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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레전드-113화 (113/122)

듀얼 레전드 113화

“흐읍!”

그러나 나 역시 몸이 행하는 대로 크리사오르를 반대로 쥐어 검날로 그것을 막았다.

“크크크, 빙결의 아스테온이라…… 처음 대륙으로 나온 오늘 제물로 삼기에 충분한 녀석이로군!”

“나의 이름이 악마계까지 퍼졌나? 그런데 잘못 알려진 것 같군. 고작 이제 처음 대륙에 나온 애송이 악마가 날 잡을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생각보다 작은 체구의 악마는 마치 도적처럼 검은색의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두 손엔 얇고 길다란 레이피어 형태의 검을 들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무척이나 유연한 듯 크리사오르와 부딪힌 순간 부러질 듯 휘어졌지만 부러지진 않았다.

“크하하!! 고작 인간 따위가!”

녀석은 나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괴상한 악마의 웃음이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크하하…… 퀘에엑?!!”

“웃음소리 한 번 더럽군. 하릴없이 악마계에서 담배라도 줄기차게 피웠냐?”

녀석의 목을 움켜진 나는 그대로 크리사오르를 들었다.

“스킬을 쓰기에도 아까운 녀석이로군.”

차가운 검이 녀석의 배를 꿰뚫었다. 검이 닿는 순간 검날 주위론 처음과 마찬가지로 살얼음이 얼어붙으며 피 한 방울 만들어 내지 않았다.

“이런 무의미한 싸움은 시간 낭비일 뿐인데……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는 게 어때? 응?”

나는 하늘을 향해 말했다. 너무나도 쉽게 잡혀 버린 이름도 모를 우두머리 악마도 그랬지만 그마저도 사라지자 제아무리 수가 많다 하더라도 낙엽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악마들을 바라보며 말이다.

“잘난 척하긴…… 인간 주제에.”

“나오셨군.”

바닥에 떨어진 낙엽과도 같은 악마들을 밟으며 또 다른 녀석들이 등장했다.

“이번엔 조금 달라 보이는군.”

“물론. 좌장군? 우장군? 흥, 허울만 좋은 그런 계급 따윈 공명심만 높은 녀석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 진짜 벨제뷔트 님의 수하인 우리들이야말로 그분의 진정한 기사이다.”

“기사라…… 그런 신성한 이름을 요즘은 더러운 악마에게도 붙이나? 가당치 않는군.”

등장한 악마의 말에 아더는 엑스칼리버를 한 바퀴 휘돌리며 말했다.

“그렇게 실력에 자신 있다면 한번 붙어 보도록 할까? 더 이상 지루해할 필욘 없어. 왜냐면 우리들이 마지막이니까.”

나타난 악마의 숫자는 모두 여섯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한 것도 그렇지만 가장 적은 수였지만 가장 강력해 보이는 것 역시 맞았다.

“여섯이라…… 우리들을 상대로 고작 여섯이라. 건방지지만 이에 응해 주지. 누가 나갈 거지?”

카린은 나타난 악마의 강함보다 그 숫자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유피테르를 움켜쥐고는 가장 먼저 나서며 말했다.

“카린 경, 그렇다면 한 명은 내가 맡지.”

“물론, 나도.”

“흐음……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번엔 나가 볼까?”

그 뒤를 아더와 배트, 그리고 제노 클레이트가 나섰다.

“아더, 당신이 나간다면 저 역시 나가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대는 루르시아 황태자.”

“아니요. 황태자란 이름을 버린 지 오랩니다. 그저 루르시아 피네스일 뿐. 그러나 왕 중의 왕이 될 사람임은 여전히 그대로지요.”

“왕 중의 왕이라…… 그거 재미있군.”

“왕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당신의 검 엑스칼리버. 그러나 나의 블리츠 브링거 역시 결코 그에 못지않습니다.”

―흥, 못지않다니. 그 이상이지.

블리츠 브링거는 루르시아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마지막은 나로군.”

여섯 명의 악마. 그리고 나, 배트, 제노, 카린, 아더, 루르시아까지 우리들의 선수도 모두 결정이 되었다.

