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딕스는 사람들이 반응할 사이도 주지 않고 안개를 식당에 생성한 뒤 여기에 수면 약을 타버렸다.
독과 수면 약은 그의 생활필수품이다.
모두를 잠재운 딕스는 식당의 불을 모두 껐고, 모든 창문과 문을 닫아버렸다.
여관 3층 객실 복도 창가로 단숨에 뛰어간 딕스는 벽에 등을 착 붙인 채 조심하며 창밖을 응시했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시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인간, 동물, 몬스터와 살기만 구별할 수 있는 물의 척후의 효용성이 이곳에선 현저히 떨어진다.
이 마을 전체가 자신의 적이라면 눈감고 천리를 보는 자가 되겠지만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처지에서의 딕스에게 이곳은 무척이나 난감한 장소였다.
쌍마를 찾지 못한 딕스는 반대편 복도창문으로 뛰어갔다.
다시 창밖을 살핀 딕스는 쌍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룩센은 보이지 않는데?’
쌍마의 위력은 강력하다, 이들이 결심하면 어지간한 영지는 단 하룻밤도 버티지 못하고 몰락하고 만다.
이런 가공할 능력자들이었지만 딕스에게 쌍마는 그리 두렵지 않은 자들이었다.
딕스는 쌍마가 들어간 건물을 보았다.
이곳과 마찬가지로 식당과 여관을 겸하는 곳이다.
‘저 방이 적당하겠군.’
건물의 위치를 확인한 딕스는 객실 문을 열려했지만 안쪽에서 잠겨 열지 못했다.
콰지직.
물의 힘을 집중하여 안쪽 자물쇠를 부순 딕스는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침대엔 벌거벗은 남자가 쓰러져 있었고, 욕실 욕탕엔 여자가 보였다.
남자는 늙었고 여자는 젊었다.
뻔 한 스토리다.
딕스는 남녀에 대한 신경을 끊고 창가로 향했다.
복도에서 보던 것보다 여기서 보니 쌍마가 들어간 건물이 훨씬 잘 보였다.
문제는 저곳에 룩센이 있느냐다.
그때, 맞은 편 건물 옥상에 검은 그림자들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
쌍마도 이 무리에 합류했다.
“뭘 하려는 거지?”
@
쌍마중 형인 윔슨이 침중한 표정으로 넓은 옥상을 둘러본다.
그의 동생 윔마는 한 사내를 향해 곧장 걸어갔다.
딕스가 보았던 자들이다.
이 무리의 리더인 사내가 정중한 태도로 윔마에게 인사를 건넨 뒤 상자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
윔마는 이를 갖고 난간에 서 있는 형 윔슨에게로 걸어가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있어.”
윔슨은 이를 즉시 받아들지 않고 마을의 야경을 보았다.
명화를 감상하는 관객처럼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형의 태도에 윔마는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윔마의 기다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줘봐라.”
윔마가 손을 내밀고 윔슨이 상자를 건넸다.
옥상에 있던 사내들이 한곳에 모여 이들 형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윔마.”
“왜?”
“우리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구나.”
“삶은 희생이라며?”
윔마의 말에 형 윔슨은 고소를 지으며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엔 동전만한 유백색의 돌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이 돌은 딕스가 사막 고블린에게서 얻은 것과 크기와 색깔이 같았다.
굳은 얼굴로 윔슨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위치는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쌓아 놓은 장작 위다.
옥상에서 불을 피우는 행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모닥불에 불이 붙었다.
불길은 유백색의 돌을 가열했다.
보기엔 그냥 돌을 굽는(?)것 같지만 지금 이 행위에 가려진 진실은 가볍지도 않고, 일상적이지도 않다.
윔슨이 품에서 작은 자기병을 꺼냈다.
윔마를 비롯해 옥상에 있던 자들이 모두 윔슨의 자기병을 주목했다.
쪼르륵.
모닥불에 비친 것은 붉은 액체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액체는 불에 달궈진 유백색 돌을 떨어졌다.
