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딕스전기-41화 (41/194)

41화

소년의 입에선 연방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도도한 물줄기처럼.

“그리 넘어졌다고 팔이 부러질 수 있나?”

신기하다는 눈으로 소년의 팔을 바라보는 엘리자베스 공주와 그녀의 시녀 장 루시, 그리고 공주 이외엔 매사에 무관심한 삭막한 여기사 스칼렛 르 헬싱 경까지.

소년은 똥줄이 탈만큼 몹시 아팠다.

이네들의 구경거리가 된 소년은 분했지만 이를 내색할 수 없었다.

저들 모두 자신보다 다 잘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매번 느끼지만 인생은 참 겸손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팔은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물론, 쉽게 부러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흔히 찾을 수 없다.

“저도... 황당해요. 공주님.”

“조금만 참아. 포션이 도착하면 금세 나을 거야.”

엘리자베스 공주의 말에 딕스는 감격했다.

포션이란 상급 몬스터의 정제된 혈액이 들어가는 고가의 치료제다.

질병을 제외한 내외 상에 특효를 발휘한다.

딕스의 부러진 팔을 위해 공주는 고가의 포션을 사오도록 지시했다.

이제나저제나 애타는 심정으로 포션만 기다리는 소년이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보잘 것 없는 절위해 그 비싼 포션을...”

“미안하지만... 그건 네가 부담하는 비용이야. 그린스 복원사업에 돈을 너무 많이 써버렸거든. 다음에는 내가 살게. 꼭!”

부러진 팔의 고통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소년은 얼굴한번 찡그리지 않고 내내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웃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딕스의 이러한 태도를 사람들은 사내답고 의연하다! 라고 생각하며 호감을 느꼈다.

단점을 보완하자 오히려 이것이 장점이 된 긍정적인 경우다.

의미심장하고 불길한 말을 공주의 아름다운 입술에서 들은 것 같다! 라는 생각에 딕스의 웃음 진 얼굴이 그 상태 그대로 일정시간 경직됐다.

놀란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소년의 표정관리능력이 이젠 경지에 이르러 있다.

소년의 눈매가 마치 등을 세운 초승달처럼 변한다.

괴롭고 놀랍고 황당하고 슬프고 할 때 더 크게 웃어라!

지금 소년은 놀라움과 황당함과... 상실의 충격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그래서 소년의 두 눈은 완벽한 웃는 실눈이 되어 있었다.

그만의 더 크게 웃는 방법이다.

“딕스는 그 눈일 때가 참 예뻐. 호호.”

공주가 말한다.

“그러게요. 저 눈 참 신기하고 귀엽네요. 공주님.”

좋아 넘어가는 표정으로 시녀 장 루시가 말한다.

그리고 과묵하고 삭막한 공주의 신변을 보호하는 일 외에는 전혀 관심조차 주지 않는 냉정녀 스칼렛, 차갑고 도도한 그녀의 표정이 한바탕 크게 꿈틀거렸다.

그건 웃음이다.

이제까지 딕스를 소 닭 보듯 대하던 여기사가 처음으로 그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반응을 보였다.

이는 엄청난 일이다.

공주의 수호기사 스칼렛을 아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현재 딕스에게 이들의 반응은 전혀 즐겁지도 반갑지도 않았다.

포션을 공주의 돈이 아닌 자신의 돈으로 사야한다는 그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포션 한 병의 가격은 15골드로 딕스가 매달 받는 급료의 딱 절반이다.

진작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일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3골드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3골드, 이 돈을 다 자신이 내느냐! 결코 아니다.

왕실에 소속된 근위기사대와 재능자는 의료보조금적용대상자다 그래서 치료비의 70%까지 지원받는다. 치료비가 3골드면 실제 나가는 돈은 1골드도 안 된다.

안타깝게도 포션은 의료보조금지급품목이 아니다.

너무 고가여서.

‘이... 무급휴가라서 두 달은 손가락만 빨아야 할 상황인데.’

참고로 알뜰한 공국의 재정부는 소년이 신청한 휴가를 무급으로 처리했다.

공주의 빽(?) 전혀 없다.

선택도 결과도 오로지 당사자가 책임져야한다.

성년 미성년자 따위에 구분을 두지 않는 냉정한 공국의 법이다.

딕스는 깊은 후회와 처절한 슬픔을 느꼈다.

“치, 칭찬 감사합니다.”

“조금 있으면 패트릭 경이 올 거야.”

“공주님, 다녀왔습니다.”

공주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패트릭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온다.

참고로 공주 일행이 묵고 있는 곳은 헤라 시의 관사저택이다.

딕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헤라 시의 시장은 현재 휴가 중이라 소년은 그를 만나지 못했다.

내심 인심 좋은 시장에게 용돈을 기대해보았던 소년은 깊은 실망을 느꼈다.

수도를 떠난 이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제대로 되어가는 일이 없다.

‘첩첩이 불행이네.’

