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딕스전기-173화 (173/194)

173화

“노, 노도!”

빛무리에 휩싸인 딕스를 단숨에 알아본 아우셔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진다.

노도!

이 이름을 그 누가 모르랴.

더욱이 여기선 자들 모두 그를 잡으러 왔음인데.

아우셔의 확정이 떨어지자 타지마는 전의를 불태운다.

다른 이들도 그 못지않게 투지를 드러냈다.

페슈아 대숲에서의 지긋지긋한 기다림을 드디어 끝낼 때가 왔다.

다들 패배 따위 생각에 두지 않았다.

딕스를 감싼 신비로운 빛무리가 이상하고, 그에게서 뿜어지는 마나의 기운이 강대했지만 모두들 자신들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고 여겼다.

“놈을 죽여라!”

타지마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의 소리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전장의 북고처럼 컸으며, 그에 버금가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림자 마법사들은 각자의 특기를 자랑하듯 내보였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양의 힘들이 그네들의 전면, 혹은 손에서 피어올랐다.

그렇게 완성된 힘들이 딕스를 향해 쇄도했다.

두 눈을 내리감은 딕스는 이를 모르는 듯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에 타지마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타이밍이 참으로 적절하구나! 크크.’

보통 벽을 만난 자들은 외부의 자극에 취약하다.

한데, 노도는 이 험지에서 그 벽을 만나 지금 한참 씨름하고 있다.

타지마는 그리 생각하였다.

뭐 그의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타지마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딕스가 마주한 벽은 일반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이글거리는 불의 소리.

씩씩한 땅의 포효.

세찬 물의 용트림.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바람의 질주.

이 모든 것들이 오직 단 한사람을 파괴하기 위해 쏘아졌다.

마인 노도.

지상에서 그의 이름이 살아지려는 순간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그의 말살을 증명하고 있다.

무방비 상태로 보이던 딕스였다.

그랬던 그가 평온한 표정으로 벼락같은 안광을 발출하며 눈을 뜬다.

딕스를 감싼 신비로운 빛무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물의 검이 자치하였다.

그 숫자는 여섯!

이전 딕스가 사용하던 물의 검과 지금의 물의 검은 숫자에서, 그리고 힘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저 물의 검 하나하나엔 무려 6서클의 마법의 힘이 담겨 있었다.

지금의 딕스는 6서클의 강력한 동지의 비호 하에 있는 것이다.

그 힘들은 자신들의 근원인 딕스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그리고 벼락처럼 강력하게, 물의 검들은 제 근원을 위협하는 것들을 일소해버렸다.

땅이 깨지고, 바람이 얼어서 터진다.

물은 더 강력한 우위의 물 앞에 강제 흡수당했으며, 불의 힘은 변변한 저항도 없이 제압당한다.

눈앞에서 벌어진 이 일련의 놀라운 사태에 그림자 마법사들은 당황했다.

“본신의 능력을 개방해요! 당장!”

당황은 아우셔도 하였다.

하지만 앞서의 경험을 토대로 아우셔는 놀람과 떨림과 걱정과 두려움을 억누르며 동료들의 경각심을 촉구했다.

타지마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제 근원을 지키기 위한 물의 검들이 사냥에 나섰다.

우아하고 위압적인 이 아름다운 무생물의 야수들은 제 근원을 노리던 위험요소를 깔끔하게 제거한 뒤 곧장 반격에 나섰다.

“크아아아악!”

“컥!”

두 명의 그림자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다.

여섯 개의 물의 검중 두 개의 검이 보복의 과실을 얻었고, 나머지 네 개의 물의 검은 복수에 실패했다.

그림자 마법사들의 수준과 그들의 능력은 6서클의 막강한 마력이 담긴 물의 검조차 쉽게 그 생명을 제압하지 못하였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이 놈들이!’

딕스의 두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터진다.

페슈아 대숲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크고 단단한 나무들은 그림자 마법사들이 제 힘의 근원으로 돌아가 그 힘을 휘두르자 썩은 나뭇가지처럼 부서지고, 터져나갔다.

