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115화
7장. 팬드래곤(Pendragon)
“하, 하하. 다들 뭐죠?”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나만 바보가 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치츠카…… 당신도 알고 있었나요?”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군.”
아더는 배트와는 다르게 당당하게 물었다. 그의 물음은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들었을 것이다.
“적군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 적어도 아스테온 자네라면 좀 더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틀렸나 보군.”
뒷걸음질했던 나를 보며 아더는 아쉬운 듯 말했다.
“실마릴리.”
“알겠습니다.”
“더 이상 없는 것 같군. 마지막 기대했던 사람마저 이 모양이니.”
아더는 자신의 검 엑스칼리버를 쥐었다. 그의 단단한 두 손에 쥐어진 그 검은 미약하게나마 살짝 흔들렸다.
“시작한다. 실마릴리.”
“넵.”
“승리를 위한 소멸(Extinction for victory).”
“누구를……?!”
그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소멸(消滅). 그것은 사라지고 멸망함을 의미했다. 도대체 누구를? 아니 무엇을?
“레전드리 샤이닝 에로우(Legendary Shining Arrow)!”
실마릴리의 활에서 엄청난 양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옛날 보았던 그녀의 화살과는 비교되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촤아악!!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안……!!”
“크으윽!!”
그녀의 화살은 그대로 적중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행동에 우리들 모두 반응하지 못했다.
“마케니안 님!!”
그녀의 화살은 정확히 마케니안의 심장을 꿰뚫었다. 활화산에 봉인되어 있어 그곳을 지키다 약해진 마케니안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지금 그 힘 역시 미약해져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직 죽지 않았군. 마무리는…… 이 손으로 해야겠군.”
치츠카의 외침을 무시한 채 아더는 엑스칼리버를 쥐어 달려들었다.
“크크크, 이거 재미있어지는군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배트는 아더의 행동에 입을 가리며 웃었다.
“루드.”
“네, 마스터.”
“어느 쪽이 더 재미있을까?”
“하지만 저희는…….”
“알아, 알아. 하지만 그것을 물어본 게 아니잖아? 내가 물은 것은 어느 쪽이 더 재미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야.”
“……마케니안을 죽이려는 사람은 아더뿐인 것으로 봐서는 아더의 편이 조금 더 흥미로워 보입니다.”
“후후, 역시. 루드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배트는 그의 부하인 루드의 말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드는 너무 착하단 말이야.”
“네?”
금발의 미청년인 루드는 자신의 마스터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소수의 편에서 다수를 이기는 스릴이 아니야. 다수의 편에 서서 소수를 짓밟는 것이 더 재미있는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아주 갈기갈기 말이야. 크크크.”
“알겠습니다. 마스터의 말씀을 받들겠습니다.”
그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인 배트의 가장 신임하는 부하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그의 말 속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내는 눈썰미에서였다.
“다녀와.”
“넵.”
배트에게 대답을 마친 루드가 갑자기 사라졌다. 처음으로 그가 전투하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예정된 승리.”
마치 역사를 쓴 책을 읽듯 마치 사실 그 자체를 읽는 듯 아더가 말했다. 그리고 그의 검 엑스칼리버는 그의 말을 사실로, 하나의 역사로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팬드래곤(Pendragon).”
아더의 엑스칼리버에서 황금빛 용이 솟아난 것 같은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잘 못 본 걸까?
키아아아!!
황금빛 용.
그것은 아더의 소드 오러였다.
강력한 소드 오러가 엑스칼리버에서 뿜어져 나와 마케니안을 덮치려 했다.
콰아앙!!
“이런…… 이렇게 되면 곤란하잖아요. 안 그래요?”
“……제노 클레이트.”
그러나 그 강력한 스킬도 예정된 승리도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다.
“황금빛의 성스러운 성검. 네, 멋지죠. 아더, 당신에게 가당 잘 어울리는 검이군요. 그토록 찾았던 엑스칼리버를 드디어 얻으시다니…….”
“비켜라. 제노 클레이트.”
“성스러운 황금빛을 상대하는 것은 역시 어둠뿐이겠지요. 그리고 당신의 적수로도 저보다 더 어울리는 인물은 없을 겁니다.”
제노 클레이트는 자신의 검을 쥐었다.
엑스칼리버의 검날에도 상하지 않는 그의 검은 두텁고 단단해 보이는 아더의 검과는 반대로 장검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가늘었다.
“델 브렌저(Del-Blanzer)여. 그대의 앞에 선 한 없이 약한 적들에게 검은 안식을…….”
순간 그의 명령에 따라 얇은 장검의 검날이 마치 엑스칼리버의 그것만큼이나 두텁게 소드 오러를 뿜어냈다.
“방해하지 마라! 흑기사!!”
“흑기사…… 그래, 당신에게 나는 그저 흑기사일 뿐이겠지.”
제노 클레이트의 검을 쳐낸 아더가 큰 소리로 외치며 그를 밀쳐 내려 했다.
“크아아!!”
그러나 유연한 몸동작으로 제노 클레이트는 아더의 엑스칼리버를 피했다.
“유명하신 카멜롯의 아더를 상대로 델 브렌저 하나로는 아쉽겠죠?”
“암흑의 갑옷인가? 성장했군. 제노 클레이트.”
“네. 네. 물론이죠. 그 옛날 뭣 모르고 당신에게 덤볐다가 호되게 당했으니까요.”
“…….”
“이유야 어쨌든 무대는 만들어졌으니까요. 크크크…… 당신의 실력을 한 번 보여주시죠! 아더!”
제노 클레이트가 델 브렌저를 바닥에 내려꽂았다. 그 순간 델 브렌저가 박힌 지면에서 검은 오라가 솟구쳐 나왔다.
