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1/111)

LESSON 2 

- 방송국 나들이 - 

"너!" 

진영이 녀석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 사람은 역시 밥맛 녀석이었다. 밥 

맛 녀석은 진영이의 멱살을 잡으며 그렇잖아도 험상궂은 인상을 더욱 구 

겼고, 그의 패밀리들은 다른 관중들에게 안 보이도록 주위를 빙 둘러싸 

가로막았다. 

밥맛 녀석은 멱살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말했다. 

"네 놈, 어디서 뭐하던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녀석이구나. 우리가 네 녀석하고 원한을 가진 

일이 없었는데 왜 우리를 욕하는 거냐? 응?!" 

"아아∼, 잠깐 이 손 좀 놓고 말하시지? 난 여자라면 몰라도 같은 남자 

끼리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에 두는 것을 싫어하니깐 혹시 호모가 아니라 

면 이 얼굴도 좀 치워주시면 감사하겠어. 뭐, 호모라면 내 큰맘 먹고 나 

를 희생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이, 이 녀석이 정말!" 

밥맛 녀석은 정말로 화가 났는지, 이젠 아예 얼굴까지 붉히고 있었다. 

이거, 이러다가 일나겠는데? 일단 말려놓고 봐야겠어. 

"저… …," 

"자자, 일단 이 손 좀 놓고 대화하지. 응? 순원아." 

그런데 나보다 먼저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레게 머리형이었다. 

순원이라 불린 밥맛 녀석도 레게 머리 형에게는 꼼짝을 못하는 지, 어깨 

동무를 하고 사람 좋은 얼굴로 타이르듯 말하는 레게 머리 형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밥맛 녀석이 조용해지자, 레 

게 머리형은 그에게 싱긋 웃어보이고는 진영이에게 다가섰다. 

"아까 수호 군과 통성명을 할 때 언뜻 들어보니, 자네 이름이 하진영이 

라고 하더군." 

"음, 그랬죠. 그런데요?" 

"아, 뭐 별건 아니고, 내 이름이 김진영인데, 나와 이름이 비슷해서 말 

이야. 자네 식대로,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악수나 한번 하지?" 

정중함이 배여 있는 레게 머리 형의 말에 진영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탐탁치 않은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체. 반가워 죽겠소이다. 이렇게 만나니 아주 몸 둘 바를 모르겠구려." 

"후훗." 

맞잡은 손을 아래위로 흔들며 툴툴거리는 말투로 고전적 대사를 내뱉은 

진영이는, 재빨리 손을 회수하며 등 뒤로 가져갔다. 그런 진영이의 모습 

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던 레게 머리형은 다시금 입을 열어 진영이에게 말 

했다. 

"아까 말을 들어보니, 우리에게 상당한 불만이 있는 것 같더군. 그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 괜찮다면 말해주겠나? 그 이유를 알아야 우리가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또 변명할 거리가 있으면 약간의 변명을 할 수가 있 

지 않겠나. 안 그런가?" 

레게 머리 형의 말투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곁에서 듣고 있는 나조차 

도 이토록 부담이 되는데, 그 대상인 진영이 녀석은 얼마나 부담이 될까? 

"… …, 쳇, 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수호가 말했으니 더 이상 길 

게 말 안하지. 하지만, 내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도대체 당신 

들은 춤을 추는 것이 좋아서 춤을 추는 건지, 아니면 관중들의 환호 소리 

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 마치 샐러리맨들처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라는 생각으로 매일 매일 춤을 추는 건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 

다∼ 이런 이야기지. 당신들이 춤추는 것을 나도 몇 번 봤었는데, 그 때 

마다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 내가 이제껏 보아온 길 

거리 댄서들만 해도, 진정으로 자기가 좋아서, 음악에 젖어 춤을 추는 사 

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유명하다는 여의도 공원의 댄서들인 당신들은 

실력은 있으나 마치 직장에서 일을 하듯 춤을 추니, 내가 얼마나 답답했 

으면 이렇게 나섰겠어? 엉? 생각 있으면 한번 변론해보라고?" 

말을 마친 진영이 녀석은 거친 숨을 씩씩 몰아쉬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뭔가 느낀바가 있었는지, 레게 머리 형을 

비롯한 밥맛 녀석과 그의 패밀리들도 고개를 숙이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어지간히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녀석인 것 같았 

다. 그것이 아니라면 방금 녀석의 입에서 나왔던 말들이 이렇게도 멋지게 

들릴 리는 없을 테니깐 말이다. 

잠시 후, 침묵을 깨고 레게 머리형이 입을 열었다. 

