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딕스전기-163화 (163/194)

163화

땅의 아쉬가 놀라 말을 더듬거린다.

허공에 떠 있는 아우셔와 이란트 역시 놀라긴 매한가지다.

그때 이들을 향해 단단한 목소리가 날아든다.

“역시, 너흰 피곤한 놈들이야. 그냥 얌전히 죽어주면 좋았잖아.”

건물 한 동을 통째로 먹어치운 자욱하고 매캐한 연기 속.

목소리의 주인공을 식별하기 어렵다.

보이는 거라곤 흐릿한 실루엣이 전부.

모두의 이목을 잡아당긴 딕스는 물의 검으로 아쉬의 배후를 들이쳤다.

딕스의 등장에 신경이 분산되었고, 제 몸의 단단함을 믿었기에 아쉬는 여기에 당하고 말았다.

콰드드득!

아쉬의 몸뚱이에서 돌을 빻는 분쇄기에서나 들릴법한 요란한 굉음이 터졌다.

“커헉!”

제 몸이 부서지는 것을 보며 아쉬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우셔와 이란트가 아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물의 검이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우셔를 단숨에 꿰뚫을 것 같았던 물의 검은 그녀의 몸을 감싼 투명한 막에 가로막혔다.

이란트를 노린 물의 검은 달궈진 쇳덩이가 물에 닿았을 때와 같은 소리를 내며 공격 실패를 알린다.

“이얍!”

딕스의 실루엣을 향해 아우셔가 분노가 담긴 공격을 날렸다.

바위도 단숨에 베어버릴 바람의 원반 수십 개가 폭우처럼 쏟아진다.

이란트도 가만있지 않았다.

십여 발의 불덩이가 이란트의 손에서 발출됐다.

폭음과 절삭음이 자욱 안 연기 속에서 쉬지 않고 터졌다.

공격을 날린 자들이 원하던 소멸과 고통에 찬 비명은 그곳에서 터지지 않았다.

남녀가 원했던 비명은 오히려 제 동료의 입에서 터졌다.

물의 검에 몸의 상반신이 부서진 아쉬는 죽지 않았다.

이런 공격으로 죽을 그림자 마법사가 아니다.

전날 딕스는 천벽의 그림자 마법사 스키어를 상대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그림자 마법사를 완벽하게 죽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공격으론 어림도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랬기에 아쉬의 몸을 물기둥에 가둬 분쇄한 뒤 이를 얼리고 터트렸다.

아우셔와 이란트가 엉뚱한 곳을 공격하는 그 틈에 이루어진 딕스의 전격적인 공격이었다.

이 공격은 아쉬를 확실한 죽음의 세계로 날려버렸다.

분말이 되어버린 제 몸을 복원시킬 마나가 아쉬에게 있다면 또 모를까.

“아쉬!”

“이런!”

아우셔와 이란트가 동시에 당황한다.

좀전 아쉬의 몸이 부서졌을 때만해도 남녀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깨진 몸은 복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복원능력도 미치지 못할 만큼 완전한 파괴가 이루어졌다.

저런 경우라면 아쉬보다 상위의 능력자인 아우셔와 이란트 역시 소멸당할 수밖에 없었다.

유경험자!

아우셔와 이란트는 자신들을 상대하는 자가 자신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노오오오옴!”

불의 이란트에 입에서 분노의 장소성이 불길과 함께 터트렸고, 아우셔는 큰 바람을 일으켜 시야를 가리던 연기를 모조리 날려버렸다.

이 연기는 흡입할 시 인체에 치명적인 독소를 함유하고 있었다.

도시 토사이는 지독한 죽음의 냄새를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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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콰콰콰콰-쾅! 화르륵.

귀를 먹먹하게 하는 푹음과 불길이 도시를 질주한다.

건물들이 일제히 터지고, 무너지고, 깨지고 타들어간다.

대로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도 없다.

추위와 어둠이 가득한 거리로 사람들은 얇은 잠옷 바람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뚝뚝 떨어지는 체온과 함께 망연자실함에 모두가 빠진다.

꿈이라면 이 보다 더 지독한 악몽도 없으리라.

하지만 이도 살아 있을 때나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바람과 불과 물이 일으키는 폭발작용이 온 도시를 거듭 쩌렁쩌렁 울리면서 이들은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해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는 차가운 지면에 제 피부를 떼어주며 정신없이 뛴다.

너절한 거적때기가 바람에 날리듯 그렇게 연약한 자들의 일상이 무참하게 짓밟힌다.

이곳은 지옥도시.

슈아아아앙, 쿠아아앙!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어떤 물체가 사람들의 상공을 날아 그들의 뒤편 건물에 쑤셔 박혔다.

사람들은 이것을 투석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화들짝 놀란 얼굴로 돌먼지를 풀풀 날리는 건물을 응시했다.

그것은 투석기에서 날린 돌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몸은 은은한 푸른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보호막이란 문구가 사람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불길과 회오리바람이 나타났다.

모두가 깜짝 놀란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불길과 회오리바람이 하늘을 날아온단 말인가.

“꺄아아아아-악!”

“헉!”

“마, 맙소사! 대체... 이 무슨!”

“이...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자고 일어나면...”

불길과 회오리바람은 이란트와 아우셔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앞서 보았던 날아가던 물체는 딕스였다.

지금 딕스는 자신의 최대치까지 맷집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불과 바람은 딕스의 물의 힘이 상대하기에는 불리한 구석이 많았다.

상대가 한명이라면 그는 자신의 맷집을 자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의 검으로 한명을 공격하면, 다른 하나가 딕스의 배후를 들이쳤다.

이렇다보니 전력을 다한 공격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딕스는 많이 맞았고, 수없이 던져졌다.

바람에 맞고, 불길에 휩싸였다.

