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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스전기-66화 (66/194)

66화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산을 저 멀리 병풍처럼 뒤로 세운 우아한 풍경의 강변도시가 나왔다.

이곳까지 내려오는 동안 딕스는 자신의 생각을 공주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지금 소년과 공주는 반대편 강변에 서 있었다.

이곳의 강폭은 100미터가 넘었다.

엄청나게 큰 강이다.

각자 반대편에 서있자니 마음이 절로 찡해진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다.

전격의 파울이 누굴 쫓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녀에겐 너무도 중요한 일이 있다.

그 일이 성공하여 뮬 공국이 아리온스와 리안부족연합과 동맹을 맺고, 더 나아가 서북의 싱그로아 왕국과 서쪽의 헥센 왕국을 끌어들이는 대업.

이처럼 5자 동맹, 아니 당장 3자 동맹만 맺어져도 파울과 딕스의 일을 공주가 손쉽게 해결 할 수 있다.

딕스는 이 점을 공주에게 강조했고, 공주 역시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고 이에 수긍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최악은 파울이 공주를 쫓는 경우다.

그리고 혹시 헤어져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연락할 방법을 공주가 소년에게 알려주었다.

마도의 탑 통신소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일반 사서함과 달리 공주가 사용하는 VVIP 사서함은 옵션부터 다르다.

만약의 사태까지 감안한 대책을 나눈 뒤 이제 전격의 파울을 남녀는 기다렸다.

이곳은 강.

전격의 파울이 소드마스터라곤 하지만 적어도 강물위에서 만큼은 소년이 그 보다 한수 위다.

여기서 그를 잡을 수는 없겠지만 발목은 묶어둘 수 있다.

‘그가 반대편으로 가면 그를 저지하고 공주와 다시 달아나야한다. 이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내가 그를 넘어설 실력을 갖는 것보다, 공주가 성물을 찾는 게 더 빠를 수 있으니까.’

완전마력문장을 완성하고, 전투 골렘을 소환한다면 소드마스터와의 정면대결도 두렵지 않다.

그러나 이는 요원하다.

하지만 공주가 하는 일은 실현가능성이 높다.

그간 지켜본 공주는 확신이 없는 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똥물(파울)을 뒤집어 써야 할 상황이 온다면 자신이 써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안전 빵이다!

슬슬 전격의 파울이 다가온다.

소년의 속에 있는 물의 오메가 핵도 긴장했는지 마나의 수면으로 순식간에 부상하여 언제든 힘을 발휘할 준비를 마친다.

강엔 많은 어선과 상선 등이 수시로 오갔다.

이런 상황에서 파울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힘들다.

상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딕스는 단숨에 알아보고 있었다.

이곳은 물의 힘이 강성한 곳.

‘저기다!’

꾸욱.

긴장한 딕스는 주먹을 쥐었다.

공주와 소년에게 생이별(?)의 아픔을 준 전격의 파울이 보트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망설임도 없이 곧장 딕스가 서 있는 강변으로 노를 저었다.

물의 척후가 전해준 소식에 딕스는 안도했다.

‘공주님, 공주님 손에 제 목숨이랑 조국의 안녕이 달렸습니다. 무조건 성공하세요. 저 딕스, 멀리서나마 기도하겠습니다.’

저 무시무시한 인간에게 잡히지 않고 언제까지 숨바꼭질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딕스는 움직였다.

물론 그냥가지는 않았다.

파울의 보트를 가볍게 침몰시켜주었다.

여기에 서비스로 강물로 그를 휘감아 강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인간이라면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한데, 이 인간은 강바닥을 기어서 강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이를 본 딕스는 화들짝 놀라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전격의 파울... 제대로 열 받았다.

그 포스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후덜덜.

‘벌집을 건드렸구나!’

... 무섭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공주는 그가 신경도 쓰지 않을 테니까.

미끼도 이만하면 최상품 미끼가 아닌가.

‘공주님, 파이팅!’

@

대륙력 4246 9월 20일 오전, 이름 모를 숲.

딕스와 전격의 파울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어느덧 해를 넘었다.

장장 19개월의 대 여정이었다.

이제 소년의 나이 15세, 3개월 후면 16세가 된다.

소년은 파울과 이 기간 동안 얼굴을 대면한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전격의 파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왜냐면 그의 생활습관에 맞춰서 소년이 살았기 때문이다.

이는 어쩔 수 없다.

육식동물이 기침했는데 영양이 잠자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전격의 파울은 시계처럼 정확한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다.

