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뭐지? 이 녀석...’
어이없는 얼굴로 딕스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쌍마와 제 3의 인물이 선물처럼 나뉘었다.
이는 그가 진심으로 바라던 기회였다.
그러나 이를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괴이하게도 제 3의 녀석이 꿈쩍도 안하고 그 자리에 계속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쌍마가 이동한 방향은 북서쪽으로 놈들은 연합의 수도로 곧장 향하고 있었다.
연합으로 온 목적을 생각하면 쌍마를 쫓아가 제거하는 게 바른 선택이다.
그럼에도 딕스는 놈들의 뒤를 쫓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제 3의 인물 때문이다.
놈은 마치 나무가 되고 싶은 듯 어젯밤부터 정오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몬스터를 도발하여 놈에게 보냈지만 어찌된 일인지 몬스터는 놈을 인식조차 못했다.
안개에 독을 섞어 보냈지만 중독된 행동도 없었다.
놈은 마치 진짜 나무나 바위가 된 듯하였다.
놈에겐 뭔가 있다.
육감은 끊임없이 이를 확인하라고 하였다.
이성은 쌍마를 추격하여 임무를 완수하라며 부채질하였다.
지금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더 지체했다간 쌍마를 놓치게 된다.
‘너 나중에 보자.’
육감보다 이성을... 눈앞에 닥친 현실을 딕스는 선택했다.
딕스는 움직였다.
연합의 혼란을 조장하여 이 땅의 백성을 도탄에 빠트릴 쌍마를 저지하기 위해서.
딕스가 떠났지만 제 3의 인물, 룩센은 움직이지 않았다.
놈은 불행을 일으킨 원흉을 그렇게 기다리기만 했다.
특이해도, 굉장히 특이한 성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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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슨과 윔마 형제는 제국에서 활동하던 마인들이다.
쌍둥이 중 형인 윔슨은 바람의 마법사였고, 동생 윔마는 마스터다.
형제가 나란히 마법사와 마스터가 된 경우는 정말이지 흔치 않은 일이다.
만약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였다면 두 사람은 역사에 남을 인물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발작처럼 튀어나오는 분노가 바로 그 원인이었다.
밥 먹다가, 똥 싸다가, 잠자다가, 길을 걷다가, 대화를 하다가... 수시로 분노가 폭발했다.
이를 고치기 위해 두 사람은 노력하였다.
이들만이 아니다, 모든 마인들이 노력하였지만 뜻한 성과는 아무도 이루지 못했다.
제자리걸음!
그런데 그랬던 쌍마에게 정상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룩센은 괜찮을까?”
윔마의 표정에 걱정이 드러난다.
쌍마가 누군가를 염려한다? 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이 있다면 이를 보고도 믿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늘 전전긍긍하며 신경질적이던 쌍마.
지금 이들의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녀석은 천벽의 마법사다. 불행도 놈을 비켜 갈 거야.”
“아무튼 천벽의 놈들은 다들 특이해.”
“좀이 아니라, 많이 이상하지. 하지만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해주고 약만 받으면 그만이니까.”
약? 쌍마는 지금 약을 얻기 위해 천벽이란 단체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약이기에 제멋대로의 대명사인 마인이 정상적인 방법의 거래를 하는 걸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인의 분노를 억제, 혹은 치료하는 약물이 있다면 이는 대륙의 모든 마인들이 바라는 일이다.
자신이 이제까지 섞여 살아왔던 세계에서 자의가 아닌 병적인 발작을 두려워해서 떠나는 일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잠시잠깐 분노가 가라앉고 이성을 되찾을 때면 대부분의 마인들은 큰 자괴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 씻을 수 없는 고독과 허무와 슬픔은 겪어보지 않은 자들은 알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쌍마는 형제가 나란히 마인이 되어 고독은 덜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두 사람은 제국의 그늘에 있는 천벽의 도움으로 분노를 억제하는 약을 매달 공급받고 있었다.
정상인의 평범한 생활.
그 삶을 두 사람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가족을 만들 수 있고, 친구를 만들 수 있으며, 이웃과 아는 사람도 만들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추방당하듯 이러한 생활에서 멀어진 마인들에게 평범한 이들의 그러한 삶은 눈물 나는 동경이었고,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이었다.
해소할 수 없기에 어떤 마인들은 더욱더 악한 짓을, 이성이 돌아왔을 때도 저지른다.
내가 가지지 못했으니, 너도 가지자 말라! 는 비뚤어진 마음으로 더 모질고 악독하게 군다.
