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2
- 방송국 나들이 -
"이제 슬슬 가봐야 될 것 같다."
"응. 어느 정도 시간도 됐고, 또 성진이와 민예 학교에 시간 맞춰 가려
면 지금 가야 할 것 같네. 이렇게 해어지게 되다니… …, 이거 섭섭해서
어쩌지?"
상찬의 말에, 수한이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수호에게 말했다. 깊게 말하
지는 않았지만, 이미 수호라는 인연에게 정이 들 때로 들어버린 수한이었
기에 그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찬과 성
진도 마찬가지였는지,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상찬의 경우에도 입꼬리를
미세하게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아쉬움의 미소였다.
"뭐, 오늘만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 정말 만남 치고는 희한하고
재미있는 만남이었지만, 나는 절대로 어젯밤을 잊지 못할 거야. 내가 비록
음악과에 다니고 있고, 또 여러 사람들과 노래를 불러봤지만, 그렇게 기분
이 좋았던 적은 내 삶에 맹세코 처음이었거든. 'SHAPE OF MY HEART'라…
…,"
수한이 형은 어젯밤 불렀던 노래 제목을 되뇌이더니,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우리는 점술가나 무당이 아니
니깐 말이야. 다만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너는 노래 부르는 것을 무
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어. 너 싱어라는 게 뭔 줄 알아?"
싱어? 뭐, 락 그룹이나 보이 그룹들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을 뜻하는 단
어? 그런데 갑자기 그런 이야기는 왜 꺼내지?
"훗, 그런 표정을 지을 것 까지는 없잖냐. 널 바보 취급 하는 게 아니니
깐 안심하라구. 다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말이지, 싱어라는 것은, 노
래를 좋아하는 사람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그렇다고 여느 그룹들의 마
이크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그런 속칭어가 아니야. 싱어라는
것은 말이야,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그 무한대의 열정들을 거침없이 쏟아
내는 그런 사람들을 뜻하는 거지. 뭐, 그것이 열정(熱情)이든 냉정(冷情)
이든 간에 자신이 마음속에 담고 있던 것들을 거침없이 쏟아 부을 수만 있
다면 그 때야 비로소 '싱어'라는 말을 들을 수가 있는 거야. 무조건 노래
만 잘하고 춤 잘 추고, 방송에 나와서 인기 좀 얻고 그래서 몸값이 오른다
고 다 싱어가 아니라는 소리지. 알겠니 수호야?"
"으, 응."
"그래. "
수한이 형이 왜 저런 말을 하는 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은 알 것
같았다. 형은 싱긋 웃으며 내 머리를 부볐다.
이러니깐 꼭 어린애가 된 기분인데?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기분 나빠해야 하는 거야?
"아, 전화번호와 집 주소들은 오늘 아침에 서로 나눠가졌으니 연락에는
문제없겠지? 자주 연락을 나누자 우리."
"응. 물론. 할 일 없으면 내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곳에 놀러와. 언제
든지 반겨줄 테니까."
"그래, 자주 들릴께. 자, 그럼 악수 한번 할까?"
"좋지."
우리는 서로 웃어 보이며 손을 맞잡았다. 음, 귀족적인 외모와는 맞지
않게 손에는 굳은살이 꽤 박혀있었다. 아마도 여러 악기들을 배우고 있던
탓이리라. 그 뒤를 이어 수한이 형. 성진이 녀석과 악수를 했고, 마지막으
로 오늘 아침, 너무도 처절한(?)기억을 내게 심어주었던 그녀… …, 박민
예의 앞에 섰다.
"후, 너란 남자를 알게 된 것은 정말 최악이지만… …, 오늘 아침의 내
실수도 있고 하니, 내 몸에 함부로 손을 댔던 무례는 용서해주지. 어때?
감촉은 좋았어?"
윽! 그걸 아직 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그런데… … 표정은 영 아
닌 걸? 이거 화났다고 생각해야 되는 거야, 아니면 나를 약 올리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야?
