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딕스전기-177화 (177/194)

177화

현악기의 길고 날카로운 음.

여섯 개의 물의 검이 하늘 높이 솟구친다.

짙은 안개가 이를 가린다.

높이 솟구친 물의 검은 천벽의 건물 여섯 방위를 장악 한 뒤 맹렬한 회전을 일으킨다.

그러곤 빠른 속도로 지면을 향해 내리 꽂힌다.

검이 향하는 곳은 맨 땅이다.

무엇을 하기 위함일까? 아무도 모른다. 이를 시전 한 딕스 만이 알 뿐이다.

천벽의 벽주이하 그림자 마법사들이 건물 정면에 나와 있다.

이들의 숫자는 31명, 건물 내부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창가에 나와 밖의 동정을 살핀다.

콰드드드득.

단단한 무언가를 꿰뚫어버리는 여섯 개의 관통 음이 그 중심지로부터 퍼져나간다.

물의 검은 땅속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아래 깊은 곳에 웅크린 거대한 지하수와 조우한다.

그 순간 지축이 흔들렸다.

천벽의 건물이 몸부림친다.

건물 내부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경악성을 토한다.

벽걸이 수납장의 물품이 떨어지고, 바퀴달린 의자가 멋대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헉!”

“꺄아악!”

와장창.

크고 작은 창문틀이 일그러졌다.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한 유리창이 일제히 터져 나간다.

투명한 그 파편들을 뒤집어쓴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당황한 자들이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복도는 순식간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부딪치고, 밀리고, 넘어진다.

혼비백산한 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아우성이다.

천벽의 벽주가 인상을 찌푸린다.

그림자 마법사들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다.

그림자 마법사들이 억눌린 신음처럼 한마디씩 토해냈다.

“땅속에서 분열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물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여, 여섯 곳이다!”

여섯 이란 숫자를 물의 그림자 마법사가 외친다.

좀전 노도의 한수를 보며 다들 헛웃음을 날렸다.

쓸데없이 짓거리라 다들 그리 생각했다.

한데, 그것이 아니었다.

콰드드드.

숨길을 만난 지하수가 여섯 구멍에서 분출한다.

촤아아아악!

굉장한 소리였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일순 귀가 먹먹함을 느꼈다.

물줄기는 100미터나 솟구친 뒤 우산처럼 펼쳐졌다.

땅의 구멍은 점점 커지고, 지축의 흔들림도 그러했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건물 출입구로 쏟아져 나온다.

이를 본 천벽의 벽주와 천둥 같은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제야 두려움에 빠진 자들이 정신을 차렸다.

짧은 순간 찾아든 정적.

천벽이 자리한 대지를 감싼 중앙이 빈 도넛 모양의 짙은 안개.

천벽은 완벽하게 포위되어 있었다.

단 일인에 의해서.

천벽의 벽주가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들에게 안개를 날리라 지시했다.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들이 앞으로 나와 바람을 일으켰다.

시야를 가로막는 안개가 곧 날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거친 광풍이 사방으로 내달렸다.

찢겨진 땅의 파편이 바람에 휘말린다.

유리 알갱이가 휘말린다.

사방으로 질주하던 바람의 힘이 안개를 들이친다.

안개는 크게 휘청 일 뿐 물러서지 않았다.

반고체상태의 젤리처럼 흔들릴 뿐이다.

이 현상은 담담하던 천벽의 벽주마저 놀라게 만들었다.

쏴아아아악.

지면을 뚫고 하늘 높이 솟구친 물기둥이 점점 커진다.

그 속도는 몹시 빨랐다.

지하수가 빠져나오는 여섯 개의 구멍이 커질수록 건물은 용골의 앓는 소리를 냈다.

묵직한 그 소리는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헉! 거, 건물이 기운다!”

반 토막 난 도를 땅에 박은 듯한 모습의 천벽 건물이 기운다.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오른쪽으로, 다시 앞뒤로.

그렇게 기울던 건물이 제 몸을 미친 듯이 떨며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으아아악!”

강력한 진동에 건물의 외피가 떨어진다.

크고 작은 그 파편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을 덮쳤다.

비명이 터진다.

우왕좌왕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사방은 젤리 같은 위력을 가진 안개가 포위하고 있다.

벽주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 음성에 화답하며 그림자 마법사들이 움직였다.

땅의 그림자 마법사들은 건물의 침하를 막기 위해 땅을 다진다.