“그렇긴 하지만 룩센 녀석에게 일이 생기면 천벽이 우리와 거래를 안 할 수도 있잖아.”
형 윔슨의 말에 윔마가 표정에 걱정을 드러내며 말한다.
분노 억제제, 마수라.
그 약을 통해 윔마는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음식점에 일부러 들러 그들과 함께 밥 먹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했고, 아이들을 보면 사탕이나 과자주기를 좋아했으며, 괴롭힘을 당하는 자들을 보면 도와주는 것도 좋아했다.
최근엔 제자를 들여 그에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윔마는 지금 누리고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진정으로 잃고 싶지 않았다.
“불행이 룩센을 노릴지, 우릴 노릴지 장담할 수 없다. 놈이 우리를 노린다면... 네가 즐기는 지금의 삶도 공중으로 날아가 버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
“알았어. 그나저나 다리에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배를 탔다하면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다보니 배 타는 게 꺼려지는 윔마다.
이는 윔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보면 알겠지. 우리가 무사히 다리에 강을 건널 수 있다면 불행이 룩센을 향해 간 것이고, 아니면... 우리에게 붙은 거겠지.”
윔슨이 말한 불행.
지금 그 불행이 다리에 강, 강바닥에 앉아 쌍마를 기다리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왜 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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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꼬박 꼼짝도 안하고 누워만 있던 룩센이 몸을 움직였다.
깊고 큰 후드는 여전히 그의 하관 중 일부만 보이게 한다.
전체적인 얼굴에 대한 궁금증이 인다.
하지만 룩센은 타인의 궁금증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삶이란...
‘... 지겨워.’
지겨울 뿐이다.
움직여주지 않은 관절을 가볍게 푼 룩센은 불행이 쌍마를 쫓아갔다고 추측했다.
그는 가볍게 대지를 박찬다.
그러자 그의 전신이 놀랍게도 공간에 녹아들어갔다.
휘리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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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이 너무 많은데.’
딕스는 쌍마가 대형여객선을 타자 강바닥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까지 놈들은 작은 선박을 대여했지 이처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여객선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놈들이 왜 꾸물거리나 싶었던 딕스는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선박을 뒤집거나 침몰시켰다간 사망자가 대거 발생할 수 있었다.
딕스가 살인마도 아니고 죄 없는 양민의 목숨을 담보하여 임무를 해결할...
‘빵구만 내야겠군.’
있는 녀석이다.
쌍마가 탑승한 여객선이 움직였다.
부두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면 양민들의 희생이 커질 터였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나름 계산하였다.
그 계산을 바탕으로 딕스는 여객선 옆구리를 물의 힘으로 강력하게 후려쳤다.
잔잔한 수면을 달리던 선박에서 굉음과 함께 흔들렸다.
갑판에 나와 다리에 강의 풍경을 감상하던 승객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어떤 자는 엉덩방아를 찧었고, 어떤 이들은 난간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선박의 옆구리로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갔다.
배는 조금씩 옆으로 기울었고, 사람들의 공포는 더욱더 커졌다.
“구명정, 저기 구명정이 있다!”
“질서를 지키세요! 아이와 여자와 노약자가 우선입니다. 밀지 마세요!”
선원들이 승객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목숨이 달린 일에 진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힘으로 밀고 당기며 구명정 근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쌍마 윔슨과 윔마는 불행이 자신들을 쫓아왔음을 이를 통해 깨달았다.
“윔슨, 배가 너무 기울었어.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죽게 할 수는 없잖아. 어떻게 해봐!”
윔마가 형 윔슨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윔슨은 사람들이 덜 북적이는 갑판 뒤쪽으로 바삐 달려갔다.
그곳에 선 윔슨은 자신의 완전마력문장을 움직였다.
윔슨의 마력문장은 H(이타)!
5개의 띠를 가진 H(이타)가 움직이자 다리에 강 상공에 강풍이 휘몰아쳤다.
바람은 점점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재앙에 직면한 선박의 승객들과 이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부두에 몰려와 있던 사람들이 그 순간 고개를 들어 상공을 본다.
은색 갑옷을 입은 거인이 하늘에 떠 있었다.
거인의 신장은 무려 4미터에 이르렀다.
그 커다란 덩치로 구름처럼 떠 있다.
사람들은 얼이 빠졌다.
그냥 넋을 놓고 거인을 보았다.
거인은 윔슨이 부른 바람의 골렘이었다.
