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96화
강력한 공격임에는 틀림없었다. 납골당의 시체들을 한순간에 재로 만들어 버리며 날아간 불사조의 화살은 정확히 베르테론의 가슴을 향했다.
[흥, 가소로운!!]
그러나 베르테론은 자신의 도끼를 들어 스완의 화살을 받아 넘겼다.
콰앙!!
스완의 피닉스 블레이즈는 베르테론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한 채 오히려 그의 도끼에 막혀 납골당의 천장을 부수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홀리 실드(Holy Shield)!!”
둥근 원형의 보호막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벽돌을 막아 주었다.
“기껏 지하로 들어왔더니 다시 보이는 건 하늘이로군.”
납골당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다시금 눈 덮인 새벽의 고원의 설원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쉽게 죽어 주시지 못하겠다, 이거지?”
카린은 바닥에 부서진 돌가루들을 이리저리 발로 문지르며 말했다.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이 악마야!”
캉!
그녀의 유피테르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면서 거대한 대검으로 변했다.
“2차전 시작이로군.”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우리는 저마다 무기를 들었다. 쉽지 않은 상대. 하지만 우리가 상대해 왔던 적들이 단 한 번이라도 쉬운 적이 있었던가!
“올리반트!!”
“후우…….”
“전지전능하신 크로니온이시여, 당신의 힘에 따라 악을 멸할지니 창천의 힘으로 신의 천벌(天罰). 뇌진(雷震) 유피테르(Jupiter)의 사용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올리반트의 수인에 따라 유피테르는 마치 다시 한번 생명을 얻은 듯 강렬한 번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걸론 부족한 걸 알잖아.”
“하지만……!”
“제2단계 봉인까지 풀어 줘.”
거대한 대검을 한 손으로 쥐고는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꼬마 아이처럼 그녀는 올리반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못 말리는 숙녀라니까…… 부디 무리하지 마.”
그런 카린의 행동에 올리반트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했다.
“뇌진(雷震) 유피테르(Jupiter)여! 크로니온의 뜻에 따라 그 힘을 온 세상에 떨치어라!!”
“좋아!!”
다시 한번 이어지는 올리반트의 영창을 들으며 카린은 이제야 만족한 듯 두 손으로 유피테르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너는 이렇게 기억하라. 이제부터 내리는 것은 신의 축복이리라, 너에게 신께서 내리시니 그것은 곧 죽음! 깨끗하고 고결한 죽음의 축복을 내릴 것이다.”
콰앙!!
올리반트의 영창이 끝남과 동시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강력한 번개가 유피테르의 검날에서 뿜어져 내렸다.
“간다! 유피테르 썬더(Jupiter Thunder)!!”
엄청난 높이로 도약한 카린이 베르테론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하아압!!”
그녀는 유피테르를 베르테론의 목과 어깨 사이로 깊숙이 박아 넣었다.
콰르릉!
그와 동시에 맑았던 하늘의 한가운데 맹렬한 먹구름이 뭉치며 날카로운 번개가 떨어졌다. 라이트닝 마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함이었다.
[크아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던 베르테론이 드디어 처음 고통스러운 음성으로 소리치는 순간이었다.
“사라져라, 악마여!”
카린은 정말로 마지막을 고하듯 말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가 베르테론을 덮쳤을 땐 정말로 끝이 나는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카린!!”
그러나 그녀를 부르는 올리반트의 외침에 나는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크윽!”
어깨 위에 올라탄 그녀를 떼어 내기 위한 베르테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그녀는 유피테르는 뽑아내며 아래로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렸다.
“유피테르 썬더를 맞고도 죽지 않는다고? 도대체 저 녀석의 몸은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대검 유피테르가 박혔던 어깨에선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검은 피가 솟구쳐 나왔다. 그러나 오히려 유피테르 썬더에 의해서 받은 데미지는 보이지 않았다.
“힘든 싸움이 되겠는걸…….”
베르테론을 보며 올리반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할 수 없군. 카린, 이젠 내가 싸우겠어.”
“뭐?”
“카린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두다간 유피테르의 3차 봉인까지 풀어 달라고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카린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싶지 않거든.”
올리반트는 이 상황에서도 카린의 어깨를 살며시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 웃기지 마!”
그의 그런 행동에 카린의 두 뺨은 살짝 붉어지는 듯 보였다.
“후훗. 앙탈을 부려도 귀여운 건 카린밖에 없을 거야.”
카린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며 올리반트가 말했다.
[다르크 악시나오스!]
악마어를 읊는 베르테론이 그 둘을 향해 거대한 도끼를 내리찍었다.
“위험해! 카린!!”
콰아앙!
내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베르테론의 도끼는 눈 덮인 설원을 강타했다.
“카린!!”
“올리반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두 사람.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엔 베르테론의 도끼만이 남아 있었다.
“휴우, 위험했어.”
“올리반트!”
바닥에 꽂힌 도끼날 위로 올리반트가 서 있었다. 그의 품 안에 카린이 있음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었다.
“자자, 싸우지들 말자고.”
올리반트 한 팔로 카린을 안고는 작아진 유피테르의 은빛 십자가에 입을 맞추었다.
“난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니까.”
철컥!
입을 맞춘 십자가가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의 레인코트 안에서 차가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화해시켜 주지. 인간이든 악마든. 나의 힘 앞에서 그 누구도 분쟁하지 못하도록.”
항상 웃으며 카린의 앞에선 그저 그녀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 좋은 남자로만 보였던 그가 지금은 엄연한 이단심판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메디에이션(Mediation)-중재.”
그의 손엔 은빛의 몸체에 금색의 문양이 덧씌워진 권총 한 자루가 들려져 있었다.
“총이잖아?”
