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딕스와 파울은 고리아 마을에 머물렀다.
주민들은 이방인 파울을 환대하며 집과 좋은 음식을 서슴없이 내주었다.
소년은 파울을 향한 주민들의 과도한 친절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파울이 한 일을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과소한 편의다.
하지만 파울은 자신의 공적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게 포인트다.
그런데 이 과묵한 남자의 공적을 모두가 알고 그를 영웅처럼 대접한다.
왜일까? 이에 대해 딕스는 꽤나 깊이 생각하였다.
이건 본받을 점이다.
착한 일은 이상하게 광고하기가 꺼려진다.
그건 딕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왤까?’
소년은 이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너무 뻔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것!
파울의 차림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몬스터 피로 푹 절어 있다.
더욱이 그의 표정과 눈빛을 보면 그가 누구든 파울을 예사사람으로 보기 힘들다.
보이는 자랑!
딕스는 크게 깨달았다.
가끔은 깔끔한게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저 아저씨... 지능적이잖아!’
설마하니 소드마스터라는 인간이 칠칠치 못하게 적의 피를 몸에 묻히고 다닌다? 소년은 이를 그가 의도한 것이라 단정 지었다.
안타깝지만 자신은 저런 간계를 부릴 수 없다.
마법사가 적의 피를 옷에 묻힌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런 법사가 있다면 그 놈은 마법사의 수치다.
그러니 자신은 평생 자신의 공적을 제 입으로 떠들어야만 겨우 대접받을 수 있다.
아니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법을 시원하게 펑펑 쓰던가.
‘그... 그럴 수는 없잖아!’
제국의 천재 마법사 클라우드 폰 야니스, 공주는 그자의 질투를 경계하라했다.
그래서 대륙 최연소 견습마법사가 되었지만 입 꾹 닫고 지냈다.
과묵한 남자여, 그대의 이름은 딕스이어라.
아마, 이 과묵함이 공주에게 어필한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주가 자신을 그리 극진(?)하게 챙겨줄 이유가 없다.
뛰어난 자질에 과묵하기까지 하다.
덤으로 이젠 키도 크고 잘 생겨졌다.
‘머, 멋진 새끼잖아!’
남자가 봐도 뻑이 간다, 뻑이!
여러분 남자가 봐도 홀딱 반할 남자가 여기 있답니다! 광대 패를 고용해서 광고하고 싶다.
좋은 일은 떠들고, 나쁜 일은 입 닥친다.
이것이 현대 사회인이 삶의 바른 자세다.
소년은 일찍이 이를 터득했다.
남의 장점은 일단 눈여겨보았다가 기회가 찾아오면 즉시 시도해본다.
이것이 자신과 안 맞으면 그때 때려치우면 된다.
생각해보라 남들이 가진 한두 개의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취합했다가 이를 실천한다? 그중 이건 진짜 자신에게 안 맞다 싶은걸 버리더라도 개중 한두 개는 얻어 걸리기 마련이다.
어부가 미친 듯이 통발 뿌리고, 사냥꾼이 죽어라 덫을 놓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만 얻어 걸려라!
더 걸려도 상관없다!
한 두 개의 장점으로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훔쳐 배운 이 인생의 기술을 무려 여러 개나 갖고 산다면 최소 그들보다 배에 배는 더 잘 먹고 잘살 것 아닌가.
이게 바로 현대인의 경쟁력이 아니겠는가!
사실 지금당장은 피곤하고 성가시다.
하지만 지금 열심히 해야 한다.
왜냐! 더 나이 들어 실수하면... 사회적으로는 민폐고, 개인적으로는 망신이다.
자신의 미래는 창대 할 테니까.
역풍이 더 심할 것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꼼꼼하게 준비해놔야 한다.
딕스는 그렇게 꿈속에서 파울의 장점을 분석했다.
새벽 4시!
번쩍.
지난 19개월간 몸에 배인 습관이 휴전(?) 중에도 발동한다.
이래서 습관이란 게 무서운 것이다.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건 낭비다.
벌떡 일어난 소년은 방안의 습기로 물을 만들었다.
손발을 고생시켜서 씻는 건 3류나 하는 짓이다.
자신 같은 일류... 아니, 특급의 인간들은 자동으로 해결 본다.
이게 바로 인생의 럭셔리다.
이 새벽, 왠지... 달려줘야 할 것만 같다.
근질근질.
한숨과 함께 소년은 밖으로 나왔다.