"그것이 자네를 화나게 했다면 사과하지,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아. 

아무리 우리들이 평범한 일상에서 탈피를 원했고, 그랬기에 이런 삶을 선 

택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다 보니 결국 우리가 원했던 탈피 

도,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생활로 변모해 버린 것 같군. 확실히 어느 순간 

부터 우리는 춤을 추고 또 공연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상생 

활'로 깊이 각인되어 버린 것 같아. 처음 시작할 때의 우리들은 분명 뜨 

거운 열정과 넘쳐흐르는 창의력으로 가득해 있었을 텐데 말이야. 음, 오 

늘 자네의 말이 우리를 다시 깨우쳤네. 진영이라고 했던가, 우선 고맙다 

는 말을 해야 되겠군." 

"응? 하하, 아… 뭐, 그, 그럴 것 까지는… …." 

진영이 녀석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레게 머리 형의 말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의 춤이 자네와 수호 군에게 개나 소에 비견될 만큼 우습 

게 보였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이래봬도 우리들은 중학교 때 

부터 모여서 매일 같이 춤을 춰오던 사람들인데, 아직 고등학생 밖에 되 

지 않은 자네들에게 깔보였다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고 

야 말았어. 설령 우습게 보였더라도 사람으로서 가려야 될 것과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법인데… …, 자네들은 오늘, 너무도 경솔한 일을 

벌이고야 말았네. 세상의 그 어떤 흉기들 보다 세치 혀가 훨씬 무섭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다른 일들은 다 넘어가도, 우리들의 자존심에 상 

처를 입힌 것만은 도저히 넘어갈 수 없네. 자, 자네들은 어떻게 보답할 

텐가? 지금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는 단순히 사과로써 넘어갈 일이 아니 

네." 

"… …." 

"… …." 

거기서 또, 왜 나를 끼워 넣는 거지? 물론 입을 제대로 단속 하지 못했 

던 내 책임도 크지만, 그 원인의 발단은 저 밥맛 녀석이었다고! 생각해 

봐!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그렇게 망신을 줘 놓고는, 뭐? 자기들이 

상처 입은 것만을 따져? 이거 말이 되는 소리야? 

그럼 내 자존심은 어떻게 하라고!? 

"… …." 

이런 생각이 들자, 돌연 내 신경이 날카로워 졌다. 여기서 내 신경을 

긁는 한 마디가 나오면 난 그대로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물론, 난 싸움 

을 못하니, 내가 자신 있는 말 빨로써 그 분노를 터뜨려야겠지만 말이다. 

정말 이래저래 억울할 뿐이다. 

"후후. 좋아∼ 좋아." 

그러나 내 심정과는 달리, 진영이 녀석은 돌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레게 머리 형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인데… …, 그렇게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어디 한번 말해 보시지? 무슨 동네 곗돈 세는 아줌마도 아니고 말이 

야. 자자, 어서 말해봐. 우리는 얼마든지 들어줄 용의가 되어 있으니 말 

이야." 

진영이 녀석. 처음에는 그런 대로 예의를 갖춰서 말하더니, 지금에 와 

서는 아예 안하무인이다. 혹여 라도 진영의 이와 같은 말에 레게 머리 형 

을 비롯한 밥맛 패밀리들이 화낼까 염려 되었으나, 그 걱정이 기우임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레게 머리형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었다. 

"후후후, 정말 어쩔 수 없는 성격이군.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 팀, '프리덤(Freedom : 자유)'은 자네들. 수호 군과 진영군에게 

1:1:1의 경기를 신청하는 바이네. 뭐, 경기라고 대단할 것은 없고, 음… 

…, 아! 수호군. 자네 학교, 이제 슬슬 축제 시기지?" 

"아, 예." 

"그래. 다른 학교도 그렇겠지만 특히 해광 고등학교는 모든 축제의 행 

사들 중에서 가요제가 정말 대단하다고 하더군. 무대 시설도 그렇고 상금 

도 그렇고, 그것들 때문에 주변 지역에서 실력 있는 많은 참가들이 해광 

고등학교의 가요제에서 자웅을 겨루기를 원한다던데… …, 우리들도 한번 

그렇게 해보는 것이 어떻겠나?" 

에? 뭐야?! 1:1:1로… 우리 학교 축제 때 자웅을 겨뤄?! 미쳤나?! 내가 

그걸 승낙하게!! 

"좋아!! 아주 마음에 드는 제안이군! 난 찬성이야! 강수호 넌 어때?!" 

"나? 나, 나는… …." 