“귀찮게 되었군.”
검은 오러는 제노 클레이트를 감쌌다. 마치 카린의 유피테르의 발키리처럼 그 검은 오러는 제노 클레이트의 갑옷이 되었다.
“이것을 입지 않고서야 제노 클레이트를 흑기사라 할 수 없지요. 안 그런가요?”
“긴말은 필요 없을 것 같군.”
아더는 이미 제노 클레이트와의 일전을 준비하는 듯했다. 그의 황금빛 갑옷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크크크, 좋습니다.”
제노 클레이트 역시 그것을 기다렸었다.
“제가 먼저 가죠.”
그의 델 브렌저가 지면에서 뽑혀져 나오며 아더를 향해 치고 들어갔다.
“델 크래쉬(Del-Crash)!!”
제노 클레이트의 검에서 검은색의 검기가 다섯 줄기로 뻗어 나왔다. 검 하나에 하나 이상의 검기를 머금는 것이 소드 오러의 정석이라면 그의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
“흐읍!!”
그러나 아더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날카롭게 쏘아져 내려오는 제노 클레이트의 검기를 커다란 자신의 엑스칼리버로 모조리 막아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나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그러게요. 갑자기 아더와 제노 클레이트가 싸우다니? 그리고 마케니안은…….”
“광아검(狂牙劍)! 천격(天擊)!!”
“꺄아아!!”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다른 이들의 틈 속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것의 주인은 다름 아닌 실마릴리였다.
“더이상 마케니안에게 손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불타는 두 자루의 검을 쥔 그는 허리춤에 있는 마지막 세번째 검을 뽑지도 않은 채 실마릴리를 물리친 것이었다.
“실마릴리!!”
“전 괜찮습니다. 아더 님.”
그러나 그녀의 말과는 달리 그녀의 어깨를 감싸던 갑옷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서 흐르는 피는 홍련(紅蓮)이란 이름에 걸맞게 치츠카의 불꽃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그를 상대하기엔 너로서는 부족하다.”
“하지만 아직 마케니안이…….”
“그 역시 내가 상대하겠다.”
“하아?! 저 제노 클레이트를 무시하는 겁니까. 아더!”
그는 제노 클레이트를 한 번 바라봤다.
“그녀가 위험한 이상 더 이상 너와 놀아 줄 수 없을 것 같군.”
“뭐, 뭐라고?”
아더의 말에 제노 클레이트의 델 브렌져에서 검은 소드 오러가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충분히 네가 성장했음은 잘 알았다. 마검을 얻을 때 반대했지만 그것 역시 너 스스로의 강함을 위한 길이란 걸 인정 할 수밖에 없겠군.”
“당신처럼 올곧은 척하는 것이 더 나쁜 것 아닙니까.”
“델 브렌저, 충분히 엑스칼리버의 상대가 될 만한 검이다.”
“닥쳐!!”
제노 클레이트의 악에 바친 외침을 흘리며 아더는 엑스칼리버의 칼자루를 그의 얼굴 바로 앞에 멈추었다.
“델 크래쉬!!”
“엠페러(Emperor).”
제노 클레이트의 검에서 다섯 줄기의 소드 오러가 아더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쾅! 쾅! 쾅!!!
엄청난 폭발과 함께 모든 것을 파괴 할 듯 맹렬한 공격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공격을 한 제노 클레이트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졌다.
“일시적인 방어력 300% 상승, 모든 저항력 200 증가. 황제의 앞에선 그 어떠한 것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먼지가 사라지고 난 뒤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황금빛 찬란한 갑옷은 그대로였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의 투구마저도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것이다.
“조금 더 강해져서 오거라. 제노 클레이트. 아니, 나의 동생아.”
“크아아아!!!”
그의 엑스칼리버가 제노 클레이트를 밀쳤다.
엑스칼리버가 닿는 순간 어둠을 뿌리던 제노 클레이트의 델 브렌저가 박살 나고 만 것이었다.
“치츠카, 이제 당신인가.”
“확실히 예전보다 강력해졌군, 아더.”
“물론.”
아더의 모습을 보며 랭킹 1위라 일컬어지는, 그리고 그 옛날 아더에게 한 번 패배를 안겨주었던 치츠카 역시 그를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검 하나가 사람을 이토록 바꿔주다니. 아이템이란 것은 참으로 재미있어.”
“그래서 그대가 그저 상점에서 파는 일반 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물론, 나의 검술은 무기를 따르지 않으니까.”
치츠카는 자신의 두 자루의 검을 살짝 흔들었다. 불꽃을 머금는 그의 검이 화려한 불꽃의 자취를 남겼다.
“확실히 강력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두 자루의 검 정도로군.”
“여전히 그 레벨이란 건가.”
“뭐…. 그다지.”
치츠카는 아더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방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군. 홍련의 치츠카.”
“벨제뷔트를 부활시키려고 하다니. 그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래도 난 당신이 꽤나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묻지. 치츠카.”
“무엇을?”
“천구에서의 죽음을 원하는가 아니면 비록 지옥이라 할 지라도 삶을 원하는가.”
“그게 무슨…….”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또 다르게 생각 할 것이라 생각하네.”
아더의 말에 나도 모르게 크리사오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쩔 수 없군. 그럼!!”
“흥…. 광아검(狂牙劍)!!!”
“팬드래곤(Pendragon)!!!”
치츠카의 화염의 검과 아더의 엑스칼리버가 다시금 격돌했다. 제노 클레이트를 쓰러뜨리고 나서 바로 싸움에 임하는 아더였지만 결코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슈가비.”
“응?”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하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아름다운 기억만 가지고 있다가 죽는 것도 좋겠지만…. 지옥 같아도, 아니 지옥과 싸워야 하더라도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스테온?”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