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딕스전기-135화 (135/194)

135화

천벽의 두 그림자 마법사를 해치운 딕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이러다보니 룩센이 참으로 만만하게 보였다.

그간 그에게서 받았던 정신적인 부분과 육체적인 부분에 대한 피해보상을 톡톡히 받아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문제는 녀석의 능력이었다.

그 괴상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룩센의 그 능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그런 류의 것 같았다.

차라리 스키어와 아이나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더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뭘 봐?”

자신을 잡아먹을 듯 쳐다보는 딕스의 시선에 그제야 룩센이 반응하였다.

무려 1시간을 딕스는 그렇게 쳐다보았는데도 말이다.

“내 눈 내가 뜨고, 내가 본다는 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알았다.”

딕스의 시비조의 말투에 룩센은 무덤덤하게 넘어가버렸다.

그러곤 그 비싼 와인을 물처럼 다시 벌컥벌컥 마셔댔다.

이를 보자 그의 능력을 꺼림칙하게 여겨 싸움을 망설였던 딕스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룩센!”

“......?”

후드를 푹 쓴 탓에 룩센은 얼굴을 볼 수 없다.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은 지독한 어둠뿐이다.

그 어둠을 보자 딕스는 그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적당히 마셔. 몸 생각도 해야지.”

“괜찮다, 이건 몸에 좋은 술이라고 판매자가 그러더군.”

룩센의 대꾸에 딕스는 순간 뇌혈관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상인의 혀를 저리 신봉하는 녀석은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자고로 상인의 말은 절대 귀를 막고 들어야한다.

사기꾼과 상인.

딕스는 이 두 직업군의 존재를 동일하게 보고 있었다.

왜냐? 이유는 단 하나다.

둘 다 자신의 재산을 축내니까.

‘우쒸, 저 시키가 더 나빠!’

“딕스.”

내심 룩센을 씹고 있느라 딕스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룩센이 주변에 있던 작은 돌멩이를 그에게 던졌다.

툭.

돌멩이에 머리를 맞은 딕스는 순간적으로 눈이 홱 돌아버렸다.

“이... 이 개흡충새끼가! 그래, 한번 죽어보자!”

룩센을 향해 저돌적으로 몸을 날린 딕스다.

“무슨 짓이지?”

딕스는 룩센을 때리지도 못했고, 붙잡지도 못했다.

볼썽사나운 꼴로 바닥만 뒹굴었다.

이게 더 분하고, 쪽팔리고, 억울한 딕스다.

이런 그의 입에선 분노의 가쁜 숨이 멈추지 않는다.

룩센은 별일 아니라는 듯 딕스가 앉아 있던 자리에 있었다.

딕스는 이게 더 기분이 나빴다.

뒤로 빠지려면 아예 멀찍이 빠지던가 하필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 저 태도가 딕스는 더욱더 얄미웠다.

“사내답게 한판 뜨자! 주먹으로!”

다년간의 바르고 규칙적인생활로 인해 딕스의 신체조건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에 비해 룩센은 딕스보다 현저히 열등한 조건의 체격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딕스는 룩센이 운동하는 걸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의 싸움방식으로 몰아갔다.

룩센이 말도 못 붙이게.

저도 사내라면 자신의 결투신청을 받으리라.

딕스는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인생사 종종 변수가 있기 마련.

“자라.”

지금이 자라고 잘 분위기인가.

룩센의 의도와 다르게 그의 말은 딕스의 가슴에 또 한번 불을 질렀다.

오늘 제대로 타오르는 딕스다.

“야이 시키야! 너 내말이 우습게 들리냐? 한판 뜨자고! 왜 겁나냐? 겁나? 그럼, 거시기 떼버려 그럼 이 몸이 결투를 포기해주마.”

이렇게까지 도발했는데도 가만있으면 룩센은 인간이 아니다, 남자가 아니다.

딕스는 룩센이 달려들 것을 100% 확신하며 완벽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래, 너도 사내면 절대 거절하지 못할 거다. 덤벼, 덤벼라!’

만일 룩센이 능력을 사용할 시 딕스는 그 즉시 싸움을 중단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물론 녀석의 비열함을 한껏 비웃을 욕설도 소박하게 12종 세트로 준비해 뒀다.

