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딕스전기-91화 (91/194)

91화

딕스의 발언은 레이첼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 충격은 아름답고 멋진 경험이었다.

레이첼은 딕스를 보는 게 몹시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본업이 그의 비서이니 안 볼 수도 없다.

“그러다 눈 돌아가, 레이첼.”

전격의 파울과 제국과 쌍마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딕스.

그의 머릿속은 최고의 결론과 성과를 내는 방법을 연구하느라 폭발하기 직전이다.

딕스가 예상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파울이 제국과 손을 잡은 경우다.

“제, 제가 언제...”

“다 봤거든. 그리고 오늘은 나 혼자 있고 싶으니까. 시모나 양과 놀아줘. 좀 전에 보니까. 풀이 잔뜩 죽은 모양으로 빌빌거리던데.”

딕스의 머릿속에 시모나는 파울의 딸일 뿐이다.

하지만 시모나에게 딕스는 이상형의 정혼자였다.

그런데 그 정혼자(파울이 정하고 시모나가 인정한)가 딴 여자를 제 여자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어찌 쓰리고 아프지 않겠는가.

레이첼은 시모나의 마음을 알았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레이첼은 속도 상하고, 자신의 처지에 한숨이 나오곤 했다.

물론 아침식사 전까지다.

지금은 딕스가 식사자리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고려한 고백에 사실 크게 감동했다.

문제는 고백을 했으면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저 남자는 엉뚱한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그가 원하면 입술은 내줄 수 있는데.

‘어멋!’

레이첼은 자신의 적극적인 생각에 놀라 그만 얼굴이 벌게진다.

그녀는 제 얼굴이 딕스에게 들킬까봐 황급히 대답하곤 뛰어가 버렸다.

그 위태한 뜀박질을 보며 딕스가 소리쳤다.

“그러다 넘어지면 예쁜 몸 다친다, 그거 네 몸 아니다. 레이첼!”

딕스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레이첼의 다리가 크게 꼬였다.

앞으로 넘어지려는 그녀를 보며 반사적으로 일어선 딕스는 도로 주저앉았다.

‘흠, 균형감각은 좋네.’

90%는 넘어질 자세다. 한데, 그 자세에서 놀랍도록 균형을 잡고 넘어지지 않았다.

이는 그녀가 타고난 운동신경과 반사 신경을 가졌다는 증거다.

레이첼이 사라지자 그제야 딕스도 온전히 임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딕스는 저택을 나섰다.

파울과 딕스의 관계를 알게 된 저택의 총관이 호위 병력을 붙여주려 하였다.

“괜찮습니다. 늦어도 저녁때쯤엔 돌아 올 테니. 제 비서를 보면 그리 전해주십시오. 하비옷 총관님.”

“안내인이라도 데려가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딕스 님.”

“정말, 괜찮습니다. 그럼.”

더 이상 총관에게 여지를 주지 않고 딕스는 몸을 돌렸다.

저택을 빠져나온 딕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보았다.

요새 같은 저택이다.

겉보기엔 투박하고 엉성한 모습 같지만 내실은 꽉 차 있다.

공국이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검은 부엉이의 요원들이 저택침입을 포기했을 정도다.

딕스가 저택을 나선 요인 중 하나가 요원과의 접촉을 위해서다.

‘음지의 그림자 단이라고 했지. 흠, 대단한 자들 같아.’

추적과 암살, 국지적인 전투 등을 수행하기 위해 창설된 기관으로 야니시아 부족이 보유한 비밀기관중 하나다.

이 기관의 인물은 모두 자이라 부족 출신으로 채워져 있으며, 이곳의 단장은 전격의 파울이다.

대외적으로 이 기관은 야니시아 부족을 위해 일하지만 실은 파울의 독자세력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물의 척후를 통해 뒤따르는 자들의 유무를 살피며 움직인 딕스는 대규모 말 목장 외곽 숲 입구 개울가에 도착했다.

그늘이 드리운 바위에 걸터앉아 투명한 개울 속에서 노니는 작은 물고기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한가해 보인다.

그의 뒤쪽 숲에서 목소리가 날아든다.

“뒤따르는 자들은 없습니다. 딕스 님.”