"뭐? 한다고?! 좋아! 좋아! 역시 넌 사나이다! 아주 마음에 들었어! 하 

하핫!" 

이, 이건 도대체 뭐야? 내가 언제 한다고 했어? 

이거, 정말 참가하게 되기 전에 빨리 손을 써야겠는걸? 

"나, 난 안해! 못해! 내가 왜 해! 난 그 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런 의미 없고 또 득이 될 것도 없을 그런 대결에 왜 내가 참석 

을 해야 한다는 거야! 따지고 보면 난 피해자라고! 괜히 아무것도 모르고 

저 계집애에게 이곳 까지 끌려와서 저 밥맛 녀석에 망신을 당하고, 그래 

서… 그래서… …, 젠장! 하여튼! 알겠어!? 엉?!" 

"… …" 

"… …" 

모두들, 그야말로 '벙'쩌버렸다. 하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 

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오죽할까? 어쨌든, 나를 멍하니 쳐다보던 

이들 중,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녀석은 역시 진영이였다. 

"그, 그러는 게 어디 있어! 참가를 안 한다니! 이건 반칙이야! 사기라 

고!" 

"마, 맞네. 수호군. 왜 참가를 안 한다는 건지 말해줄 수 있겠나?" 

진영이와 진영이 형. 거 참… 이름은 같으면서도 성격은 왜 그렇게 비 

교가 되는지… …, 어쨌든,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을 해 주는 것이 인지상 

정이겠지? 

"아까 말했잖아요. 그런 득도 없고, 또 의미도 없는 대결에는 끼기 싫 

다고요. 더구나 전 학교에서는 존재감도 별로 없고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고 있는데, 난데없이 가요제에 나가서 춤추고 

노래 부른다고 생각해봐요. 그 다음부터는 이전과 같은 편안 생활을 하기 

에는 엄청 무리가 뒤따를 것이고, 심하면 그 보다 더한 생활을 하게 되느 

라 집안일에는 소흘에 지겠죠. 저게는 하나의 꿈이 있는데 그게 뭔 줄 아 

세요?" 

"아, 알 리가 없잖은가." 

"음. 맞아. 뭔데?" 

"후, 저는 제 하나 밖에 없는 혈육, 제 동생 뒷바라지를 해서 꼭 훌륭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꿈이에요. 다른 것은 일절 관심 없다 

고요. 솔직히 말해서 오늘 혜정이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뺑이치고 온 건 

데… 자꾸 이러면 집안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잖아도 어려워 

죽겠는데, 저마져도 이렇게 노세 노세 해버리면 도대체 누가 제 동생을 

먹여 살리고 공부를 시킬 수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으음… …!" 

"… …."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이런 장소에서 내 입으로 꺼내는 것은 영 달가 

운 일이 아니지만, 더 크게 벌어질 일들을 막으려면 여기서 이렇게 선수 

를 치는 길 밖에는 방법이 없다. 결국, 내 입으로 내 현 환경을 털어놓은 

셈이 되어 일단은 저들의 의도를 막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영 찜찜하 

다. 

"… 수호 군이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 처 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몰랐 

군. 혜정이도 수호 군이 무대에 올라섰을 때의 이야기만 했지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거든, 어찌되었든 사정이 그렇다니, 더 이상의 권유 

는 하지 않겠어. 그러나!" 

"?" 

"여자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이렇게 넘어가기에는 나를 비롯한 주변의 관중들이 용납하지 않 

을 거야. 상황이 어찌되었었든, 수호 군이 내 동생에게 무례하게 군것은 

사실이니깐 말이야." 

"그, 그래서 어쩌라는 거죠?"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더듬거리며 물었다. 진영이 형은 담담한 표정 

을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과를 하라고 해서 수호 군이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지금 처해진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하는 것일 뿐, 진 

심이 담긴 사과라고는 볼 수가 없겠지. 자, 수호 군에게는 단 한가지의 

선택권 밖에는 없네. 내가 제시한 대결에 참가를 해서, 승리를 한다면 자 

네가 떳떳한 것으로 쳐서 사과를 안 해도 좋고, 더욱이 자네가 원한대로 

혜정이 와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좋네. 더불어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수호 군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겠네." 

"혀, 형!" 

"진영아!" 

형이 제시한 조건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주변의 밥맛 패밀리 

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형에게 소리쳤다. 그 

러나 형은 조용히 고개를 저음으로서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나를 한동안 

쳐다보던 형은 다시금 입을 열어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만약 우리에게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자네는 우리 

모두에게 사과를 해야 함은 물론 내 동생 혜정에게도 고개를 숙여 정중히 

사과를 해야 하네. 조건이 공평해야 공정한 대결이 되겠지." 

