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고고학자 벵갈은 딕스의 의뢰를 받아 검은 주술에 대해 추적하였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주술의 맥이 끊어진지 오래였고, 고용주가 원한 것은 검은 주술이라는 아주 오래된 구전동화에나 등장할법한 신비로운 힘이었다.
그렇다보니 벵갈은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노심초사하던 차에 그는 주술에 관계된 민화나 설화를 토대로 현지답사를 시작하였다.
서적을 뒤지는 것 보단 이편이 정신건강에도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 선택이 벵갈에게 행운을 가져왔다.
마치 운명처럼 어느 노점상에서 그는 하나의 고서적을 발견했다.
이 서적의 글자는 지금은 잊힌 북부의 지배자였던 카세이아 부족의 문자였다.
카세이아 부족은 현재의 리안부족연합의 부족들과 달리 그들만의 글자와 문화가 존재했다.
이는 상당히 특이한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벵갈 입장에서 이 서적은 의외의 큰 성과였다.
카세이아 부족은 강력한 주술사들이 많았다고 알려진 신비의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서적의 해독에 있었다.
이를 위해 벵갈은 자이라 부족에 도움을 요청했다.
딕스와 관련 된 일에 자이라 부족이 어찌 가만있겠는가.
자이라 부족은 벵갈의 요청을 받은 그 즉시 온 힘을 다해 카세이아 부족의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자를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렇게 찾아낸 학자는 밤낮없이 해독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신화와 전설에서나 등장할법한 놀라운 이야기가 밝혀졌다.
카세이아 부족의 멸망의 배경과 그들이 사용했던 강력하고 신비로운 검은 주술에 대해서.
역천의 주술과 운명의 주술.
카세이아 부족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두 주술사의 숙명의 대결에 관한 내용이 여기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책 내용은 이러했다.
「... 천벽의 수장 바라모스가 역천의 주술을 완성하여 불멸의 영혼이 되려하였다.
그는 동족의 육신으로 탑을 쌓았고, 그 피로 호수를 만들었으며, 갓 태어난 아기와 처녀를 제물
바쳤다.
놈의 그 끔찍한 만행에 나와 나를 따르는 운명의 주술사들은 놈의 천벽과 대항했다.
천일을 놈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슬프게도 전투에서 우리는 패하고 말았다.
나를 따르는 운명의 주술사와 정의로운 전사들과 의로운 백성들은 이제 내 곁에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나는 내 영혼을 매개로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려한다.
이 수레바퀴는 훗날, 이 땅의 누군가가 멈출 것이다.
역천의 주술사 바라모스.
그 악의 주술사가 바라던 불멸의 영혼이 되도록 나는 운명을 비틀어 완성하게 해주었다.
놈의 영혼은 연옥의 언저리를 배회하다 새로운 육체에 깃들 것이다.
나는 그 날에 맞추어 하나의 안배를 더불어 운명의 벽에 새겨 넣었다.
세계의 진실...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는 그 힘을 담을 수 있는 자를, 그가 천벽의 바라모스가
깨어나는 날, 세계의 진실을 담고 그도 일어설 수 있게.
오직 그만이 역천의 주술로 불멸의 영혼이 되어버린 바라모스를 영원히...」
이것이 고문서의 주요골자다.
불멸의 영혼 바라모스와 세계의 진실을 담은 자와의 싸움.
신화와 전설에나 나올법한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정말이지, 놀라운 내용입니다. 다른 곳에서 이 내용을 보았다면 전 소설이라고 단정 지었을 겁니다.”
벵갈이 혀를 내두르며 말하자, 서적의 번역을 하였던 자 역시 벵갈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술이 이리 대단한 힘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불멸과 운명이라니! 이건... 음, 인간이 가까이해서는 안 될 신의 힘 같습니다. 그런데 바라모스가 사용했다던 그 역천의 주술이 과연 실제 하기는 할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일이 우리세대에 일어나기나 할까요? 왠지 환상을 쫓은 것 같습니다.”
“세상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신비로운 일들이 매시간 벌어진다고 난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익숙하지 못한 일이라고 하여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어쨌건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학자는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그간의 공을 서로 치하했다.
그렇게 두 학자는 정리한 서류를 챙겨들고 숙소를 나섰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이 가고자하는 곳까지 갈 수 없었다.
의문의 인물이 등장하여 두 사람을 해친 뒤 그들이 밤낮으로 풀이했던 문제의 그 서적과 번역본을 탈취하곤 유유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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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콜리튼은 대화재에 이어 도심 곳곳에 끔찍한 전쟁의 상흔이 만들어졌다.
이는 두 인간의 싸움이 원인이었다.
룩센과 스키어.
도시의 치안대가 무장을 갖추고 출동했다.
거리마다 사람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충돌현장에서 달아났다.
현장으로 들어가려는 치안대와 겁에 질린 시민들이 부딪치며 양측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 거리의 양옆 건물이 일제히 붕괴하여 이들을 덮쳤다.
비명과 당혹성이 터지고 주변은 난장판이 되었다.
건물의 잔해에 깔려 즉사한 자가 다수였으며,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자가 또 그 배였다.
멀쩡한 자들은 뿌연 먼지를 온통 뒤집어쓰고 있어 그 얼굴조차 식별하기 힘들었다.
“이, 이쪽으로 온다!”
“꺄아아악!”
거대한 모래가 덮쳐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굶주린 육식 메뚜기 떼의 습격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그 놈들조차 따라오지 못하였다.
모래에 닿은 건물과 지면은 해머로 내려친 듯 속절없이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
자잘한 그 파편들은 날아올라 괴 모래의 힘이 되어 더 극성을 부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저 모래의 힘으로 흡수되는 듯하였다.
