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75화
“흐응…… 녀석.”
제논스테인 마법학교의 로브를 모두 입고 나자 엘파이온이 그에게 말하였다.
“시간이 다 되었구나. 제논스테인 마법학교가 세워진 이래로 이 마법사의 탑의 명예로운 첫 졸업생이로군.”
“그래요?”
“고작 그래요라니! 먼저 이 마법사의 탑에 들어온 네 선배들도 아직 이곳에서 끙끙대고 있는데 말이지.”
“헤에…….”
“이렇게 훌쩍 나가 버리다니. 너란 녀석은 정말 건방지기 짝이 없는 제자란 말이다.”
엘파이온이 퉁명스럽게 말하였지만 그것이 그의 아쉬움을 표현하는 방법이란 것을 제자는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 의식이 끝나고 나면 이제 이곳과도 안녕이겠구나. 하지만 기억하거라, 레릭.”
“네.”
“언제든 다시 올 곳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건방진 아스테온 녀석하고는 달리 넌 내 소중한 제자니까 말이다.”
“쿠쿡! 알겠어요, 스승님.”
그의 말에 재미있는 듯 레릭이 입을 가리며 살짝 웃었다.
“모두 모여 있겠군.”
마법사의 탑 최상층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6클래스의 마법을 모두 마스터하고 난 뒤 7클래스를 배우는 유저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밖을 보거라, 레릭.”
“네?…… 아!”
마법사의 탑 복도에서 내려다본 아래는 무척이나 놀라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법학교의 거대한 제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모두 저 때문에 모인 건가요?”
“물론이지. 위대하고 찬란한 7클래스 마법사의 탄생을 알리는 의식인데!”
“하하, 부끄러운걸요…….”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될 일이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클래스 높고 낮음이란 능력과도 직결되는 문제란다. 그것은 일종의 마법사로서의 명예와 힘. 특히나 제논스테인 마법학교의 마법사들이라면 그 절대적인 힘의 차이에서 적어도 명예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법이지.”
“힘의 차이라…….”
레릭은 엘파이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포트(Teleport)!”
마법사의 층에 만들어진 마법진을 타고 그들은 밑으로 내려왔다. 수십 층은 되는 탑의 어마어마한 높이에 걸어 내려올 생각은 아마 하지 못할 것이었다.
“나왔다!”
“저 사람인가?”
“제논스테인 마법학교의 첫 졸업생이라면서?”
“정확히 말하면 마법사의 탑 졸업생인 거지.”
“그거나 그거나지.”
“그거나라니? 용병에서나 일하는 5클래스의 어중이떠중이 마법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7클래스야, 7클래스! 던전에 숨겨져 있는 8클래스의 마법을 제외하고 플레이어가 배울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마법을 배운 마법사란 말이야.”
“헤에…… 그런가?”
레릭과 엘파이온의 등장에 제논스테인 학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각 클래스의 선생님들이 그들을 조용히 시키자 일순 그곳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오셨습니까.”
“으음, 그래.”
가장 먼저 엘파이온을 반긴 것은 화염 마법을 가리키는 브리짓(Bridget) 선생이었다.
“준비는 모두 끝난 것 같구나.”
“네, 오랜만에 마법사의 탑 졸업생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만족스러우실 만큼 준비를 하였습니다.”
“수고했네, 브리짓 선생.”
“감사합니다.”
특기인 화염 마법만큼이나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는 엘파이온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으음…….”
제단 한가운데에 엘파이온이 섰다. 그의 입 바로 앞에 아주 작은 마법진이 만들어지자 엄청나게 넓은 학교의 구석구석까지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모여주어서 난 참으로 기쁘오. 오늘은 여러 학생들도 알고 있다시피 우리 제논스테인의 경사스러운 날이랍니다. 바로, 마법사의 탑 졸업생이 탄생한 것이지요.”
엘파이온은 살짝 헛기침을 하며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말하였다.
“레릭, 앞으로 나오거라.”
그의 손이 움직이자 마치 파도가 갈라지듯 학생들 사이로 한 줄기의 길이 만들어졌다.
“이 제단 앞에 서거라.”
그리고 마법사의 탑에 서 있던 레릭은 그 마법의 길을 걸어 그의 앞으로 서서히 나왔다.
“나 제논스테인 마법학교의 교장이자 대마법사 엘파이온은 오늘 새로운 마법사의 탄생을 알리고자 이렇게 자리하였다. 레릭, 그대는 마법사로서의 모든 수양을 충분히 쌓았도다.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7클래스의 마법이란 고위마법에 도달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엘파이온 님.”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자신의 미래를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법이란 무궁무진한 진리와의 싸움. 그대는 이제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자신 있는가?”
“물론입니다.”
레릭의 대답에 엘파이온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충분히 강해졌구나, 레릭.”
나직이 읊조리는 엘파이온의 목소리가 레릭의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 대마법사 엘파이온은 마법사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마법사의 탄생을 알린다! 그리고 그대는 나의 제자로서 나의 이름을 물려받으라. 레릭, 그대의 이름 앞에 나의 성 아르폰을 내릴 것이니 그대는 나의 제자로서, 마법사로서 대륙에 드높은 명성을 떨치리라!”
“감사합니다.”
“아르폰 즈하 레릭! 뿐만 아니라 그대에게 찬미(讚美)라는 명예로운 마법명을 부여할 테니, 빛과 같이 대륙을 밝히는 마법사가 되거라!!”
“찬미의 마법사……!!”
“찬미의 마법사다!!”