굉굉한 폭음과 숲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눈조차 뜨기 힘들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다.

어둠이 내린 숲은 충격에 빠졌다.

야조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밤하늘을 더욱더 검게 물들였으며, 제 둥지에 들어가 있던 다양한 동물들은 꽁지에 불이 붙은 망아지처럼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다.

“시리우스!”

5서클의 골렘에서, 6서클의 골렘으로 거듭난 시리우스.

페슈아 대숲에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

딕스의 전방에 등장한 5미터 거구의 물의 골렘, 녀석의 전신에선 전보다 더 강력한 힘이 뿜어지고 있었다.

폭풍 같은 기세를 담은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와 단단함이 강철에 뒤지지 않는 바위의 화신이 된 땅의 그림자 마법사와 시리우스와 격돌했다.

이들이 충돌한 지점에서 사방으로 그 충격파가 해일처럼 퍼져나갔다.

콰르르르릉.

우두둑.

수백 년 이상을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대한 나무들이 충격파에 휩쓸려 꺾이다 곧 묵직한 소리와 함께 부러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나무의 파편 하나하나가 위험한 암기가 되었다.

물의 보호막을 여러 겹 생성한 딕스에게도 암기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크흑!’

묵직한 신음과 함께 딕스의 몸은 배트에 맞은 공처럼 튕겨 나갔다.

이 일대의 나무들이 모조리 박살난 상황이라 그의 육신은 수십 미터나 후방으로 미끄러졌다.

딕스를 보호하던 물의 보호막 상당수가 이 충격으로 사라졌다.

오직, 하나의 물의 보호막이 제 주인의 육신을 지킨다.

전장의 중심지에서 이탈한 그를 향해 두 그림자 마법사들이 날아들었다.

둘은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였다.

그 속성에 부합하듯 이들의 속도와 회피는 발군이다.

전장의 중심에서 튕겨 나간 딕스는 자신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두 그림자 마법사를 흘낏 본 뒤 재빨리 전황을 살폈다.

여섯 개의 물의 검과 시리우스가 아우셔를 비롯한 나머지 그림자 마법사와 백중세를 이루었다.

지금은 어느 누가 더 강한지, 그리고 이 승부의 결과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침착한 딕스와 달리 아우셔와 타지마를 비롯한 그림자 마법사들은 다들 기함하고 있었다.

적은 하나이나, 하나가 아니었다.

이렇다보니 다수의 우위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는 그들 스스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야말로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론 이것이 이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두려움을 심었다.

“이 괴물 같은 놈! 오늘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딕스에게 접근한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가 소리친다.

거대한 바람에서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가 참으로 섬뜩하다.

정면의 강맹한 바람의 덩어리, 측면을 노리는 흉맹한 바람, 모두 딕스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혼신의 힘이 담아냈다.

딕스의 주력은 물의 검과 시리우스다.

그외 그가 자랑하는 마법은 안개에 첨가물을 섞어 상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재우거나, 혹은 녹여버리는 마법이다.

문제는 그의 이 기술이 두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데 있었다.

거대한 나무조차 뿌리째 뽑아 날려버리는 강맹한 바람인 이들 앞에 입 바람에도 훅 날아갈 안개를 들이미는 짓은 기름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최전방에서 다수의 그림자 마법사를 견제하고 몰아붙이는 물의 검과 시리우스를 불러들일 수도 없었다.

이들을 불러들인다 하더라도 시간이 문제였다.

그 순간에도 강맹한 힘이 실린 두 줄기 바람은 딕스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짓쳐들었다.

앞서 충격파로 소실된 물의 보호막이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의 저 힘 앞에 순식간에 부서질 터였다.

두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가 날린 힘은 그 만큼 위험하고 강력했다.

‘격중 되면 위험해!’

6서클의 경지에 발을 딛자마자 들이닥친 위험한 방문객.

그 자신이 이를 불러들였지만 이런 상황을 그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각성의 파장이 그처럼 거대할지 몰랐다.