아무래도 후자 쪽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 같은데? 뭐, 아무래도 좋지.
그런 식으로 나온 다면 나도 똑같이 되받아쳐 주는 수밖에!
"좋기는. 너 같으면 빨래판을 만지고 기분 좋을 수 있겠냐?"
"뭐, 뭐야? 빨래판이라고?!"
"솔직히 말해서 그래. 뭐 있지도 않은 것에 손을 좀 댔다고 그렇게 세계
맞은 것도 그렇고, 너에게 치한으로 몰려서 그런 곤욕을 치른 것을 생각하
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이 말이지. 이렇게. 으드득! 으드득!"
"어, 어떻게 정말… …."
그녀는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흠. 정말 다시 느끼는 거지만,
정말 예쁘게 생겼군. 뭐, 얼짱이니 뭐니 하는 그런 유치한 단어는 내가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예쁜 건 예쁜거니 인정해 줘야겠지? 솔직히, 이렇게
가까이서 쳐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말이야.
"후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녀는 내
웃음을 자신에 대한 비웃음이라고 생각했는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 후우. 그래,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뭐, 다 내 착각에서 비롯된
거였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
- 퍼어억!
"우욱!"
"여자에게 빨래판이니 뭐니 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단어야.
여자에게 인기를 얻고 싶으면 최소한의 언어 예절 정도는 공부해 두라고.
알았어?"
그녀는 내 복부를 향해 가볍게 주먹을 꽂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윽, 당했군.
"하하하! 알았어. 인기라, 음. 그것은 나보다는 내 동생한테 더 가까운
단어인데… …, 뭐 공주 마마의 명령이 그리하다면 알아 모시는 수 밖에.
휴우∼!"
"흥. 이제야 좀 아는 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특별히 내 손을 잡을 수 있는 영광을 선사하지."
"오∼ 마드모아젤. 당신의 뜻이 진정 그러하시다면 영광이로소이다."
좀 어처구니 없는 대사가 오고가는 가운데, 나는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손을, 흡세라도 그 백옥같은 투명함에 금이라도 갈까 살짝 움켜잡았다.
"대화나 너무나 길었네. 잘 가셔."
"응. 잘가. 또 보자."
"또 보자 수호야."
"한성진. 이 세글자를 절대 잊어버리지 마라. 응? 잊지마 이 녀석아! 흑
흑흑!"
"그럼… …."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짦은 인사말을 나누고서, 해어졌다. 곧, 수한
이 형의 승용차는 듣기에 고급스러운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떠났고, 우리의
쌩쇼(?)를 감상하던 주변의 남·여학생들은 아쉬운 탄성 소리를 내며 자리
를 떠났다.
내가 학교에 들어서고, 교실로 가는 동안 나는 많은 이들의 수군거림과
눈길을 받아야 했다.
대충… ….
"야, 제가 그 애지? 아까 교문 앞에서 박민예와 이야기를 하던… …."
"응. 감히 손 까지 잡던데? 그 동안 수험생이라서 자제하고 있었는데,
저 녀석 손 좀 볼까? 아악∼! 부러운 녀석!"
이런 부류와.
"야, 한번 이야기좀 해봐. 도대체 그 사람들 누구냐고… …응?"
"싫어! 니가 해봐!"
이런 부류.
다행인 것은, 여자애들에게서는 질시를 받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는
데… ….
"그나저나 재 뭐니? 저런 엄청난 꽃미남들과 같이 다니기에는 너무나 모
자란 얼굴인 것 같은데… …. 괜히 재수 없다. 그치?"
"응. 맞아. 정말 재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귀에 직빵으로 꽂히는 수군거림이 있었으니…
….
'후우∼, 세상은 참 무섭구나.'
새삼스래 느끼게 된 사실이었다.
번호:7 글쓴이: 무판매장
조회:22 날짜:2003/07/13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