검은 부엉이, 공국의 정보국은 리안부족연합에 침투한 제국의 선동가를 처치하는 게 주목적이다.

그렇다보니 정보요원과 전투요원 상당수가 이곳에 들어와 있다.

이들은 딕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꼼꼼하시군요.”

물의 척후를 통해 자신을 뒤따르는 자들의 유무를 이미 살핀 딕스다.

하지만 굳이 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칭찬한다.

사람은 틈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틈을 보이고, 그 틈을 서로서로 찔러주면서 친해지는 법이다.

적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유인과 섬멸!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 전술은 현대에까지 유용하게 쓰인다.

전술의 교본이다.

딕스는 이를 ‘틈의 전술’이라고 부른다.

틈 하나만 보여주면 인맥도 넓힐 수 있고, 적도 처치할 수 있다.

일석이조가 바로 이것이다.

가끔 제 이미지를 깎아먹는 짓을 하는 게 좀 그렇지만, 아직까진 손해보다 이익이 더 많았다.

“죄송합니다. 파울의 저택 경비가 철통같아 침입이 쉽지 못했습니다.”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파울은 마스터입니다. 허술한 자가 어찌 마스터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라스 경의 판단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사실, 전진보다 후퇴가 더 어려운 결정이잖아요.”

라스 남작은 리안부족연합의 요원들을 관리하는 3국의 차장이다.

그는 16살 애송이를 작전의 책임자로 임명한 상부의 지시에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딕스를 직접 만나고 그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 뒤로는 그 생각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제 파울이 만난 자는 쌍마였습니다.”

라스 남작은 딕스의 말에 깜짝 놀랐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통제 불가능한 존재가 바로 마인이다.

한데, 그런 자들이 제국을 위해 일한다? 이는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놈들은 제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 제국이 놈들을...!”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 현재까지 분명한 것은 쌍마 뒤에 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라스 남작님.”

“예.”

라스 남작의 목소리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이를 적극 감안해서 임무에 임하세요. 괜한 욕심에 나섰다가 다치면 우리만 손해잖아요. 그리고 발밑에 그것 좀 제 가족에게 전해주세요. 이건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딕스의 말에 라스 남작은 무심결에 발밑을 보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분명 흙과 나무뿌리와 풀 외에 없었다, 한데 전에 없던 봉투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라스 남작은 명색이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기사다, 한데 자신의 발밑에서 일어난 일조차 알지 못했다.

이는 그에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이것이 언제?”

“아! 놀라게 해드렸군요. 미안해요, 제가 가끔 생각 없이 행동한답니다.”

“디, 딕스 님이 하신... 겁니까?”

라스 남작의 목소리는 내심의 충격이 담겨 있다.

“말씀드렸잖아요. 제 개인적인 부탁이라고요. 그리고 쌍마는 제가 상대합니다. 이점 기억하세요. 그러니 절대! 놈들을 자극하지 마세요.”

어지간하면 쌍마와 마주치고 싶지 않은 딕스였다.

한명이라면 모르겠지만 쌍으로 다니는 놈들이다, 그것도 까다로운 마법사와 마스터의 조합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공국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싸워야한다.

딕스는 자신과 가족의 안정적이고 행복한 현재의 삶이 깨어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 제 일처럼 죽자 살자 이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가 보여준 가벼운 한수에 라스 남작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그리하겠습니다. 딕스 님.”

“고마워요. 참, 카티온 족장이 파울을 부른 이유를 아세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그가 호출 받고 가는 바람에... 하아, 새가 되었지요. 하하.”

“카티온 족장의 이복형제들의 참수문제일 것입니다. 전날, 파울과 음지의 그림자 단이 족장의 이복형제를 도왔습니다. 족장이 파울과 그림자 단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건 당연하죠. 아미, 이번 참에 파울의 의중을 참수문제를 내세워 시험할 요량인 것 같습니다.”

라스 남작은 딕스의 기색을 살폈다.

골육상잔의 대표적인 비극이 바로 권력투쟁이다.

이제 그 투쟁의 대미가 될 피의 심판이 남았다.

이 끔찍한 이야기를 과연 저 소년은 어찌 받아들일까? 이점이 궁금한 라스 남작.

‘... 뭐지? 내 보고를 이해하지 못한 건가?’