엘파이온의 목소리가 수천 명의 학생들 마음을 움직였다. 일순간 제논스테인이 떠나갈 정도로 큰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다, 나의 제자여.”
브리짓 선생이 엘파이온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안의 물건을 엘파이온이 꺼내었다.
“이것이 네 앞에 있을 수많은 전투에서 도움이 되길 바라겠다.”
그것은 흰색 바탕에 황금색과 붉은색의 문양이 멋들어지게 수놓인 마법 로브였다. 엘파이온이 손수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을 물건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래, 그래.”
엘파이온은 직접 그 로브를 펼쳐 레릭의 작은 어깨에 걸쳐주었다.
“녀석, 그래도 이제 마법사라고 제법 로브가 어울리는구나.”
엘파이온의 칭찬에 레릭은 코끝을 살짝 긁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스완…… 아스테온 형, 기다리세요. 곧 찾아갈게요.”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전히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7클래스 마법사의 탄생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수천의 목소리를 들으며 레릭은 조용히 두 사람을 떠올릴 뿐이었다.
“여어~. 이게 누구셔? 찬미의 마법사 아니야?”
성대했던 졸업식.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했던 그 의식이 끝나고 이제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이네.”
“크크, 물론. 어디 우리 같은 사람들을 기억이라도 하고 있었겠어?”
아주 오랜만에 마지막으로 학교를 둘러볼 생각으로 잠시 교정을 걷고 있던 레릭은 세 사람의 등장에 눈살을 찌푸렸다.
“기억이야 하고 있지.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어?”
“하아? 그러셔? 아이구, 7클래스의 위대한 마법사님께서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거 감개무량한걸?”
올백으로 넘긴 머리와 찢어진 눈. 그의 그런 얼굴들이 비아냥거림을 한층 더 기분나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는 바쉬는 아직 여기에 있는걸 봐서는 마법학교도 이수하지 못했나 보네.”
“뭐라고?”
“어중이떠중이인 용병 마법사들도 5클래스는 다 기본적으로 하고 있던데…… 꽤나 진도가 느린 것 같아.”
“이 새끼가!!”
그의 뒤에 서 있던 다른 소년이 레릭의 멱살이라도 잡으려는 듯 으르렁거렸다.
“그만. 우리 위대하신 찬미의 마법사님께서 우리들에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겠어?”
바쉬는 뒤에 있던 그를 말리고는 레릭에게 다가섰다. 레릭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바쉬가 말했다.
“레릭…… 기대 이상으로 잘 나가고 있는 건 인정해 주겠는데 말이야. 현실을 제대로 보라고. 병신 같은 자폐아 주제에.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넌 아무리 대단해져도 결국은 우리 밑에서 우리가 시키는 일이나 하면 돼. 응?”
“크크크…… 재밌겠는데? 7클래스 마법사가 마법학교 학생들의 뒤나 봐 주고 말이야.”
“맞아, 맞아. 레릭! 잊지 않았겠지?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
“…….”
바쉬를 비롯한 나머지 두 사람까지 레릭의 머리를 툭툭 치며 비웃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레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너희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구나. 기대했던 대로긴 하지만, 정말 발전이 없는 친구들이로구나.”
“뭐라고?”
“마법사의 탑을 떠나기 전에 나의 스승, 엘파이온 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지.”
“응?”
“마법사에게서 클래스의 높고 낮음은 절대적인 힘의 차이, 그리고 마법학교의 학생들이라면 그 힘의 명예를 중시해야 한다고 하셨지.”
“무슨 헛소리야?”
레릭이 나직이 노래하듯 읊조리자 바쉬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꿇어.”
“……뭐?”
“미친!!”
레릭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세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다시 한번 말한다. 4클래스 준(準)-마스터 바쉬. 마법사의 탑 7클래스 마법사 레릭의 앞에 힘의 예우를 지켜라. 그대가 제논스테인 마법학교의 출신이라면 그리하여야 할 것이다.”
“뭐, 뭐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레릭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쉬의 무릎이 서서히 접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의 악에 받치는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레릭은 바쉬가 완벽하게 무릎을 꿇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화가 나면 너도 7클래스에 도달해. 대마법사의 반열에 들 수 있는 실력이 된다면 힘의 예우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너…… 현실에서도 이럴 수 있을 것 같아? 가만두지 않……!! 으아악!!”
순간 레릭의 손에 따뜻한 금빛의 물결이 흐트러졌다.
콰아앙……!!
제논스테인 마법학교에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사일런스 마법으로 소리를 죽인 레릭의 폭발은 그들 이외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마법학교에서 싸움은 금지되어 있으나 모든 학업을 끝낸 레릭에게 만큼은 예외가 되는 규정이었다.
“바쉬, 잘 들어. 내가 선택한 직업이 뭔 줄 알아?”
“하아, 하아…….”
방어 마법을 펼치기도 전에 당한 바쉬는 바닥에 쓰러져 힘겨운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오로지 전투를 위해 특화된 마법사, 전투마법사(戰鬪魔法師). 나 역시 나랑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 생각했지만 난 달라질 거야.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만큼 더 이상…… 내 앞을 막는다면 용서하지 않겠어.”
“너…… 너……!!”
레릭은 쓰러져 있는 세 사람을 무심히 지나쳤다.
“현실과 가상현실이 무슨 상관이야? 난 너희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야. 난, 내 이름은 아르폰 즈하 레릭이니까!!”
조용한 교정 한가운데에서 작은 소년의 외침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다. 그 작은 체구에서 이런 당찬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마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저 그의 스승 엘파이온이 건네준 마법의 로브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만이 교정에 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