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112화
“이, 이런……!!”
당황스러운 모습이 역력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가볍게 검을 쥐었다.
“루나틱 슬레이어.”
검기를 뿜어낼 필요도 없었다. 왜냐면 나의 크리사오르의 궤도 안에 이오라스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카르르릉……!
검에 베이는 소리라 생각할 수 없는 특이한 소리가 울렸다. 마치 급속도로 빠르게 얼음이 얼어붙을 때나 들리는 그런 소리였다.
더욱더 정교해진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술.
“두 번째 검은 필요 없지.”
피조차 나지 않았다. ‘카르릉’ 거리던 그 소리는 이오라스의 허리를 지나간 크리사오르의 자취가 만들어 낸 살얼음 소리였다.
짝, 짝, 짝.
“훌륭하시군요. 역시 혈투의 전장의 최고 투사다운 실력입니다.”
“…….”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뭐가 만족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듀얼-레전드의 최고 플레이어들이 모이니까 저런 몬스터들도 금방 끝나는데?”
한창 악마들의 전투가 마무리될 즈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제노 클레이트!”
“다들 재미있게 싸우고 있길래 말이야. 끼어들 수가 없었지.”
“제물은?”
“물론 여기 있지.”
제노 클레이트의 양손엔 나머지 두 개의 제물이 들려 있었다.
“빨리 오고 싶었는데 말이지. 밑에서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구경을 하다가 오느라고.”
“밑? 샤크와 노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아아, 걱정마. 배트, 당신네 기사단이 쉽게 질 실력이 아닌 것은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
“그렇다면?”
“몬스터 따위와 싸우고 있었으면 구경할 필요도 없이 올라왔겠지.”
“……?”
제노 클레이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통과 명성을 따지자면 발뭉 기사단보다 훨씬 더 높은 팀이 듀얼-레전드에 딱 하나 존재하지.”
“설마?”
“아쉽게도 샤크와 노운이 상대해야 할 사람은 스킬 한 방에 쉽사리 녹아 버리는 악마 따위가 아닌 진짜 기사거든.”
그의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았다. 발뭉 기사단괴 맞닥뜨린 또 하나의 기사단 그것은,
“카멜롯의 아더. 그가 지금 마케니안을 찾았다.”
“아더가? 어째서?”
배트마저도 예상하지 못한 듯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제노 클레이트에게 물었다.
“글쎄? 단순히 명예심에 따라 배트 당신보다 먼저 마케니안을 잡기라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역시 이 시나리오에 한 인물일지는 모를 일이지.”
“크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발뭉 기사단과 카멜롯 기사단이 지금 한창 붙고 있다는 거지. 마스터가 없는 기사단과 있는 기사단. 과연 누가 이길까?”
“루드, 상황을 보고 와.”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제노 클레이트의 말에 배트는 빠르게 그의 부하인 루드에게 명했다.
“설사 카멜롯의 아더라 할지라도 샤크가 쉽사리 당할 리 없으니까. 샤크와 너라면 충분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아쉽게도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
배트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따.
“이런, 이런?”
모두가 놀란 상태에서 제노 클레이만이 이 상황을 즐기는 듯 흥미로운 얼굴로 지금 나타난 존재를 바라보았다.
“밑에서 조금 걸리적거리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시간을 지체했군.”
“샤크와 노운은?”
“그들 역시 아직 한창 카멜롯의 기사들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부하들은 부하들대로 마스터는 마스터대로 만나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
황금빛 찬란한 갑옷을 걸치고 나타난 그는 다름 아닌 카멜롯의 아더. 그의 옆엔 언제나처럼 실마릴 리가 함께하고 있었다.
“당신은 동료인가? 아니면 적인가?”
“……글쎄?”
“그런 대답이 어딨지?”
“과연 누가 동료이고 누가 적이지? 지금 그대들이 함께 있다고 해서 모두 동료라고 생각하는가?”
중후한 목소리로 아더는 천천히 또박또박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지. 당신은 마케니안을 잡으러 온 것인가 아니면 수호하러 온 것인가.”
배트는 아더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난 대륙을 수호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러나 아더는 여전히 배트의 물음에 정확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무엇이 대륙을 위한 것임을 안다면 방해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배트는 아더의 말에 으름장을 놓으며 소리쳤다. 우두머리가 모두 죽고 난 뒤에 남은 악마들은 속수무책으로 우리들에게 쓰러지기 시작했다.
“너무 간단한데? 이게 정말 마케니안을 잡기 위해 파견된 악마들이란 말이야?”
바실리아는 날아다니던 박쥐형 악마의 목을 움켜쥐어 바닥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악의 파도는…… 이제 시작이다.”
그의 물음에 그 어떤 이도 아닌 아더가 대답했다.
“악의 파도?”
“오는군.”
“음?!”
아더의 경고와 함께 그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모두의 눈이 이동했다.
“저건…….”
“실마릴리.”
“알겠습니다.”
그녀는 아더의 명령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최고급 성수?”
“구하느라 조금 애를 먹긴 했지. 슈가비 님, 여기에 축복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교단을 빠져나온 아더가 성수까지 준비해서 왔다는 것은 적어도 악마들의 공습을 알고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알겠습니다.”
최고급 성수에 슈가비의 축복이 더하자 더욱더 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모두 각자의 무기에 성수를 바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카린 경은 굳이 필요하지 않겠지?”
“물론. 성수 따위 묻혀 봤자 유피테르의 성력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구.”
신의 힘 그 자체인 유피테르만은 성수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언데드와 악마에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무구였다.
“배트, 당신도 바르는 게 좋을 거야.”
“흥, 그런 것 없어도 나의 레이시츠가 멋들어진 전설에 힘입어 위세를 떠는 가짜 검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악마들을 잡을걸?”