지극히 담담하고 평온한 표정의 딕스, 이것이 남작을 놀래게 만들었다.

“카티온 족장은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요. 파울이 작정하고 그들을 도왔다면 지금의 그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텐데. 뭐, 남의 일이니 내 알바는 아니고. 알았어요. 파울이 그런 일로 갔다니 오늘 중에 돌아오겠군요.”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딕스는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활짝 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떠나려던 딕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참, 공주님은 싱그로아로 출발했습니까?”

싱그로아의 안소니 국왕은 공주를 초대했다.

동맹에 관한 내용을 상의하기 위함이다.

어차피 할 동맹 그냥 서명하고, 선포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오라 가라 한다.

안 그래도 바쁜 공주님이 더 바쁘게 생겼다.

‘왕 형님도 그냥 대충하지 뭘 그리 깐깐하게.’

“삼일 전에 출발했다고 합니다.”

“삼일 전이라, 알겠습니다. 가보세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공주가 막상 싱그로아로 갔다는 말을 듣자 딕스는 기분이 묘해졌다.

문득 안소니 국왕과 공주가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러자 기분이... 나빠졌다.

“날씨한번 겁나 덥네.”

죄 없는 길가의 돌멩이들이 그의 발길에 수난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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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스는 자이라 부족의 권역을 돌아다녔다.

한데 사람들이 그를 보자마자 상전을 만난 듯 인사를 해댔다.

이에 딕스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면인 자들이 너무 깍듯하게 인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일단은 인사에 대한 답례를 했지만, 느낌은 길가다 뺨맞은 기분이었다.

‘뭐야? 왜 내게 인사해?’

그가 어찌 알겠는가.

파울의 제자, 양자의 신분으로 그의 존재가 자이라 부족민들에게 파다하게 퍼졌음을.

딕스는 곧 이를 사소한 일로 치부했다.

그는 파울이 돌아올 동선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러자 식당의 주인과 종업원과 손님들이 다들 벌떡 일어나 그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 왔다.

얼떨결에 마주 인사한 딕스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2층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자리는 손님이 있었다, 그런데 종업원이 그 손님들에게 뭐라 한마디를 하자 모두가 불만 없이 그 자리를 딕스에게 양보했다.

‘여우에 홀렸나?’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잘 아는 것처럼 인사를 해오고, 편의를 봐준다.

이유도 모른 채 받는 친절이다 보니 얼떨떨하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다.

대기 중인 종업원에게 간단한 음식을 주문한 뒤 딕스는 창가로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창문아래 사람들이 몰려와 고개를 쭉 빼고 있었다.

뭘 그리 보나 궁금해서 내려다본 딕스는 그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식당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무슨 가시덩굴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밥이 목구멍에 넘어갈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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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질 때 쯤 파울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집으로 곧장 갈 수 없었다.

중간에 제자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딕스, 거기서 뭐하느냐?”

“사부님 오셨습니까. 제가 안주랑 술 좀 장만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파울은 수하들을 뒤로 물린 뒤 딕스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술병과 딕스를 번갈아보며 파울이 한마디 한다.

“술을 하느냐?”

“한번 마셨습니다.”

“좋은 게 아니다.”

술이 좋은 게 아님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은 딕스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요걸 마실 생각입니다. 사부님.”

요구르트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는 제자의 모습에 파울이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집에 있지 않고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사부님께 드릴 말이 있어요. 저택은 불편해서 여기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황혼이 온 세상을 물들인다.

여름 바람이 푸른 대지 위를 뛰어다니고, 온갖 곤충과 새들이 그 바람에 제 목소리를 실어 보낸다.

파울은 주변경관을 쭉 둘러보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술병을 잡았다.

“사부님, 술잔여기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잔술은 말이 안 되지. 하하.”

병째로 꿀꺽꿀꺽 마셔대는 파울의 모습은 야성미의 완결판을 보는듯했다.

술이라면 딱 질색인 딕스가 보기에도 한번쯤 따라하고 싶은 장면이었다.

‘난 요구르트로.’

호기가 치밀었지만 딕스는 자신의 주제를 알기에 요구르트로 나발을 불었다.

딕스의 그 모습에 파울이 즐거운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파울의 웃음이 여름 들판을 시원하게 달린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한 웃음이다.

