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3
- 가수왕 선발대회 -
- 쿠우웅… ….
무대에 모든 조명들이 꺼지며 드라이 아이스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 처처척… …덜컥!
무대가 어두워진 틈을 이용하여, 스탭 진들은 어디선가 많이 본… …,
사회에서만큼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물건인 학교 책상을 무대 한 가운
데에 들여다 놓고는 또 다시 황급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때, 흰색의 길
다란 와이셔츠에 검은색 바탕, 적색 체크무늬의 두터워 보이는 치마와 흰
색의 주름 양말을 신은 긴 금발의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나타나더니 빠른
동작으로 책상에 엎드렸다. 어두운 탓이었던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분
명히 저 여자 맨 얼굴로 그냥 나타난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가면이라도
쓰고 나온 것 같았는데… …, 잘못 본 건가?
"… …."
고요한 침묵이 무대를 휘감았다. 책상에 엎드린 여자는 조금도 움직이
지 않고 마치 정말로 죽은 듯,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 쾅∼쾅쾅∼!
마침내 음악이 터져 나오고, 무대의 조명은 그녀 한 명을 중심으로 밝
게 비춰졌다. 그녀는 음악이 나옴과 동시에 상체를 치켜들었는데, 역시,
내가 아까 슬쩍 보았었던 대로 그녀는 황금색 나비 모양의 가면을 착용하
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로 비친 이목구비는 충분히 그녀가 미인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가 있게 해주었다.
아직 어둡기 만한 무대. 하지만 오직 홀로 빛나는 그 가운데서 그녀는
때로는 역동적으로, 또 때로는 도발적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태생이 상당
한 춤꾼이었던 듯, 그야말로 흥겹게 리듬을 타며 '몹시도 즐겁게' 춤을
추었다. 그녀의 모습에 많은 관객들이 환호를 보내었다.
첫 전주가 끝나고 마침내 가사 첫 소절 부분이 다가왔다. 그녀는 어디
서 구했는지, 흔히들 댄스 가수들이 립싱크를 할 때 잘 사용하는 헤드 마
이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Oh baby, baby
How was I supposed to know
오 그대여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라이브였다.
비록, 가요에 관심이 없는 나라고는 하지만, 댄스 음악을 라이브로 한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원래 댄스 음악의
특징이, 몹시도 격렬하고 흥겨운 것 이니만큼, 그 음악에 대한 춤동작을
소화해내려면 당연히, 라이브를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 대부분 나라들의
현실이었고, 립싱크에 대한 수많은 댄스 가수들의 변명이었다. 그 격렬한
춤을 추려면 라이브는 당연히 못 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반문은, 가
수라면 당연히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느냐라는 일반인들의 질문
에 대해 자신들에게는 훌륭한 변명거리가 되어줬었겠지만, 그것을 지켜보
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훌륭하지 못한 어리석은 답변이었음은 이미
누구나 인정하는, 심지어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설상, 자의든 타의든 라이브를 할 기회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음반
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실력의 70%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으며, 더욱이
댄스 음악인 경우, 춤은 전혀 추지 못하고 가만히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
르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둥, 여러 가지 모습들로 가요계의 폐단을 보여
주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을 극복한 이들은 '국민가수'라거나 하는 칭호
들을 얻으며 특별한 사건을 벌이지 않는 한, 끝없이 지속되는 사랑을 얻
게 되지만 그러한 이들은 극히 일부의 음악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노력파
가수들에게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프로들도 하기 힘들다는
댄스 음악의 라이브를, 지금 이 아마추어 무대에서 정체를 모르는 여자가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춤뿐이라면 모르겠지만 역시 이 대회가
가수왕 선발대회라는 것을 의식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그녀는 라이브를
함께 곁들여 나왔다. 아직 초반이라 잘 모르겠지만 떨림이 없는 첫 소절
의 음색은 몹시도 안정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계속 해서 노래를 불렀다.