돌의 표면이 쩍쩍 갈라지더니 기체가 되었다.
뭉쳐진 기체가 떠올랐다.
바람의 이타(H) 마법사가 윔슨이다, 그는 견습 마법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벼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바람은 조정되어지는 바람이다.
바람을 만난 기체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딕스는 이를 보았지만 떨어져 있었기에 유백색의 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본 것은 지금 바람에 흩어지고 있는, 아니 보내지고 있는 기체였다.
@
기체는 바람에 의해 어둠에 스며들었다.
딕스는 정체불명의 기체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입구를 안개로 막아버렸다. 아직까지 룩센은 발견하지 못한 딕스다.
그래서 그가 이곳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기체는 뭐지?’
장난은 아닐 것이다, 분명 무슨 의도가 있음이다.
저들은 무엇을 바라는 걸까? 딕스는 내심 의문이 해일처럼 일어났다.
물의 척후로부터 살기가 사방에서 분출하고 있음이 보고됐다.
딕스 역시 살기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살기의 감지는 일종의 기술이다, 하지만 지금 갑자기 불거지고 있는 이 살기는 비 수련자라도 단숨에 알아차릴 만큼 강렬했다.
“끄아아아아-악!”
“아아악!”
“으아아아악!”
충천한 살기의 영향을 마을은 도미노처럼 받았다.
살기에 지배당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 싸웠다.
작은 남자아이가 살기를 분출하고 있었다.
아이는 건장한 체구의 성인 남자 둘의 머리통을 힘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부수어버렸다.
도구 따위는 쓰지 않았다, 제 주먹으로 그와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살기를 뿌리는 자들은 정상인들만 공격했다.
딕스는 그 기체가 이와 같은 상황을 연출했음을 깨달았다.
‘뭐, 뭐지?’
화들짝 놀란 딕스는 거리의 상황을 더욱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건물의 외벽 창으로 보이는 내부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이었던 자가 갑자기 학살자로 돌변했다.
연인이었던 자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
평화롭던 마을이 광풍에 휩싸였다.
비명과 악다구니, 당혹성이 사방에서 폭발했다.
건물에 있던 자들이 혼비백산하여 거리로 뛰어나왔다.
이들은 사력을 다해 도움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이들을 돌아보지도 다가가지도 않았다.
다들 제 앞가림하기에도 바빴다.
“저 새끼들...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람을 미쳐 날뛰게 한다, 그런데 단순히 미쳐 날뛰는 수준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성인남자를 대수롭지 않게 잡아 죽인다.
5, 6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몸 하나 다치지 않았던 노인도 보았다.
쌍마는 이를 관전하고 있었다.
딕스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마을이 미쳐 발광하는 것은 놈들의 짓이다.
처음부터 이를 보지 않았다면 무슨 일인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기에 알 수 있다.
딕스가 있는 건물 안으로 광분한 자들이 뛰어들었다.
안개의 물리력으로는 이자들을 막기 역부족이다.
이 건물 전체는 딕스의 수면 안개로 인해 생물체는 모두 잠든 상태다.
뛰어든 놈들은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전신이 결빙되어 소리 없이 바스러졌다.
그리고 연이어 건물 주변의 다른 놈들이 들어왔다.
이자들 역시 앞서의 놈들처럼 그렇게 제거 당했다.
이 마을에서 딕스의 가호를 받는 이 건물만이 재난에서 비켜가고 있었다.
나서야할까? 말아야할까? 이를 두고 딕스는 고민했다.
걷잡을 수 없는 불이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뛰어들어봐야 사태의 해결과 진정은 어렵다.
엎질러진 물이라면 쉽게 담을 수 있겠지만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은 자신에게 불리한 지형이다.
그는 나서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의 이 행위를 벌인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자, 왜 도와주지 않느냐며 원망을 토하는 자, 싸워보겠다고 나섰다가 단숨에 비명횡사하는 자들까지.
