에서 그 사람에게… …, 수호의 과거를 들었을
때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솔직히 강수호 이름을 가진, 너무도 존재감이 없는 짝을 만
났을 때에는 적잖은 실망감을 느꼈었다. 대단한 무언가를 지
니고 있는 그런 특별한 짝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짝이라고 정해진 남자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고 외모가 특출난 것도 아닌,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이라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신데렐라 드림
을 꿈꿔왔었던 혜정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낭패였던 것이다.
정말 황당했다.
그 강수호라는 이름을 가진 못돼먹은 짝은, 당시만 해도,
주목받는 신인 아이돌이라고 각종 매스컴에서 그렇게도 떠들
어댔었던 자신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예 신
경을 쓰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자신과 친하게 지내보려 부던히 노력을
한다거나, 또는 자신에게 잘 보이려 웃기지도 않은 배려를 하
려고 애를 썼을 텐데… …, 그 녀석은 그것이 없었다. 오히
려, '넌 그거 할 테면 해라, 난 이거나 하고 있으련다.' 이런
식이었고, 심지어는 아예 김혜정이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
는 듯, 눈길을 주지 않음은 물론이요, 심지는 말 한번 붙여보
지 않았으니, 당시의 그녀에게 있어서, 생각만 해도 분통을
터지게 하는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이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미국으로 가게 되었
다. 스케줄에 맞추어 이런 저런 일을 하던 중, 그녀는 당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또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던 중,
수호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호의 이름을 들먹이며 세상에 그런 재수 없는 자
식은 처음 봤다며 험담을 했다. 무슨 말을 해도 상대는 무표
정으로 자신의 말을 일관해 왔었기에 그녀는 분위기 쇄신의
희생양으로 수호를 선택했던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세상에
서 가장 즐거운 것은, 평소 자신이 미워했었던 상대의 불행을
지켜보는 것과 거대한 규모로 불장난을 하는 것, 그리고 마지
막으로 남의 험담을 하는 것 이 세 가지라고 하지 않는가. 물
론,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정상적인 교육
을 받아왔던 그녀였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
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가 자신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너무도 싫어했던 것이다.
평소 그런 것을 즐기지 않고, 특히, 남의 험담, 속어로 뒷
담이라고 말들을 하는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였기
에 그것에서 오는 죄책감은 이루어 말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은 그녀
에게 있어서 최대의 낭패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예상외의 성과를 얻게 되었다. 아
니, 어쩌면 너무도 다행스러운 성과를 얻게 되었다고 해야 했
을 것이다. 이제껏 무표정으로 대화를 해오던 상대가 점차 반
응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것을 본 혜정은 참으로 다행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제껏 냉막하던 상대가 왜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이는 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혹시, 자신의 이야기가 재미있
어서 그러는 건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면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무엇을 생각할 리가 없었
다. 결국, 혜정은 그의 생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
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마침내 '그 사람'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그 강수호라는 친구… …, 혹시 동생과
단 둘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동생의 이름은 강지훈이라고
하는데… ….'
그러고 보니, 강수호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모두 잃어
소년 가장이 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특히 그 동생 강지
훈은 형인 수호와는 다르게 모든 면에서 무척이나 유명했고,
또한 인기까지 있었기에, 아무리 학교에 관심이 없는 그녀였
다고는 하지만 학교 최고의 인기인인 강지훈에 대한 소문만큼
은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상기해낸 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상대의 표정은 환희로 뒤바뀌었다. 상대의 표정은 마
치, 헤어졌던 이산가족을 찾았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만큼이나
기쁨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급기야 만세를 부르기까지 하
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려 댔다. 그의 그러한 반응을 알 리
가 없었던 혜정은, 그가 진정하며 자신의 사정을 말해주기 까
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기다려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와 수호의 관계를 모두 들은 그녀는 경악
을 느껴야만 했다.
몹시도 평범하게만 생각되어졌었던 자신의 짝에 대해 그녀
는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별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해 낼 수 없었던 강수호가, 사실은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눈앞에 있는 저 인물과
그런 관계였었다는 것에 대해 그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였다. 그녀가 강수호라는 인물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난 후의 첫 스케줄, 바로 거기서 그
녀는 수호를 발견해내었고, 미국에서의 결심대로, 그녀는 수
호의 진실한 모습에 대해 알아보려 순서에도 없었던 게스트
초청이라는 것을 생각해내어 수호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시험.
강수호는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신을 놀라게 하더니, 이제는 아주 자신을 공개적으로 물을
먹이기까지 하였다.
