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딕스전기-2화 (2/194)

2화

<1권>

「오메가...오메가...오메가...」

딕스는 요 며칠 대부분의 시간을 생각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처절한 악몽!

그 탓에 소년은 엄마와 누나를 볼 때면 생뚱맞게 눈물부터 흘렸다.

이런 딕스의 행동에 모녀는 크게 걱정했다.

3남 1녀 중 막내인 딕스는 어머니 메들린을 닮아 체력도 약하고 뼈대도 가늘었다. 이에 비해 집안의 장남 테일, 차남 마크, 장녀 미리아는 딕스의 아버지 로버트를 닮아 힘도 세고 키도 컸다. 때문에 마을아이들은 형제들과 달리 작고 왜소한 딕스를 다리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놀려대곤 했다.

심약한 딕스는 그때마다 펑펑 울며 형과 누나에게 아이들의 이름을 꼼꼼히 기억한 뒤 고자질로 복수를 했다.

그때마다 마을아이들은 딕스의 형들과 누나에게 불려나가 엄청 두들겨 맞았다. 그런 날이면 얻어맞은 아이들의 부모가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이런 형과 누나의 도움의 손길도 딕스가 10살이 되면서 중단됐다.

사내자식이 너무 무르고 심약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딕스는 살아남기 위해 악바리가 됐다.

힘에서 밀리면 깡으로, 깡도 안통하면 계략으로 꼭 복수를 했다. 이렇게 2년을 버티다보니 딕스를 괴롭히는 마을아이는 없어졌다. 문제는 딕스에게 호되게 당한 아이들이 두 번 다시 그를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톨이.

12살의 딕스는 그래서 친구하나 없는 외톨이가 됐다.

우르르.

아이들이 딕스를 지나쳐 마을 공터로 놀러가고 있었다.

딕스는 그런 아이들을 쳐다볼 뿐 평소처럼 끼워달란 얘기를 빈말이라도 하지 않았다. 끼워달란다고 끼워줄 녀석들도 아니지만 일단은 넉살좋게 늘 찔러보던 그였다. 그러다 안 되면 아이들을 괴롭히는 계략을 짜서 놀이를 훼방 놓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의 딕스는 평소와 달리 무심하게 아이들을 보내버렸다. 아니,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꾸만 불안하네.’

딕스는 혼잣말을 하며 무작정 걸었다. 너무 일찍 들어가면 어머니의 걱정을 듣는다.

자신이 마을아이들의 따돌림을 받는 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걷던 딕스는 어느새 영주관담장에 이르렀다.

딕스는 담장에 손을 대곤 털레털레 걸었다. 얼마쯤 그렇게 걷자 정문 앞에 도착했다.

정문경비병들이 딕스를 알아보곤 빙그레 웃었다.

“딕스구나. 어머니 심부름 온 게냐?”

“아뇨.”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냐?”

“이유가 있어야 오나요?”

딕스의 삐딱한 대답에 경비병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녀석이 기사 로버트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혼찌검이 났을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였다.

“그래, 그럼 가봐라.”

그와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는 듯 경비병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딕스는 곧장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영주관 본채를 뚫어져라 향하고 있었다.

꿈에서 본 자신은 행정관실의 수습 주사보였다. 기억이 맞는다면 오른쪽 창 세 번째가 토르네 남작의 서재였다.

하지만 본채의 출입은 기사의 아들인 딕스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경비병은 그가 가지 않고 서성이자 뭔 일이 있는가 싶었다. 그러나 좀전 버르장머리 없이 굴었던 소년의 행동이 생각나 모른 척 해버렸다.

답답한 건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스 아저씨.”

경비병 한스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한번 당해보라는 뜻이었다.

딕스의 볼이 개구리처럼 볼록해졌다.

“한스 아저씨.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해야 하잖아요!”

“귀 안 막혔다. 이 녀석아! 왜?”

“저기, 저 창이 영주님 서재창이죠?”

까치발을 한 딕스가 하나의 창을 가리켰다.

한스는 무심코 딕스의 손끝을 보더니 머리를 끄덕이다 곧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떻게 아냐?”

혹시나 싶어 물어본 딕스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 정말요?”

