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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레전드-114화 (114/122)

듀얼 레전드 114화

“이 정도로 놀라면 안 되지. 베르테론의 수제자가 말이야.”

“닥쳐라!!”

“공간을 움직이는 도끼란 게 참 좋아 보이긴 하지만 네 녀석 무기의 크기가 문제겠지. 얼마나 정교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내리찍을 수 있을까?”

“못할 것도 없지! 네 녀석을 죽일 수 있다면.”

“그 용기만은 가상하군.”

실력은 안 되지만 베르테론에게서 광전사다운 면모만큼은 제대로 전수 받았나보다. 시아군은 나의 도발에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

그는 자신의 어깨에 박힌 크리사오르를 손으로 꽉 쥐었다. 오히려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광전사의 제자 아닐까 봐 무식한 짓만 골라서 하는군!”

날카로운 크리사오르의 검날은 단숨에 그의 손가락을 잘라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하게 빛났다. 그러나 악마의 강철 같은 피부는 거친 마찰음을 내뿜으며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죽어라!! 베르테론 님의 원수여!!”

그는 정말로 자신의 팔 하나 정도는 버릴 각오로 어둠 속에서 도끼를 꺼내었다. 예상대로 거대한 도끼는 나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위에서 떨어지듯 나를 향해 날아왔다.

“제길……!!”

완력으로는 시아군을 이길 수 없었기에 크리사오르를 뽑아낼 수 없었다.

“블링크!!”

바로 머리 위까지 도달한 순간 마법으로 그의 도끼를 피했다.

“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시아군의 비명 소리와 함께 나의 눈엔 그의 거대한 전투 도끼가 붉은 갑옷을 뚫고 절반 정도 어깨에 박힌 것이 보였다.

“미친…….”

아무리 악마라 할지라도 이 정도일 줄이야.

“네 녀석…….”

고통에 신음하는 베르테론은 그나마 나의 검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있음에 포기하지 않는 눈이었다.

“대단하군.”

“죽여 버리겠다.”

베르테론의 도끼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바로 너덜너덜해진 그의 어깨였다. 뭔가 꿈틀거리며 근육들이 뒤틀리듯 움직였다.

“설마…….”

조금 전까지 잘려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던 시아군의 어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재생되었다.

“이건 무슨 좀비도 아니고…… 악마 체면에 별걸 다 하는군.”

“끝없는 생명이야말로 악마의 전유물. 그리고 이 공간은 나의 공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그렇군. 단순히 무기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닌 너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건가?”

“받아라, 아스테온.”

그는 자신의 손에 있던 크리사오르를 던졌다.

“하아, 이거 기분 착잡하군. 악마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라니. 아주 여유로우신데?”

한번 빼앗았던 것은 또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시아군은 크리사오르를 던지고는 말했다.

“무기도 없는 이를 죽일 순 없지. 어차피 나에게 죽을 목숨이니 끝까지 발버둥 쳐 봐라.”

“하아? 그래?”

그는 자신만만하게 나에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전까지만 해도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음에도 순식간에 회복을 했으니 말이다.

“크라크 아이샤 프리오…….”

고위급 악마들이 사용하는 악마어가 시아군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한번 해보자 이거군. 좋아.”

나 역시 크리사오르를 들었다. 악마에게까지 이런 대접을 받다니…… 나 이연, 많이 죽었군.

“이제, 정말로 끝이다. 아스테온.”

시아군의 양날 도끼의 도끼날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강력한 악마의 룬의 힘이 그의 도끼를 강화시킨 것이다.

“이 공간에서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이곳에서 나는 무적이다!!”

“아아, 결국 그런 거로군? 베르테론의 제자이다 뭐다 하면서도 결국은 이따위 어줍잖은 공간에 기대어 싸우려고 하다니 말이야.”

그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나…….”

시아군이 다가왔다. 여전히 도끼날이 보이지 않는 도끼의 자루만을 쥔 채 말이다.

