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으라차차차차!”
퍼억!
“키에에에엑!”
페슈아 대 숲 외곽.
인간 대 몬스터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수한 무기와 조직력으로 무장한 인간들을 상대로 몬스터들은 변변한 효과를 얻지 못했다.
“로드, 자브 측면을 보강해. 알곤과 밀러는 후방으로 빠져서 지원 사격해!”
한 무리의 인간들, 그리고 이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는 큰 덩치의 사내.
“행크,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말자. 더 이상은 무리야.”
측면을 보강하던 자브가 행크를 향해 소리친다.
“대숲의 외곽은 어중이떠중이도 다 클리어 하는 곳이야. 우리가 그런 어중간한 녀석들과 동급이 되어야 쓰겠냐?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빽빽한 나무와 수풀과 늪이 저 안쪽에 도사리고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몬스터 보다 더 위협적인 자연의 수비병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음을.
용기가 점점 객기로 치우치고 있다.
이는 앞서의 승리가 던져준 달콤한 미끼였다.
행크는 이를 덥석 물었다.
그리고 몇몇 그의 동료들도 행크와 같은 마음이다.
안전을 우선시하던 다른 이들은 그래서 소심한 녀석으로 눈총 받는다.
“진격!”
우렁찬 목소리로 행크가 소리치자 모두들 고함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간다.
그렇게 이들은 숲 안쪽으로 들어섰다.
난관.
사람들이 페슈아 대숲을 미지의 영역이라 단언한 이유를 그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후회는 늘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찾아오는 법이다.
모두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몇 날을 숲을 떠돌아 다녔다.
몬스터를 잡으러 온 이들은 이제 그 몬스터의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 움츠려 들었다.
하다못해 작은 동물의 소리에도 화들짝하였다.
분실한 방향감각.
떨어진 식량과 식수.
갈증을 못 참은 몇몇이 웅덩이의 물을 마시고 일행의 짐이 되어버렸다.
설사와 구토와 복통을 호소하는 동료.
이들을 바라보는 행크의 마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아버지로부터 늘 자만에 대한 경각심을 세우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한데 몇 번의 승리로 그만 자만의 늪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내 탓이야. 내 탓!’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면, 두 번 다시 오늘과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으리라.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어두컴컴한 숲을 우울한 눈으로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끽끽, 끼이이익!”
무력감에 빠진 행크와 그 일행의 청각을 자극하는 몬스터의 소리가 들린다.
이에 다들 바짝 긴장하며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몇몇 환자들이 전투에 참여할 수 없다보니 이들의 전투력은 현저히 줄어든 상태였다.
전투태세를 갖춘 자들 역시 대부분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체력이 예전만 못하였다.
여기다 외곽의 몬스터와 달리 숲 안쪽의 몬스터의 질긴 피부와 놀라운 보호색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눈을 현혹하는 강력한 그들의 무기이자, 뚫기 힘든 곤란한 갑옷이었다.
놈들의 보호색을 간파하지 못해 일행은 다수의 짐꾼들을 놈들의 먹이로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지만 여전히 몬스터의 보호색은 뚫기 힘든 철옹성이었다.
“환자와 짐꾼들을 중앙으로 모아!”
행크가 다급히 소리친다.
이런 그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고, 희망이 결여되어 있다.
숲의 몬스터는 곶감 빼먹듯 인간들을 하나하나 잡아다 먹어치웠다.
배가 꺼질 때가 되면 놈들은 어김없이 이들을 찾아왔다.
놈들의 쇠를 긁는 듯한 그 목소리는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석궁과 방패와 검과 단창이 제 위치에서 두 눈을 번뜩인다.
이를 쥔 사람들의 손등마다 푸른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몬스터는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보호색으로 무장한 놈들이 기척을 죽이면 바로 옆에 있어도 알 기 힘들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청각을 돋운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감각은 청각뿐이기에.
두근두근.
모두 제 심장의 긴장된 박동과 동료의 심장박동을 듣는다.
침 넘기는 소리에도 다들 민감하게 반응한다.
쉭.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
“11시 방향이다! 쏴!”
다급하게 행크가 소리 질렀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발의 화살이 일행의 11시 방향으로 쏘아졌다.
퍽퍽퍽!
안타깝게도 이들이 쏜 화살은 표적을 놓쳐버렸다.
“으아아아악!”
후방에 있던 이들의 동료 하나가 갈고리 같은 몬스터의 손톱에 아래턱이 꿰어 나무위로 끌려 올라갔다.
“뒤쪽이다! 뒤쪽이야!”
당황한 이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몬스터에게 끌려가는 동료를 본다.