“왜 그러냐?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떠는 구는구나?”

딕스는 마른침을 연방 삼켰다.

악몽이라고 생각했던 게 진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에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지금은 대륙력 4243년 4월 21일이다.

악몽에서 본 날짜는 대륙력 4250년 10월 9일.

그때로부터 오일 후에 아버지와 큰형이 전사하고 얼마 뒤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자신이 죽었다.

머릿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던 그 끔찍한 일들이 7년 후에 현실이 된다면? 이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던가. 그래서 오늘 큰맘 먹고 자신의 꿈이 단순한 악몽이란 것을 확인하려고 단단히 작정하지 않았던가.

한데, 자신이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영주관 본채 영주님의 서재를 정확히 짚었다.

덜덜덜.

딕스의 다리는 몹시 떨리고 있었다.

그의 등줄기엔 어느새 식은땀이 홍건하다.

소년의 태도가 요상해지자 경비병 한스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왔다.

한스의 그림자가 얼굴을 덮자 딕스는 악몽에서 본 처참한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명을 내지르며 내뺐다.

경비병 한스가 황당한 표정을 하였다.

“한스, 저 녀석 왜 저러지? 몬스터라도 본 얼굴이네. 허어.”

“로버트 기사님께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뭔 말? 고함지르고 도망간 거?”

“애가 오늘따라 너무 이상하잖아. 얼굴도 너무 창백하고 말이야.”

한스는 어느새 길 너머로 사라진 딕스가 진심으로 걱정된 듯 그 눈길을 떼지 못했다.

“아이들말 못 들었어. 저 녀석 속에 여우가 산다는 말. 보나마나 무슨 꿍꿍이가 있어 그런 거겠지.”

“흠, 그런 건가?”

“신경 꺼. 그보다 근무마치고 한잔 어때? 괜찮은 창녀하나가 왔다던데. 흐흐흐.”

동료의 말에 한스는 하얗게 질린 딕스의 얼굴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좋지!”

헉헉헉.

딕스는 폐가 찢어질 만큼 오래 뛰었다.

달음박질을 멈추면 악몽이 자신의 뒷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계속 뛰고 싶었지만 더 이상 달릴 힘이 그에겐 없었다.

털썩.

꽃향기 가득한 마을외곽 언덕까지 단숨에 뛰어온 딕스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영주관을 바라보았다.

‘우, 우연일거야. 그래, 우연이야.’

“하아.”

단순한 악몽으로 치부하기에 하나의 증거를 접하고 말았다. 그래서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닌 가족의 생사가 걸려있다.

아직도 귓가엔 어머니와 누나의 처절한 비명이 생생하게 맴돌고 있지 아니한가.

‘확인해야 돼. 하지만.......어떻게? 어떻게!’

딕스는 머리털을 쥐어짜며 궁리했다. 좀 전의 일은 우연일 수 있다. 자신이 가리킨 곳의 창문이 영주님의 서재와 가까운 곳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자신이 창문을 콕 찍은 것도 아니다.

그때,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있었다.

자신은 꿈을 통해 미래의 자신을 보았지만, 꿈속의 자신의 생각과 기억을 어렴풋이 갖고 있었다. 19살 딕스의 일생 중 기억에 남는 몇몇 사건!

‘오늘이 며칠이지?’

딕스는 벌떡 일어나 집으로 허겁지겁 내달렸다.

이것마저 딱 맞아떨어진다면 악몽은 단순한 꿈이 아닌, 미래에 벌어질 일을 보여준 예지몽으로 여겨야 한다.

마크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부모님의 방문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다.

그의 나이 14살. 욕심이 많은 마크에게 페논 남작영지에서의 삶은 그의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대로 살다간 다른 친구들처럼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았다. 마크는 그게 너무너무 싫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집안의 장남이라 해서 특혜를 받는 형이 몹시 부러웠다.

그래서 평소 엄격하여 말붙이기가 쉽지 않은 아버지에게 대들며 자신도 아카데미에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한명도 아닌 두 명을 아카데미에 보내는 일은 시골남작영지 기사의 봉급으론 어림도 없다.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지금의 처지가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떼쓰고 매달렸었다.