“저기... 누군가 모래에 저항하고 있어!”
“어디? 아... 뭐지, 저 사람? 사람이야!”
도망치던 사람들은 파괴를 일삼던 모래더미가 급격히 방향을 틀자 그제야 한시름 놓고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중 몇몇 눈이 밝은 자들이 모래를 상대하는 자를 발견했다.
이들이 발견한자는 룩센이었다.
룩센은 도심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었다.
그러나 그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스키어는 그가 도시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도시의 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스키어의 행패에 죽은 자들이 벌써 수백이요, 무너진 건물과 공공시설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 모든 걸 복구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왠지 내 발을 묶어 두려는 것 같은데?’
스키어의 태도에 룩센은 그제야 의문을 품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시무시한 속도를 머금은 기병의 창처럼 강력한 모래의 공격을 공간질주로 피한 룩센의 신형은 어느 건물의 옥상에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스키어를 향해 룩센이 소리친다.
“스키어! 아이나는 어디 있지?”
거대 모래가 되어 움직이던 스키어는 룩센의 질문에 싸늘한 어조로 대답했다.
“너 답지 않게 늦게 깨달았군. 그녀는 너의 보물에게로 갔다.”
“아이나가?”
룩센의 고개는 그 즉시 여관 파라다이스를 향하여 움직였다.
스키어는 아이나가 납치계획을 마무리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룩센이 움직여도 막을 생각이 그에겐 없었다.
어차피 룩센이나 자신이나 서로에게 타격을 주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이 때문에 스키어와 아이나는 룩센이 아끼고 있는 딕스를 이용하려했다.
예전부터 룩센은 무언가에 빠져들면 그 하나에 미치고, 거기에 맞추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는 그림자 마법사들이 지닌 고질적인 불치병 같은 것이었다.
그 시간, 파라다이스 여관에선 딕스와 아이나가 충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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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불청객 아이나, 육체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던 딕스는 그동안 룩센으로 인해 받아왔던 화가 한 번에 폭발해버렸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그의 내심은 이 사태를 어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아이나는 딕스의 광분을 우습게 여겼다.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구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제철 안 된 밤 까먹는 소리 그만 지껄여.”
“인간은 꼭 당해야 정신을 차리는군.”
대화는 이리 끝났다.
아이나는 상대가 마법사인 점을 감안하여 신속하게 그를 제압하기 위해 위력적인 물의 주먹으로 날렸다.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2미터.
반사 신경이 뛰어난 기사가 아니고서는 반응조차 보이지 못하고 당할 거리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마나를 활성화시키고 있던 딕스는 아이나의 불시의 공격에 크게 당황했다.
설마하니 이런 방법으로 공격을 감행할지는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나가 날린 물의 주먹이 딕스의 몸에 맞았다.
한데 충격을 주어야 할 아이나의 물의 주먹은 딕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온순한 양처럼,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딕스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
아이나가 날린 물의 주먹은 딕스의 허리주변을 맴돌았다.
이 모습에 아이나는 크게 놀랐다.
딕스는 상대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간 지금 자신이 그녀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임을 잃지 않았다.
물의 주먹은 그 형태가 덩어리가 되어 아이나를 덮쳤다.
딕스가 물의 주먹을 피할 수 없었듯 아이나에게도 이 짧은 거리는 극복하기 힘들었다.
의지가 실린 딕스의 물 덩이는 아이나의 얼굴을 덮었다.
그러곤 사나운 기세로 그녀의 몸속으로 밀고 들어갔다.
당황하여 제대로 된 반응을 못하던 아이나는 자신의 몸을 변형시켰다.
좀 전에도 봤지만 지금 봐도 사람이 물 덩이가 되었다가, 다시 물이 되는 과정은 섬뜩하고 놀랍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물이 물을 익사시킬 수는 없는 법.
‘저것을 어찌 상대해야하지!’
자신의 공격에 역으로 당한 아이나가 당황했듯 딕스 역시 내심은 긴장감에 바짝 굳어 있었다.
상대는 기이한 마법을 부리는 자였다.
표적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찌 화살을 날릴 것이며, 칼을 휘두르겠는가.
룩센만 난감한 존재가 아님을 딕스는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방금 아이나가 날린 물의 주먹은 자신에게 복종했다.
그렇다면 물이 된 아이나는!
딕스가 이러한 생각을 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본신으로 딕스에게 들어온 오메가!
그 오메가가 갑자기 강력한 블랙홀이 되어 액체 상태의 아이나를 빨아들였다.
액체의 아이나와 딕스의 몸이 부딪쳤다.
“뭐, 뭐 하는 짓이야? 이게 뭐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딕스에게 빨려가는 자신의 상태에 그녀는 크게 놀랐다.
놀라긴 딕스여기 그녀 못지않았다.
아니, 그녀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 너 뭐해? 저거 괴물이란 말이야!’
기겁한 딕스는 오메가에게 내심 소릴 질렀다.
그의 말에 오메가가 대답할 리 만무하다.
두 눈 질끈 감고 양팔로 급히 얼굴을 가린 딕스는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곧 아이나와 딕스가 부딪쳤다.
하지만 그 어떤 느낌도 딕스는 받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던 딕스는 사방이 조용하자 그제야 실눈을 떴다.
주변은 넘어진 집기와 깨진 화병과 비스듬하게 걸린 액자만이 좀 전에 이곳에서 사건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꾸, 꿈인가?”
생생하다, 몸서리쳐질 만큼 그렇다.
그러니 이는 결코 꿈이 아니다.
소름 끼도록 무서운 말이지만 자신은 여자를!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