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클라우드 폰 야니스.
카페니스 제국 4대 공작가문 중 야니스 가문의 차남으로 황제로부터 깊은 총애를 받는 천재 마법사이다.
십대에 자신만의 완전마력문장을 완성하여 제국은 물론 대륙의 모든 마법사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인물.
이런 그에게도 깊은 고충이 있었으니, 바로 서자의 굴레였다.
법대로 하자면 클라우드는 준 귀족의 대우만 받을 수 있으며, 지금처럼 야니스 가문의 성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런 그가 공작가문의 차남으로 인정받고, 야니스 성을 사용할 수 있었던 배경엔 오직 그 자신의 능력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그도 서자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야니스 가문의 사람인건 인정받았으나 후계자는 결코 될 수 없다!
두각을 발휘하지 못했을 때의 클라우드의 삶은, 주변인들의 입을 빌리자면 고독한 가시밭길이라고 한다.
지금은 다들 그 때의 일을 쉬쉬한다.
장차 제국 제일의 마법사가 될지 모를 클라우드의 위엄이 두려워서다.
천개의 눈.
야니스 가문이 운영하는 대내외정보조직이다.
왕국도 아닌 제국의 4대 공작가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힘보다 안으로 감춰진 힘이 더 강성한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엘리자베스 공녀의 사건현장을 중심으로 사방 100킬로미터를 수색 완료했습니다. 공녀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계획적인 잠적으로 가정하여 공녀의 동선을 추정하여 추적했으나, 이 역시 실패입니다. 공국 내 친제국파의 협조를 구해 아리온스에 나가 있는 공국 출신 주요 인사들을 감시한 결과 그들에게서도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상이 현재까지 진행된 공녀에 대한 조사결과입니다. 참고로, 공녀의 실종기간 중 아리온스 왕국의 드리건 반 브레이크 후작의 아들과 손자가 자국 내 서쪽 도시 앙할 시에 들렀습니다. 그 외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조사의 최종결과.
클라우드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질 최고의 조건을 갖춘 여인이었다.
그녀를 얻음으로서 가슴에 응어리, 서자이기에 멈출 수밖에 없는 그 한을 풀려고 했다.
한데, 자신의 한을 풀어줄 그 여인이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그녀를 만나러간다는 소문이 나면서 벌어진 사고를 어찌 우연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친께 부탁하여 천개의 눈을 발동시켜 공주를 추적하게 했다.
그 결과에 대한보고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살아 있다.’
클라우드의 직감이 꿈틀대며 그렇게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다 잡은 물고기였다.
새장에 가두어둔 새였다.
한데, 그 물고기가, 새가 달아나버렸다.
급한 마음에 서두른 감이 없지 않으나 설마하니 이런 방법으로 그녀가 달아날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공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 행동을 통해 버렸다.
나라도, 부모도, 자신의 지위도.
그 모든 걸 버린 공녀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
과연 그녀는 자신이가진걸 진정으로 다 버리고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을까? 그것 밖에 안 되는 여자였던가? 자신이 본 그녀의 눈빛은 그게 아니었다.
그 눈빛에는 강력하고 굳은 의지가 있었다.
그런 여자가 포기하고 달아났다.
적어도 클라우드는 이를 믿지 않는 쪽이다
“그녀가 접촉하고 이용할 제 3의 세력은 없나?”
“공국의 정보조직 검은 부엉이의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제 3의 세력이 있다면 적어도 그들이 한번쯤은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지켜본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들어보시겠습니까?”
“말해봐.”
“공자님께서 의심하시는 부분이 사실이란 가정 하에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일이 공녀의 계획이라면. 그녀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잠적했을 겁니다. 또한, 그 일을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더 오랜 시간을, 더 많은 투자를 해야 공녀의 꼬리를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야니스 가문이 운영하는 천개의 눈은 클라우드의 사조직이 아니다.
그의 부친에게 잠시 빌렸을 뿐이다.
이이상 천개의 눈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재사용하겠다고 부친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기다려주지. 그대가 무엇을 쥐고 오는지.’
결정을 내린 클라우드는 자리를 박차듯 일어났다.
“공녀에 대한 추격을... 오늘부로 종료한다.”
저벅저벅.
카페니스 제국의 4대 공작가문 중 일문 야니스.