That something wasn't right here
뭔가가 잘못되었단 걸
Oh baby, baby
I shouldn't have let you go
And now you're out of sight, yeah
오 그대여
당신을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이제 당신을 보긴 힘들군요, 그래요
그녀의 현란한 몸짓과 섹시한 목소리는 어느새 넓은 무대를 가득 메우
고 있었다. 백댄서들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녀 혼자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존재 감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Show me how you want it to be
Tell me baby 'cause I need to know now, oh because
알려줘요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말해줘요 그대여 난 지금 알고 싶으니까요, 왜냐면
후렴 부분을 듣고 나서야, 나는 이 노래를 어디선가 몇 번 들어본 기억
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시내에 돌아다니다가 이곳 저곳에서 많
이 들을 수가 있었던 수많은 노래중의 하나였다. 나는 바로 이 때서야
아, 그 여가수 이름이 브리트니 스피어스 였구나 라는 것을 생각해 낼 수
가 있었다.
"흠, 꽤나 실력이 좋은 걸?"
소연이는 자신이 마치 음악 평론가라도 되는 양, 진지한 모습으로 무대
에 있는 그녀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노래의 테마는 철저한
섹시함인데, 그것에 대한 표현은 몇 점이라던 지, 목소리와 노래의 조화
에 대한 점수를 내린다던 지… …, 내가 가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이
라 생각했던지, 소연이는 세세한 설명까지 곁들여가며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사실, 백치라고
할 정도로 가요나 팝에 대해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소연이의 친절
한 설명을 가만히 듣는 다는 것은 상당한 곤욕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들이 나를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 도저히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경청하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선택 사항이었다.
Oh baby, baby how was I supposed to know
Oh pretty baby, I shouldn't have let you go
오 그대여,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오 아름다운 그대여, 당신을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어느새 노래는 후렴부분으로 치닫고 있었다. 관객들은 아직 얼굴도 모
르는 무대 위의 여자에게 큰 환호를 터뜨리고 있었다. 개인 적인 생각이
지만, 저 여자. 분명히 보통 아마추어는 아닌 듯 했다. 아마추어라고 하
기에는… 너무 뛰어난 실력이었기 때문이었다.
Give me a sign
Hit me baby one more time
내게 손짓이라도 해줘요
한번만 더 날 만나 주세요
- 콰광!
"와아아아!"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
마침내 웅장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무대가 끝났다. 관객들은 그녀에게
큰 환호를 보내주었고, 그녀 또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임으로서 그
성원에 보답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졌
다.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이미 무대에서 사라져 버린 그녀를
다시 불러올 수는 없었다. 잠시 후 사회자가 나오며 흥분한 관객들을 진
정시킨 후 다음 순서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 다음 참가자 분을 모시겠습니다. 다음 참가자 분은… …."
"에… …, 이거 참. 첫 타자부터 너무 세계 나오는 거 아냐?"
"그러게. 저 여자… 완전 프로잖아. 혹시 진짜 브리트니가 가면을 쓴
것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네? 음. 근데 그건 아니야. 왜냐면 몸매가 틀리거든.
하하하!"
우리는 오유미라는 가면 쓴 여자의 첫 무대를 보며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정말 잘해도 너무 잘하는 것 같았다.
아마추어가 무대에 오를 때에 자주 나타나는 떨림 증상도 없었고, 오히려
무대와 관객들의 성원을 즐기는 듯한 여유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직 어
떻게 생겼는지 얼굴을 못 봐서 모르겠지만… …, 만약 외모까지 수준 급
이었다면, 장담하건대 저 여자. 본선 때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올 것이 틀
림없었다. 잘하면 스카우트들에게 노려져 엄청난 양의 러브 콜에 시달리
게 될 지도 모른다.
"아, 이쪽으로 온다!"
오유미라는 여자는 왠지 차분해 보이는 걸음걸이로 우리 쪽을 향해 걸
어오고 있었다. 그에 프리덤팀의 몇몇 이들이 수선을 떨었으나, 진영이와
나, 혜정이와 진영이형. 그리고 재수 없는 밥맛 녀석은 조용히 입을 다물
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한 무대였습니다. 결코 평범한 실력은 아니더군요."
