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큰 후드 로브.
이 차림은 제국인들의 뇌리에 한 사람의 특징으로 고착됐다.
마인 노도.
「노도가 다시 나타났다!」
「노도가 사탕가게를 피습하기 시작했다!」
「노도가 중서부지역으로 이동 중이다!」
제국이 단 한명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들썩인다.
“클라우드, 자네의 직관력만큼은 둔재로군. 내 자네의 인간적인 면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아. 하하, 언제 한번 술이나 하지.”
한 무리의 사람들을 거느린 자가 복도에서 마주친 클라우드에게 물을 먹인다.
이곳은 수도 천벽 내, 중앙 복도.
클라우드는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한 눈길로 상대를 쳐다볼 뿐이다.
이것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한다.
“내 충고 한마디 할까? 사회생활은 재능 하나로 해쳐나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이번 프레드릭 성에서 벌어진 사건이 자네를 곤란하게 만들 것일세. 아, 이건 자네의 직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야. 자네 형인 라틴 폰 야니스 공작전하의 이야길세. 그가 자네를 몹시 우려한다더군. 잘해보게.”
툭툭.
클라우드의 어깨를 툭툭 치며 우쭐한 걸음으로 스쳐가는 남자.
클라우드는 넓은 소매에 가려진 제 손을 힘주어 말아 쥐었다.
‘지금 그녀를 벽주에게 내놓았다간, 면죄부의 가치밖에 안 된다. 좀 더 묵혀두어야 하나?’
복도 창을 통해 바라본 하늘, 오늘따라 유난히 높게만 보이는 클라우드다.
“아, 클라우드 님. 여기 계셨군요.”
“무슨 일인가?”
“댁에서 하인이 다녀갔습니다.”
“하인이?”
“예, 이 말을 전해 달라 하더군요. 벽걸이 장식장이 떨어졌다고, 아끼시는 물건인가 봅니다. 하인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이 말을 전하는 걸 보면요. 그럼, 전 이만.”
말을 전해준 이가 사라지자 클라우드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진다.
‘누가? 하기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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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노도의 재등장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출동한 네 명의 그림자 마법사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이들은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노도를 쫓고 있는 게 아니라, 노도가 자신들을 뒤쫓고 있었음을.
‘저 계집이 아우셔, 저 중늙은이가 이그로, 저 땅딸보가 아쉬, 저 백발의 깡마른 노인이 이란트.’
여관으로 막 들어가는 3남 1녀를 맞은 편 빵집 창문에서 한 남자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딕스.
“손님, 빵 나왔습니다. 아차, 요구르트는 곧 가져다드릴게요.”
“고마워요.”
명품 미소로 빵집 아르바이트 아가씨를 대취시킨 딕스는 우아하게 빵을 뜯어 먹으며 그림자 마법사의 제거 계획을 세운다.
중늙은이 물의 이그로, 딕스가 점찍은 첫 번째 표적이다.
지난 열흘, 딕스는 이들을 미행하였고, 깊은 숙고 끝에 물의 이그로를 먼저 제거하기로 결정 내렸다.
전날 물의 그림자 마법사인 아이나처럼 저 이그로도 자신에게 흡수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딕스를 찾아온다.
찝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딕스는 이를 설레어했다.
아이나를 흡수 한 뒤 그는 전천후 병기인 물의 검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설레어하는 이유였다.
“요구르트 나왔습니다. 손님.”
“아, 고마워요.”
곧 다가올 봄, 종업원은 딕스의 미소에서 이를 먼저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리라.
저 남자의 훈훈한 미소 이면에 숨겨진 야수를.
엉덩이를 살랑이며 걸어가는 종업원의 뒤태를 그냥 무심히 보던 딕스는 자신을 째려보는 시선을 느낀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딕스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황당함을 느꼈다.
딕스를 째려보던 시선으로 주시하던 여자가 그를 향해 곧장 걸어온다.
풍성한 일자 눈썹, 좁은 어깨 위 네모진 큰 얼굴, 이 큰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앙증맞은 눈과 코, 그나마 입술이 큰 얼굴과 중심을 맞춘다.