이 남자는 삼시세끼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밤 10시만 되면 반드시 잤고,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가끔 잠자는 이 시간대에 깨서 딕스를 노리는 경우도 있다.

딴에는 머리를 굴렸지만, 소년은 잡히지 않았다.

잠을 자면서도 항상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소년의 오메가 핵이 물의 척후를 진두지휘하며 일이 발생하면 즉각 그를 깨워준 덕분이다.

오메가 핵은 주인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힘과 활동량을 늘리기 위해 소년의 마나 저수지를 그간 꾸준히 확장했다.

이로 인해 19개월 전의 마나 저수지와 지금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니 파울의 노력은 매번 헛수고에 그치고 말았다.

오죽하면 지난 19개월 간 서로의 얼굴을 멀리서도 보지 못했겠는가.

한명은 마스터의 육감각인에 의해 쫓고, 쫓기는 소년은 물의 척후를 통해 미리 알고 번번이 도망친다.

어쨌든 규칙적인 이 추적자 덕분에 딕스의 일과는 놀랍도록 단순했고, 엄청나게 건실했다.

소년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열심히 달리고, 6시 30분에 아침을 먹고, 1시간 30분 후인 8시부터 또 달리다가,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2시 30분에 또 달리다가 7시 30분쯤에 저녁을 먹고, 9시쯤에 가볍게 한 시간 달린 후 잠을 자면 된다.

한마디로 먹고 뛰고 자고했다.

물론, 이것이 다가 아니다, 소년은 열심히 뛰면서 마법사가 되기 위한 완전마력문장 수련도 병행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죽기 살기로 매달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 수련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소년은 왜 말을 타지 않는 걸까?

이러한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소년의 사정을 잘 모르기에 가지는 생각일 것이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성실하게 쫓아오는 소드마스터! 이런 그를 뒤에 두고 익숙하지 않은 승마를 했다가 낙마라도 해봐라.

이는 어리석은 자충수다.

그러니 먹고 뛰고, 자고 뛰고 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소년은 대해 같은 체력과 말처럼 빠른 다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지난 19개월간 이 반듯한(?) 생활 덕분에 딕스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유연하고 탄탄한 오밀조밀한 근육이 전신을 도배했고, 키도 무려 170cm가 되었다.

작년 공주와 강변에서 헤어질 때 그의 키는 고작 145.1cm에 불과했다.

폭풍 성장! 이 말이 무색하지 않다.

먹이고 재우고 굴린다!

애들은 그러면 확실히 잘 큰다.

“아따, 고놈 말끔하고 잘생겼다!”

전면 전신거울용 물의 막에 자신을 비쳐보며 딕스는 자화자찬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파울 때문에 초반 3개월은 피골이 상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활에 익숙해져서 물의 척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시간이면 재깍재깍 움직이게 된다.

단순반복의 힘든 일상.

그 일상에 최근 변화가 생겼다.

바로 이 짓이다.

“헐헐헐.”

한 달에 한두 번 공주와 연락한다.

그때마다 소년은 마탑의 여직원과 이곳을 방문한 여성고객들의 끈적끈적한 눈빛을 무수히 받았다.

처음엔 잘 몰랐다가 이제야 그 이유를 자각했다.

영원 하라, 외모지상주의!

소년은 대기에 분포된 수분을 모았다.

그 양은 양동이 하나를 가득 채울 양이다.

이것을 이용해 소년은 샤워를 했다.

옷 입은 채로.

“사람은 자주 자주 씻어줘야지. 암. 아직, 20분쯤 남았구나.”

추적자가 움직일 시간이 다가온다.

그래도 모르니 물의 척후는 꼼꼼하게 배치해두었다.

이제 이 20분으로 무엇을 할까? 도망자인 소년은 물건을 들고 다니는 게 사치였다.

그래서 입고 있는 옷이 전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뛰는데 익숙해지자 부피가 작고 가벼운 물건을 작은 배낭을 하나사서 넣고 다녔다.

이 배낭엔 여러 양념이 들어가 있다.

물의 힘을 사용하면 사냥도 쉽고, 조리도 쉽지만 요리의 맛은 내기 힘들다.

그러나 양념이 있으면 달라진다.

이 배낭엔 그의 입맛을 고려한 양념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이중 하나.

약초를 넣은 꿀 단지(가죽으로 제조)를 꺼낸 뒤 다시 대기 중에서 깨끗한 수분을 모아 재 정제한 뒤 적당량 이곳에 탄다.

컵 따위 필요 없다.