‘에구 무시라! 왜 저래? 저 인간. 싱싱한 간 떨어질 뻔 했잖아!’
마당으로 나온 딕스는 무게를 잡고 서 있는 한 남자의 널찍한 등을 보게 되었다.
그는 전격의 파울이다.
검을 내려뜨린 채 두 눈을 반개하고 있는 그의 주변공기가 매우 심상치 않다.
요동은 아니지만 파울의 주변일대의 마나가 그를 열렬히 추종하는 것 같다.
그에게서 뻗어 나오는 위엄과 박력이... 숨소리마저 죽이게 만든다.
‘뭐지? 이 느낌은...’
대기의 환호와 떨림이 고스란히 딕스에게 전해져온다.
저 남자가 저리 서 있음으로 인해 주변의 마나가...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움직인다.
경이롭다!
마법사는 마나편식 쟁이다.
반면 기사는 잡식성이다.
저 무지막지한 잡시계의 대부 급 인사가 고리아 마을의 마나를 몽땅 흡입하고 있다.
휘류류류류륭!
스스스스스스!
펄럭!
바람이 없다.
그럼에도 소리가 난다.
지진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축이 울리고, 뿌리 없는 지표면의 모든 것들이 중력을 무시하고 떠오른다.
옷이 움직인다.
잡아당기는 자들이 없는데도... 미친 듯이.
저 남자! 지금 새로운 경지로 도약하기 위한 최종 벽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다.
전격의 파울은 그 벽을 깨트리려 한다.
여기서 그를 방해하면...!
꿀꺽.
공주가 클라우드 폰 야니스를 경계하라던 이유를 듣고 딕스는 그를 소심하고 쩨쩨한 질투쟁이로 매도했다.
한데,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는 파울을 보니... 질투쟁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 이, 이건 질투가 아냐!’
변명하지만 제 마음을 어찌 속인단 말인가.
미안함이 울컥 치민다.
딕스는 그를 방해하는 요소를 막아주는 것으로 이 심정을 대신하기로 했다.
시골 사람들은 도시사람들과 달리 일찍 일어난다.
새벽 4시! 도시인들에겐 침대에서 헤맬 시간이지만 부지런한 시골사람들에게 이 시간은 활동을 시작하는 때다.
고리아 마을은 시골이다, 그리고 몬스터라는 악재도 겹쳤다.
부지불식간 찾아온 영감을 쫓아가는 저 마스터를 위해 울타리하나 만들어주자.
소년이 만든 안개가 주변을 소리 없이 두껍게 감싼다.
소년의 허락 없이 그 누구도 파울을 방해하지 못한다.
이제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저 남자의 성장하는 모습을!
‘아씨... 배 아프네.’
자신은 진짜 착한 놈이다.
다른 놈들이었다면 무조건 방해했을 것이다.
인생 이렇게 착하게 살면 손해 보는데.
‘가만! 저 아저씨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난 어쩌지!?’
그와 자신은 휴전중이다.
이 무슨 망할 징조란 말인가.
끔뻑끔뻑.
○ 됐다!
@
“추, 축하드립니다. 아저씨.”
파울은... 엄청난 존재로 성장해버렸다.
그 눈빛과 기도와 범상치 않은 표정에서 이를 뼈저리게 알 수 있다.
그와 마주 앉은 딕스는 진짜 뼈가 저렸다.
눈이 마주치면 동공이 파열될 것만 같았다.
왜 눈에 힘을 주고 자신을 보는 걸까? 설마, 휴전 협정을 깨려는 게... 콩콩콩콩콩.
‘심장아... 심장아... 넌 콩이 아니란다. 흑흑.’
자신은 미쳤다.
왜 저 작자의 깨달음을 지켜주었단 말인가.
이건... 완전 개 오지랖이다.
방해했어야 했다.
엄청 늦은 후회! 슬프다.
그와 맺은 휴전 기간이 지나 예전상태로 돌아가면 과연 그를 피해 달아날 수 있을까? 지켜보는 것 자체만 해도 이처럼 몸이 바위처럼 무거워지는데.
“딕스.”
“옙!”
딕스는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파울의 부름에 즉각 대답했다.
그는 강해졌다.
고로 그에게 개기면 안 된다.
이 휴전기간 죽을힘을 다해 그와 친해져야한다.
‘세상은... 경쟁인데. 경쟁자를 밟는 건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섭린데. 인간아... 인간아... 이 우매한 인간아! 네 무덤을, 네가 파버렸구나!’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다.