명백한 딕스의 실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쩜 6서클로의 도약은 먼 훗날이 되었을 것이다.

복과 화.

역시, 쌍으로 찾아오는 놈들이다.

“죽어라! 노도!”

액체!

이 단어가 불쑥 딕스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앞서 자신이 흡수했던 물의 그림자 마법사들처럼 자신도 그처럼 된다면 지금의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놀라운 기술을 왜 자신은 사용 할 수 없을까? 이 순간 무수한 물음이 그의 내부에서 폭발한다.

그때였다, 그의 내부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이 고개를 내민 것은.

깜깜한 어둠속에서 이것은 딕스에게 빛이었다.

구원이었다.

딕스는 반사적으로 이 힘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두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가 날린 무시무시한 바람의 힘이 그를 격중 했다.

“잡았다!”

“됐다!”

두 바람의 그림자 마법사는 짧은 이 음성에 제 자신의 기쁨과 안도감을 크게 담았다.

확실히 딕스는 두 줄기 바람에 가격 당했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죽음의 메아리, 비명을 이들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머리위에 물 덩이가 꿈틀거린다.

물의 덩어리는 외지를 찾은 어수룩한 관광객처럼, 첫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어색함을 보이고 있었다.

물의 덩어리, 그건 딕스였다.

위기의 순간 고개를 내민 새로운 힘을 잡아 챈 것이 바로 액체화를 이룬 것이다.

묵직함.

두 그림자 마법사는 딕스를 잡았다는 기쁨을 다 발산하기도 전에 이를 느꼈다.

두 녀석은 곧장 상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꿈틀꿈틀.

“누, 누구?”

“언제?”

저 물의 덩어리가 딕스 일거라 둘은 생각하지 못했다.

원소화 능력은 그림자 마법사의 고유 능력이었기에 둘 다 동료중 하나 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둘은 별다른 공격을 가하지 않았고, 시선도 거두었다.

그 순간 제 몸의 변화에 적응한 딕스는 액체화 된 몸뚱이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그의 물의 육신은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였다.

딕스의 물의 육신이 전장의 상공을 장악했다.

순간 물의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폭음과 파괴음이 난립하던 장내에 깊고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

아우셔를 비롯해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거대하다.

마치, 바다를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하다.

모든 그림자 마법사들은 그러한 생각과 압박감을 느꼈다.

바다! 이들이 떠올린 물 덩어리의 위용은 충분히 그리 불릴 만도 했다.

6서클 마나의 힘, 하지만 그 힘은 결코 6서클의 마나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세계수의 눈물과 딕스의 오메가 핵이 결합했다.

이는 물의 근원이 한 사람의 몸에서 하나가 됨을 의미했다.

이는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가 되어 딕스의 마력을 더욱더 강성하게 만들었다.

오메가 핵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힘이 넘쳐나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그 힘이 일제히 터졌다.

그래서 다들 바다를 머리에 이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어, 어떻게...”

“마,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두려움과 당혹성이 섞이고 여기에 부정의 감정이 덧씌워진다.

하지만 이들이 직면한 것은 현실이다.

바다가... 지금 상공에 떠 있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떨림이 정적을 불러온다.

오싹하다.

이 느낌을 그림자 마법사들은 꽤 오랫동안 잊고 살았었다.

그랬던 이들이 지금 집단으로 이러한 감정에 빠져있다.

항거불능.

이들 개개인은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위험한 맹수들이다.

하나 상위의 능력을 지닌 압도적인 맹수 앞에서 다들 꼬리를 만다.

도주라는 단어가 모두의 뇌리에 자리를 잡는다.

“피해!”

타지마가 소리쳤다.

하지만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하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바다가 있음인데.

노도의 의미는 무섭게 밀려오는 큰 파도란 뜻이다.

하늘을 장악한 바다가 움직인다.

산악처럼 큰 불덩이, 물 덩이, 바람과 흙더미는 변변한 저항도 못한 채 침몰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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