“아쉽군. 내가 나섰어야 하는데.”

“저희들도요.”

“다른 사람들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준비하고 있어. 악마들은 언제 어디서 술수를 쓸지 모르니까.”

“이런, 이런. 우리들이 고작 그런 저급한 술수라도 쓰는 하급 악마라고 생각하다니. 이거 실망인걸? 이단심판관 카린 경.”

“호오? 날 아나?”

“물론. 악마계에서 당신을 모르면 안 되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악마 사냥꾼. 하지만 당신에게 죽는 것은 결국은 악마계에서도 살 수 없는 멍청이란 말이겠지.”

“하긴 죽이고 죽여도 이렇게 계속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것을 봐서는 멍청한 건 맞겠지.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으니까. 그렇지?”

“……네년을 내 손으로 악마계로 끌고 가주마.”

“네년? 어디서 건방진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거야? 이봐, 말총머리 네 이름이 뭐야?”

“마, 말총머리?”

“그래, 건방진 네 녀석 이름이나 들어 보자.”

너무나도 어여쁜 얼굴의 소녀였지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너무나도 도발적이었다.

“아가레스, 진정해. 저런 말장난에 화를 내면 쓰나.”

“그래, 넌 너무 호전적이라 문제야.”

“크으…… 그래, 내가 조금 성급했군. 그러나 저년의 상대는 나다. 아무도 건들지 마.”

“후후, 좋을 대로.”

“이단심판관 카린이야말로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으니 우리들이야 오히려 편해서 좋지.”

긴 검은 머리를 묶은 악마의 이름은 아가레스. 그리고 그를 시작으로 세메카, 시아군, 레미제, 제라프, 제파르의 여섯 악마는 각자 자신의 상대 앞으로 다가섰다.

“네년의 그 건방진 주둥이를 잘라서 나의 저택에 장식으로 하겠다.”

“그래? 그럼 난 네 목을 잘라 교단 한가운데에 걸어 두지.”

“크으으!!”

아가레스는 날카로운 쌍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초승달처럼 생긴 두 자루의 시미터(Simitar)는 각기 붉은색, 푸른색의 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죽어라!”

어느새 카린의 유피테르도 전격을 뿜어내며 그를 상대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한눈을 팔고 있으면 안 되지?”

아가레스와 카린의 전투를 시작으로 모든 악마들이 자신들의 상대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들의 검은 날개가 한순간 일제히 펼쳐지자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이 완전히 가려져 버린 듯 어둠이 펼쳐졌다.

“다크니스 큐브(Darkness Cube)!”

악마들의 주문이 펼쳐지자 순간 주위에 어둠이 깔렸다. 나의 바로 옆에 있던 루르시아와 아더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건?”

“후후, 아스테온. 당신의 상대는 저입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여섯 악마 중에 한 명.

“저의 이름은 시아군. 빙결의 아스테온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로군요. 조금 전 겁 없던 악마와는 다르니 그대로 긴장을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는 여섯 악마 중에 유일하게 붉은 갑옷을 입은 악마였다. 단단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말투가 오히려 그의 양손에 들린 거대한 양날 도끼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 베르테론 님께서 오른팔을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당신을 지목한 것이구요.”

“베르테론이라…… 그래, 그러고 보니 광전사 베르테론과 모습이 비슷하군.”

“그는 저의 스승이셨으니까요.”

“악마에게도 스승이 있나 보군.”

“그는 악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사셨습니다. 비록 당신에게 졌지만 그것은 인간계에서 모든 힘을 발휘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전사는 상황의 불리함을 핑계로 둔다면 끝이 없는 법.”

“네. 맞습니다.”

시아군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 위에 붉은 투구가 살짝 오르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저 시아군이 당신에게 결투를 청하는 바입니다. 베르테론 님의 제자가 그의 명예를 다시 회복할 것입니다.”

“긴말 필요 없겠군.”

