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어둠과 찬바람만이 기승을 부렸다.
세상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마을의 개들조차 맹추위에 그 주둥이를 다물었다.
작은 온기라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고 말이다.
스스스.
재능자가 나타났다하여 일약 인근에서 유명한 마을로 급부상한 블렌.
연일 계속된 마을잔치도 이제 그 막을 내린지 오래다.
“저 집인가?”
“예.”
“확인은 했겠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좋아, 은밀히 그 아이만 데리고 나온다. 가랏!”
남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검은 인영들이 힘찬 메뚜기 떼처럼 전방으로 뛰어나갔다.
불청객들은 농가에 침입하여 정확히 재능자 소년을 납치했다.
깊이 잠든 소년의 얼굴, 정확하게는 미간을 확인한 남자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맞군. 다들 신속히 이동한다.”
남자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이들은 빠른 속도로 마을을 벗어났다.
이들은 그 누구도 자신들의 행사를 모르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미끼를 덥석 물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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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납치한 일단의 무리는 요렌시티로 들어왔다.
파렴치한 짓거리를 일삼는 무리라 딕스는 이들이 뒷골목 아주 음습한 곳에 아지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 막상 놈들을 추격하여보니 전국에 체인망을 갖고 있는 유명한 사탕 가게로 놈들이 쏙 들어가 버렸다.
‘기발하군.’
그 누가 저 천벽과 사탕가게를 연관 지어 생각하겠는가.
천벽이란 기괴한 조직을 거느린 황제는 성군이란 평판을 받는 자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어쨌든 그 성군의 뒷구멍 행사가 참으로 눈살 찌푸리게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국가를 다스리는 최고 통수권자로써 어찌 정당하고 바른 일만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역시 정도란 게 있다.
천벽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제국의 백성들은 아마 지금처럼 황제를 칭송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권력이란 무소불위다.
해가 달이라 해도 믿게 만들 수 있으며, 지나가는 똥개가 사자라 해도 믿게 만든다.
믿지 아니한 자들은 역적이요, 반역도가 되어 형장의 이슬이나 아님, 저 오지의 탄광에서 평생을 허리한번 못 펴보고 그리 살 테니까.
‘흠, 데일 그 자식 새우 잘 잡고 있으려나?’
자신의 가진바 권력으로 딕스 역시 레이첼의 오라비인 데일을 외딴 섬 새우 잡이로 평생을 썩도록 조치했다.
돈 몇 푼과 말 한마디가 만든 결과다.
아마 데일은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의 식탁을 위해 피땀을 쏟아내며 노력하고 있으리라.
“다음엔 뭐냐?”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딕스에게 룩센이 말을 붙인다.
그제야 상념을 털어낸 딕스는 어깨를 당당하게 펴며.
“마인 등장!”
“무슨 뜻?”
마인이란 무엇인가! 바로, 깨달음의 벽에서 좌절하여 사특한 길로 들어선 자들을 말함이다.
힘은 얻었으나 정신이 황폐화 된 반미치광이들.
딕스는 지금 이를 거론하며 위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천벽은 재능자와 마인에게 관심이 많으니, 내가 이 기회에 둘 다 놈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거지. 아, 하나는 제공했군. 가짜지만.”
“이번엔... 네가 미끼가 될 생각이냐?”
“천만에. 사냥꾼이지. 룩센.”
“목소리는 왜 깔지?”
“네가 내 옆에 붙어 있으면 놈들에게 발각당할 우려가 있다. 놈들도 바보가 아닐 테니, 네가 내게 붙었다는 것쯤은 파악하고 있을 거야.”
딕스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서?”
“네 장기를 살려서 제국의 기밀 좀 빼와. 천벽에 관계된 내용도 좋고, 군사기밀이나 북부에 암약중인 제국의 첩자들의 명단도 좋다. 아, 날 어떻게 찾아? 라고는 묻지 마라. 네가 노력 안 해도 다 알 수 있게 이 몸이 유명인사가 되어 있을 테니까.”
이제까지 그만큼 퍼 먹여줬으면 은혜 갚음 할 때도 되었다.
자신의 이 건전한(?) 부탁을 녀석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최근에 익힌 물의 검에 각별한 마음을 담아 녀석에게 선사할 생각이다.
“나도 만능은 아니다.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의 전부를 가져올 수는 없을 것이다.”
룩센이 순순히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자 딕스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적어도 몇 번은 룩센과 입씨름할 걸 각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착하게도 이리 순순히 말을 들어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아, 돈 굳었다!’
이런 딕스의 속을 간파했음일까? 그냥가지 않는 룩센이다.
“돈 줘.”
순간 딕스는 욱했다.