그 동료를 확인한 행크가 목이 터져라 소리친다.
“자아아아아브!”
앞서 석궁을 날린 터라 끌려올라가는 자브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강력한 힘과 민첩함은 대숲 안쪽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또 하나의 무기였다.
우거진 나뭇가지와 이파리 사이로 자브의 모습이 그렇게 사라졌다.
몬스터는 오늘도 사냥에 성공했다.
송아지처럼 큰 눈을 가진 행크의 그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다른 이들도 제 입을 틀어막으며 울었다.
그때였다.
모두가 포기한 동료 자브가 나무 아래로 떨어진 것은, 한데 그것은 추락과는 달랐다.
떨어지는 속도는 느렸고, 착지점은 충격을 흡수하기에 적합한 늪이 있는 곳이었다.
늪에 빠진 자브가 허우적거렸다.
이를 확인한 행크와 그 동료들이 급히 밧줄을 던졌다.
자브는 사력을 다해 밧줄을 잡았다.
모두가 힘을 합쳐 자부를 늪에서 끌어냈다.
“자브!”
행크가 자브를 품에 안고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턱의 피부에 구멍이 뚫린 것을 제외하면 뼈는 다치지 않았다.
목숨에도 지장이 없었다.
다들 자브의 무사귀환을 크게 기뻐했다.
그러다 모두가 의구심에 빠졌다.
몬스터가 왜 친구를 떨어뜨렸을까? 이러한 의문은 곧 풀렸다.
자브가 끌려 올라갔던 나무에서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몬스터의 사체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
“무, 뭐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나무만 보았다.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크게 흔들리더니 그 속에서 웬 사내가 넝쿨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큰 후드에 로브를 입은 사내였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사내를 예의주시했다.
이곳에서 사람을 만나다니, 저 로브의 사내가 제국에서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마인 노도라도 달려가 안아주리라.
다들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몬스터의 밥이 되느니, 차라리 노도의 손에 깨끗하게 죽는 게 훨 낫기에.
두근두근.
그래도 저마다의 심장 박동이 큰 것은 아직 삶에 대한 애착이 남았기 때문이다.
큰 후드의 로브 사내, 그는 딕스였다.
‘저 녀석 어쩌자고 여기까지 기어들어온 거야?’
두려움과 반가움을 그 얼굴에 노골적으로 드러낸 행크를 보며 딕스는 내심 혀를 찼다.
오늘 자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행크와 그 일행은 분명 숲의 영양분이 되었으리라.
생면부지였다면 딕스는 이들의 현실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행크가 이 무리에 있었기에 딕스는 숲의 안내자가 되어 모두를 안전한 곳까지 안내했다.
빽빽하고 컴컴한 숲에서 벗어나자 모두가 제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찔끔거렸다.
젊음의 특권을 무분별하게 쓴 대가로 이들 모두 혹독한 경험을 하였다.
고통과 절명과 상실감이 이들의 내면에 자양분이 되리라.
“고, 고맙습니다.”
울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딕스에게 다가온 행크가 그 큰 머리를 숙인다.
녀석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딕스는 바닥에 물방울이 하나 뚤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자책과 슬픔의 눈물임을 딕스는 알아보았다.
묵묵히 행크를 보던 딕스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은인의 성함은 어찌 되십니까?”
짓궂은 장난기와 자신감이 행크의 얼굴에서 보이지 않았다.
페슈아 대숲에서 딕스가 놀라운 힘을 얻었듯 행크 역시 이 숲에서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다.
“알아봐야 좋을 거 없다.”
목소리를 변조한 딕스는 이 말을 남기곤 숲으로 들어갔다.
그가 사라지는 것을 마지막 까지 뚫어져라 보던 행크는 패잔병 같은 동료들을 수습한 뒤 드론 시로 향하였다.
이들의 발걸음과 어깨가 무척이나 무겁고 축 쳐져있다.
@
페슈아 대숲에서 행크 일행을 구해준 딕스는 곧장 제국의 수도로 이동했다.
늦은 밤, 클라우드의 저택을 딕스가 방문한다.
그의 등장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저택의 집사 아이게가 마중 나와 딕스를 제 주인의 서재로 안내했다.
“놀랍군.”
딕스를 보자마자 클라우드가 한 첫말이다.
딕스는 제 집 소파처럼 편안하게 앉으며 클라우드를 응시했다.
뚝뚝 끊어지는 음성이 딕스에게서 흘러나온다.
“루세니엘은 죽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예언자처럼 보였던 클라우드는 그의 이 말에는 당혹감을 크게 들어냈다.