“결투는…… 한쪽의 목숨이 사그라들 때까지 절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아군은 도끼를 두 손으로 쥐어 들었다. 나 역시 크리사오르에 마나를 주입했다.

“간다!!”

단단한 판금의 갑옷을 입은 시아군이었지만 그의 몸은 너무나도 재빨랐다.

콰앙!!

“크윽……?!”

마치 거대한 황소가 질주를 하여 달려들 듯 그가 오른 어깨를 내밀고 엄청난 속도로 나를 들이받았다.

“휠 윈드(Wheel Wind)!!”

어깨로 나를 들이받은 시아군은 재빠르게 도끼의 손잡이를 들어 몸을 돌렸다. 거대한 풍차처럼 양날의 도끼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나에게 다가왔다.

“휠 윈드 따위야……!”

휠 윈드는 낯선 기술이 아니었다. 전사 클래스의 유저들 역시 이와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휠 윈드의 단점은 이동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지. 거리를 뛰게 되면…… 크으윽!!”

백스텝으로 저 멀리 뒤로 빠지려는 순간 나는 그 뒷말을 이어서 할 수 없었다. 뒤로 점프를 한 순간 무언가가 나의 등을 밀 듯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아직 이 결투의 룰을 잘 모르는 것 같군요.”

시아군의 도끼가 나의 눈앞 바로 앞까지 오자 나는 황급히 허리를 숙여 그의 밑으로 빠져나왔다.

“무슨 더러운 수작이지……?”

“이런, 이런. 저희 여섯 악마가 술책이나 쓰는 저급 악마라 생각하십니까?”

“웃기지 마. 그렇다면 조금 전은 뭐지?”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은 마케니안이 아닌 어두운 암흑의 공간. 악마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엔 뭔가 어두운 수가 놓여 있는 법이었다.

“결투의 룰을 알려 드리죠, 아스테온.”

그는 잠시 바닥에 도끼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이곳은 저희들이 만들어 낸 절대 어둠의 공간. 다크니스 큐브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룰은 너무나도 간단하죠. 오로지 전사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죠.”

“…….”

“이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저를 물리치는 것.”

“그건 어차피 할 일이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군.”

“네, 다만…….”

그의 말이 멈추었다.

콰앙!!!

“무, 뭐야?!”

나의 등 뒤로 녀석의 거대한 도끼가 튀어나왔다. 재빠르게 크리사오르를 들어 막긴 했지만 검의 두 배는 되는 시아군의 도끼에 나의 몸이 휘청거렸다.

“조금 저의 편의를 봐주는 공간이라는 점이겠죠.”

“조금의 편의? 이게?”

다크니스 큐브. 간단한 것이었다. 이 어둠의 공간은 녀석의 것이었다.

“공간을 지배한다라…… 역시 악마다운 생각이로군.”

“악마다움이란?”

“치졸하고 더러운 수작.”

“칭찬으로 받아들이죠.”

시아군의 얼굴 표정엔 그 어떠한 수치심도 없었다. 스스로를 벨제뷔트의 기사들이라고 칭하는 녀석들이 하는 짓이 고작 이거라니.

“벨제뷔트의 수준을 알겠군.”

“시작하죠.”

시아군은 능숙하게 도끼를 움직였다. 녀석의 두 손에 보이는 것은 그저 도끼 자루뿐. 어둠 속으로 빠져든 도끼날은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었다.

쾅!! 쾅!! 쾅!!

“크윽!”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도끼의 향연은 크리사오르로 막기에도 버거운 것들이었다.

“당신을 죽여 베르테론 님의 명예를…….”

“그 녀석의 명예는 바로 네가 다 깎아 먹고 있다. 시아군.”

마지막 도끼는 크리사오르로 막지 않았다. 위태위태하게 몸을 꺾어 피하자마자 나는 녀석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적어도 베르테론은 강맹한 자신의 힘 하나만으로 우리와 싸웠으니까.”

녀석의 어깨에 크리사오르를 박아 넣었다. 붉은색 파편이 튀어 오르며 시아군의 갑옷이 부서졌다.

“흐읍……!”

살짝 입술을 다물며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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