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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2
- 방송국 나들이 -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
"으, 응? 하하하!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
사나이 대장부는 세 번 운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 포경 수술 했을 때.
사나이 대장부는 세 사람에게 약해진다.
여자친구.
가족.
그리고 의사.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위 세 가지를 벗어나면, 그 때는 절대로 사나
이라는 칭호를 달고 다니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
지금 이 상황은 뭐냐?! 여자친구도. 그렇다고 가족도 아닌, 전혀 남다른
타인에게 이토록쩔쩔 매고 있는 이 가련한 사나이의 모습은?
"정말! 최악이야! 최악!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휴우∼!"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모든 교우들의 이목을 집중 받으며 교실로 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 드르륵!
"어? 수호왔다!"
"수호다! 강수호야!"
- 웅성웅성.
웬일인지, 여느 때와는 달리 교실은 무척 시끄러웠다. 물론 무엇 때문인
지는 교실에 오면서 뼈저리게 느꼈기에 알 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반
의 친구들에게까지 이목을 집중 받는 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제 까지 거의 존재감 없이 지내던 나였기에, 더욱 그랬을지 모른다.
왠지 어깨가 으쓱여짐을 느끼면서 자리로 갔다.
"안녕. 반가워."
"음? 아∼, 혜정이 왔구나."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혜정이가 방긋거리며 내게 인사했다. 그 모습에
반이 다시 한번 술렁였지만… 이번에는 왠지 기분이 틀렸다.
말하자면… … 으쓱임이 아닌, 싸늘함을 느꼈다고 할까?
하하하. 착각이겠지?
"응. 나왔어. 어젯밤의 네가 좋아하는 가수라던 아리나의 리드 보컬 김
혜정 양이 말이야. 그나저나 얼굴이 무척 좋아 보인다? 어제 끝나고 어디
좋은 곳 갔었나봐?"
"응? 아아∼! 그거? 하하하. 어젯밤 공연 끝나고 수한이 형이 이렇게 만
난것도 인연인데 이대로 해어지기는 섭섭하지 않냐고 해서… …, 갔지 뭐.
지금 형 집에서 자고 나오는 길이야."
내 말에, 이상하게도 혜정이가 씨익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너무나.
흠 잡을 곳 없이 너무나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그으∼래? 그랬구나아∼. 이야∼, 공연이 '끝·나·자·마·자' 좋은
곳을 갔다고? 이야∼ 그렇게도 기분이 좋았나보지? 고등학생이 감히 '가·
서·는·안·될·곳'을 다 가고 말이야. 이거, 선도부 고문이 알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모범생 강수호군이 술!! 읍읍…!'"
"하, 하하하!"
더 이상, 금어가 터져 나오기 전에, 나는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
다. 물론 입으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정말 아쉽게도 손
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윽! 한이로고!
"도대체 왜 그래?! 뭘 원하는 거야!?"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줄여서 혜정이에게 소리쳤다. 그녀는 그러나 그녀
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손가락을 들어 나의 뒷 쪽을 가리켰다.
"응? 뭘 보라는 거… …."
당신은 보이는 가? 게임에서만 볼 수 있었던 거대한 땀방울이 나의 뒷통
수에 작렬하는 것을!
"저, 저 녀석이 이제는 혜정이한테까지… …!"
"요, 용서할 수 없는 녀석이야! 저 녀석 말이야!"
"강수호오오∼!!"
고질라들의 괴성. 그것은 분노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반
남자 녀석들은 눈깔을 부라리며 자신들이 느끼기에 최대한 험악하다고 생
각되는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러니깐 마치 좀비 같은데?
"하하… 하하하하."
난 혜정이의 입에서 살짝 손을 내렸다. 그리고 마치 왕따 학생의 그것처
럼, 고개를 약간 숙이며 다소곳히 책상에 앉았다.
"크으! 강수호! 절대 용서 못한다!"
"이 건방진 녀석이 어디서 감히… …!"
"으으윽!"
위기다! 대 위기다!
침이 꼴딱 넘어오고, 마음은 무척 불안해진다.
설마 진짜 죽이기야 하겠어? 라는 생각은 계속해서 내 뇌리에 떠돌고 있
었으나, 그래도 결코 무사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내 머릿속에 확신으로서
다가왔다.
- 띵∼동∼댕∼동∼
그러나 그 때. 때 마침 울리는 수업종은, 마치 성직자의 거룩한 빛처럼
흉악한 좀비들을 소멸시키는데에 큰 일조를 했다.