이처럼 모든 면에서 철저한 준비를 마친 딕스는 조금은 떨리는 기분으로 기다렸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제 이익과 이점을 최대한 챙기는 딕스다.

‘가만? 저 시키 레인저 출신 이랬는데!’

왜 이제야 이 생각이 났을까? 순간적으로 딕스는 위축되고 말았다.

하지만 군대갔다왔다고 다 잘 싸우란 법은 없다.

더욱이 제대를 오래전에 했다면 그냥 늙다리 아저씨일 뿐이다.

그에 비해 자신은 팔팔한 십대가 아닌가! 설마, 아저씨 따위에게 지겠는가.

딕스는 스스로 격려하며 의욕을 북돋았다.

이처럼 딕스가 한편의 연극을 찍을 동안 룩센은 와인을 다 비운 뒤 다시 새 걸 따서 마셨다.

룩센은 딕스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한밤의 슬픈 원맨쇼, 딱 지금의 딕스가 하는 모양새다.

한참을 딕스는 싸움자세를 취하며 그렇게 서 있었다.

상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제 할 일만 한다.

주구장창 마시는 일이다.

“왜? 겁나냐? 그럼 거시기 떼던가!”

이건 그냥 한 말이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굳이 주먹싸움을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꺼려지는 건 룩센도 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돌아버리면 뭔 짓을 못할까.

어색한 헛기침을 남기며 딕스는 모른 척 불가에 앉았다.

“야, 그러니까. 돌멩이는 던지지 마라. 내가 개구리냐? 그거 당하면...”

“자라.”

“뭐?”

벌컥벌컥.

이전과 다른 느낌의 룩센의 병나발이다.

이에 딕스는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밟아 줘야하는데... 자신이 안 선단 말이야. 휴우.’

한번 호되게 당한 경험이 아무래도 자신을 녀석에게 주눅 들게 하지 않았을까? 내심 자가진단을 하며 잠을 청하는 딕스다.

이건 룩센이 자라고 해서 자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딕스 본인이 자발적으로 자고 싶어서 자는 것이다.

딕스는 바른생활 청소년이기에.

@

이상하게도 딕스가 가는 곳마다 대형사고가 빈번하게 터졌다.

이는 그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면 다 나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를 예의주시했던, 혹은 언저리를 조사하다 우연히 딕스를 알게 된 각국 정보부는 그를... 재앙을 몰고 다니는 소년이라고 불렀다.

“그것 휙휙 지나가는 능력 쓰자니까. 되게 깐깐하게 구네.”

딕스와 룩센은 마차 편으로 싱그로아의 수도 라틴 힐로 가는 중이다.

룩센의 능력을 경험해봤기에 지금의 교통수단이 너무 느리게 느껴지는 딕스였다.

“안 돼.”

“나 이래봬도 갈 데 많은 몸이야. 그러니까. 그 휙휙 하는 능력 좀 쓰자. 그리고 내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네 입으로 네가 내 고용인이라면서, 그럼 고용주인 내 말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네 몸값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도, 싫다.”

정말이지 딕스는 룩센이 미운만큼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세상에 자신 같은 호구 고용주가 또 어디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자신도 만만찮은 능력을 갖고 있다, 아니 가공할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고작 연봉이... 룩센이 입에 달고 사는 저 와인 한 병 값도 안 된다.

이런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불철주야 국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신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사부가 내 물준데. 흠.’

씨알도 안 먹히는 부탁 더럽고 치사해서 딕스는 안하기로 했다.

세상에 자신 같은 고용주가 또 어디 있을까? 이건 말이 고용주지 녀석의 물주와 다름없다.

최소한 딕스는 자신의 물주(전격의 파울)에게는 예의를 다한다, 또한 부탁도 잘 들어준다.

이것이 양심 있는 자의 최소한의 행동이다.

한데, 저 보자기 뒤집어 쓴 술주정뱅이는 그런 걸 모른다.

저러니 저 나이에 돈, 친구, 여자, 집도 없이 만날 술로 인생 낭비한다.

어찌 보면 참으로 가련하고 안 된 인생이다.

딕스는 절대 룩센처럼은 살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저건 절대 사람 사는 게 아니다.

세상은 결실을 수확하는 계절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쌀쌀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이처럼 또 하나의 계절이 무의미하게 지나간다.

‘레이첼과 시모나가 그립네, 휴우.’

