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얼 레전드-81화 (81/122)

듀얼 레전드 81화

“자, 어서 오시지요. 마엘 왕궁입니다.”

노마법사의 손이 한 번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어머!!”

“우아앗!!”

그리고 그와 함께 진짜 마법을 본 슈가비와 스완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포탈에서 가깝다고 말씀드렸지요. 귀빈을 모시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지요.”

“마법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것이군요.”

“하하, 저처럼 힘없는 늙은이한테는 꼭 필요한 것이지요.”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손이 한 번 우리를 훑고 지나가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풍경이 바뀌었다. 텔레포트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마법의 이동이 아닐 수 없었다.

“악스마누스!!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겐가!! 지금 서궁의 백작이…….”

“자자, 진정하게. 친구. 지금 내가 누구를 모셔 온 줄 아는가. 카마틴 왕국의 왕자님이란 말일세.”

“뭐?”

왕궁에 들어오자마자 또 다른 마법사가 그를 불렀다. 정신없이 바쁜 듯 그의 로브는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카마틴 왕국의 루르시아 왕자일세.”

“이런, 왕자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다만, 현재 저희 마엘은…….”

“들었습니다. 전시 상황이라고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대접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다만 저희는 그저 새벽의 고원으로 향하는 포탈을 이용하고 싶을 뿐입니다.”

“네……? 새벽의 고원 말씀이십니까?”

루르시아의 말에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그와 악스마누스를 번갈아 보았다.

“악스마누스!!”

노마법사가 화가 난 듯 그를 향해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인겐가! 새벽의 고원이라니! 지금 그곳으로 향하는 포탈을 쓸 수 없다는 것은 포탈을 관리하는 자네라면 더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 말이죠? 악.스.마.누.스?”

“하, 하하. 그게 말이지요.”

어디론가 도망을 가려는 그의 어깨를 먼저 잡은 것은 나였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거짓말을 할 줄이야. 마엘의 수석 마법사가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죠. 이거 다른 왕국의 사람들이 듣게 된다면 절대로 믿지 않을 일이로군요.”

“이익,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겠군요.”

“이제 곧 서궁 백작의 침공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냥 밖에 두었다면 수많은 몬스터의 공격에 위험해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분도 새벽의 고원으로 가려면 이 마엘의 포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흐음? 그래서 호의를 보인 것이다?”

“무, 물론이지요. 게다가 현재 모든 포탈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공격에 마엘을 떠받치고 있는 수정의 힘이 약해져서입니다. 그들만 물리친다면 새벽의 고원으로 가는 포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도우라는 이야기로군요.”

“도, 도와주신다면 저희로서는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지요. 카마틴 왕국의 유능한 왕자님과 혈투의 전장 우승자께서 말이지요.”

악스마누스는 싱긋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흥, 결국은 저것이었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포탈 자체가 작동하지 않다니…….

“악스마누스 님! 다르사네스 님!! 서궁의 백작의 군대가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뭐라고? 벌써?”

“이런, 군사들의 배치는 모두 끝났는가?”

“넵! 예고대로…… 서쪽에 주력 부대를 모두 배치하였습니다.”

“이번에 보호막이 뚫려 마엘 성채에 피해라도 입게 된다면 마엘이 침몰할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 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전령이 명령을 받들어 다시금 달려 나가는 것을 보며 다르사네스가 몸을 돌려 우리에게 말했다.

“바보 같은 악스마누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엄연히 마엘의 문제, 여러분은 안전한 곳으로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쿠우웅……!!

“우앗!”

다르사네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왕궁이 흔들렸다. 공중에 떠 있는 왕국인 만큼 충격에 흔들리는 진동은 더욱 큰 것 같았다.

“이런, 벌써 도착한 것인가!!”

다르사네스는 황급히 방을 나서면서 그의 동료인 악스마누스에게 소리쳤다.

“악스마누스! 왕자님을 잘 모시게!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내, 내가 무슨 수작을 부렸다고 하는가?”

“하여간! 포탈을 잘 보고 있게!”

“알겠네. 건투를 빌겠네.”

마엘의 군사를 관리하는 마법사는 아무래도 다르사네스인 듯 보였다. 악스마누스와는 달리 그의 로브엔 푸른색 견장이 달려 있기도 했다.

“흐음…… 이렇게 또 저희만 남았군요, 악스마누스.”

“하, 하하. 위급 상황인 만큼 아무래도 저도 전투에 참여를…….”

“어딜 도망가시려고 그러시나, 마법사 양반?”

바실리아의 거대한 덩치가 문을 떡하니 막으니 악스마누스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되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하나라도 거짓이 보이면 우리의 이 위태로운 신뢰는 깨져 버릴 테니까요. 그렇지요?”

“무, 물론이지요. 우앗!”

거칠게 그를 의자에 앉힌 나는 그의 바로 앞에 섰다. 나의 양옆으로 바실리아와 스완이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선 서궁의 백작, 그것부터 시작을 해야겠군요. 도대체 그가 누구입니까?”

“서, 서궁의 백작은…….”

악스마누스는 난처한 듯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유, 이것을 말하면 다르사네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말하지 않으면 저희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으윽…….”

내 말에 악스마누스는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렇게 될 것을 왜 거짓말을 해서 우리를 부른 것인지. 어쩌면 이것도 그가 원하는 상황의 일부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짓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모두 우리가 잘못한 거였어. 그때 그 무덤을 파헤치지만 않았어도 됐었는데!”