겁나 멋지고, 졸라 무섭게 변신했다.
그 날개의 절반은 자신이 달아주었다고 봐야한다.
그가 이 공을 알아주었으면... 싶다.
왠지 파울은 원수와 은혜를 철판에 새기는 사람 같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말에 뜸이 길다.
보통 이런 경우엔 뒤끝이 안 좋은데.
바짝 긴장한 딕스에게 파울의 목소리가 찾아든다.
“... 왜지?”
“예에? 그게 무슨...”
“왜 도와주었지.”
“아, 아셨습니까?”
“난 네가 방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 그래서요?”
“베려고 했었지.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다.”
파울의 말에 딕스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새벽부터 소년의 심장과 간이... 고생 많다.
딕스는 방조한 덕분에 화를 면했다.
이제야 이를 알게 된 소년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살수가 가능할까?
“구, 구라시죠? 제가 나름 독서를 많이 해봐서 아는데. 깨달음중일 때는 외부에서 자극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이 말은 하지 말아야했다.
상대가 오해할 수도 있는데... 하지만 너무너무 궁금해서 그만 금단의 영역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지금은 휴전중이지 않는가!
다시 쫓기고 쫓는 상황이 온다면...
‘내 적응력이라면 문제없을 거야!’
그래 자신을 믿는 거야! 쿨 하게.
진중하게 소년을 바라보던 파울이 진지하게 말한다.
“개자식아.”
소년으로 인해 지난 19개월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와 고생이 그의 이 말에 잘 녹아 있다.
물론 체면상 이를 표정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냥 무게만 엄청 잡을 뿐이다.
이를 알 리 없는 딕스는.
“어... 아... 음...”
할 말이 없다.
뭔가... 이 상황... 멘탈을 붕괴시킨다.
개자식아! 라니... 자신은 사람자식인데.
너무 어이없다보니 이런 개그가 이 상황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한데 말이다.
욕을 하는 사람이 어쩜 저리 과묵하고 진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상황이 납득이 안 된다.
소년이 받은 충격과 감정을 싹 무시하며 파울이 담담하게 말한다.
“누가 자네더러 개자식이라 부른다면, 자네는 개자식인가? 아닌가?”
“다, 당연히... 아니죠.”
기분이 지랄같이 변한다.
이건 뭔가 교훈을, 가르침을 주려는 분위기인데 인용하는 부분이 진짜 개거지 같다.
만만한 인간 같으면 들이박아 버릴 건데.
“마찬가지네. 나만의 깨달음이 어찌 외부의 간섭에 부서질까? 그리 부서진다면 그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지. 오히려 독이지.”
한마디로 책이 구라다! 이 말을 왜 요따위로 한단 말인가.
심장 벌렁거리게.
전격의 파울... 똘끼 있다.
‘젠장... 거기다 강하기까지...’
딕스는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속도 메슥거렸다.
하지만 이를 내색할 수 없다.
자신은 지금 거물에게서 산교육을 받았다.
그러니 수업료를 내야한다.
짝짝짝짝!
“훌륭하십니다. 멋진 강의십니다. 제 머리에 속속 들어와 박혔습니다. 존경합니다! 업종은 다르지만 전격의 파울님을 제 인생의 사부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절 받아주십시오! 사부님!”
넙죽!
아부도... 장점이다.
제국에선 선생님.
뮬 공국에선 스승님.
리안연합에선... 사부님이라 한다.
뭐 세 호칭이 다 사용되고 있지만 이왕 하는 아부! 지방색을 따르는 게 더 효과적이다.
파울의 두 눈이 남몰래 크게 반짝인다.
엄청난 대어가 자발적으로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리안부족엔 이런 말이 있다.
사부는 제자의 또 다른 아버지다!
파울은 바라던 과실(딕스)을 드디어 딸 수 있었다.
노력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만고의 진리다.
대륙력 4246년 9월 25일, 딕스 생애 처음으로 사부를 모셨다.
훗날, 노도의 딕스는 자신의 전기에 이런 글귀를 남겨 그를 연구하던 자들에게 큰 혼란을 준다.
「아부에도... 정도가 있었음을 그때의 난, 진정 몰랐다!」
딕스가 평생을 못마땅해 하고 꺼려했던 두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날 탄생했으니, 그 첫 번째가 삭풍의 아서요, 두 번째가 전격의 파울이다.
노도와 삭풍과 전격이 이렇게 완성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이들의 만남을 이렇게 기술한다.
대륙최강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