예전 그는 가족이 모든 일에 우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보단 제 여자들이 먼저가 되어버렸다.

이 가을 레이첼과 시모나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싸가지고, 고급 마차를 타고 경치가 수려한 곳에서 나 잡아봐라 놀이도하고, 서로 먹고 먹여주는 달달한 놀이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현실은 우중충한 개흡혈충(룩센)과 함께 하고 있다.

쿠르르르릉.

이 얼마나 서글프고 우울하며 진저리쳐지는 일이겠는가.

딕스는 자신이 제일 불쌍한 사람 같았다.

“앞으로 어쩔 것이냐?”

룩센이 갑자기 말을 붙여오자 딕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쏘아보았다.

상상일망정 레이첼과 시모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한데 그 행복한 시간을 녀석이 훼방 놓았다.

그러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것이 말투에 자연히 녹아있다.

“뭘, 어째?”

가시 돋친 삐딱한 딕스의 말투에도 룩센은 무덤덤했다.

룩센의 이와 같은 태도가 딕스를 더욱더 열 받게 하였다.

그 느낌은 뭐랄까? 놈은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고, 자신은 그런 녀석을 목이 끊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아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하나 룩센은 딕스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미운 놈!

딕스에게 룩센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이 범주에 꽉 차는 인간이었다.

“너는 싸움의 주축이 되어버렸다. 이젠, 절대 이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네가 지면 다 죽고, 네가 이기면 다 살게 된다.”

이는 딕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더욱더 싱그로아 왕궁으로 가는 것인지 모른다.

룩센에 대한 짜증나는 기분을 내려놓은 딕스는 대신 진지함과 진중함을 그 마음에 담았다.

“내가 질문하면 대답해줄 수 있나?”

“할 수 있다면.”

룩센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을 듣게 된 딕스는 긴장감까지 느꼈다.

“천벽에 너와 같은 자들이 몇이나 되지?”

“알 수 없다.”

“너희와 같은 존재는 어떻게 양성되는 거냐?”

딕스의 이 질문에 룩센은 한동안 침묵했다.

이 침묵을 딕스는 방해하지 않았다.

드디어 룩센이 입을 열었다.

“그림자 주술에 의해 우리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주술은 특정한 자들에겐 그 효과가 크지. 바로, 재능자들이다.”

“재능자들의 납치는 역시 제국이 주도한 것이었군.”

“그리 알고 있다.”

이후 딕스는 룩센에게 많은 것을 질문했다.

하지만 룩센이 아는 것은 자신이 속한 부서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 룩센이 아는 것은 정확하지 않았다.

하긴 제국의 황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키운 조직이 천벽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 규모가 어찌 단출하겠는가.

“그림자 마법사만 전장에 투입해도 승리는 제국의 것일 텐데. 왜 지금처럼 우회적인 방법만 쓰는 거지?”

이 점이 진정으로 이해되지 않는 딕스였다.

딕스 본인이 황제였다면 벌써 대륙통일을 해버렸을 것이다.

어차피 할 거라면 말이다.

“세계의 진실을 담은 자. 내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다. 제국이 적극적으로 야욕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

“너 전에 그 말... 내게서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그게 나란 얘긴가? 네 생각엔?”

정말이지 이는 사양하고 싶은 자리다.

만일 제국의 핵심인사가 꺼려하는 자가 자신이라면, 이는 평생 두 발 뻗고 자기는 글렀다는 의미다.

세계의 진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자신이란 말인가.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룩센의 착각일수 있다.

그럼에도 만일 그러한 자가 자신이라면, 둘 중 하나는 완전히 빠개져야 한다.

싸울 상대가 어지간하다면 모를까, 그 상대는 두렵게도 제국이다.

“모른다.”

“그런데 왜 내게 그런 말을 한 거지?”

“넌...”

“난?”

“주목할 수밖에 없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넌”

주목이라니... 이는 딕스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다른 이도 아닌 룩센에게서 들었다.

룩센을 싫어하는 딕스다, 하지만 그에 대해 한 가지는 단언 할 수 있다.

‘저 시키, 허튼 소리 안 지껄이는데.’

딕스의 얼굴에 두꺼운 먹구름이 낀다.

천둥과 번개와 폭우를 동반한 암울한 먹구름이.

우르르르릉, 콰콰콰아아아아쾅! 쏴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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