혜정은 여의도 공원에서 수호의 분노가 섞인 말을 들었던
그 때를 지금도 잊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가서 눈이 붓도록 펑펑 울
었다. 부모님이 그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녀는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울기만 했으며,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오빠인 진영
만이 그 이유를 아주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했을 뿐이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리고 수호를 볼수록 수호에 대한 그녀
의 생각은 점차 바뀌어져 갔다. 반은 장난이었던 공간은 갈급
함이라는 감정으로 채워져 버렸고, 나머지 반 또한 자신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들로 채워져 버렸다. 어떤 때
는 약이 올랐으며 그로 인해 화가 나기까지 했다. 또 어떤 때
는 괜시리 소유욕이 솟구쳐 올랐으며, 심지어는 원망스러움마
저도 자리를 잡았다.
그 때는 그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 희미하게나마 알 수가 있었다.
물론 그것이 확신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지만… …, 물음
표는 곧 느낌표로 바뀌어질 것이다.
'강수호… …, 강수호… ….'
그녀는 자신의 눈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한 인물을 떠올
리며 계속해서 그 이름을 되뇌였다.
이제 음악이 끝나간다.
조금씩 몸이 무거워 진다.
시원하게 느껴지던 목소리가 이제는 거칠게만 느껴진다.
Bille Jean is not my lover.
Bille Jean is not my lover.
Bille Jean… ….
이제 곡의 모든 구성이 끝나고, 계속해서 후렴구만 반복되
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음이 끝나 뒤, 모타운 쇼에서 보
여주었던 그 때의 그 쇼를 재현해 보고 싶었지만… …, 지금
상황으로는 무리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목이 아프지, 몸이 아픈 것은 아니지 않느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외치는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나게 된다면, 난 그 사람의 아구창을 날려 버리
며, 멱살을 잡고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내가 마이클 잭슨이냐? 내가 프로 가수야? 불만 있으면 네
가 한번 해봐! 해봐!!'
내가 정식으로 여러 가지 교육들과 트레이닝들을 거친 프로
가수가 아닌 이상, 내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을
발휘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무리한 요구이다. 거기에 교통
사고의 휴우증이 남아있는 한 더욱 그렇다.
쳇! 이 노래 다음에 이어질 쇼가 내가 제일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인데… …, 정말 아쉽군.
- 쿵쾅∼ 쿵쾅… ….
점차 소리가 작아지더니 마침내 노래는 끝을 맺었다.
- 와아아아!!
다시금 엄청난 함성이 나를 휘감았고, 나는 감사의 답례로
관객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대기실로 향했다.
"… …."
"… …."
대기실은 몹시도 조용했다. 특히 프리덤의 멤버들 모두는
가만히 입을 다문 채로 모두들 내 얼굴을 차라보기만 하고 있
었는데… …, 그 눈빛이 심상치가 않아, 나는 나도 모르게 침
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왠지 무섭네… ….
"수호야! 정말 멋있었어! 최고였어! 하하하!"
그러나 이 삭막한 분위기를 타파하며 내 귀에 박히는 익숙
한 목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성별을 알 수 없는 친구, 하진영
이었다.
진영이는 내 어깨에 자신의 오른팔을 걸치며 유쾌하게 웃음
을 터뜨렸다.
"이야∼! 설마 했지만, 춤 실력만이 아닌 노래 실력도 이렇
게 뛰어났었다니, 너 지금 당장 가수해도 되겠다? 하하! 아,
그건 그렇고… …,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네 공연이 끝나
니깐 내 속이 엄∼청나게 시원해 진 것 있지? 넌 안 그러냐?
응? 하하하!"
진영이의 말속에는 가시가 가득했다. 과연 그 가시가 누구
를 향한 것이었는지는 직접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것이 프리덤 멤버들을 향한 거라는 것은 우리 일과는 상관없
는 그 누구라도 눈치챌 수가 있었을 것이다.
곧 일어날 분란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려오기 시작했다.
"… …."
"쳇."
그러나 웬걸? 제일 열 받아 할 것이라 생각했던 밥맛 녀석
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멤버들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단지 끊어 오르는 분노만을 삭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
습이 무척이나 의아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게 그 이유를 설
명해 줄이는 아무도 없었다.
음, 저들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봐야 괜스레 나만 욕먹을 것
같다.
뭐, 조금 있다가 진영이에게 물어보면 되지 뭐.
"네! 이제 마지막 11번째 참가자의 공연도 끝나고, 이제는
본선에 진출한 참가자의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아직
심사위원들의 순위 집계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사이에
모든 참가 분들을 무대위로 모시겠습니다.
자! 모든 참가자 분들은 무대위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본선에 진출한 참가자 발표만이 남았다. 사회자의
요청에 따라 나와 진영이를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이 무대 위
로 올라왔고, 곧, 무대와 관객석은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