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88화
“이따위 숲에 농락당할 수 없지. 자연에 가장 가까운 드루이드가 숲에 질 리가 없어!”
바실리아는 숲의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이런 몽둥이 따위로 몬스터들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할 수 없었다.
“흐아아!!”
우렁찬 목소리로 바실리아가 호넷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콰앙!!
예상은 했었지만 너무나도 무참히 깨져 버린 모습이었다. 호넷들의 날카로운 독침이 그를 향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크윽!!”
온몸에 작은 상처들 생겨났지만, 바실리아는 호넷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째서 힘을 쓸 수 없는 거야!!”
그는 독수리의 보주와 표범의 보주를 꺼냈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나에게 힘을 달란 말이야!!”
온 힘을 다해 두 개의 보주를 쥐었지만, 여전히 그의 보주들은 그 어떠한 반응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제기랄!!”
조금만 벗어나면 숲의 끝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을 벗어나면 힘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
“숲에 배반을 당하다니…… 드루이드로서 완전히 실격이로군.”
도망칠 생각 자체가 잘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바실리아는 두 개의 보주를 들어 외쳤다.
“보주를 사용할 수 없다면…….”
―이봐, 드루이드.
“……!”
그때였다.
“누구?”
―이봐, 나다. 루르시아의 검. 블리츠 브링거다.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바실리아를 부르는 브링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그 손에 든 보주를 사용하지 않는 거지?
“이건…….”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바실리아의 생각을 읽은 듯 브링거가 말했다.
“숲의 마력 때문에 쓰고 싶어도 사용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브링거의 물음에 바실리아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면요? 실제로도 보주는 빛을 잃었습니다.”
―드루이드여, 그대의 보주는 아직 빛난 적이 없다.
그때였다. 브링거의 남자 목소리가 아닌 온화하고 조용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나는 에인션트 엘븐 보우(Ancient Elven Bow) 윈드 포스(Wind Force). 잊혀진 실버 엘프의 동료이자 바람의 주인.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스완의 무기인 윈드 포스의 것이었다. 브링거와 달리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없는 그였기에 그 목소리는 더욱 신비롭게 들렸다.
―윈드 포스. 나처럼 말하기 좋아하는 검이 아닌 당신이 입을 열다니, 이거 의외로군.
―나의 주인을 죽게 만들 수는 없는 법이지요.
―훗, 그런가?
블리츠 브링거와 윈드 포스 그 둘 모두 자신의 주인의 위급함을 알고 바실리아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이라면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겠군. 실버 엘프의 동료이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윈드 포스의 활대에서 옅은 은빛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드루이드여, 나의 말을 들으시오.
“알겠습니다.”
―당신이 계셨던 던 포레스트(Dawn Forest). 새벽녘의 숲의 소수민족인 드루이드들은 4대 원소의 마법이 아닌 자연 마법을 사용하는 유일한 민족. 마력에 뒤덮인 숲이라 할지라도 숲 그 자체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윈드 포스는 잠시 말을 끊고는 바실리아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은 저 실버 엘프의 동료인 윈드 포스이기에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당신의 보주는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숲의 힘은 훨씬 더 강하답니다.
―꼭 두 개를 가지고 다닐 필욘 없잖아?
넌지시 말하는 브링거의 한마디에 바실리아는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당신이 여행하는 진짜 목적을 알게 된다면 당신 역시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윈드 포스의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미 블리츠 브링거의 말에 바실리아는 깨우쳤으니까.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라…….”
그것은 단 한 가지였다. 새로운 보주를 얻어 더 강력해지는 것, 그것이 바실리아의 목적이었다.
“두 개의 보주는 던 포레스트에서 처음 드루이드로 직업을 선택했을 때 받은 유일한 아이템이다. 당연히 이것들은 변신을 위해 필요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윈드 포스와 블리츠 브링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군!!”
바실리아는 그 자리에서 그 즉시 두 개의 보주를 들었다.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면 되는 것이지!!”
카앙!!
두 개의 둥근 보주를 들고 그대로 바실리아는 맞부딪쳤다.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보주의 파편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후우……!!”
이건 엄청난 도박일지도 몰랐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을 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우우웅……!
“서, 성공일까?”
―그거야 모르지.
“짓궂으시군요.”
―크크, 그게 내 전공이기도 하니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해 준 윈드 포스는 어느새 다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블리츠 브링거만이 바실리아의 행동에 키득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 같이 오랜 세월을 지나온 존재들은 말이야.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 내 주인 녀석도 그걸 알아야 할 텐데 말이야.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가르쳐 주면 되지 않습니까?”
―흥, 가르쳐 주기만 하면 그것이 진짜 자신의 것으로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떠먹여 주는 음식만 받아먹고 자란 사자는 사자가 아니야.
“그럼 저는요?”
―넌 내 주인이 아니니까.
“야박하신데요.”
―어차피 그 정도는 크게 상관없는 한도니까.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진짜 실력이지. 나 역시 루르시아에게 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니까.
블리츠 브링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실리아의 품 안에서 새로운 빛이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독수리의 보주와 표범의 보주를 합성합니다.》
바실리아의 눈에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드루이드의 주사위를 굴려 주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덩굴로 얽혀진 거대한 주사위가 바실리아의 눈앞에 만들어졌다.
