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얼 레전드-102화 (102/122)

듀얼 레전드 102화

“좋아. 백번 양보해서 당신을 합류시킨다고 하지. 하지만 우리들이 당신을 어떻게 신용하지?”

“신용할 것 없어. 동료로 받아 달라는 것이 아니니까. 아스테온 당신도 날 동료로 받고 싶은 생각은 없잖아?

“그렇다면?”

“그저 같은 목적을 위해서 일시적이나마 함께 행동하자는 것이지. 나와 당신들은 어차피 라이라 왕국을 찾는 것이 목적이니까.”

“엘 윙, 당신도 라이라 왕국을 찾는다는 거야?”

“물론.”

“어째서……?”

“그것까지 이야기해 줘야 하는 거야? 뭐, 좋아. 라이라 왕국은 고대부터 숨겨진 비밀의 왕국. 그렇다면 그곳에 있는 것은? 당연히 무궁무진한 보물들 아니겠어?”

“…….”

“수많은 보물들이 이 엘 윙 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에 가지 않을 수야 없지!”

“시답잖은 이유로군.”

“뭐, 뭐야?”

그녀가 저 멀리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자 나는 가차 없이 그녀의 불타는 투지에 찬물을 끼얹어 주었다.

“그리고 지도만 있다고 라이라 왕국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거든. 사실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곧 내가 너희들을 찾아 갔을 거야.”

“어째서?”

“아스테온, 혹시 지도를 얻을 때 이것 한 장만 받진 않았겠지? 이것과 함께 받은 것이 있다면?”

“그건…….”

그녀의 말에 나는 지도를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스완에게 주었던 서리단검.”

“그래, 그거야!”

나의 중얼거림에 그녀는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그거라니?”

“지도는 분명 라이라 왕국을 찾아가는 열쇠임이 분명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수는 없어. 왜냐면 라이라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인정하는 뭔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그것이 바로 그 단검이란 말야.”

“그렇군…….”

“당신들은 열쇠가 있지만 위치를 모르고 나는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있지만 열쇠가 없지. 어때, 이만하면 충분히 거래를 할 만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흠…….”

“얌체 같은 그녀의 말이었지만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들은 지도가 필요했고 그녀는 열쇠가 필요했으니까.

“게다가 이 지도를 지키기 위해서 수고해 준 나를 생각해서라도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아까부터 계속 똑같은 이야기를 하던데 지도를 지켰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군. 하긴, 지도가 없다는 것을 아니까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

“라이라 왕국의 지도를 빼앗기 위해서 공격해 온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를 거야. 내 직업이 도둑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걸?”

“그 말은 라이라 왕국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우리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군.”

“당연하지. 엘라시온 대륙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야? 이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어쩌면 이미 라이라 왕국을 찾은 사람도 있을지 몰라.”

그녀의 말에 나는 불현듯 새벽의 고원에서 만났던 제노 클레이트가 생각났다. 그 역시 라이라 왕국을 찾아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좋아. 엘 윙. 당신의 거래에 응하겠어. 어차피 서로가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들이기 적어도 그 전에 배신을 하거나 할 일은 없겠지.”

“물론이야.”

“전과가 있어서 확실히 믿긴 어렵겠지만.”

“남자가 쪼잔하게.”

“뭐, 좋아.”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엘 윙 역시 알고 있었기에 그녀 또한 나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것으로 계약 성립이로군.”

“지도는…?”

“성미 한 번 급하네.”

그녀는 자신의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다름 아닌 라이라 왕국의 지도였다.

“창고에 있는 것이 아니었어?”

“당연하지. 조금 전에 내가 말했잖아. 이걸 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그런 물건을 이런 창고에 넣어 두면 안 되지.”

“그렇다면 굳이 여기까지 우리를 끌고 온 거지?”

“긴 여행을 위해서라면 준비도 그만큼 필요한 법이니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가야지.”

“하아?”

“이봐, 거기서 있지 말고 이리로 와서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챙기라고, 돈 따윈 받지 않을 테니까.”

그녀의 비밀창고의 문이 열리자 그곳엔 우리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들 정도로 많은 아이템들이 쌓여 있었다.

“난 한번 마음먹은 일엔 아끼지 않는 성격이니까.”

“이거 한 방 먹었군.”

“그만큼 똑똑한 파트너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아스테온.”

“하, 하하…….”

그렇게 라이라 왕국의 위치를 알려 줄 단서인 지도와 함께 새롭게 합류한 엘 윙.

그렇게 우리들의 모험 역시 조금은 윤곽이 잡혀가는 것 같았다.

2장. 심연의 늪

“…….”

“음음…….”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가 하라는 도서관 조사는 하지 않고 코브리온에 놀러 갔다는 말이로군?”

“하, 하하. 그보다는 라이라 왕국의 위치를 알려 주는 지도를 얻었으니까 엄청난 수확이지 않겠어? 카린.”

“시끄러워, 올리반트.”

“아, 넵.”

카린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올리반트는 그만 입을 다물고 한 발자국 물러서고 말았다.

“거기 꼬맹이 두 녀석.”

“네!”

“네, 네!”

“감히 내 말을 거역하고 놀러를 가?”

“죄, 죄송합니다…….”

뒤늦게 교단에 들어온 레릭과 스완은 카린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대답했다.

“흥…… 조사가 끝나고 가려고 했었는데…….”

“네?”

“시끄러워.”

뭐라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카린의 말을 아무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 지도는?”

“여기.”

나는 카린에게 동그랗게 말린 지도를 건네주었다.

“흐음…….”