하지만 귀중한 정보를 룩센이 선뜻 물고 오겠다고 하니 딕스는 이번엔 군소리 없이 녀석이 원하는 만큼의 재물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끝으로 룩센에게 딱 한마디 한다.
“노름은 하지마라. 주정뱅이보다 그게 더 나빠.”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충고에 룩센은 픽 하고 웃더니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역시나 유령 같은 녀석이다.
아니, 왠지 점점 유령이 되어가는 듯하다.
느낌에.
“그럼 마인이 되어 볼까. 그럼, 이름도 멋지게 하나 지어 주는 센스를 첨가해야겠지. 흐흐흐.”
제국이 그간 공국에 자행한 깽판을, 공국을 대신하여 이 제국 땅에 화끈하게 보답하리라.
받은 만큼 돌려준다.
이자는... 약소하게 1.000퍼센트로 가볍게 책정한 딕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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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회색하늘이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른다.
바람의 기운도 확연히 강성해졌다.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기에 모든 조건을 갖춘 날씨다.
딸랑, 딸랑.
문에 단 종이 온 몸을 흔들며 방문객이 왔음을 그 주인에게 알린다.
“어서...?”
차가운 바람을 휘감은 칙칙한 회색 로브 인이 가게로 들어섰다.
로브인의 얼굴은 커다란 후드 안에 들어가 있어 이를 식별할 수 없지만 그의 신장과 넓은 어깨를 통해 성별은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인상 좋은 중년의 가게주인은 순간적으로 사탕가게나 운영할 자의 눈빛과 거리가 아주 먼 눈빛을 보였다.
그러나 그건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가게 주인을 내내 지켜보아도 이를 파악하기 힘들다.
로브인은 진열대 끝에 서서 미닫이 평면유리창을 열었다.
드르륵.
날씨 탓인지 널찍한 사탕가게 안엔 고작 10명 남짓의 손님이 전부였다.
다들 독특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 로브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엄마, 저 아저씨 나쁜 마법사 같아.”
“쉿,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냐.”
아이의 말처럼 회색 두꺼운 로브인의 모습은 대 악당 급 위용을 뽐냈다.
진열대에서 사탕을 빼들던 로브인이 고개를 아이 쪽으로 돌렸다.
커다란 후드는 그 위치에 있어야 할 얼굴대신 시커먼 그림자만 보여주었다.
순간, 아이는 겁에 질렸고 이 아이의 어미는 놀란 얼굴로 그에게 급히 사과하곤 고개를 홱 돌렸다.
속도를 올리며 사탕을 고르는 여인의 모양새가 좀 전의 신중한 손길과 확연히 달랐다.
달콤한 맛으로 가득한 사탕가게는 무법자 포스를 풀풀 날리는 이 로브인으로 인해 답답한 적막감에 휩싸였다.
가게 주인이 작게 헛기침하며 로브인에게로 걸어왔다.
“제가 도와 드릴까요, 손님? 사탕 종류가 참으로 많죠. 하하하.”
주인은 인상 좋은 그 얼굴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편안한 목소리로 로브인에게 말하였다.
손님들은 주인이 나서자 그제야 긴장된 표정을 풀었다.
이곳은 도심이다, 밖의 날씨가 좋지 않아 사람들의 왕래가 오늘따라 유난히 없긴 하지만 그래도 행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한 블록만 더 가면 치안대건물도 있었다.
로브인은 주인의 친절을 무시하더니 핑크 색의 사탕을 골랐다.
다들 이 핑크 색 사탕과 로브인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 계집아이가 로브인이 고른 핑크색 사탕을 보며 그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더니 제 어미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핑크 색은 여자애가 먹는 거죠? 그렇죠?”
여자아이의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로브인의 눈치를 보다가 자신의 딸애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루시는 진한 밤색의 초콜릿 사탕을 좋아하잖아. 그건 여자애들이 싫어하는 색이잖아. 그렇지 않니?”
“아! 음식은 가리면 안 된다는 거군요. 알았어요. 그럼, 엄마, 나도 저 큰 아저씨가 들고 있는 핑크색 사탕 사줘요.”
가까이하기엔 너무 찜찜하고 두려운 느낌을 주는 로브인이다.
지금 그 남자 주변으로 그 누구도 얼씬하지 못했다.
어찌 저리 괴이한 분위기를 풍길까? 그나마 가게의 주인아저씨가 그 남자를 상대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가게 안의 손님들은 부랴부랴 가게를 나가버렸을 것이다.
아무튼 로브인이 달콤한 사탕가게의 물을 확실히 흐리고 있었다.
로브인 본인은 이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쉿, 조금 있다가. 지금은 다른 것보다 보자꾸나.”