바람의 골렘이 크게 기운 배를 붙잡았다.
배는 평행을 유지하였고, 선박에 탑승한 자들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승객과 부두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 바람의 골렘이다!”
“마법사님이 돕고 있어!”
“만세! 바람의 마법사님 만세!”
“와아아아아.”
선박의 승객과 부두에 나와 있던 사람들 모두 감격하여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다.
윔슨은 순식간에 영웅이 되었다.
바람의 골렘은 선박을 부두로 옮겼다.
그렇게 모두의 환호 속에 선박은 무사히 부둣가에 정박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물속에서 튀어나온 4미터 신장의 물의 골렘의 출현으로 급변했다.
출렁.
휘청!
선박의 중심이 크게 무너졌다.
갑판에 있던 사람들이 배가 기우는 방향으로 미끄럼을 탄다.
물건에 부딪치고, 사람에 부딪치며 선박은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꺄아아악!”
“바람의 골렘이 공격받고 있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 비명의 아수라장에서 한 소녀가 유일신을 향해 간절하게 기도하며 네댓 살 난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운다.
“아르온 님, 제발 바람의 골렘님을 도와주세요. 착한 마법사님을 도와주세요!”
졸지에 공공의 적, 테러범이 된 딕스다.
“윔슨, 저 물의 골렘은 내가 막아 볼 테니까. 배를 부두로 옮겨!”
마스터 윔마가 소리치며 요동치는 갑판 위를 균형 잡힌 단단한 지면을 밟듯 움직였다.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의 바람의 골렘.
치사하게 그걸 이용해서 패는 물의 골렘.
...대비된다.
“우우우우!”
“나쁜 물의 골렘은 물러가라!”
“바람의 골렘님 힘내세요.”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윔슨은 바람의 골렘을 향해 마나를 더욱더 공급했다.
몸을 단단하게 한 바람의 골렘, 그리고 이 골렘을 샌드백처럼 여전히 두들겨 패는 물의 골렘.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물의 골렘이 전력을 다해 바람의 골렘을 공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사정을 봐주며 공격하고 있음인데, 그런데 욕이란 욕은 몽땅 물의 골렘에게 쏟아진다.
그때, 마스터 윔마가 갑판 난간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저기 봐! 사람이...”
“앗! 오러블레이드다!”
“마스터다!”
“오! 아르온이시여!”
평생을 살아도 보기 힘들다는 골렘과 소드마스터를 보게 된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하는 정의로운 바람의 마법사와 마스터.
사람들에게 쌍마는 소설 속 영웅의 현신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영웅이 있으면 악당이 있는 법.
원치 않게 딕스는 그 악당 역을 하고 있었다.
‘시벌.’
딕스의 속내는 이렇지 않을까 싶다.
“마스터가 물의 괴물을 공격하고 있어!”
“나쁜 물의 괴물을 혼내주세요! 마스터님!”
신비롭고 멋진 딕스의 골렘은 이제 사람들에게 괴물로 불리고 있다.
어쨌든 윔마의 거대한 오러블레이드가 물의 골렘을 단숨에 쪼개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바람의 골렘을 후려치고 있던 물의 골렘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서는 방패를 생성시켰다.
마스터의 오러블레이드는 물의 방패에 맞아 굉음과 섬광을 일으켰다.
방패는 멀쩡했다.
윔마는 반탄력을 이용해 다시 선박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그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다가오지 마시오. 다칩니다!”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날려준 윔마는 다시 바닥을 박차고 물의 골렘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번엔 물의 골렘의 머리를 노린 오러블레이드다.
하지만 여기에 순순히 당할 물의 골렘이 아니다.
물의 방패가 다시 오러블레이드를 막았다.
굉음과 섬광.
윔마는 이번엔 반탄력을 이용해 선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절묘한 몸놀림으로 물의 골렘의 어깨부위를 노렸다.
마스터의 오러블레이드는 골렘의 동체에 데미지를 줄 수 있다.
충격량이 크면 골렘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리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마법사에게 돌아간다.
이때 마법사는 마나공백현상을 겪는다, 심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딕스는 특이한 마나구조를 갖고 있었기에 여기에 해당사항이 없다.
윔마의 오러블레이드가 물의 골렘의 어깨를 베려는 순간이다.
수면이 크게 출렁이더니 거대한 물기둥이 윔마를 휘감아 물속으로 순식간에 끌고 들어가 버렸다.
이를 본 사람들은 순간... 패닉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