평범한 자라면 벌써 그 육신이 찢겨 나가고, 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딕스는 그 모든 공격을 받고도 버티고 있었다.

이는 그의 마나가 두 사람의 마나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으으. 제길, 시리우스를 불러 함께 싸워야하나.”

딕스는 물의 골렘을 소환하지 않았다.

녀석을 소환했다면 딕스는 자신의 맷집의 한계를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2대 2라는 공평한 싸움이 되니까.

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딕스는 시리우스를 소환하지 않았다.

그 자신의 골렘은 너무 특별하였고, 또 눈에 잘 띈다.

마인 노도로써, 이 싸움을 끝낼 생각이다 보니 그는 시리우스의 소환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하나 그것도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 충격이 쌓인 딕스의 안색은 그래서 핏기를 잃어간다.

“놈! 네 놈을 갈기갈기 찢어주겠다!”

분노로 채워진 아우셔의 음성이 회오리바람 안에서 천둥처럼 터진다.

화르르.

그 옆, 불길이 된 이란트가 그녀의 말에 동조라도 하듯 제 몸집을 키웠다.

거리로 쏟아진 무수한 사람들은 그 순간 벽난로에 바짝 다가 선 듯한 화기를 느꼈다.

그러다 곧 입에서 비명을 터트렸다.

불줄기에서 불똥이 자신들의 머리위로 우수수 떨어졌기 때문이다.

“에그머니나!”

“앗, 뜨거!”

“꺄아아악.”

우르르.

추위에 떨던 육신은 온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이다.

제 몸을 활활 태워버릴 것 같은, 아니 익혀버릴 것 같은 고온을 반길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합창하듯 비명을 내지르며 방황하는 양떼처럼 내달린다.

치이고, 밟히고, 밀리고, 엎어진다.

울고, 소리치고, 원망하고, 저주한다.

단 세 사람의 전투가 만들어낸 끔찍한 상황이다.

이들에겐 이제 내일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의 안전을 찾아 미친 듯이 달릴 뿐이다.

도시의 치안대가 출동했다.

그러나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겁에 질린 시민들의 퇴로를 안내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게 고작이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이러한 딜레마도 이들의 손을 놓게 만든 원인이다.

“제길, 저 괴물들은 뭐야!”

도시의 치안감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원망의 눈초리가 된다.

익스퍼트 기사들과 도시에 소속된 마법사들.

마법사들은 이미 자신들의 골렘을 소환한 상태였다.

그 골렘들이 있어 그나마 시민들의 피해가 적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수많은 이들이 매몰되어 짓뭉개졌을 것이다.

“헉! 불길이 이쪽으로 온다!”

한 병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불의 마법사가 자신의 골렘을 그쪽으로 보냈다.

이란트의 불길이 창이 되었고, 마법사의 불의 골렘이 방패가 되었다.

불길의 창은 골렘에 막혀 작은 불꽃이 되어 펑 하고 터져나갔다.

골렘이 서너 발자국 물러서며 주위에 있던 병사 둘을 그만 밟았다.

“으아아악!”

“끄아악!”

두 병사의 몸은 불길에 휩싸여 짓뭉개졌다.

이 끔찍한 참상에 모두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온 몸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들부들 떨었다.

골렘의 주인인 마법사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님 후방을 부탁합니다. 다른 분들도 노력해주십시오.”

도시의 마법사는 셋이다.

이 숫자는 뮬 공국이 보유한 마법사의 전력과 동일하다.

일개 도시에 3명의 마법사라... 제국의 저력이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땅과 불과 바람의 골렘이 시민들의 후방을 맡는다.

그리고 마법사들을 익스퍼트 기사들이 호위한다.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이쪽으로 오세요!”

어느 병사가 끔찍한 전장으로 달려가는 한 남자를 향해 소리 질렀다.

남자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친 걸까? 그건 아니었다.

경황이 없이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와 인파에 휩쓸린 이 남자는 뒤늦게 제 가족이 떠올랐다.

가족의 안위가 생각나자 남자는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이처럼 흉맹한 바람과 불길 속으로 주저 없이 내달리는 것이다.

두 개의 물의 검이 이 남자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건물더미에서 빠져나온 딕스가 날린 검이다.

아우셔는 바람의 막으로 물의 검을 튕겨냈고, 이란트는 제 몸으로 물의 검을 받아 증발시켰다.

치이이익!

자욱한 수증기가 주변을 또 혼탁하게 만든다.

가족의 안위를 확인하려던 남자는 겨우 무사할 수 있었다.

딕스는 이를 악물었다.

‘지독한 소모전이군.’

공격을 해소하는 데 소비되는 마나양이 막대하다.

물론 공격을 해대는 아우셔와 이란트 역시 점점 버거워한다.

마나의 양을 따지면 그림자 마법사는 정상적인 마법사의 아래다.

하물며 딕스 같은 마나 재벌을 상대하자니 두 사람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지금 죽을 맛이었다.

“망할 새끼! 마나를 바다에서 퍼다 쓰나.”

이란트가 굉장히 적절한 표현을 한다.

“이란트, 안 되겠어요. 더 이상 공격도 방어도 무리예요.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요.”

“알았다.”

때린 놈이 질려 달아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재앙에 몸서리치는 도시를 뒤로하고 달아난다.

딕스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놈들의 뒤를 쫓으며 물의 검을 수시로 날렸다.

역시, 전쟁도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 법인가 보다.

“어딜 달아나느냐! 이제부터 시작이다!”

잔뜩 성난 딕스의 벼락성이 남녀를 억척같이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여기에 멈출 두 사람이 아니었다.

둘은 그 길로 곧장 도시 밖으로 몸을 뺐다.

이들의 꽁무니를 쫓아가는 딕스에게선 활화산처럼 힘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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