“어떻게?”
“이건 이리스 교단 유일무이한 한 자루의 권총이지요. 과학이 발단된 코발 왕국의 무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구식의 권총이지만…….”
올리반트는 권총을 잡은 손목을 튕겼다.
철컥!
가볍게 탄환을 장전한 그는 베르테론의 얼굴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 어떠한 총도 메디에이션보다 악마에게 효과적인 총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크로니온이 만든 것이니까요.”
타아앙……!!
올리반트의 은색의 총에서 탄환이 폭발하듯 쏘아졌다. 눈으로는 절대로 쫓을 수 없는 빠르기의 그것은 정확히 베르테론의 눈에 명중했다.
[크아아!!]
“소리 한번 우렁차군.”
웃음 가득한 올리반트의 미소와 달리 그의 권총은 자비가 없었다. 마치 폭약 뭉치가 터지기라도 하듯 베르테론의 얼굴엔 연기가 자욱했다.
“마무리해, 올리반트.”
“으응, 미안. 카린.”
그의 품 안에서 올리반트의 코트를 꽉 부여잡은 카린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갈게.”
올리반트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허공을 밟듯 뛰어올라 공중에 떠오르듯 베르테론의 앞에 선 것이었다.
“크로니온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악의 근원은 그 머리라 하셨고.”
타앙!!
첫발이 쏘아졌다.
[이노옴……!!]
베르테론의 노한 음성이 올리반트를 노리며 거대한 도끼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의 양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두 팔은 그 죄를 행하는 도구이며.”
[크아아!!]
“두 다리는 그 죄를 피하여 도망가는 도구라 하셨으니.”
메디에이션의 총구에서 쏘아진 다섯 발의 탄환은 베르테론의 머리와 양팔, 양다리의 앞에서 회전하며 멈추어 섰다.
“이 모든 악의 근원을 뽑을 터이니!”
공중에 떠올라 있던 은빛 십자가가 올리반트의 메디에이션의 탄창에 꽂혔다.
“이것이 진정한 크로니온의 단죄(斷罪)!! 펜타곤 오브 유피테르(Pentagon Of Jupiter)!!”
촤아악!!
다섯 개의 탄환을 구심점으로 하여 거대한 오망성이 펼쳐졌다. 오망성을 잇는 선은 예의 유피테르의 뇌진이었다.
[아아악!!]
이번만큼은 베르테론조차 고통에 찬 몸부림을 쳤다. 차가운 눈보라가 쏟아지는 납골당의 하늘은 유피테르의 뇌진에 의하여 검은 먹구름이 가득할 뿐이었다.
“이것으로 중재(仲裁)되었겠지.”
번개를 뿜어내는 오망성을 뒤로한 채 그가 몸을 돌렸다. 새하얀 레인코트를 휘날리며 유유히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진짜 이단심판관의 모습 같았다.
“엄청나군…….”
“카린보다 더 대단하잖아?”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저런 강자가 또 있을 줄은 몰랐는데.”
“후훗, 저는 카린이 없으면 싸울 수 없답니다.”
우리의 대화에 올리반트는 자신의 품에 잠든 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가 저에게 전해 주는 힘으로 싸우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오로지 그녀의 힘이랍니다.”
“힘을 공유한다는 건가?”
“뭐, 비슷합니다만 설명해 드리기엔 복잡해서 말이죠. 하하하.”
멋쩍게 웃는 그는 더 이상 그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끝나진 않았어요.”
“네?”
“정말 질긴 녀석이로군요. 메디에이션의 다섯 탄환을 맞고도 끄떡없다니…….”
[죽여 버리겠다. 특히 네 녀석은 갈기갈기 찢어 씹어 먹어 주마.]
번개에 지진 듯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베르테온의 몸이 움직였다.
“하, 하하…… 저걸 맞고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거야?”
“미치겠군.”
말도 안 되는 녀석의 체력에 우리는 혀를 차며 질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
[크아아!!]
“피해요!”
그의 도끼가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
콰아앙……!!
“크윽……!”
베르테론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의 공격으로 인해 부서지는 대지의 파편들이 우리를 공격했다.
“실드(Shield)!”
나는 방어 마법으로 돌조각들을 튕겨 내며 베르테론을 바라보았다.
“스킬들이 통하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뭔가 방법을 찾으신 거예요?”
“올리반트의 공격에 부서진 저 가슴 쪽의 갑옷을 봐.”
펜타곤 오브 유피테르의 강력한 번개로 인해서 베르테론의 갑옷은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음?”
부서진 갑옷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뭔가가 있었다.
“항마법진이로군.”
“맞아요. 저 가슴 쪽 마법진을 중심으로 온몸을 감싸는 보호 마법이 그를 보호하고 있어요.”
“그렇군. 그래서 엄청나게 두들겨도 끄떡없었던 거로군.”
“저기 대화도 좋지만…… 지금 위험해 보이는데요?”
“음?”
“제길!!”
샤오의 말에 올리반트와 난 앞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도끼가 어느새 우리를 향해 날카로운 날을 들이대고 있었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사로운 햇살이여.
아이는 그 품 안에 잠드는구나.
생명을 감싸는 어머니의 대지여.
그 안에 우리들은 포근히 잠드는구나.
적의를 가진 모든 것들이여.
평온해지거라.
순간 베르테론의 도끼가 느려지는 것 같았다. 그 덕분에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는 그의 도끼를 우리는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효과가 제대로 펼쳐져서.”
“대지모신의 자장가라…… 높은 수준의 음악까지 하실 수 있으시군요. 대단하십니다.”
“하하, 보잘것없는 능력입니다.”
올리반트의 말에 샤오는 부끄럽다는 듯 하프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