“무덤이라니?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봐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도울 수 없으니까.”

“서궁의 백작…… 말 그대로 서쪽 궁전의 주인일세. 그는 마엘 서쪽의 드넓은 숲의 주인이자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지만 대신 그 누구도 건들지 않는 그런 존재.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주었던 그 관계가 바보 같은 마법사들 때문에 깨어져 버린 것이야.”

“무슨 짓을 한 거죠?”

“마법사들의 호기심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궁극의 풀리지 않는 그 호기심…… 불사(不死)의 비밀을 풀 열쇠가 그곳에 있다고 믿어 버렸어.”

“불사의 비밀이라니…….”

“그의 아내의 무덤을 부수지 않았더라면…… 아니, 죽었다고 생각한 그녀를 보았다는 마법사들의 말을 그저 무시해 버렸으면 끝날 일이었는데.”

악스마누스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느 누가 먼저 죽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거야. 이건 그런 싸움이니까. 모두가 그것을 알면서도 싸우고 있지. 우리는 죽고 싶지 않고, 서궁의 백작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바실리아, 나가 보죠. 그의 말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응, 그래.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괜찮지?”

“네. 나가 봐요.”

“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서궁의 백작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 정도는 당신의 말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한 나라를 침공할 정도의 몬스터를 이끄는 존재가 인간일 리 없었다. 게다가 불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존재라니.

“어디 한번 그 얼굴 좀 보자고. 서궁의 백작 나리.”

조용한 방과는 달리 그 문을 넘어선 도시의 풍경은 정말로 전쟁의 관경 그 자체였다.

“서쪽 경비탑이 위험해!! 그쪽으로 병사들을 더 보강해라!”

“마법진의 마력을 더 보강해!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라이트닝을 떨어뜨려라!!”

마법사들의 전투는 화려했다. 수백 개의 화염구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고 수천 줄기의 번개가 땅을 향해 뿜어져 내렸다.

콰앙!! 쾅! 쾅! 쾅!!

오십여 명은 족히 됨 직한 마법사들이 모여 마력을 담아낸 거대한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개는 몬스터들을 불태우기 충분했다.

“아르카 나서스…….”

그러나 그 강렬해 보이던 번개도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만들어진 암적색의 보호막에 빨려 들어가듯 흡수되어 버렸다.

“이, 이런……!!”

“재미있구나, 인간들이여. 그런 가녀린 마법의 힘으로 지금까지 나와 대적하려 했단 말인가.”

“서궁(西宮)의 백작(伯爵)……!!”

가장 높은 남서쪽 경비탑 위에 서 있던 마법사 다르사네스는 자신의 머리 위로 나타난 한 남자를 보며 소리쳤다.

“너희의 죄는 너희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서궁의 백작이여, 우리의 잘못은 충분히 인정하오. 그러나 당신과 우리의 암묵적인 규율이 지켜진 지 이미 수백 년. 단 한 번의 잘못으로 깨어지기엔 오랜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경고하는 그의 앞에 한 마법사가 나타났다. 긴 흰 수염을 늘어뜨린 그는 마엘의 수장 브랜 로우(Bran Low)였다.

“고작 수백 년일 뿐이다, 인간 마법사여.”

“선처를 바랄 수는 없는 것입니까, 서궁의 백작이여.”

“나에게 있어 선처는 고통 없이 죽여 주는 것일 뿐이겠지. 너희들에게 고통 받은 나의 소중한 여인을 생각하면 그것 또한 너무나도 너그러운 처사이다.”

“아르마 님의 무덤을 파헤친 것은…… 정말 저로서도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 같은 일을 행했던 다섯 명의 마법사들을 서궁의 백작에게 보내겠습니다. 그들의 처사를 맡길 터이니 그것으로 마엘을 용서해 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에게로 보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엘의 수장으로서 그는 다섯 명의 목숨을 버리고 수천, 수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너희 목숨의 숫자 따윈 나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저 그런 추악한 짓을 한 너희들이 나의 옆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죽일 이유는 충분하다.”

“굳이 피를 보셔야 하겠습니까. 지금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습니다. 당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그리고 저희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도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크헉!!”

백작의 손이 노마법사의 목을 휘어잡았다. 숨이 탁 막히듯 숨을 내뱉으며 그의 말이 끊어졌다.

“더 이상 세 치 혀를 놀리는 것을 듣고 싶지 않군. 너부터 죽여 주마.”

“협상은…… 결렬이로군요.”

“애초에 협상 따윈 없었다.”

“미천한 마법을 가진 인간이지만 그렇게 쉽게 죽을 수는 없지요.”

“발버둥 친다 한들 결과는 같을 것이다.”

“글쎄요…….”

마엘의 수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공기에 스며들 듯 사라졌다. 백작의 손에 잡혀 있는 채로도 마법을 시전한 그의 능력 또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인가? 서궁의 백작이라고 하는 녀석이?”

“흐음…….”

“악스마누스가 헛소리를 지껄이더니…… 결국 나와 버렸군.”

“아셨어요?”

“미안하네만 그 방은 나의 것이라서 말이야. 마법의 눈 정도는 항상 만들어져 있다네.”

다르사네스는 우리의 등장에도 그리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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