"나, 나는? 왜 나에게는 아무런 조건도 걸지 않는 것이지?" 

"음? 아, 자네를 깜빡했군. 자네도 똑같네. 만약 자네가 우리에게 승리 

를 거두지 못하면 자네는 모든 이들이 보는 데서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사과를 해야 하네. 어때 이러면 되겠나?" 

"좋아! 난 찬성!" 

역시 진영이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찬성을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까…?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내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변하 

지 않았는데… …, 아무리 봐도 이 대결은 내 손해이다. 하지만 또 이 대 

결을 피한다면 남자도 아니니 뭐니 하는 욕을 잔뜩 얻어먹게 될 것 같고, 

또 내가 겁이 나서 도망치는 것으로 오인을 받을 수도 있으니 그것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대결을 받아들여야만 하나? 

"정말 치사하군요. 더 이상 피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까지 몰아세워놓고 

서는, 내 의사에 맡긴다는 그런 말이라니… …, 조건들이야 아무래도 좋 

지만, 이렇게 된 이상, 당신들에게 사과를 받기 위해서라도 대결에 참야 

해야 되겠군요. 이 녀석에게서야 별 다른 감정은 없지만, 당신들은 틀리 

니 말입니다. 좋습니다. 대결에 참여하도록 하죠." 

"좋아. 그럴 줄 알았지." 

"NICE! NICE! NI∼CE!! 이거 정말 재미있겠는데 그래? 하하핫!" 

표현 방식은 틀렸지만, 진영이 형과 진영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기쁨을 

표시했다. 나는 슬며시 혜정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거의 울 듯한 표정 

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혜정이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다가 

내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버렸다. 거 

참… …, 이거 감정은 둘째치고 서라도, 정말 귀여워 죽겠는걸? 

"이 대결에 제안을 하나 하지, 이 대결에서는 지금처럼 단순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은 너무 재미가 없으니 금하면 어떻겠나? 즉, 춤을 추 

고 싶으면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자∼ 는 이야기지. 어떤가? 승낙하겠 

나?" 

"좋아!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러면 재미가 없지!" 

"저도 좋습니다."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였다. 지금은 비록 아무런 컨셉도 떠오르지가 않 

고 있지만, 축제 때까지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 때 까지면 충분한 

컨셉을 마련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진영이 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다시 몸을 돌려 

관중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벤트가 어떠셨어 

요? 마음에 드셨어요?!" 

"예에!" 

"마음에 들었어요!" 

관중들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형은 더욱 짙게 미소를 짓고는 계속해 

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저희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에게 보답하려 돌아오는 12월. 

좀더 크고 멋진 이벤트를 마련하여 여러분들의 크신 사랑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더 큰 이벤트라니? 그게 뭐야?" 

"그게 뭐지?" 

- 웅성웅성 

더욱 큰 이벤트라는 말에 관중들은 흥미가 동한 표정으로 웅성였다. 일 

부는 그게 뭐냐며 진영이 형을 닦달하기도 했다. 

"이제 곧 있으면 수호 군이 재학 중인 해광 고등학교에서 축제를 연다 

는 것은 웬만한 분들이시라면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해광 고등학교는 

학교도 유명하고 다른 것들도 다 유명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축제의 하 

이라이트인 가요제가 더욱 유명 하지요. 그래서 잠시 우리 모두가 상의를 

한 결과, 바로 그 가요제에서 우리 셋이 대결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런 자리에 까지 나와서 음악만 틀어놓고 춤만 추거나 하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여드릴 테니, 

기대하시는 것도 좋을 듯싶군요." 

"우와! 재미있겠다!" 

"그거 정말이에요?!" 

주변은 또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중들에게 가슴설랠 

틈도 안 주겠다는 듯, 진영이 형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여기 수호 군과, 또 여기 진영군. 그리고 저희 팀 프리덤은, 1:1:1의 

대결 방식으로 관중여러분들께 멋진 볼거리를 안겨드릴 것입니다. 아, 그 

날 오실 때 우리 셋 중, 여러분들이 각자 마음에 들어 하시는 사람의 이 

름을 넣은 응원도구를 들고 와서 그 대상을 응원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 

습니다. 그냥 멋진 공연에 대한 관람료라고 생각하셔도 좋고요. 축제 날 

짜는 수시로 해광 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들려 참조해주세요." 

- 와아아아!! 