두툼하고 커다란 메기 입술의 여자.
그녀의 일행으로 보이는 자들이 여자의 돌발행동에 무슨 일인가 싶어 엉덩이를 들썩인다.
“앉아 있어.”
여자의 말에 그 일행들은 다시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딕스의 테이블 앞에 선 여자가 그에게 말한다.
“가난한 백수가 이 먼 제국까지 무슨 일이지?”
백수? 딕스를 이리 부를 수 있는 여자는 단 하나뿐이다.
싱그로아 왕국의 마리아 데 란스에.
딕스에겐 ‘잘생겼구나, 년.’으로 기억되는 못난이 영애.
그녀가 싱그로아가 아닌 제국의 중부 도시 토사이에 등장했다.
딕스는 순간 인상을 와락 구겼다.
“날 아시오?”
“어찌 너를 잊을까.”
마리아는 그의 맞은편에 제 엉덩이를 붙이더니 그를 자세히 바라보며 팔짱을 낀다.
그녀의 시선에 딕스는 황당함을 느꼈다.
되도록 주위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는 그에게 한 눈에 확 띄는 못난이 마리아와의 합석은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휴우, 나와 마리아 영애의 인연은 그날 이후 끝난 것으로 아는데.”
엉덩이에 뿔난 계집아이에게 세상의 따끔함을 설핏 보여주었다.
그날의 충격이 꽤나 컸을 법도 한데 두려움 없이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다니.
이러기는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가 까마귀고기로 삼시세끼를 해결하지 않는 한.
싫어하는 기색이 노골적인 딕스의 태도에도 마리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건 내 맘이야.”
“난 여자라고해서 봐주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꺼져.”
딕스는 그녀에게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했다.
이 말을 듣고도 안 꺼진다면? 설마, 그런 일이 발생하겠어. 라는 게 딕스의 정확한 생각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반전이 있는 법.
이제 그것에 익숙할 법도 한데도 아직 이놈이 낯설기만 한 딕스다.
마리아는 딕스의 말을 무시하곤 제 말만하였다.
“꽤 오랫동안 너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지. 하지만 그 어디에도 넌 없었다. 사람을 많이 풀었다. 돈도 많이 썼다.”
그녀의 말에 요지는 현재까지 없다.
아니, 있었지만 딕스는 이를 들으려 하지 않았고, 보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가 귀찮을 뿐이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할 말 다했으면 가봐. 난 식사중이야.”
꾸욱.
테이블 아래 마리아의 손은 제 치마를 쥐어뜯듯이 쥐고 있었다.
“아니, 안 가.”
딕스는 제 귀를 의심했다.
그녀의 성격이 굉장히 지랄 맞는다는 것은 알지만, 자존심까지 없지는 않았다.
한데 지금 그녀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았음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너에게 끌려.”
딕스는 입에 있던 빵을 모조리 뿜고 말았다.
충격!
그 파편은 고스란히 마리아를 덮쳤다.
그녀의 얼굴과 옷은 딕스가 뿜은 이물질로 더렵혀졌다.
마리아의 수행원들이 벌떡 일어나 이쪽으로 달려올 기세다.
도도한 표정으로 이들을 손짓으로 주저앉히는 마리아다.
손수건을 꺼낸 그녀는 천천히 이를 닦아냈다.
사래가 들린 딕스는 그녀 앞에서 켁켁 거릴 뿐이다.
겨우 진정이 된 딕스는 잠긴 목소리로 간신히 말하였다.
“너 미쳤구나?”
“인정해. 그래서 확인하고 싶어.”
“......?”
“내가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 너를 통해.”
꼿꼿한 자세로, 당당한 표정으로 마리아는 자신의 뜻을 이처럼 밝혔다.
거머리, 왕 거머리가 그녀의 두 눈에 살고 있었다.
와락.
딕스의 표정은 더 이상 구겨질 수 없을 만큼 구겨진다.
왜 하늘은.
‘진짜, 나만 미워하나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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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이그로는 규칙적인 취미가 있었다.