고향으로 가는 길이 진심으로 무서워진 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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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것도 조심조심해야 했다.

몸에 진동을 주는 미약한 행위도 팔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팠기 때문이다.

한데, 그 아팠던 팔이 포션 반병에 말끔하게 나았다.

사람들이 기적의 물약이라고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몸소 체험했다.

포션 바른 남자.

이 럭셔리한 대열에 딕스는 합류했다.

딕스는 관사저택을 나섰다.

그의 호위를 위해 기사 하일스가 붙었다.

소드익스퍼트를 호위로 대동하고 있으니 든든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헤론 시 마도의 탑.

“반갑습니다. 고객님, 헤론 시 마도의 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도의 탑 정문 안내인들의 멘트는 어쩜 이리도 똑 같을까.

몰개성하다.

하지만 이들의 인사에 일일이 반응하고 신경 쓰는 자들은 없다.

개성 없는 안내인의 멘트처럼 마도의 탑 내부역시 판박이다.

딕스는 어렵지 않게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아름다운 여직원의 환대를 받으며 딕스는 자리에 앉았다.

그가 찾은 곳은 마도통신소.

“통신사서함을 확인하려고요. 확인 부탁합니다. 여기 입금표입니다.”

이 서비스는 발신자의 요청에 따라 수신자의 편지를 받아서 사서함에 보관했다가 요청 자가 열람하는 서비스다.

고가의 이 서비스를 딕스는 얼마 전에 큰맘 먹고 신청했다.

날짜 계산을 해보니 헤라 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 저녁 먹기 전에 짬을 내어 마도의 탑으로 왔다.

부디 집에 별일 없기를... 조마조마한 심정을 내심 지울 길 없는 소년이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고객님.”

여직원이 딕스가 내민 입금표를 갖고 우측 문안으로 사라진다.

딕스는 그녀가 올 때까지 주변을 둘러보며 기다렸다.

얼마 후, 닫혀 있던 그 문이 열리고 예의 그 여직원이 입금표를 도로 갖고 나왔다.

“고객님, 사서함은 비어 있습니다.”

이리 말하며 입금표를 다시 내미는 여직원.

딕스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집에 기별을 넣었는데도 소식이 없다.

이건 소식을 넣을 수 없을 만큼 긴박한 일이 집에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딕스다.

말끔하게 다 나은 그 팔이 다시 부러진 듯 아파온다.

기분 탓이다.

무거운 심정으로 마도의 탑을 나선 딕스는 기분을 다스리기 위해 걷기로 했다.

기사 하일스가 소년의 뒤를 말없이 따른다.

“악! 사,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엉엉엉.”

고민에 잠겨 걷던 딕스는 이 소리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가 우락부락한 남자들에게 잡혀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다들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괜한 시비에 휘말려 피해보기 싫다는 뜻이다.

딕스 역시 괜한 시비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어? 리에 씨네.’

이전 자신의 수발을 들어주었던, 예쁘장한 얼굴만큼이나 몸매와 각선미가 예술이던 두 소녀 중 한 소녀가 곤경에 빠져있다.

관사저택에 일하는 자들에게 두 사람에 대해 물었지만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한데, 그 소녀가 지금 대로에서 웬 남자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는 사람이 곤경에 처해있다.

기사 하일스가 뒤에 있으니 정의감을 발휘해도 괜찮을 것이다.

이리 생각한 딕스는 놈들의 앞길을 당당하게 막았다.

“멈춰라!”

남자들이 이런 딕스를 보며 협박하였다.

“뭐야? 쥐방울만한 새끼가 어따 대고 반말이야!”

“눈깔에서 잉크 물 쪽 뽑아버리기 전에 눈깔 깔고 찌그러져라.”

“요즘 애새끼들은 똥간에 개념을 쳐 싸고 돌아다니나. 내참 기가 막혀서.”

개성 넘치는 세 녀석들의 반응에 딕스는 울컥했다.

왕실마법부를 상징하는 이 파란 관복이 저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수도에서 이 관복을 입고 다니면 한수 양보는 기본으로 받았는데.

역시 지방이라 까막눈이 많구나! 라고 생각한 딕스다.

그러나 여기에 꿀릴 그가 아니다.

뒤에는 소드익스퍼트 기사인 하일스가 신속한 출동준비를...

‘.....!?’

있어야 할 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무슨 참담하고 막막한 현실이란 말인가.

“아! 고, 공자님!”

딕스를 단번에 알아본 리에의 얼굴에 희망의 무지개가 아름답게 걸려있다.

그녀와 달리 딕스는 죽을 맛이었다.

‘대체, 이 사람 어디 간 거야?’

신전에 가서 헌금 좀해야 연속되는 이 불운이 걷힐까?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다.

“공자라고? 흠, 귀족가의 자제요?”

쥐방울, 눈깔... 똥간에 개념을 쳐 싸고 돌아다니는 꼬맹이로 부르며 초반 대놓고 무시하던 자들이 리에의 호칭 한마디에 대번에 분위기전환을 보인다.