파울은 앉은 자리에서 세병의 술을 비웠다.

딕스가 준비한 술이 동이 나자, 파울은 수하들에게 명령하여 술을 사오게 하였다.

그 술이 도착하고 다시 두 병을 더 비운 파울이 입가에 묻은 술 방울을 손등으로 스윽 닦은 뒤 심유한 눈빛으로 딕스를 보며 말하였다.

“뮬에서 보낸 자가 너더냐?”

딕스는 내심 놀랐다.

하지만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안다면 상황에 따라 이 자리는 사부와 제자의 사생결단의 피비린내 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잘 짓지 않는 딕스의 표정중 하나, 진지와 진중함.

상대가 알고 묻는데 이를 아니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접니다. 언제 아셨습니까?”

“안지 얼마 되지 않았다. 공국이 널 보낼 정도면 그만큼 네가 그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는 말이겠구나.”

“피곤하기만한 신뢰죠.”

이는 딕스의 솔직한 심정이다.

점점 더 많이 가졌다,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졌다.

엄청나게 강해졌다, 어려운 임무가 찾아온다.

늘어서 좋은 게 아니라, 늘어서 바빠지고 삶은 더 복잡해졌다.

“배부른 소리구나. 후훗.”

말은 이리했지만 파울의 분위기는 딕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느낌을 풍겼다.

“전 늘 배고파요. 성장기잖아요.”

“맞다, 아직 넌 성장기지. 네가 여기서 날 기다린 이유는 내 속내를 알기 위함이겠구나.”

딕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그의 손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파울이 자신과 같은 성격이라면 문제가 된다.

적이라 판단되면 바로 해치워버릴 테니까.

하지만 파울의 성격은 자신과 달리 그렇지 않다.

그랬기에 마법사인 주제에 소드마스터와 대작(?)하고 앉아 있을 수 있다.

‘나도 나름... 배포가 크구나!’

몸이 굳어가는 긴장감을 자화자찬으로 풀어낸 딕스는 파울을 주시했다.

파울은 다시 한 병의 술을 숨 한번 쉬지 않고 다 비웠다.

“사부님, 술은 많이 마시면 반드시 뒤탈이 있습니다. 어지간하면 적당히 하십시오.”

“제자의 잔소리가 예쁘구나, 그런 의미에서 너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마.”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했지만 파울의 말에 딕스는 표정 제어에 실패했다.

“듣겠습니다. 사부님.”

“제국은 내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난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보라고 말이다.”

한마디로 파울은 중립을 선포했다.

하긴 파울 정도 되는 자가 말 몇 마디에 쉽게 움직이면 그것도 좀 싸구려로 보인다.

“다행이군요. 사부님과 싸울 일이 없어서... 뭐, 일단은 이지만. 그런데 쌍마 그 놈들 제국의 하수인이 정확히 맞습니까?”

“놀라운 일이지만 맞다. 마인이 정부의 일을 돕는 경우는 흔하지 않지. 그런 점에서 이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아니, 두려운 점이라 해야 할 것이다. 딕스.”

“음... 예.”

“넌 그들을 막기 위해 이곳으로 왔겠지. 그러니 넌 그들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을게다. 하지만 난 널 돕지 않을 것이다. 네 스스로, 네 힘으로! 그들의 목적을 저지해보아라. 내 너의 성공여부에 따라서 내 입장을 분명하게 할 것이다.”

공주에 이어 파울까지 딕스에게 부담을 안겨준다.

피할 수 없는 부담이다.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감수하는 편이 낫다.

“알겠습니다. 쌍마... 제가 잡아 제국의 음모를 분쇄하겠습니다.”

방법? 그딴 건 없다.

지금부터 쌍마에 대해 조사하면서 공략 법을 강구할 뿐이다.

이래저래 머릿속만 복잡해지는 딕스다.

“쌍마도 쌍마지만 놈들과 함께 다니는 놈이 진짜 위험한 놈이다.”

쌍마를 거론할 때와 달리 제 3의 인물을 거론하는 파울의 표정이 눈에 띠게 경직됐다.

이는 딕스에겐 엎친 데 덮친 상황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딕스의 머릿속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휴우, 내 인생은... 대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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