이른 새벽마다 홀로 산책하는 것이었다.
딕스가 이들을 감시하는 내내 이그로의 취미생활은 멈추지 않았다.
오늘도 이그로는 홀로 새벽 거리를 산책했다.
딕스가 이그로를 첫 번째 표적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무리 이탈자!
“누구냐?”
돌연 걸음을 멈춘 이그로가 주변을 빠르게 돌아보며 소리친다.
도시는 어둠과 안개와 고요에 잠겨 있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은 안개 속에 번져나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
이 인공의 빛을 통한 사물의 식별은 어렵다.
그저 흐릿한 실루엣만 보여 줄뿐이다.
큰 후드 로브.
마인 노도의 상징물.
하나 그 가격과 효용성이 뛰어나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옷이 기도하다.
그래서 공포의 상징이면서도, 그 공포를 사람들은 늘 보고 살아간다.
딕스는 친절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노도.”
“네 놈이!”
그림자 마법사의 특징 중 하나가 빠른 공격속도다.
이들의 이러한 공격능력은 기사들의 발검과도 견줄 만큼 매우 뛰어나다.
지금 그 공격마법이 딕스를 향한다.
회전하는 물의 송곳.
숫자는 여덟.
쇄애애액.
공격을 날린 이그로는 두 번째 마법을 준비했다.
그가 준비한 마법은 분신술.
물의 마법과 분신술? 얼핏 들으면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다.
하지만 그림자 마법사들 자체가 이단아들이다.
식별할 수 없는 물의 송곳은 신궁의 화살처럼 정확하게 딕스를 향해 날아갔다.
이 회전하는 물의 송곳은 딕스의 몸을 훼손하지 못했다.
이그로가 날려 보낸 송곳은 그의 앞에서 작은 물방울이 되어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분신술을 통해 이그로는 일곱이 되었다.
“특이하군. 하지만 그 뿐이다.”
실체와 분신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분신은 반투명한 몸체를 액체였으니까.
분신이 실체의 물리력을 행사하지 못하면 저건 박수감인 눈요깃거리에 불과하다.
자신의 정체를 알려줬는데 이그로가 단순히 눈요깃거리를 만들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말은 오만하게 했지만 딕스의 속내는 이그로의 분신들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 지 몹시 기대하고 있었다.
샤샤샤샤.
분신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딕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손에 하나씩 액체의 검을 들고 있었다.
딕스는 그 검이 익숙했다.
그 자신에게도 물의 검이 있었기 때문이다.
딕스는 자신의 물의 검을 날려 이그로의 분신들을 상대했다.
물의 검은 그의 의지대로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대체, 넌 무엇이냐? 어째서...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질 수 있느냐?”
이그로가 놀란 얼굴로 딕스에게 소리쳤다.
“너의 능력이 고작 이것이냐?”
물의 검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더니 분신 셋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나머지 세 분신이 흩어져 딕스를 삼면에서 공략했다.
이들의 공격은 앞서 물의 송곳이 안개로 스며들었듯 그렇게 곧 사라져버렸다.
이 장면에 이그로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경악했다.
“어, 어떻게?”
“실망이군. 난 또 뭔가 대단한 기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시하는 딕스의 말투에 이그로가 얼굴을 붉히며 분노를 터트렸다.
“오냐, 내 네놈의 그 오만방자함을 보잘 것 없는 네 목으로 대신하마!”
“말이 아닌 실력으로 입증해라. 이그로.”
성큼.
딕스는 이그로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이그로의 전신이 액체화 된다.
이는 딕스가 기다리던 장면이었다.
이전 저 모습을 보고 참으로 깜짝 놀랐었다.
너무 놀라 오줌까지 찔끔 지를 정도였다.
그러나 이젠 저 모습이 전혀 놀랍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왜냐? 저건.
‘물이니까.’
새벽 황량한 거리에 창노한 음성의 남자가 비명을 지른다.
그것은 소멸을 말하는 목소리였다.
“아, 안 돼! 으아아아아아!”
액체화 된 이그로가 딕스에게 강제 흡수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