“전설의 후광을 엎은 가짜 검이라…… 누가 그랬지?”
“흥, 상위 유저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지. 아더, 당신의 검 엑스칼리버는 그저 이름에 어울리게 만든 가짜라는 것을 말이야.”
배트는 신랄하게 아더를 비난했다. 언제나 정도를 걷는, 진정한 기사라 알려진 아더가 그는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보였다.
“배트, 그대는 이 검이 진정으로 위검으로 보이는 것인가.”
그러나 아더는 조용히 그의 말을 반박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수많은 악마들이 날아오는 상황에서도 뚜렷하게 우리의 귀에 들려왔다.
차르릉…….
그의 허리에서 뽑혀 나온 한 자루의 검. 아더의 황금색 갑옷에 맞추어서 제작이라도 한 듯 그의 검 역시 빛나는 황금색이었다.
“금빛은 왕의 상징. 전설 속에 빛나는 진정한 왕의 검은 그 자체가 황금이라.”
아름다웠다. 한눈에 보이는 그 아름다움은 크리사오르의 순백이라던지 유피테르의 신성함과는 다른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권력(勸力)”
그랬다. 그의 검은 왕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 같이 빛나며 화려했다.
―루르시아. 또 다른 의미에서 네가 쓰러뜨려야 할 라이벌이겠구나.
“쉽지 않겠지만 지지 않아요.”
―물론.
황제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아더의 등장이었으나 왕의 왕이 되리라 다짐한 루르시아에겐 그저 또 다른 라이벌의 등장에 불과한 듯 보였다.
“말도 안 돼! 정말로 엑스칼리버를 찾았단 말인가?”
배트는 아더의 검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도 그의 검을 보았던 우리들로서는 분명 그의 엑스칼리버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의 증표이자 승리의 검 엑스칼리버(Excalibur). 승리를 약속하는 이 검이야말로 대륙을 수호하는 수호의 검이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아더는 빛났다.
“가자, 실마릴리. 나를 따르거라.”
“그 어디까지라도.”
충직한 그의 기사인 실마릴리는 커다란 활을 꺼내었다. 스완의 윈드 포스처럼 에고(Ego)를 가진 무기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지금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성령의 빛이여, 홀리 애로우!!”
실마릴리의 활시위에서 세 개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그녀의 활 역시 화살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윈드 포스와는 다르게 그녀는 자신의 마나를 사용해서 직접 화살을 만드는 것 같았다.
솨아앙!!
그녀의 화살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하나, 둘, 셋.”
나직이 카운트를 세는 아더. 그리고 그 카운트에 맞추어 떨어지는 악마들. 실마릴리의 화살은 유유히 악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간다!!”
그녀의 화살을 시작으로 두 번째 악의 파도가 밀려왔다. 그 전보다 더 많은 악마들이 마케니안을 찾은 것이었다.
“벨제뷔트 님의 부활을 위하여!”
“마케니안을 죽여라!!”
하나같이 똑같은 외침으로 수백의 악마들이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스완, 레릭, 루르시아!”
“네!!”
“알겠습니다.”
스완의 화살, 레릭의 마법, 그리고 루르시아의 검술이 조화를 이루며 괴상하게 생긴 악마들을 가르기 시작했다.
“아스테온, 이번에도 어딘가에 우두머리가 있을 것이다. 악마들은 우두머리에 링크되어 그 능력치가 상승하기에 우두머리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우두머리라…….”
“계급이 다른 악마일 테니 분명 모습에서 눈에 띌 거다.”
“찾아보도록 하죠.”
롱소드와 바스타드 소드의 중간 정도의 크기. 결코 작지 않은 체구의 아더에게 마치 맞춰진 것 같은 엑스칼리버는 황금빛 궤적을 그리며 악마를 처단하고 있었다.
“지겹도록 밀려오는군! 신의 단죄로 너희들을 처단해 주겠다!!”
날카로운 카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죽어 버려!!”
수십 개의 번개가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사형조차 내리기 아깝다는 듯 그녀는 거대한 유피테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악마들을 ‘파괴’ 해 나가고 있었다.
“올리반트!!”
“응?”
“힘이 더 필요해. 하나하나 잡아서 언제 다 끝낼 거야?”
“지금도 하나하나 잡는 것 같진 않은데? 카린?”
“어쨌든!!”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또 가장 악마를 처단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녀는 성이 차지 않은가 보다.
“아니, 지금 말고. 카린 경. 조금 뒤에. 파도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터. 무리하면 나중에 지칠지 몰라.”
“아더. 당신은 설마 나 이단심판관 카린이 악마를 앞에 두고 지쳐서 널브러지기라도 할 것이란 말이야?”
“물론, 악마를 앞에 둔 카린 경이라면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흥…….”
카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더의 말을 따랐다.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강한 상대와 더 격정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성수까지 준비해 온 것을 봐서는 아더 역시 악마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인 것 같은데…….’
마케니안을 죽여야만 하는 나로서는 어떻게 보면 또 한 명의 강력한 방해꾼이 나타난 셈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자니 걸리는 의문점이 있었다.
‘어째서 그렇다면 밑에 있는 발뭉 기사단과 카멜롯이 교전한 거지?’
한 배를 탄 동료라면 비록 발뭉과 카멜롯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더라 하더라도 교전까지 이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벨제뷔트의 시나리오에 참여한 유저들을 빠르게 모으기 위해 그랬다고 말했지만 갑작스럽게 목표를 바꾼 배트나 카멜롯이란 거대한 팀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움직인 것이나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콰앙!!
생각이 많으면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법이었다. 나의 옆구리를 향해 무언가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