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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스전기-21화 (21/194)

21화

딕스의 수련은 시계초침처럼 정확하게 시작됐다.

자신만의 마력문장을 완성하는 수련이다. 마법사가 되기 위한 가장 큰 관문으로, 재능자대부분이 여기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해 정체된 삶을 산다.

완성된 마력문장을 얻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였다.

마법사가 되어야 가족을 살릴 수 있는 구원의 동아줄을 얻는다. 국가에서 재능자를 우대한다지만 마법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군대를 가진 영주들과 언제 능력을 꽃피울지 장담할 수 없는 재능자를 저울로 단다면 무게 추는 영주 쪽으로 확 기울 것이다.

데일이 후일 사고를 친다면 예지몽에서의 일이 재현될 수 있었다.

딕스의 입장에선 죽기 살기로 마력문장완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코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딕스의 노력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호수에 앉아 명상한다.

정신에 들어앉은 오메가 물의 핵이 발동하여 물의 마나를 빨아들인다.

딕스의 의식에 자리한 마나의 연못에 마나가 가득 차오르자 그의 오메가 문장이 둥실 떠오른다.

오메가 문장이 푸르게 빛나며 좌우로 퍼져 나갔다.

자신만의 문장을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마나의 연못이 차츰 말라가기 시작했다. 마나로 의식에 자리한 연못을 채운 뒤 문장작업을 할 때면 마나는 유입되지 않는다.

문장이 완정되지 않으면 마나는 흩어진다.

실패!

마나의 연못이 말랐고, 오메가 문장은 바닥에 내려앉았다.

정신력을 과도하게 소비한 딕스는 피곤함을 느꼈다. 무리해서 마나의 연못을 채울 수는 있지만 자칫 부작용이 생긴다. 이는 수많은 선배들이 경험한 것이다.

딕스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넓고 잔잔한 호수. 많은 인력과 재물이 쏟아져서 완성된 궁궐의 이 호수는 주변경관도 매우 아름다웠다. 한때, 이 호수를 마법부에 넘겨준다는 공왕의 천명이 있자. 왕족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어느 세월에 나만의 마력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까?”

마법부에 온지 3개월이 넘었다.

계절은 한참 전에 가을로 접어들었다. 농부들은 수확의 기쁨에 웃음 짓지만, 딕스의 경우 황무지에 곡괭이질만 하고 있었다. 언제 이 황무지가 옥토가 되어 수확을 얻을지. 마음이 조급해지는 딕스였다.

수도에서 처음 맡는 신년.

모두가 들떠 있는 날이었지만 딕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수련장으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코론 선배님, 어디 가세요?”

마법부임관 9년차. 이젠 10년차에 접어든 코론.

그는 평소와 달리 화려한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딕스는 자신의 나이를 무기로 여러 선배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행사 뛰러간다. 넌 신년인데. 흠, 복장을 보니 수련장에 가나보구나.”

귀족가의 파티에 가는 일을 재능자들은 행사라는 단어를 썼다.

처음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었다.

“열심히 해야죠. 헤헤. 근데, 어느 가문인데요?”

“파머슨 백작가문.”

“그래요. 근데, 얼마받기로 하셨어요?”

“50골드.”

“엑? 그렇게 많이 받아요?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이 받네요.”

“성수기잖아. 크크.”

“선배는 좋겠어요.”

딕스는 행사를 뛸 수 있는 재능자들이 몹시 부러웠다.

“너도 몇 년 만 꾸준히 하면 속성의 능력을 발현할 수 있을 거야. 보통 5년에서 6년 정도면 다들 할 수 있으니까.”

코론의 말은 딕스에겐 저주였다.

6년 후면 데일이 사고를 쳐서 페론이 영지전에 휩쓸린다. 그 일만 생각하면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 그렇다고 이를 코론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럼 다른 선배들도 모두 행사 뛰러 가셨겠네요?”

“아니, 다들 집에서 가족과 보낸다고 하더라.”