"저희들의 공연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저희 팀은 그 때를 대비해서 

연습을 하러가야겠군요. 그럼 저희는 이것으로 물러가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 짝짝짝짝짝!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졌다. 형을 비롯한 밥맛 패밀리들은 저마다 박수 

소리에 화답하듯 고개를 숙여 보였고, 곧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이 

곳에 남아있는 관중들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그저, 몇몇의 여학생 팬들 

만이 꺅꺅거리며 밥맛 패밀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었다. 

진영이 형이 입을 열어 우리 둘에게 말했다. 

"자, 그럼 그 때 까지 열심히 하자. 서로가 기억에 남을 멋진 공연을 

펼쳤으면 좋겠군." 

"흥. 지고 나서 울지나 마라." 

"뭐,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어쨌든 염두에는 두지. 아, 수호군은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예? 어떻게 하다니요?" 

어리둥절한 나의 표정이 우스운 듯, 진영이 형이 킥 하고 웃은 뒤 말했 

다. 

"원래 수호군은 혜정이의 보디가드가 되어서 방송국에 같이 가주기로 

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 시간도 거의 다 됐고 해서 혜정이는 방송국에 

가야할 것 같은데… …, 연약한 여장의 몸으로서 혼자 방송국까지 가기에 

는 너무 위험하지 않나. 안 그런가?" 

아차!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나는 혜정이가 방송국 구경을 시켜준다기 

에 아르바이트까지 제끼고 따라온 거였지. 그런데 일이 이 지경으로 됐는 

데 혜정이와 같이 다닌 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그러므로 거절을 

해야… …. 

"그래도 형이 있잖아요. 설마 동생을 모른 척 하려고요?" 

"아니, 우리는 이 곳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 때까지 기다리려면 혜 

정이는 방송을 펑크를 내게 될 거야. 그러면 안 되지. 연예인은 시간 엄 

수가 생명인데… …, 음, 어떻게 한다… …." 

곰곰이 생각하던 형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러면 되겠군. 진영군, 혹시 시간 있나?" 

"응? 시간? 시간이라면 널널한데… 설마 나보고 데려다 주라는 것은 아 

니겠지?" 

"왜 아니겠나? 후후, 부탁하네. 역시 자네밖에 없네." 

"윽, 난 여자라는 동물들은 딱! 따악∼! 질색인데… …, 이, 이봐 수호 

야! 그냥 네가 데려다 주는 게 어때? 응? 난 여자는 정말 싫단 말이야! 

넌 저 여자하고 잘 아는 사이고 그러니 괜찮잖아. 그렇지? 응?" 

어라? 얘가 왜 이래? 여자가 싫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까지 거부 반응을 

보이다니… …이거 정말 의왼데 그래? 

녀석은 울상을 지으며 나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거 지금 반응을 보 

아하니, 녀석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고… …, 후유∼, 뭐 어 

쩔 수 없지. 

"알았어. 하지만 나도 나 혼자 가기에는 이런 저런 상황들 때문에 좀 

그렇고… , 그럼 같이 가자. 그러면 되겠지?" 

"응! 그러면 좋지!" 

녀석은 안색을 금세 환하게 바꾸며 고개를 끄덕인다. 진영이 녀석, 확 

실히 생긴 게 무척이나 곱상해서, 남들이 잘 못 보면 청순한 미녀라고 착 

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꽤나 오해받았겠는걸? 

"자, 그러면 저희는 갈게요. 다음에 만나죠." 

"그래. 조심해서 가라." 

"예. 그럼… …." 

"헤헤, 잘 들 있으라고!" 

우리는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 

다. 방송국으로 가는 동안, 진영이와 나 사이에는 많은 대화가 오고 갔지 

만, 정작 혜정이에게서는 그 어떠한 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방송국에 처음 가본 그날. 나와 진영이는 혜정이의 말 없는 안내로 인 

해 상당히 얼떨떨한 기분으로 무사히 탐방을 마칠 수가 있었다. 화려한 

조명 뒤의 엄청난 땀방울들과, 화사한 미소에 숨겨진 수많은 에피소드들. 

오늘은 이래저래 참 많은 것들을 겪고, 체험하고, 또 느낄 수가 있었 

다. 농담이 아니라 내가 평범한 고등학생으로써 느껴야 할 몇 달치 피로 

들을 오늘 하루에 한꺼번에 겪어 버린 듯 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나는 

진영이와도 해어지고 비로소 발걸음을 집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옛날 초등학교 때의 일기 식으로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면… …. 

참 즐거운 날이었다… 라고 해야 하나? 

쩝, 어쩄든 집에 무사히 돌아갔으니 된거지 뭐. 

다음 날...학교에서 그렇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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