그녀는 꽤나 오랫동안 도서관에 있었던 것인지 피로한 얼굴로 지도를 펼쳐 보았다.

“이건?”

“내 생각엔 아마도 지도에 적힌 그 글들은 드워프의 언어인 것 같아. 라이라 왕국으로 가는 길을 드워프들이 개척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시끄러워, 말총머리.”

“뭐, 뭐야?!”

“하, 하하. 진정해. 진정. 이제 함께할 동료인데 이러다가 싸울라.”

“도적 따위와 같은 취급 하지 마.”

“도, 도적 따위? 흥, 그 도적 따위에게서 얻은 지도가 아니었으면 라이라 왕국으로 갈 생각도 못 한 주제에.”

“지도만 있으면 뭐해. 들어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뭐, 뭐야?”

천하의 엘 윙일지라도 역시 카린에게는 적수가 안 되는 듯싶었다. 울그락 불그락 얼굴이 붉어지는 엘 윙과 반대로 카린은 너무나도 편안한 얼굴로 지도를 읽고 있었다.

“올리반트.”

“응.”

“여기 어딘지 알 것 같아?”

“글쎄…….”

“어제 우리가 봤던 엘라시온 대륙 황혼의 역사 제23편을 가져와.”

“에? 그건 반출은 금지된 거잖아.”

“다시 들어가기 귀찮으니까.”

“…….”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말에 올리반트 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 순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해? 설마 연약한 나보고 또 거기 가서 보고 오라는 건 아니겠지?”

“휴우…… 알았어. 걸리면 교황님께 뭐라 할지 모르겠네.”

“흥, 할아범이야 뭐라 하든 말든.”

대륙에서 가장 거대하다는 이리스 교단의 교황조차 카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어쨌든 한마디로 말해서 여기 지도가 라이라 왕국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고, 저기 서리단검이 라이라 왕국에 들어가는 열쇠란 것이로군.”

“그렇지.”

“흥, 간단하군.”

카린은 지도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말했다.

“다들 출발할 준비를 해.”

“응? 벌써?”

“물론. 이미 조사는 끝났으니까.”

“정말이야?”

“당연하지. 아스테온, 넌 이단심판관 카린을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지도가 없어도 교단의 정보는 무궁무진 하다고. 단지 이 지도는 나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 줄 계기일 뿐이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카린에게 어느새 도서관에서 나온 올리반트가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휴우, 가져왔어. 카린.”

“거기에서 147페이지를 펼쳐 봐.”

“응.”

500페이지는 될 것 같은 두껍고 커다란 책을 들고 올리반트가 그녀가 말하는 페이지를 찾았다.

“어째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저런 식으로 자료를 찾았을 것 같지 않아? 올리반트가 쓰러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군.”

“음, 음. 그러게요.”

“뭐라고?”

“흐익……!”

바실리아가 나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지만 카린의 시야를 벗어나진 못한 듯했다. 그녀의 말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가 흠칫 놀랬다.

“찾았어, 카린.”

“그래? 이리 보여줘 봐.”

“으응.”

올리반트가 보여 주는 책을 읽던 카린은 지도와 책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하군.”

“뭐가 말이야?”

“생각보다 가까운데? 여긴 바로 카람 왕국이잖아.”

“카람 왕국이라면…… 그 늪지의 왕국이라 불리는?”

“그래. 엔도라스 왕국의 바로 위.”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렇게나 가까운 곳이 바로 우리들이 찾는 라이라 왕국으로 가는 길이었다니!

“그럼 카람 왕국이 라이라 왕국이란 말이야?”

“아니. 그렇지 않아. 이 지도에 나와 있는 이 장소는 분명 카람 왕국 바로 뒤에 있는 대륙에서 가장 큰 심연의 늪이지.”

“그런데?”

“심연의 늪엔 아무것도 없어. 말 그대로 늪일 뿐이야. 하지만 이 지도를 봐. 여긴 이렇게 길이 나 있지. 그렇다면 이 길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글쎄…….”

“대륙 황혼의 역사 제23편에 나와 있는 글귀를 보자면 이렇게 쓰여 있지. 인간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 대륙의 인류가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만든 라이라 왕국. 인간은 라이라 왕국을 유지했고, 엘프는 왕국의 마법을, 그리고 드워프는 왕국의 건설을 맡았지. 그러나 그것에 노한 신께서 대륙과 라이라 왕국의 길을 막아 버리셨도다.”

“그렇다면 그 막아 버린 길이 바로 카람 왕국의 심연의 늪이란 말인가?”

“내 생각이 맞는다면 확실해. 신은 거대한 늪으로 라이라 왕국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 버린 것이지.”

카린의 말에 우리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반트, 지금 바로교단의 텔레포트를 써야겠어. 엔도라스 왕국으로 바로 움직인 뒤에 카람 왕국으로 가는 포탈을 타자.”

“알겠어.”

“잠깐. 우리들은 카람 왕국으로 가본 적이 없어서 텔레포트를 찍지 못했는데?”

“걱정마. 카람 왕국의 국교가 이리스교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지? 이리스 교단에선 포교를 위해 지금 카람 왕국에 파견되어 있지. 그리고 그곳에 가기 위한 텔레포트를 만들었는데 교단 사람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지만 내가 있으니 상관없어.”

“믿음직스럽군.”

“흥, 지도 하나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어중이나 열쇠 하나만 들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떠중이와는 다르거든.”

“뭐, 뭐야?”

“하, 하하. 면목 없습니다.”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카린의 능력은 정말로 탁월한 것이었다. 어느새 올리반트는 텔레포트를 준비하러 자리를 비웠고 우리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장비를 검사하며 움직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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