마법부소속의 물의 재능자는 딕스까지 합쳐서 5명이다. 이중 여자는 리디아뿐인데, 그녀는 상당히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딕스가 오기 전까지 그녀는 물의 재능자중 막내였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딕스에게 물려준 상태다.

“선배는 가족과 안 보내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대출금 갚지.”

재능자들 대부분이 가족들을 위해 수도에 집을 장만했다. 매달 30골드의 월급이 나오지만 이 돈을 안 쓰고 10년을 모아도 집한 채 장만하기 힘든 게 수도의 부동산시세다. 그래서 다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재능자들이 행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만의 마력문장을 완성한 마법사는 왕실에서 공짜로 저택을 준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자신만의 마력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무리를 하면서 수도에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나도 집을 장만해야 하는데. 전 재산이 고작 280골드뿐이니. 휴우.’

딕스의 큰 형과 작은 형은 갈 데가 없어 눈칫밥 먹으며 주말과 방학 내내 기숙사에서 보냈다. 그래서 형제들이 편히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수도에 집값을 알아본 딕스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도 집값이 최하 1.000골드다. 그것도 오래된 집인 경우고 신축된 지 3년 미만인 집은 2.000골드부터 거래가 이루어졌다.

수도시민의 90퍼센트 이상이 그래서 월세를 주고 사는 세입자들이다.

재능자들 대부분이 시내에 집을 갖고 있다. 그것도 마당이 있는 2층 벽돌집이다. 그들은 변두리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열심히 하시네요. 헤헤.”

“가봐야겠다. 그럼, 수고해라.”

“선배님도 고생하세요.”

“그래.”

출입구에서 딕스는 코론과 헤어졌다. 그는 수련장인 호수를 향해 걸었다. 간밤에 내린 눈이 쌓여 온통 하얗다.

수련장으로 향하는 딕스의 걸음이 평소보다 힘이 없었다.

“오늘은 수련할 맛 안 나네.”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누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기숙사에 궁상맞게 있을 두 형의 얼굴도.

“조촐하게 식사라도 할까?”

마음의 결정을 내린 딕스는 사감실로 발길을 돌렸다. 재능자는 외출 시 반드시 전담경호원을 대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를 어기면 감봉 6개월에, 3개월간 외출외박이 금지된다.

사감 실에 들러 외출허가를 받은 딕스는 기숙사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두 명의 기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알프레 기사님, 드론 기사님.”

딕스가 예의바르게 인사하자 두 기사는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딕스는 먼저 수도외곽에 있는 하사관양성소로 향했다. 왕립아카데미는 시내에 있었기에 작은 형을 데리고 큰 형을 찾아가는 게 낫다고 여겼다.

양성소에서 작은 형을 데려온 딕스는 곧장 왕립아카데미로 향했다.

아카데미교정은 발자국하나 없는 눈이 펼쳐져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겨울방학 초에 다 떠나고 일부 가난한 고학생들만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방학 중엔 구내식당이 문을 닫는 관계로 가난한 고학생들에게 방학. 특히, 겨울방학은 가장 큰 시련기였다.

교문수문장을 통해 기숙사에 연락을 취한 딕스는 마크와 함께 면회실에서 기다렸다.

“딕스, 마크도 왔구나.”

“큰 형, 밥은 먹었어?”

수입이 있는 딕스는 테일과 마크의 용돈을 책임지고 있었다. 처음엔 안 받겠다고 우겼던 둘은 딕스가 완강하게 나오자 할 수 없이 받고 있지만 쓰지 않는 티가 팍팍 났다.

딕스가 묻자 테일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가자. 신년인데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딕스의 말에 테일과 마크는 서로를 보았다.

매번 동생에게 얻어먹으려니 형 된 입장에서 어찌 마음 편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자신들이 한턱 쏘겠다는 말도 우습다.

동생에게 용돈을 받는 처지에 이런 말은 누워서 침 뱉기다.

딕스는 형들을 대동한 채 니코가 알려주었던 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니코, 델, 벅, 빅을 만났다.

최근 네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인 딕스였다.

“딕스 님.”