이럴 때, 꼭 해야 하는 말이 있지.
'oh∼! My God! Thank berry much!'
"후후훗. 그러게 이 귀하신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안돼지."
"으윽! 너 정말… …."
"어? 때리려고? 꺄아아악~! 강수호가 날 폭…우웁 …!"
"아, 알았어! 알았어! 원하는 거 다 들어줄태니깐… 제발! 제발!"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무, 물론이지! 하하하! 딱 한가지… 이지만 말이야."
혜정이 이 지지배… …, 활달하다는 성격 빼고는 영약한 게 어쩜 그렇게
박민예, 그 지지배와 쏙 빼닮았냐!? 예쁜 여자는 무조건 여우라고 하던 옛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어! 제길!
혜정이는 싱글 벙글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칠
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제길! 오늘 도대체 왜 그래!?
그렇게. 1교시, 2교시. 그리고 3교시와 4교시가 지나가고 드디어 점심시
간. 혜정이는 종이 울리자 마자 나의 손을 잡아 끌고 지금 우리가 앉아 있
는 이곳, 바로 별관 앞의 등나무에 있는 의자에 오게 되었다.
젠장! 도대체 뭐를 말하라는 건지… ….
"그래서 이렇게 사과하잖아. 어젯밤 그렇게 간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니
깐. 잠깐 깜빡했을 뿐이라고!"
"오∼ 그러셔? 잘 나셨어. 그런데 내가 말하라는 것은 그게 아닌데 어떻
게 하지?"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내가 아까부터 물어봤잖아!"
"어? 지금 나한테 화내고 있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하하하…."
후우, 정말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지지배군.
지금 이 상황이 5분 째 반복되고 있었다. 말싸움에서 여자 이길 남자는
없다고, 아무래도 이쯤에서 두손을 들고 항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서 나는 한숨을 내쉰다음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하늘 높이 번쩍!
"자∼자. 내가 졌어.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
"후후. 진작에 그렇게 나올 것이지."
도대체 뭣 때문에 화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잘한 게 없는 것은 사실
이니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학교 끝나고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음? 아니지. 내 부탁을 꼭! 들어준
다고 했으니 없더라도 내 주는 것이 옮겠지? 시간 낼 수 있지? 그렇지?"
"으, 응. 오늘 마침 오늘은 아르바이트도 쉬는 날이고… 음, 할 일은 없
네. 그런데 왜?"
"아이∼참. 이쯤 되면 보통은 눈치채던데 말이야."
"눈치? 뭔 눈치?"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뜻으로 내가 두눈을 꿈뻑이자 혜정이가 살짝 미간
을 찌뿌렸다.
"데이트 말이야. 데이트 신청."
"데, 데이트 신청?"
"그래. 꼭 이런 것 꺼자 내 입으로 말해야 되겠니?"
어조는 무척 쑥쓰러운 어조였지만,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듯, 내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싱긋 웃어 보였다.
"오늘 오후 6시에 'TV가요 50'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현해야 하거든. 원
래 매니져 오빠가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데리러 못 오겠다
고 아까 전화가 왔었거든. 그래서 보디가드겸, 너 한테 방송국 구경을 시
켜주고 싶어서 말이야. 후후, 물론 갈 거지?"
"바, 방송국?! 내, 내가?!"
"응."
방송국이라니… 내가 방송국에 간다니… ….
어렸을 적부터 쭉 꾸어 오던 큰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큰 꿈안에 포함
되어 있던 여러 작은 꿈들 중 하나는, 바로 내가 방송국에 가서 TV프로그
램에 출연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녀석들이 다 외국으로 떠난 뒤, 그
꿈도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뭐, 지금에야 그때의 꿈들에 일말의 미련도 없거니와,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가 이렇게 학교에 다니고 있는 시간도 아까울 뿐이다. 나는 하루
빨리 돈을 벌어서, 훌륭하게 클 내 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야 할 사명이 있
다.
"으음… …."
물론 조금은 흥미가 간다. 방송국이라는 곳, 내가 어렸을 적부터 그토록
꿈에도 그렸던 곳이니 만큼 말이다. 에이! 어차피 내가 내 입으로 한 말도
있고, 방송국 쯤이야 같이 가주기로 할까?
"뭐, 좋아. 같이 갈게."
"야호! 좋았어! 그러면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가는 거야. 물론, 좀 변장
을 했야겠지. 가는 도중에 사람들이 알아보면 곤란할 테니깐 말이야. 아∼
기대된다."