물의 그림자 마법사들은 안개를 분해하고, 물줄기를 틀어막는다.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들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안개 속에 몸을 숨긴 노도를 찾느라 혈안이다.

불의 마법사는 두 눈에 화광을 담고 공격을 준비한다.

모두가 긴장한 채 그렇게 있었다.

“헉!”

“컥!”

“으헉!”

안개와 물줄기와 같은 속성을 가진 물의 그림자 마법사들의 입에서 일제히 다급성이 터진다.

이들의 몸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육신이 액체화 되어 간다.

이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한 행위가 아니었다.

외부의 힘이 그들을 그리 만들고 있었다.

이를 본 모두가 놀란다.

액체화 된 모든 물의 그림자 마법사들이 물줄기에 흡수되었고, 안개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이 흡수된 자들은 모두 안개 속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인도 당한다.

“전력으로 안개를 뚫는다!”

물의 그림자 마법사들, 동료들이 모조리 액체화 되어 흡수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모든 그림자 마법사와 주변에서 이를 본 천벽의 직원들이 당황한다.

우르르르.

평범한 천벽의 직원들 중 일부가 장내의 질서를 유지하라 소리친다.

소리치는 자들도 두려움에 그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 있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고함과 비명.

후두둑 떨어지는 건물의 외피.

땅속으로 가라앉는 건물의 육중한 아우성.

하늘 높이 치솟았다, 땅속으로 파고들었던 물의 검이 여섯 줄기의 거대한 물기둥 속에 자리 잡고 앉아 제 힘의 일부를 담은 물의 암기를 쏘아댄다.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빠르기도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었다.

슝슝슝.

단단한 콘크리트 천벽 건물은 스펀지 치즈처럼 구멍 생긴다.

하물며 인간의 몸이 어찌 여기에 버티겠는가.

“으아악!”

“꺄아악!”

천벽의 평범한 직원들은 물의 파편에 몸이 망가지고, 건물의 파편에 짓눌렸다.

그림자 마법사들이야 이 공격에 당할 리 없다.

그들은 각자 제 힘의 근원으로 몸을 환원하였다.

바람, 불, 땅이 된 인간들.

그들의 그 신비롭고 괴이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천벽의 직원들은 이에 아무런 감상도 낼 수 없었다.

제 코가 석자다, 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죽어가는 자들이 속출한다.

부상자들이 곳곳에서 도움을 호소하며 울부짖는다.

천벽의 건물은 더욱더 빠른 속도로 침몰한다.

이곳은 지옥이 되어 버렸다.

한편 딕스는 물의 그림자 마법사들을 흡수한 뒤 이들을 제 몸 한구석에 응축해 두었다.

사막 낙타의 혹처럼.

거대한 도넛 모양의 안개 밖, 황군과 수도방위군과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출동하였다.

이곳은 황궁과 가까운 곳.

마법사들이 골렘을 소환하여 안개 속으로 파고들었다.

안개는 골렘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간은 단 한명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개에 발을 디딘 자들은 지독한 수면 약에 취해 곧장 쓰러진다.

20여기의 다양한 마법 골렘들.

안개 속에서 그 골렘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놈들은 할릴 없이 떠도는 한가한 관광객이 될 뿐이다.

모두를 무력화 시켜버린 딕스.

지하에서 뿜어져 나온 물의 줄기는 더욱더 커지고, 그 영역을 확대했다.

이것은 딕스의 병사들이었고, 든든한 아군이다.

이를 등에 업은 딕스에게 천벽의 그림자 마법사나 저 밖의 황군과 마법사와 기사들 따위 상대되지 않는다.

그는 이곳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홀로 선 존재였다.

“나 노도를 건드린 놈들의 최후를 제국의 수도에 남기노라!”

벼락처럼, 천둥처럼 크고 우렁차며 힘찬 음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마법사들의 골렘과 천벽의 그림자 마법사들이 들이닥친다.

하지만 이들이 들이닥친 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들은 아군끼리 상잔했다.

마법사들의 골렘이 속성 화 된 그림자 마법사를 공격한다.

그림자 마법사들 역시 골렘을 노도와 연관된 하수인으로 보고 싸운다.

양측은 맞붙어 치열하게 싸웠다.

딕스는 이를 안개 속에서 지켜보며 무리에서 떨어진 그림자 마법사를 정확하게 제거했다.

평범한 천벽의 직원들 모두 침몰하는 건물에서 모두 나왔다.

모두가 무사하지는 못했지만 건물 내부에 있었다면 모조리 매몰되고, 수장되었으리라.