마을은... 거대한 도살장이 되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
딕스도 쌍마도 그리고 살기를 분출했던 주민들이 모두 사라진 마을.
수면 안개의 영향을 깊이 잠들었던 사람들이 깨어났다.
롤링과 세 여자가 딕스를 찾았다.
인상이 험한 장교와 병사들과 식당의 손님들 역시.
하지만 아무 곳에도 없었다.
“그 녀석 사악한 마법사야!”
기억을 더듬던 롤링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사람들은 그제야 안개를 떠올렸다.
하지만 안개와 딕스를 연관시킬 증거는 없었다.
“틀림없다고! 우리 중에 오직 그만 없잖아요. 그리고 그 자식 우리랑 함께 사막을 건넜는데 밤만 되면 사라지곤 했어요. 분명 사악한 마법을 부리는 놈일 거예요.”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식당 밖을 나왔다.
“헉!”
“이, 이럴수가!”
“꺄아아아악!”
이들의 비명과 당혹성과 두려움을 듣고 식당에 있던 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석화되고 말았다.
머리통이 터지고, 목이 홱 돌아가고, 사지가 부러지거나 찢겨나고, 내장이 터져 나온 시체... 시체.
정적으로 뒤덮인 마을은 시체밖에 없었다.
“우웩!”
롤링은 벽을 짚고 토악질을 했다.
“그 자식이 분명 사악한 마법을 부린 거라고요! 우웩!”
부모를 죽인 원수라도 되는 듯 롤링은 딕스를 흉악한 범죄자로 몰고 갔다.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상황에 사람들은 스스로를 진정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식당 안에서 다들 롤링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니 누군가에게라도 원망의 화살을 쏟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사람들이 부랴부랴 제 집으로 달려가며 가족의 이름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
인상이 흉악한 장교가 돌아서서 롤링을 보았다.
장교의 인상과 살벌한 분위기에 움츠려든 롤링.
“그 녀석에 대해 아는 거... 다 진술해라.”
쌍마가 저지른 일을 롤링으로 인해 딕스는 덤터기를 쓰게 생겼다.
이중에서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자가 있었다면 상황은 이리 변질되지 않았으리라.
@
쌍마는 살기를 분출하던 자들을 모아서 마을을 떠났다.
살겁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었다.
딕스의 수면 안개에 당한 자들만이 유일한 생존자들이다.
마을을 뒤로하고 딕스는 쌍마와 그 무리의 추격에 나섰다.
남녀노소가 그 무리에 속해 있다.
한데도 그들의 이동속도는 이러한 구성원과 맞지 않게 기민했다.
쌍마를 추격한지 이틀.
강하나가 나왔다.
인가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형님, 또 손에 식은땀이 나는군요. 하아.”
윔마가 쓴 웃음을 지으며 형 윔슨을 본다.
“나도 조금 긴장되는군.”
형제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장소는 다리에 강이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깊은 좌절을 맛보았고, 싸늘한 죽음의 깊은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이후 두 형제는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됐다.
이들 형제에게 씻을 수 없는 공포감을 심어준 딕스가 멀리서 이들을 보고 있었다.
큰 배 한척이 나타났다.
접안시설이 없기에 배는 강가로 오지 못했다.
배에서 보트 세척이 내렸다.
그와 동시에 윔마가 마을주민들에게 명령했다.
“이동.”
그 한마디에 물속으로 뛰어든 주민들은 배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쌍마와 그 일당은 뒤에서 이를 모두 지켜본 후 한사람의 낙오도 없이 모두가 승선한 것을 확인한 후 보트에 올랐다.
이들을 태운 배가 출발하는 것을 본 딕스는 곧장 강물로 뛰어들었다.
‘제국이 아니라... 마굴이구나. 마굴!’
딕스의 얼굴이 경직되어 풀어지지 않는다.
제국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힘과 악이 너무 거대하다.
알아갈수록 꺼려지고 두려워지는 나라다.
소름이 딕스를 뒤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