공주는 야니스 가문의 집요한 추적을 그렇게 따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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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스!”
“어라? 누난, 여기 왜 있어?”
금붕어를 사러 왔던 딕스는 뜻한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금붕어를 대체할 생물로 쥐 5마리를 구입하였다.
시장에서 왜 쥐를 팔까? 그것이 궁금했지만 문화적 차이로 결론 내버렸다.
참고로 그가 구입한 쥐는 이곳에서 식용으로 쓴다.
그렇게 실험을 위해 구입한 쥐를 들고 여관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엉뚱한 이를 만났다.
지금쯤 그녀는 19금 댄서 누나들과 특대 가족탕에서 놀고 있을 시간인데.
“볼일 보러 왔지. 그런 넌? 그건 뭐야?”
“이거?”
쥐가 든 바구니를 들어 보이는 딕스의 표정이 살짝 구겨진다.
그러나 그 구김은 금세 웃음으로 승화된다.
짐승도 자신의 발톱을 숨긴다.
하물며 사람이 어찌 경박스럽게 행동하겠는가.
자고로 삽을 쥐고 있으면 삽질을 하게 되고, 곡괭이를 쥐고 있으면 꼭 곡괭이질을 하게 된다.
그러니 고생을 하지 않기 위해 빈손일 필요가 있다.
“응.”
“쥐야.”
“......!?”
딕스는 공주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어라, 저 대범하신 공주님이 지금 쥐를 무서워하는 건가? 소년은 의외의 수확을 얻은 상인처럼 히죽 거렸다.
뭐, 그렇다고 이 쥐를 이용하여 공주를 울릴 생각은 없다.
지금은 서로 말을 트고 누나 동생하지만 일이 끝나고 궁으로 돌아가면 다시 예전처럼 공주마마, 소인이 어쩌고저쩌고 해야 한다.
그 날을 위해서라도 뇌리에 깊이 남을 장난으로 그녀를 난처하게 하면 안 된다.
대단히, 무척, 많이, 크게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계급이 깡패인 것을.
“노, 놀라지 마. 시장에 팔아서...”
판다고 다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 산 이유를 밝혀야 한다.
공주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한다.
그 표정은 예전 고향마을 여자애들이 자신이 손에 쥔 것을 무조건 경계하던 것과 판박이다.
설마하니 이걸 던지거나 아니면, 치마 속에 집어넣는 그런 만행을 그때처럼 저지를까.
대체 사람을 어찌 보고 공주께선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보시는 걸까.
딕스는 슬퍼졌다.
‘나도 이제 14살인데. 흠, 씁쓸하군.’
“왜, 왜 샀는데! 그 흉측한 것을.”
딕스는 쥐가 든 바구니를 냉큼 등 뒤로 감추었다.
지금은 순발력이 필요한 때다.
“쥐 경주라고 들어봤어?”
“경주라면... 빠름을 겨루는 것 말이니.”
“맞아, 오면서 보니까. 이걸 이용해서 내기 같은걸 하잖아. 그래서 나도 해볼까하고 샀어.”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딕스가 재물에 유독 취약하다는 것쯤은 공주도 알아차리고 있었다.
어린 게 없이 살다보니 그러려니 했다.
안된 마음에 동부에서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눈 딱 감고 도와주었다.
거기서 꽤 많이 챙겼을 텐데 아직도 만족을 못하고... 원정도박이라니.
대체, 저 아이를 어쩔꼬? 싶다.
“휴우, 그건 나중에 하고 나랑 걸을래?”
“어.”
이 쥐를 상대로 실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지만 공주의 표정을 보니 차마‘싫은데.’라고 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시끄러운 시장 통을 벗어나 한적한 주택가 외곽까지 오게 되었다.
적당한 곳에 두 사람은 앉았다.
“딕스.”
“응.”
“네 큰형이 돌아왔대.”
공주가 무슨 말을 할까 조마조마했던 소년은 그녀의 말에 순식간에 진중한 모습이 되었다.
“이유가... 이유가 뭐랍니까? 그딴 편지 하나 달랑 보내고 사라진 이유요.”
그 편지를 받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자신이 알던 것과 달리 참화가 당장 닥치면 어쩌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행히 집안에 별일이 없어 한시름 놓았지만, 고향으로 가는 내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무척 무서웠었다.