공왕에게 직접 훈작의 작위를 하사받았다.

반쪽자리이긴 하지만 평범한(?) 영주나 대 귀족에게 하사받은 훈작과는 급수가 다르다.

그리고 자신은 재능자가 아닌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자신의 것이지만 저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그렇다’라고는 답할 수 없다.

귀족사칭 죄는 중죄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누구인데 백주에 아녀자를 납치하는 것이냐! 내 공왕전하께 벼슬을 받은 관인으로서 결코 이를 묵과할 수 없도다!”

“관인?”

“그렇다. 왕실마법부에 소속된 재능자가 바로 이 몸이시다! 당장, 너희가 잡고 있는 여자를 풀어주지 않을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기사 하일스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빨리 와주길 빌면서 딕스는 크게 소리쳤다.

“이 어린새끼가 미쳤나. 그럼, 왕궁에 있어야지. 왜 여기 있어. 이 어린놈의 새끼가.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가보다.”

딕스와 말을 섞고 있던 남자가 좌측에 있는 남자에게 눈짓한다.

그러자 이 남자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딕스의 멱살을 움켜잡는다.

그 힘에 위로 끌려간 딕스의 두 다리가 허공에서 대롱거린다.

“컥! 나... 나 진짜야!”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목소리로 딕스는 겨우 소리쳤다.

남자는 이참에 딕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심산인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딕스의 뇌리를 스쳤다.

연이어 자신을 찾아온 불행을 떠올려 보라.

오늘 요단강 뱃사공을 인맥에 추가할 수도 있다.

일단, 놈의 손에서 벗어나야한다.

하지만 어떻게? 딕스의 얼굴이 위로 향한다.

베란다화분에 누군가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리에는 울며불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행인들의 회피가 이제는 소름끼치도록 무섭기까지 하다.

지이이이잉!

물의 핵 오메가(?.)가 움직인다.

핵은 소년의 의식에 구축된 마나저수지에서 힘을 끌어다 쓴다.

그 힘은 소년의 의식을 넘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한다.

화분으로 떨어지던 물과 화분이 머금고 있던 물이 결합하였다.

덩어리진 그 물 덩이는 곧장 소년의 숨통을 끊어놓을 듯 멱살잡이를 한 남자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남자는 대경했다.

얼굴과 머리통이 물 덩이 안에 갇혔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이 남자의 두 동료와 주변에서 구경만 하던 비겁한 행인들 역시 깜짝 놀란다.

털썩.

딕스는 남자의 멱살잡이에서 간신히 풀려났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세차게 찧은 게 아팠지만 죽다 살아난 주제에 이에 불만을 터트릴 수 없다.

마른기침을 격렬하게 토해내며 소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물의 오메가 핵은 소년의 의지에 따라 여전히 움직였고, 그 움직임은 딕스의 멱살을 잡았던 남자의 얼굴을 여전히 감싸고 있었다.

남자는 물 덩이를 떼어내려고 별짓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남자의 동료들이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남자의 얼굴을 감싼 물은 전혀 줄지도 않았고, 형태가 일그러지지도 않은 채 남자를 고통스럽게 죽여가고 있었다.

“이리와요!”

딕스가 리에을 향해 소리쳤다.

리에는 무작정 그를 향해 뛰어왔다.

그녀를 뒤로 숨긴 딕스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웃음기를 거둔 소년의 얼굴은 지옥에서 막 지상계로 상경한 악귀를 닮아 있다.

주변에 물이 있다.

눈이 아닌 육감으로 느껴진다.

지금 그 물을 움직인다.

‘개자식들! 다 죽여 버리겠어!’

죽음의 고통을 느꼈다.

예지몽에서 죽음을 경험했지만 그건 제 삼자의 눈으로 본 것뿐이다.

지금처럼 생생하게 느껴보긴 처음이다.

격분한 딕스의 의지를 전달받은 물의 핵이 움직인다.

소년이 그간 확장시킨 물의 저수지의 마나가 핵의 명령에 따라 펄펄 끓는다.

와장창!

딕스를 중심으로 사방 2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물들이 호응하였다.

온갖 형태의 용기에 든 물이 그 용기를 일제히 깨부수며 노도처럼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인 물들이 딕스의 상공에 뭉쳐 위협적으로 꾸물꾸물한다.

수십 톤의 물 덩이가 소년의 머리위에서 발이 묶인 구름처럼 떠 있다.

이를 목격한 자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겁에 질린 자들은 감히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물 덩이를 얼굴에 뒤집어 쓴 남자는 이제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도 이 남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사나운 눈빛의 소년과 그 소년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한 물 덩어리에 집중되었다.

이 땅에 수많은 물의 견습마법사가 등장했지만, 감히 단언하건데 견습마법사의 힘을 이처럼 강력한 살상무기로 쓴 자는 전무했다.

소년은 지금 물의 견습마법사로서 신기원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내가 물로 보이냐! 이 나쁜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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