이는 딕스가 저들에게 베풀어준 자비였다.

적에게 자비를 모르던 그였기에 이는 예상외의 행동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딕스가 굳이 이러한 성가신 방법으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이유를.

그가 작심했다면 지금 같은 액션이 필요 없음을 말이다.

지하에 매설된 지뢰 같은 거대 지하수를 다른 곳으로 빼버리거나, 혹은 그 자신이 액체화 되어 도심 상공을 장악하여 소낙비 같은 물의 창을 퍼부어 버리면 간단하다.

딕스에게는 너무도 많은 훌륭한 패가 있었다.

그 많은 패 중 딕스는 가장 번거롭고 귀찮은 방식을 채택했다.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친절한 녀석들에 대한 나의 큰 보답이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겠지만.’

그렇다.

올가, 레나, 행크, 로이, 그리고 그 외 다수의 친절하고 건실한 제국 인들.

그들을 몰랐다면 딕스는 이런 복잡한 방식의 공격을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닥치는 대로 모조리 쓸어버렸을 것이다.

남이니까, 적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냉정하게 도시를 익사시켰을 것이다.

안개 속으로 뛰어든 그림자 마법사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딕스는 천벽의 벽주를 본다.

그리고 그 주변을 살핀다.

‘클라우드 놈... 얌체처럼 빠져군.’

천벽의 벽주를 비롯해 그 직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클라우드는 없었다.

딕스는 천벽의 벽주를 혼란한 장내에서 납치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다.

천벽의 수장이니 그도 그림자 마법사와 같은 능력이 있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던 딕스는 그가 평범한 자라는 것을 납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어째, 저런 자가 천벽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일단 데려가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밝히면 그만이다.

이제 천벽을 상징하던 특이한 구조물은 땅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곳엔 거대한 깊은 구덩이만 남아 있다.

그 구덩이에서 맹수의 으르렁거림이 들린다.

요동하는 물의 소리다.

이 소리에 기겁한 자들이 사방으로 달아나다 안개를 만나 픽픽 쓰러진다.

딕스는 안쪽역시 안개로 덮어버렸다.

신음도 비명도 당혹성도 일순간 사라진다, 고요만이 감돌뿐이다.

그리고 거대한 여섯 물줄기도 그 힘을 잃어버린다.

물줄기가 분출한 여섯 통로는 얼음으로 꽉꽉 채워져 있다.

딕스의 작품이다.

제국인들이 저 곳을 조사한다면 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절감 할 것이다.

지하에 고인 거대한 지하수를 무시했다간 도시의 절반이 침몰할 터이니,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한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 딕스가 저 지하의 고인 물을 건들이지 않았다면 지진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충격이 가해졌을 시 저 지하의 비밀이 밝혀졌으리라.

큰 재앙과 절망과 비통함 위에.

이러고 보면 딕스는 제국에 큰 은혜를 베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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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는 아버지와 약속한 식당에 딕스가 나타나지 않자 초조한 심정으로 내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버지가 딕스를 만나고, 그가 원하는 방향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확답을 얻기 위해 올가는 평소 하기 싫어 내내 도망 다녔던 일을 부친께 하겠다며 약속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자리를 만들었는데 부탁한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절로 애가 탈 수 밖에 없었다.

식당에 말슨 자작이 도착한 후, 올가는 좀더 기다려줄 것을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말슨 자작은 불쾌했지만 자유분방한 딸이 제 성질을 죽이고 고분고분 명령을 따라주겠다고 했기에 꾹 참았다.

촌놈하나 취직자리 알아봐주는 건 자작에겐 일도 아니기에.

그때였다.

소란이 터진 것은.

자작은 딸과 함께 식당 테라스로 뛰다시피 나가 거대한 안개에 포위된 천벽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들리는 사람들의 음성을 통해 큰 일이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노도가 천벽을 공격했대!”

“그 일대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대!”

죽은 자 하나 없다.

그냥 수면안개에 취해 깊은 잠에 빠졌을 뿐이다.

하지만 소문이란 부풀기를 좋아했기에 다들 노도의 잔악성에 치를 떨었다.

그 순간, 말슨 자작은 자신이 지옥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도!

어찌 자작이 그를 모르겠는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노도로 인해 자작은 아직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데, 그 노도가 나타났다고 하니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몸이 절로 반응한다.

부르르.

말슨 자작이 느끼는 이 공포감은 이제 제국의 악질 고질병으로 자리 잡는다.

마인 노도!

그 이름이 제국의 심장에 박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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