한데, 그 모든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큰 형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부모형제간에도 정산은 철저히 해야 하는 법!
여자에 푹 빠져 학업을 등한시한 소년의 작은 형 마크, 소년의 청탁을 받은 교관들로 인해 마크는 혹독한 교육을 받고 있다.
말이야 졸업 때까지 힘차게 굴리라고 청탁을 했지만 마음이 여린 관계로 몇 달만 고생시키려했는데.
상황이 이러니...
‘... 작은 형 내가 갈 때까지 참아라. 내가 가면 당장 금제를 풀어줄게.’
언제 돌아갈지는 미지수.
“몬스터 섬멸대라고 아니?”
“음... 그거, 정부의 의뢰를 받고 몬스터를 상대하는 민간조직 아닌가요?”
“맞아. 네 형이 그곳에 있었대.”
“왜요? 왜 그런 위험한 곳에 형이 간 거죠! 도대체 왜 그런 황당한 짓을...!”
엘리자베스가 작게 헛기침을 한 뒤 소년의 큰 형이 어떤 마음으로 몬스터 섬멸대에 들어갔는지 이야기해준다.
“가난하고 배경이 없는 아카데미졸업반 학생들 중 절박한 이들이 몬스터 섬멸대에 단기로 입대해. 아카데미는 이들의 출석일수를 인정해. 그리고 그들이 몬스터 섬멸대에서 공적을 쌓으면, 공적증명서를 발부해 주지. 그 증명서는 졸업생의 취업에 유리한 경력으로 작용해. 네 큰형이 너에게 거짓 편지를 보낸 건 널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싶어.”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는 곳이 몬스터 섬멸대다.
그러니 어찌 막냇동생에게 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알린단 말인가.
내왕이라도 자주 없다면 말없이 같겠지만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이주에 한 번씩 꼭꼭 찾아오는 막냇동생이다 보니, 테일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핑계로 잡은 것이다.
딕스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걸게 없어 목숨을 걸다니!
‘바보같이 그냥 얌전히 있으면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텐데.’
소년은 모르리라, 자신으로 인해 동생의 발목이 잡히는 것을 알게 된 형의 심정을.
동생에게 의지하는 형이 아니라, 의지가 되고 싶은 형의 진심을.
“넌 든든하고 멋진 형제를 두었구나.”
엘리자베스 공주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그녀의 깊은 진심이 엿보인다.
무남독녀, 그것도 막중한 책임감을 떠안고 사는 그녀에게 딕스의 큰 형 테일은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테일은 지금 그 자신의 노력으로 장차 공국의 주인에게 제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물론, 딕스라는 연결고리가 있어 가능했다.
소년이 없었다면 테일에 대해 공주는 알아보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 어디 다친 데는 없데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형의 마음을 떠올려보니 슬픔이 치밀고 올라온다.
그 누가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일에 초연할 수 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불면의 밤을 보내며 깊은 고심을 했으리라.
“다친 곳은 없대.”
“그렇군요. 고마워요. 공주님.”
“딕스, 여긴 왕궁이 아니다. 호칭과 말투를 조심해.”
“아, 알았어. 어...?”
“왜?”
“바, 바구니에 구멍이...!”
공주의 눈길이 소년이 보는 곳으로 간다.
과연 그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저 바구니는 쥐를 담은 곳.
그럼, 쥐는?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다섯 마리의 쥐 중 한 마리가 방향 치인지 공주의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도 동굴(?)이 있긴 하지만 제 놈이 들어갈 곳은 아닌데.
‘난... 죽었다!’
딕스의 혈색이 급변하고, 볼 살이 쭉 빠진다.
소년은 쥐를 잡기 위해‘훌렁!’공주의 치마를 뒤집고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결코 딴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어? 저 손바닥만 한 천 쪼가리는... 저것은... 헐~ 대박!’
쥐를 잡아야하는데... 쥐는 보이지 않고 엉뚱한 것만 보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빨리, 빨리! 어어어엉엉엉엉!”
‘공주님 좀 조용히 해주세요. 지금... 집중하는 거 안보임?’
공주를 울렸다.
공주를 기절시켰다.
그런데... 좋다!
헤벌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