"훗, 그런가요?"
"아직 다른 사람들의 무대는 못 봐서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신의
본선 진출은 확정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의미심장한 진영이 형의 물음에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
답했다.
"여러분들의 멋진 공연을 기대하죠."
"후, 영광이군요."
마치 만찬에서의 귀족처럼, 진영이 형은 오른 손을 가슴께에 올리며 장
난스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둘의 대화는 끝을 맺었다.
우리는 시선을 돌려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사회자가 막 두 번째
참가자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다음 참가팀은… …, 아! 고등학교 여학생들로 구성되어진 5인조 여성
댄스 팀입니다. 곡명은… …, 아, 리믹스군요. 아마도 여러 가지 음악들
을 리믹스해서 그것을 틀어 놓고 춤을 출 모양입니다. 정말 기대됩니다.
자, 두 번째 참가팀을 모십니다! 오늘을 위해서 성남에서 올라왔다! 영신
여자 고등학교의 5인조 여성 댄스팀! 코스모!"
성남? 우와∼ 대단한데? 그렇게 먼 곳에서 왔단 말이야? 지금 이곳 대
기실에는 없는 듯 한데… … 저쪽 대기실에 있는 건가?
내 이런 생각이 끝나자마자 이곳과는 반대편에 있는 대기실에서 교복을
입을 다섯 명의 여학생들이 뛰쳐나왔다. 고등학생이라서 그런지 모두가
짧은 컷트 머리를 하고 있었다. 외모는… …, 흠흠! 더 이상 말하지 않기
로 하겠다.
- 쉬이잉
다시금 무대가 어두워지며 드라이 아이스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
녀들은 전통적인 5인조 그룹들의 대열 방식인 2-3 대형에 맞춰서 섰다.
- 쿠쿵! 쿠쿠쿠쿵!
"합!"
움찔. 에구, 깜짝이야. 그녀들은 큰 기합을 토하며 발을 어깨 넓이로,
그리고 양쪽 팔은 좌우로 힘있게 벌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스톱모션.
- 콰왕!! 콰앙!
음, 이 음은 아마도,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의 제일 첫 음 부분이었지?
-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연이어 들리는 시계 소리. 캬아! 편집 한번 적절하게 했구나. 그녀들은
모두가 손목시계를 보는 자세를 취했고, 연이어 뚜벅뚜벅 하고 들리는 발
자국 소리에, 그녀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두려운 모습을 표현했다. 그
리고 그 중에서 앞 줄, 제일 오른쪽에 있던 여학생이 어디에서 났는지,
얼굴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는 준비해온 '검'으로 마치 여검사처럼, 그
녀들의 사이를 지나며 검을 내리긋는 시늉을 하였다. 그것은 순식간에 동
작이라 마치 물이 흐르듯 두려워하는 그녀들 사이를 지나며 검을 휘두르
던 그녀는 어느새 제일 왼편에서 마지막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원상태로 일으키고 검을 검 집에 넣는 그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검에 배여 경직되어 있던 4명의 여학생들이 털썩, 무대 바닥에 쓰러
져 버렸다.
무대와 관객들 사이에 길다란 침묵이 흐른다.
정말 연습을 많이 했던 모양인지, 마치 사극의 액션 배우들처럼 그녀들
의 연기에는 조금의 어색함도 보이지 않는다. 홀로 서 있던 여학생은 지
니고 있던 검을 다시 뽑아들어 하늘 높이 들어 보였다. 어두운 밤의 달빛
을 받아 반짝이는 검의 맵시가 몹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흠, 그나저나
검은 조금 비싸다고 들었었는데… …, 저거 진 검은 아니겠지?
- 휙∼휙∼ 휘익!
정면의 허공에 X자를 그린 뒤 그녀는 검을 마치 땅에 박아 넣는 듯한
행동을 취하며 또 다시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
- 콰아앙!
무대에서 커다란 분수 불꽃들이 화려하게 터짐을 시작으로 드디어 그녀
들의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