손 쓸 필요도 없다 입만 벌리면 알아서 꿀물이 적당량 기어들어온다.

소드마스터라는 어마어마한 거물이 추격하는데도 도망자인 소년의 삶은 이처럼 럭셔리하다.

한잔의 꿀 차로 소년은 여유를 마음껏 부린다.

자신이 물의 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어쨌을까? 거지도 완전 상거지 꼴이리라.

“이래서 남자는 능력이야. 하하하.”

처음엔 이 생활이 지독하게 싫고, 무서웠다.

그런데 적응하고 보니 크게 나쁘지 않다.

까짓것 군대 3년 다녀 온 셈 치면 된다.

어차피 자신은 재능자라 군대도 면제 아닌가.

뮬 공국은 국왕 직할지의 백성과 귀족이 다스리는 영지의 영지민(평민)은 군역의 의무가 있다.

딕스는 관직이 있고, 재능자이고, 준 귀족이다.

면제사유가 무려 세 가지나 된다.

뭐, 이것이 아니더라도 재력이 있으니 군역면제권을 사면 그만이다.

딕스의 통장엔 아직도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온다.

그냥 월급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공주가 객지에서 밥 굶지 말라고 경비를 따로 입금해준다.

앞으로 2년만 더 쫓겨 다니면 수도에 저택하나 장만하는 것도 꿈이 아닐 것이다.

이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반전이 있기에.

공주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늦어도 1년 안에 이 생활도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공주는 시바온 부족과 물밑 협상중이다.

그 협상이 성공하면 공주는 연합에서 강대한 축에 속하는 시바온을 친 뮬 성향의 부족으로 만들 수 있다.

공주에게 약점이 잡힌 시바온 부족이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이처럼 대외적으로 뮬 공국의 입장은 몰라보게 나아지고 있다.

조만간 이것이 세상에 알려질 테고, 제국은 자신들이 무시하던 공국에 뒤통수를 맞으리라.

슬슬 시간이 됐다.

다시 뛰어야 한다.

“으쌰!”

힘차게 기합을 지르고 적당히 스트레칭도 한다.

달리는 것도 요령이 있다.

그건 호흡법이다.

소년은 기사인 아버지로부터 마나호흡법을 배웠다.

소년의 자질이 정확하게 판명나지 않기 전 어릴 때 일이다.

시골 남자아이들이 커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는 길은 두 가지다.

행정관료 아니면, 영지를 지키는 기사다.

딕스의 집안은 변변치는 않지만 기사 집안이다.

그래서 나름 마나호흡법이 있었고, 소년과 그의 두 형들 역시 어릴 때부터 그것을 배웠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소년은 그것을 6개월 정도 배우다가 그만두었다.

이유는 그가 체질적으로 기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렸던 마나호흡법이 지금에 와서 빛을 바라고 있었다.

소년은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보이지만 전격의 파울도 뛰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소년이 달림과 동시에 물의 오메가 핵이 움직인다.

완전마력문장수련이 달리기와 함께 병행되는 현상이다.

예전 소년은 그린스 마을에서 위험한 홍수를 겪었다.

이곳에서 그는 짧은 순간 많은 마력문장을 그렸다.

이는 소년의 기억에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오메가 핵은 이를 완벽하게 기억했다.

이 때문에 수련 중 발생할 오류의 폭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소년이 문장을 그리면, 오메가 핵이 그 오류를 잡아준다.

영혼의 반려자!

딕스에게 물의 오메가 핵이 바로 그러한 존재다.

말없이 내조에 힘쓰는... 조강지처.

그리고 소년을 쫓는 전격의 파울.

그도 지난 19개월 예상 못한 일을 겪었다.

마스터 초급에서 머물러 있던 그가 최근 중급의 벽을 보게 된 것이다.

파울이 이러한 계기를 맞지 않았다면 딕스를 추격하는 일을 어쩜 중간에 포기했거나, 혹은 외부의 힘을 빌려 잡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금 놀랍게도 동반성장 중에 있었다.

파울은 알까? 자신의 이 행위가 장차 노도의 딕스라 불리는 위대한 마법사에게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끙, 또 안개구나!”

파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 앞에 안개가 깔려 있다.

저 안개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저걸 뚫지 않고서는 추격이 불가능하다.

마스터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하며 안개 속으로 몸을 날린다.

‘오늘은 또 어떤 맛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보마. 하하하.’

쫓기는 소년은 럭셔리하게 도망치고, 쫓는 자는 즐긴다.

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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