루시의 어머니는 소녀를 달래며 로브인과 최대한 먼 거리의 진열장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소녀 쪽으로 얼굴을 돌렸던 로브인의 고개는 다시 제 손에 쥐고 있는 핑크 색 막대사탕으로 이동했다.
그러곤 이를 혀로 할짝거렸다.
휙. 빠삭.
로브인이 던진 사탕은 바닥에 부딪쳐 깨졌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로 인한 적막한 분위기 탓에 이 소리는 꽤나 크게 들렸다.
모든 이들의 눈길이 로브인에게로 향했다.
가게 주인이 황당한 표정으로 로브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대체, 이 무슨 행패요!”
로브인은 가게 주인의 말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는 또 다른 사탕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혀만 살짝 댄 그는 또 이것을 휙 던져버렸다.
빠삭.
아이들은 겁에 질렸다.
그 어미들도 당황하고 겁먹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다.
하지만 로브인의 위치가 모두의 길목을 절묘하게 막고 있었다.
휘익, 빠삭.
또 다시 로브인의 손에 애꿎은 사탕이 버려졌다.
마음씨가 바다보다 넓은 이도 이를 보고는 절대 참지 못할 것이다.
가게 주인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로브인을 향해 더욱더 바짝 접근했다.
석둑!
베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로브인을 향해 다가가던 가게 주인의 머리칼에서 나왔다.
가게 주인의 얼굴이 대번에 경직됐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 가게 주인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평범한 자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강한 눈빛을 순간적으로 주인이 발산했다.
또한 주인의 자세역시 오랜 시간 무술을 연마한 자의 흔적이 엿보였다.
이는 고수가 아니고선 알아 볼 수 없는 자세다.
“당신... 누구지?”
주인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깔려 로브인에게로 향했다.
가게 안은 이제 농도 짙은 공포분위기가 조성됐다.
소심증이 있던 한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직전이다.
로브인은 크게 달라진 주인의 표정과 태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마치 기계처럼 진열대의 사탕을 짚어들곤 혀만 댄 뒤 이를 버렸다.
이는 결코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장내에 있는 그 누구도 로브인에게 이를 말하지 못했다.
그가 풍기고 있는 괴이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우르르.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절로 하나의 덩어리가 된 손님들.
로브인이 그쪽으로 가자 모두 한마음 한 몸이 되어 썰물처럼 뒤로 물러섰다.
드르륵.
이번에도 로브인은 점전과 똑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소녀하나가 용기를 낸 듯 로브인에게 척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루시라는 아이였다.
이 아이의 어미가 크게 놀라 루시를 잡으려 했지만 아이가 더 빨랐다.
아이가 로브인의 로브를 잡아당긴다.
스윽.
로브인이 루시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후드의 짙은 그림자로 인해 아이는 로브인이 얼굴도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당장 울음을 터트리고 엄마의 품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이 아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음식 버리는 거 아니에요.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아빠랑, 엄마랑, 언니랑, 선생님이랑 그랬어요. 음식 버리면 나쁜 사람이 된데요.”
로브인은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안절부절못하는 젊은 아낙이 로브인의 눈에 들어온다.
로브인의 후드가 그 어미와 아이를 번갈아보았다.
그러더니 아이에 이마에 꿀밤을 세게 먹였다.
딱!
“으아아아아앙!”
루시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나쁜 것을 지적하고 고쳐주는 일은 좋은 일이라 했다.
착한 아이는 절대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이 대단한 배움을 어린 마음에서 가르쳐 주려고 했더니 그 보답이 뼈아픈(?) 딱 밤이다.
이는 루시의 상식에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그야말로 천지가 뒤집어지는 일이었다.
충격 반, 아픔 반으로 울음을 터트린 아이를 향해 그 어미가 달려와 잽싸게 안더니 원망의 눈초리를 로브인에게 짧게 남겨준 뒤 곧장 가게를 나가버렸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이들 역시 도망치듯 밖으로 빠져나갔다.
휑한 가게 안엔 이제 로브인과 한가락 할 것 같은 느낌의 가게 주인밖에 남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덜컹덜컹.
완전히 닫히지 않은 입구에서 세찬 겨울바람이 들어와 가게 안을 한바탕 휘젓는다.
“내 입맛에 맞는 사탕 주지 않으면... 가게 다 때려 부수겠다.”
로브인이 천천히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여 가게 주인에게 명백히 밝힌다.
그의 이 말에 가게 주인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만다.
“누구냐!”
주인의 목소리엔 육식동물의 기세가 실려 있었다.
로브인은 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오만한 어조로 짧게 말하였다.
“본좌의 이름은... 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