혜정이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 띵∼동∼댕∼동∼
마침, 수업을 알리는 5분 대기종이 울렸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
란히 교실로 갔다.
음. 이러니깐 꼭 커플갔다. 나쁘지만은 않아. 헤헤.
* * *
"어머, 얘. 혹시 저기 금색 테 안경끼고 모자 쓴 저 애… … 어디서 많
이 본 것 같지 않니?"
"응, 그러게.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어쨌든 정말 예쁘다. 스타일이 죽이는 데?"
혜정이는 변장을 한 답시고 학교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곧, 밝은 색체
계통의 힙합 패션을 하고 머리에는 흰색 실로 뜬 것 같은 두건을 쓴 다음
에, 금색의 얆은 테 안경을 낀 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저게 정말 혜
정이가 맞나 싶은 생각에 입이 절로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이건 강도가 너무 지나치잖아!
"너, 아무래도 변장 컨셉좀 다시 바꾸는 게 어때? 너무 눈에 띄잖아."
"어머.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니?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라고, 오히려 이
정도는 하고 다녀야 다른 사람들이 더 못 알아보는 법이라구."
"으휴… …. 그 말, 앞으로 한 번만 더 들으면 8번이야."
"후훗."
꼭,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똑같은 말로 받아치니… …, 이래서야 더
이상 말할 기운도 나지 않는다. 아니, 그건 그렇고 6시에 방송이 있다는
애가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괜찮은 거야? 지금 4시 30분이라고!
"너 진짜 괜찮아? 방송국에 간다는 애가 계속 이 곳에서 시간을 때우
면… …."
"어허. 괜찮다니깐 그러네? 꼭 네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너
를 이곳까지 데려온 거라고. 그러니 얌전히 날 따라오기만 해."
"알았어. 으이구!"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여의도 공원이다. 주말의 영향이었는지, 막
입구를 지나쳐 왔을 뿐이었는데도 무척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땀을 흘리며 농구를 즐기는
사람들과,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띄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수 많
은 커플들이었다.
"이곳은 평일 때에는 정말 조용한 곳이야. 하지만 오늘처럼 주말이 다가
오면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는 곳으로 변모해 버리지. 저기 농구를 하는 사
람들도 그렇고… 가족끼리 놀러 놀러나온 사람들도 그렇고… …. 숨막히는
도시의 유일한 오아시스라고나 할까? 그런 이 곳이 좋아서, 난 가끔 이렇
게 변장을 하고 홀로 이곳에 오거나 아니면 우리 팀원들과 오기도 하지.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을… 특히, 남자와 같이 온 것은 네가 처음이야. 영광
으로 알아야 된다구."
혜정이는 그렇게 말하며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아직 차갑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자그마한 실바람이 그녀의 허리까
지 내려오는 탐스럽고 길다란 생머리를 살며시 유린하며 지나갔다. 연예인
이라서 그런가? 확실히 다른 여자들과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흠, 그러고
보면 그것은 오늘 아침의 그 정신 없는 지지배도 마찬가지지. 이름이 박민
예랬던가?
- 쿵쿵∼ 쿵! 쿵∼ 쿵쿵… ….
"엇! 들어봐! 음악 소리야. 시작했나보다. 어서 가보자!"
"응? 뭐, 뭐를… … 으앗!"
그 때. 내 귀를 자극하는 강렬한 비트의 댄스 음악이 있었다. 혜정이는
환하게 개인 얼굴로 내 손목을 잡더니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다급히 뛰기
시작했다.
"헉! 헉! 벌써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다니… …, 역시 대단해! "
"헉, 헉…."
잠시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사람들이 개미떄처럼 모여있는, 어느 곳이
었다. 인파에 가려져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는 몰랐지만…
…, 이런 음악이 나오고 구경꾼들의 함성소리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예측할 수는 있다.
무슨 공연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지?
"저기 들어가자. 내가 조금 알고 있는 사람들인데, 정말 대단한 사람들
이야. 자, 어서!"
"으, 응! 알었어!"
우리는 힘겹게 밀집되어 있는 인파들을 가르며 앞으로 해쳐 나아갔다.
혹여라도 잊어버릴까, 나는 혜정이의 손을 꽉 잡고 그녀를 에스코트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너무 꽉꽉 매여있다 보니까, 연약한 여자의
몸인 그녀로서는 많이 힘들겠다라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제일 앞줄로 들어설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
었지만 내 생체의 모든 기능 정지시킬 정도의 충격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