그때 본 아버지의 힘없는 표정과 어머니의 눈물이 마크의 눈에 선했다.

검소하신 부모님들이었다. 그 분들의 검소함은 집안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10년이 넘은 낡은 아버지의 외투와 신발.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오신 오래된 물레와 매일 같이 윤이 나게 닦는 낡은 가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는 삐거덕 거리는 낡은 물레를 밤마다 돌린다. 잠을 줄이시며 양털실을 뽑는 어머니는 한 달을 꼬박 일해 번 그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셨다.

아버지의 봉급은 모두 큰 형의 학비였기에 어머니의 수입이 없으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최근 누나 미리아가 영주관 하녀로 일하며 봉급을 매달 내놓았지만 어머니는 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놓으셨다.

이 돈은 누나의 혼수를 마련하기 위해 모으는 돈이었다.

마크는 지금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삐걱.

마크는 도둑고양이처럼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져오신 낡은 장롱을 마크는 뒤졌다.

누나가 힘들게 번 돈이 가죽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막상 이를 손댄 마크의 얼굴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잔뜩 일그러졌다.

‘갚을 거야. 반드시 갚을 거야!’

자신의 개인물품을 챙긴 배낭에 돈주머니를 밀어 넣은 마크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집을 나섰다.

그때, 멀리서 뛰어오는 동생 딕스와 마크는 정면에서 맞닥트렸다.

지은 죄가 있기에 마크는 평소와 달리 딕스의 눈을 회피했다.

마크를 바라보는 딕스의 작은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딕스는 형의 태도를 보며 점차 불안감을 느꼈다.

온 몸이 오그라들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여기까지 뛰어오느라 턱밑까지 찬 숨이 기도를 막아버린 듯 숨조차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앓는 소리 한번 내지 않은 채 딕스는 둘째 형 마크를 쳐다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아닐 거야. 그래, 아닐 거야!’

악몽을 부정하는 그의 눈길은 마크가 메고 있는 배낭에 고정되고 있었다.

저걸 보자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머리가 어지럽다. 메스꺼운 기운이 뱃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대륙력 4243년 4월 21일.

딕스가 꿈에서 기억하는 마크의 가출일.

“무, 무슨 일이야. 딕스.”

“그 배낭...... 뭐야.”

딕스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크게 화날 때의 딕스는 오히려 목소리가 굉장히 차분해지곤 했다.

마크가 어찌 동생의 이 버릇을 모르겠는가.

멈칫하던 마크는 반사적으로 배낭을 등 뒤로 감추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나 떠날 거다.”

마크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말했다.

딕스는 형이 떠난다는 말보다 꿈속에서의 기억이 현실이라는 데, 더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딕스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야! 꿈이어야 해. 꿈이라고 말해줘!’

한 번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은 결코 우연으로 여길 수 없다.

허리를 숙인 채 덜덜 떠는 동생의 모습에 마크는 크게 놀랐다.

마크의 손이 딕스의 어깨로 향했다.

딕스는 마크의 손을 힘껏 뿌리치며 형의 멱살을 잡았다.

평소의 딕스라면 결단코 하지 않았을 과격한 행동이다. 그리고 동생의 이런 행동을 용납할 마크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마크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무력한 모습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었다.

“왜, 왜 오늘인거야! 왜! 오늘이냐고! 마아크!”

딕스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마크는 동생의 격렬한 반응에 한참이 지난 후 말했다.

“딕스, 용서해라.”

“내일도 있고, 모래도 있잖아. 왜! 왜, 하필 오늘이야. 왜! 빌어먹을. 크흑흑흑흑.”

딕스는 마크가 꿈을 이룰 것임을 알고 있었다. 형은 입버릇처럼 나라를 지키는 중앙군의 장교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어릴 때부터 밝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소대장으로 임관하기 위해서는 공립아카데미 군사학부 7년 과정을 거쳐야 한다. 후일, 마크는 하사관양성소를 나와 중앙군 하사관이 된다.

마크 형의 꿈에 비해서는 초라한 출발이었지만 똑똑하고 당찬 형이라면 언젠가는 중앙군 장교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 터였다.

“디, 딕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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