루세니엘의 죽음은 클라우드에겐 돌발 상황이었다.
현장에 아우셔도 있었고, 또 노도가 그녀를 구출하거나 보호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후자를 대비해 나름 비장의 한수도 준비해둔 클라우드다.
한데, 중요한 대상이 죽었다고 하니 준비한 것들이 다 쓸모없게 되었다.
클라우드의 두 눈에 의심과 냉기가 깔린다.
“농담이라면... 너무 우울한 이야긴데.”
“너와 내가 농담이나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지 않나? 클라우드.”
다르다!
냉정을 되찾은 클라우드는 이전에 보았던 그와 지금의 그가 크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왜 이제야 이를 느낀 걸까? 클라우드는 이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하지만 딕스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내가 왜 널 방문했을까? 너라면 짐작하지 않을까 싶은데?”
등받이에 등을 깊게 묻은 딕스는 꼬장꼬장한 시험관처럼 클라우드를 보았다.
클라우드는 그의 이러한 태도에 순간 기분이 크게 상하였다.
이를 내색하지 않으며 클라우드는 딕스를 응시하였다.
“일의 마무린가?”
“역시, 눈치가 빠르군.”
“자신감이 대단하군. 딕스 백작.”
겉으로 드러난 클라우드의 태도는 담담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그의 속은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21명의 그림자 마법사를 제거한 존재와 마주앉아 있는 데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것도 지나치게 멀쩡한 모습이다.
딕스는 마치 클라우드의 속을 들여다 본 듯 상대를 자극하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럼, 내가 널 방문한 목적도 알아맞혀봐라.”
자고로 여유는 강자의 특권이다.
이를 알기에 클라우드가 느끼는 긴장감의 무게는 점점 증가했다.
“모르겠군.”
클라우드는 군더더기하나 붙이지 않고 깨끗하게 시인했다.
“사냥개가 필요하다.”
상대가 원하는 사냥개가 누구인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
딕스의 말에 클라우드는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감히, 자신을 면전에 세워두고 사냥개를 운운하다니.
하지만 여기에 발끈할 클라우드가 아니다.
“내게 무엇을 원하지?”
“천벽의 그림자 마법사.”
“......!?”
“아, 그들의 거처를 일일이 방문할 생각은 없어. 나도 나름 바쁜 몸이거든.”
“그게 무슨 뜻이지?”
“혼자 똑똑한 척 다하더니, 그것도 아니군. 좋아, 쉽게 풀어서 말하지. 5일후 천벽을 방문하겠다. 복잡하게 술수 같은 건 안 부려. 정면으로 치고 들어갈 생각이야. 그 날짜에 맞춰 천벽의 그림자 마법사들이 본부에 다 모여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내 바람... 꼭 들어 줘야 할 거야. 아니면.”
“아니면?”
“그건 너의 상상에 맞기지.”
클라우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국의 수도, 그것도 요지에 위치한 천벽의 본부를 치겠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황당무계한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좀전 딕스가 운운한 사냥개의 뜻을 그제야 클라우드는 이해했다.
자신을 개와 비교한 딕스에게 화가 나야 정상이다.
한데, 상대의 생각이 너무 기가차서 이런 감정도 일지 않는다.
‘저 애송이가 날 농락하는 것인가?’
클라우드 입장에선 당연한 생각이다.
“무모하군.”
“내가 무모하다면, 천벽이 아니라 황궁을 들이박았을 거야. 내 이성은 멀쩡해. 그러니까. 넌 네 상관에게 달려가 노도가 올 것이다, 라고만 전해. 네 입장에선 손해가 아닐 거야. 아, 물론 네가 그 현장에 있을 땐... 예외겠지.”
자신의 용무를 다 본 딕스는 가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아, 하나 더.”
클라우드는 복잡한 표정으로 딕스를 쳐다보았다.
딕스는 클라우드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통보하듯 말했다.
“내 주위에 파리들이 꼬이게 하지마라. 네 목숨을 걸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싸늘한 바람을 발자국처럼 남긴 딕스는 그렇게 클라우드의 서재를 나선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클라우드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천벽의 본부가 위치한 밤하늘을 쳐다본다.
‘놈은 장난이 아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을 상대는 진심으로 하려한다.
클라우드는 딕스의 행위를 통해 자신이 얻을 이해득실을 계산하였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게.”
“예, 주군.”
“로키에게 연락해라.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 일러. 지금 즉시!”
“명을 받듭니다.”
아이게가 물러가자 클라우드는 그제야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중얼거린다.
‘놈, 농담이면 네 놈에게 내 끔찍한 불행을 선물해주겠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