“조금 화가 나는걸?”

“크아아!!”

그의 도끼가 휘둘러졌다. 도끼 자루의 방향으로 봐서 이번에도 직각으로 떨어지는 공격인 듯 보였다.

“이런 작은 어둠의 공간을 만들어 내서는 마치 신이라도 되는 듯 공간을 지배하려고 하다니…… 감히 나 아스테온의 앞에서 여유를 부린다 이거지?”

“하아압!!”

발도술과 같이 크리사오르를 바닥에서부터 쓸어 올리듯 뽑았다. 나의 검에 정확히 베르테론의 도끼가 맞부딪혔다.

“나의 도끼를 고작 그런 연약한 검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시아군의 목소리가 암흑의 공간을 울렸다.

“연약한 검? 나의 이 크리사오르가?”

어처구니가 없군. 빙결의 아스테온의, 아니 그 이전부터 대륙을 호령했던 검성 알테가르의 검을 연약하다고 평가하다니.

“그런 눈으로 기사라 말하다니…… 이제 정말 귀찮아졌어.”

시아군의 도끼는 나의 검에 부딪치는 순간 이가 빠진 듯 살짝 파편이 튀겼다.

“이 공간이 너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간단하군. 이 공간마저 모두 얼려 버리겠어. 단 한 번으로 모든 걸 파괴하겠다!!”

크리사오르의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의 분노를 느낀 듯 검은 의지를 가지고 살아 숨 쉬듯 자신의 냉기를 이 어둠의 공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절대빙결(絶對氷結).”

어둠의 공간에서 빛의 방울방울처럼 새하얀 눈들이 만들어졌다.

“말도 안 돼! 나의 공간에서……!!”

“이치는 간단해. 그 어떠한 공간이라 하더라도 결빙점(結氷點)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것은 비록 네가 더러운 재생의 능력을 가진 악마라 할지라도 그 몸 안에 피가 흐리고 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지.”

“그 말은…….”

파지직……!

거미줄처럼 다크니스 큐브 안에 어둠 속으로 서리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공간을 파괴하는 듯 소리마저 차갑게 들려왔다.

“네 몸 안에 흐르는 피마저 모두 얼려 버리겠어.”

나의 말은 하나의 언령처럼 그에게 들렸을 것이다. 그가 이 작은 공간을 지배한다면 나는 이 공간마저 뒤덮은 얼음으로 그 이상을 지배했으니까.

“빙루(氷淚), 루나틱 슬레이어(Lunatic Slayer)!!”

새하얀 얼음의 불꽃이 크리사오르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예전 빙결의 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냉기가 이 공간을, 시아군을 스쳐 지나갔다.

“크아아!!!”

그의 비명 소리가 어둠을 깨치고 들렸다. 크리사오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루나틱 슬레이어는 정말로 공간마저도 갈라 버릴 것 같았다.

“흥…….”

가벼운 콧방귀. 그것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됐으리라. 시아군을 물리치고 나자 주위를 감쌌던 어둠이 모두 사라졌다.

“늦었잖아? 아스테온.”

“이런, 이런.”

제일 먼저 나에게 들려온 목소리는 카린의 것이었다. 은빛의 갑옷을 입은 그녀는 유피테르의 최종기 발키리의 형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키리까지 꺼낸 걸 봐서는 꽤나 고전한 것 같은데?”

“우, 웃기지 마! 그저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빨리 끝내려고 했던 것뿐이야. 흥, 그러면 뭐해? 정작 네 녀석이 늦었는걸.”

“아스테온까지 끝났으면…… 이제 한 명만 남았군.”

“제가 마지막은 아니었나 보군요.”

“그렇다네.”

아더는 나의 말에 대답하며 한 곳을 가리켰다. 그의 엑스칼리버가 가리키는 방향엔 환한 하늘과 대조되는 다크니스 큐브 하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누구죠? 저기에 있는 사람은.”

“배트.”

“……그가?”