“이, 이게 뭐지?”
―드루이드의 특성을 정하는 자연의 주사위. 모든 것은 하늘의 뜻대로. 드루이드는 자연을 숭배하는 민족이니까요.
윈드 포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바실리아가 그 앞의 주사위를 힘껏 던졌다.
우우웅……!!
[5, 3, 2, 6.]
주사위의 눈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그 수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격노의 보주를 만들었습니다.》
“이, 이건?”
운명을 점치는 주사위의 수에 따라 바실리아의 보주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너의 보주란 것이겠지.
“격노의 보주…….”
처음 보는 보주였다. 독수리라든지 표범처럼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보주도 아니었다. 도대체 격노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자연의 뜻이라면!”
바실리아는 조심히 들었던 보주를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흐아아!!”
큰 기합 소리와 함께 바실리아의 외침처럼 그의 보주가 빛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동물의 형상을 본떠 변신술을 부리는 재주를 가진 이를 가리켜 드루이드라 하지 않지. 원소 마법에 비하면 턱없이 약한 자연 마법을 드루이드의 마법이라 하지 않는다.
블리츠 브링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윈드 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루이드란 자연을 숭배하는 가장 순결한 전사. 드루이드 역시 전사이도다.
“크아아!!”
격노의 보주를 사용한 순간, 바실리아의 몸에 붉은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건…….”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눈을 감아도 숲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양손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기운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성공인가 보군.
“흐아아!!”
바실리아의 일갈과 함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숲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나무들이 그 가지를 늘어뜨려 바실리아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촤아앙!!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돌조각들은 그의 팔을 단단히 해 주었고, 바람은 그의 다리를 빠르게 해 주었다. 나무는 그의 몸을 보호해주었으며 물방울들은 그를 보호하듯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크리에이티브 스킬(Creative Skill, 창조 스킬)》
바실리아의 눈에 마지막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스완도 아스테온도 모두 거쳤던 그것. 자신만의 스킬을 만드는 창이었다.
“이것이로군. 아스테온이 말했었던 그것.”
바실리아는 자신의 몸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떠한 스킬을 사용할 것인가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었다.
“파나케이아(Panacea)…… 드루이드의 가장 신성하고 위대한 그 이름으로 나의 이것을 지칭하겠다.”
《격노의 보주:파나케이아(Panacea)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완료 메시지 창을 끝으로 바실리아의 새로운 변신 역시 끝났다. 여전히 변종 호넷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 기세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윈드 포스의 기운 때문인지 지금까지 그를 공격하진 않고 있었다.
―이봐, 드루이드. 알려 줬으면 이제 그만한 값은 해야겠지?
“후훗, 알겠습니다.”
파나케이아의 힘으로 변신한 바실리아는 양손엔 돌로 만들어진 너클을 낀 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몬스터들의 앞에 섰다.
“이 힘이라면……! 이들을 지킬 수 있어!!”
바위의 단단함과 바람의 날카로움. 물의 맹렬함과 나무의 보호력을 얻은 그는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호넷들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뭐, 그렇게 된 거지.”
“블리츠 브링거가 알려 줬다는 거예요?”
“응.”
인공지능 AI를 가진 아이템들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까지 유저들의 일에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대단하군요.”
“그렇지?”
괜히 심검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듀얼-레전드는 상상하지 못할 일들도 많다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으십니까?!”
달라란의 입구에 도달할 즈음이 되자, 그곳엔 많은 마법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엔 악스마누스와 다르사네스도 함께 있었다.
“서궁이 불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달려 나왔습니다.”
“네, 다르프는 물리쳤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네, 그가 사라졌으니…… 아마도 그가 부리던 몬스터들도 사라졌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은 우리 달라란의 영웅이십니다!”
우리를 둘러싼 마법사들이 만세를 외치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다르사네스 님.”
“네, 아스테온 님.”
“서쪽의 숲에 가셔서 파헤쳐진 무덤을 다시 잘 보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하지만 다르프는…….”
“그건 다르프의 묘가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제가 잠깐 잘못 생각했군요. 마땅히 그래야 하지요.”
“감사합니다.”
그 묘는 아르마의 것이었다. 그녀가 인간이었다면, 그리고 내가 본 아르마가 정말 그 무덤의 주인이라면,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그녀는 정말 다르프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알기엔 너무나도 짧은 만남이었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사라졌고, 우리는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뿐이었다.
“새벽의 고원으로 갈 수 있는 포탈을 이용할 수 있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아스테온 님께서 서쪽의 숲에 가셨던 동안 모든 수리가 끝났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후우…… 오랜만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가.”
“폴텐하임이요?”
“응, 던 포레스트를 거쳐 폴텐하임으로 넘어가면 드디어 새벽의 고원이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우리의 이 긴 여행도요.”
“그래.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런 여행을 할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지.”
바실리아는 독이 모두 치료되어 잠들어 있는 스완과 루르시아를 품에 안았다. 나 역시 슈가비를 살며시 끌어안으며 마엘 왕국의 푸른빛으로 충만한 포탈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