니코가 딕스를 알아보곤 다가왔다. 나머지도 일어나 인사했다.

마크는 양성소출신 선배들을 보자 경례를 붙였다.

네 사람 모두 마크의 인사를 받은 뒤 합석여부를 물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좀 전에 온 듯했다.

딕스는 이들과 합석한 뒤 식탁이 부러질 만큼 많은 음식을 시켰다. 기사들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내가 쏠게요!”

소년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딕스 님. 한데, 이런 날 술이 빠지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니코가 넉살을 떨었다.

쓸쓸하게 보냈을 형제들의 신년은 이들로 인해 즐겁고 유쾌하게 바뀌었다.

“술도 쏠게요. 하하.”

딕스는 오늘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수련장에 도착한 딕스는 몰려오는 오한에 크게 몸을 떨었다.

수련한답시고 앉아 있다간 얼어 죽기 딱 알맞은 날씨였다.

“에, 에취~!”

형제들을 위해 거금을 투척했다.

먹고 마실 때는 마냥 좋았다.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 형들의 백그라운드가 되어주는 자신의 위치를 새삼 확인하자 매우, 굉장히, 대단히 행복했다.

구름을 타고 붕붕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자신만 호의호식하는 것 같아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누나가 생각나서 잠시잠깐 마음이 시큰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웃고 떠들며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밝고 유쾌하며 행복한 가운데 자리를 파장하고 계산대 앞에 섰을 때.

자신을 비롯한 일행의 뱃속에 들어간 내용물을 계산서로 확인했을 때의 그 기분은 가시 박힌 비탈길을 데굴데굴 구른 느낌이었다.

뼛골이 시린 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라고 절실히 체험한 그 날.

딕스는 자신의 내면에 기분파 지름신이 살고 있었음을 통한의 눈물을 쑥 빼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도 형들에게 좋은 사람들을 소개시켜준 것이 그나마 위안은 됐다.

자신도 잘돼야 하지만 형들도 잘돼야한다.

우리가족끼리 잘 먹고 잘살자!

아픈 속을 이 구호로 다스리는 딕스다.

그래도.....

“우쒸, 열 받네. 도대체 막 돼먹은 물가를 왜 제대로 잡지 않는 거야! 이건 정부의 직무유기야! 직무유기라고!”

북풍한설조차 단숨에 꺾어버릴 더럽게도 비싼 수도의 물가.

기분파 지름신을 영구히 봉인해버리는 딕스다.

“돈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리.....쩝, 없잖아? 건수 없을까? 아니지, 내가 마법사가 되면 고민 끝 행복시작이잖아!”

꽁꽁 얼어붙은 호수.

수련이랍시고 매일같이 매달려도 늘 제자리만 맴돈다.

맴맴맴.

한 겨울에 매미소리라니?

철썩.

기합을 넣기 위해 뺨을 때렸다.

얼어붙은 볼따구니가 터져버릴 것 같은 아픔.

정신이 번쩍 든다. 놀랍게도!

잡생각을 세찬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내자! 이곳은 무진장 더운 곳이다. 더운 곳이다. 난 지금 무지 덥다. 난 물이 절실히 필요하다.

딕스는 자기최면을 걸며 추위를 몰아냈다.

“안되잖아!”

눈물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저질스럽게 소매로 이를 닦아낼 수 없었다.

명색이 예비 마법사! 장차, 집안을 일으킬 가문의 역군! 이런 자신이 코흘리개 애들처럼 소매를 콧물로 왁스칠하는 건 말이 안 되는 노릇.

“에취!”

주변의 황량한 느낌이 한기와 함께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수련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물씬 치밀어 올랐다.

예지몽에서 본 영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뼈를 깎는 수련이야 말로 미래를 바꿀 초석이 된다.

이 한 몸 부서져 가족을 지킨다면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비싼 수도의 물가에 질린 불편한 심정을 마음에서 밀어냈다.

추위에 떠는 몸을 잊기 위해 수련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나와 내 가족이 떵떵거리면서 장수할 길은 오로지! 오로지! 마법사가 되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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