그의 전투를 본 나로서는 전력상 가장 우위에 서 있으면서 있었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아직 저 안에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내 생각에 그가 고전해서 저 안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그러면요?”

“역겨운 녀석의 성격 때문이겠지.”

“성격이라니요?”

“……보면 알 거다.”

치츠카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나 역시 그가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눈치챌 수 있었다. 서슴없이 날 죽였던 녀석이니까.

콰아앙!!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다크니스 큐브가 부서졌다. 희뿌연 연기가 솟아오르며 그 안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배트리라.

“아아, 제가 조금 늦었네요. 모두를 기다리게 했네요. 빨리 끝내려고 했는데…… 아하하.”

주위를 한번 훑어보고는 멋쩍은 듯 웃는 그의 손엔 몸뚱이가 잘려 나간 채 덩그러니 있는 악마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으음…….”

배트의 발아래론 하나하나 잘려 나가 토막 나 있는 레미제라는 악마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괜히 짜증나게 굴어서 말이죠…… 악마들은 다 그렇나요? 카린 경?”

“너보다 더 짜증나진 않을걸.”

“아하하, 농담도 지나치십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카린의 말투였지만 배트는 그저 웃으며 넘어갔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 벨제뷔트의 부활을 위한 것치고는 조촐한데.”

“마케니안이시여!! 괜찮으십니까?”

한 차례 악마들의 공습이 끝나고 난 뒤 배트가 활화산 속에 쉬고 있는 레드 드래곤을 불렀다.

“대단하군. 인간들치곤 꽤나 실력이 뛰어나구나.”

“감사합니다.”

“물론,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악마들이었지만…… 벨제뷔트가 고작 이런 부하들을 부려서 날 죽이라고 했을까 의문스럽군.”

“저희도 그래서 조금 이상합니다. 비록 화산 속에서 잠들어 계신 당신이지만 고작 이런 악마들이 당신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으음…….”

하늘을 울리던 마케니안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들 앞에 레몬빛의 긴 생머리를 한 미청년이 나타났다.

“당신은……?”

“내가 바로 레드 드래곤 마케니안이다. 이런 모습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편이 대화하기엔 더 수월할 것 같아서 말이지.”

“이렇게 직접 대륙의 수호자를 뵙게 되다니 반갑습니다.”

“으음. 그래.”

예의 바른 배트의 인사를 받는 것이 익숙한 듯 마케니안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이것으로 정말 끝인가?”

“글쎄요…….”

배트는 마케니안의 물음에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왜 나를 보지?”

“음?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뭔가 할 말이 있기라도 한 듯 그는 아쉬운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그의 눈빛이 마치 나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하여 기분이 나빴다.

“그냥 이대로 끝나면 시나리오가 참으로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재미없다니?”

“제가 해 드릴까요?”

“……무엇을?”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미소 속에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마치…… 처음 나에게 죽음을 안겨 주었던 그때의 눈빛으로.

“마케니안을 죽여 드릴까요?”

“……!!”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엔 너무나도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다.

“무, 무슨 소리야?!”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까지 더듬어 버리고 말았다.

“네?”

그러나 그다음에 배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나에게 다시 물었다.

“왜 그래? 아스테온?”

“무슨 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슈가비와 바실리아가 걱정하며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순간 심장이 멎는 그런 기분이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나를 긴장하게 만든 적이 없었는데…… 두 번씩이나 같은 사람에게 마치 놀림을 당하듯 되다니.

“아스테온.”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벨제뷔트의 공습 중간에 난입한 한 인물.

“으음…….”

그는 살짝 배트를 바라보았다. 배트 역시 그의 동향을 알아 차리고는 살짝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아스테온, 난 그대를 평범한 유저와는 다르게 생각한다네. 그래서 물어보지.”

“무엇을요?”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말이야.”

그의 단단한 눈빛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황금빛의 갑옷은 조용히 나를 압박하는 기분이었다.

“마케니안을 죽이러 온 것인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물음은 배트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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