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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레전드-73화 (73/122)

듀얼 레전드 73화

“크윽!”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당황한 도리언이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으며 그녀와 일정 거리를 두며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아직 콜로세움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예의를 모르는 녀석이로군. 난 쓰레기지만 적어도 싸움의 예의는 아는 사람인데 말이지.”

“너도 내 상황이 되면 다를걸?”

“뭐?”

“죽어 줘야겠어. 사막전갈 도리언.”

“흥, 무기도 다 잃어버린 네가 날 죽이겠다고? 이미 밑천은 다 보여준 것 같은데.”

도리언은 그렇게 말하며 스콜피하스의 너클에서 송곳을 뽑아내었다. ‘타악!’ 하는 소리와 함께 너클 속에 숨어 있던 송곳이 튀어 나왔다.

“밑천을 다 보여 줬다니…….”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조금 전처럼 열 손가락엔 각기 하나씩 작은 반지와 같은 고리가 껴져 있었다.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조금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그 고리가 제각기 다른 색깔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보여줄 것도 없었잖아.”

“허억!”

조금 전과 달랐다. 어두운 복도라서 그럴까? 도리언은 반응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굳은 듯 서 있었다.

“진짜 꼭두각시(Marionette)가 되기 위해선 꼭두각시를 위한 실이 필요한 법이지. 그것이 카람 왕국 던전에서 찾아낸 인형의 찬가에서 얻은 열 개의 마리오네트 스레드(Marionette Thread).”

“크헉…….”

도리언의 입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주 얇게 갈라지는 그의 목에서 한 줄기의 붉은 선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쿨럭!”

한 움큼의 혈흔을 뿜어내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무너지는 도리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콜로세움 복도의 바닥에 그의 시체가 쓰러질 뿐이었다.

“정말 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야…… 이번 일. 그리고 루르시아, 다음에 만났을 땐 꼭두각시가 되기도 전에 이 실들이 널 갈기갈기 잘라 내 버릴 거다.”

그렇게 조용히 세이드는 도리언의 피가 묻은 자신의 손을 털어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도전자 중 한 명인 도리언이 급사를 했습니다.”

“죽었단 말이야?”

“……네.”

그의 죽음을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듀얼-레전드의 운영진들이었다. 모든 에너지바가 붉게 변하는 순간 어떠한 처리도 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순식간에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콜로세움 안은 결투가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그게, 대기실과 결투를 치르는 연무장은 선택 받은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애초에 입장이 불가능하게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복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복도 자체는 대기실과 연무장을 연결하는 것 말고도 각종 입구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결투 미생성 지역이란 것은 가상현실인 VR-MMORPG에서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온라인 게임 규정이 있기 때문이죠. 전쟁을 대비하여 각국 수도의 왕성에서조차 결투 미생성 지역이 아니니 말이죠.

“끄응…… 그래?”

가장 먼저 보고를 받은 이산은 부하 직원의 말에 난감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바로 부활은 가능합니다만. 도리언을 부활시켜서 콜로세움으로 이동시킬까요?”

“아뇨, 그러지 마세요.”

석민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이산 팀장이 아닌 김윤하 실장이었다.

“네?”

“그냥 두세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을 만든 이유가 뭔가요?”

“그건…….”

“VR-MMORPG는 다루기 가장 까다로운 게임이에요. 전 세계적으로 세 개뿐인 이유 역시 바로 이러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개발자의 제약과 규약을 최소화하고 유저들에게 가장 자유로운 상태를 만들어 준다. 운영진의 개입은 서버의 관리 그 이상이 되어선 안 된다. 이게 가상현실 온라인 규정이죠.”

“그렇긴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혈투의 전장 이벤트가 엉망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연 취지는 시범적인 목적도 있지만 코노트 왕국의 검투사를 뽑는 의미도 있습니다. 물론 도리언이 꼭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아스테온과의 결승전까진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산 팀장님, 이건 유저들 사이의 문제지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그럴 것이라면 애초에 아직 개발 중인 사막 전차를 열어 대사막 너머에 있는 왕국의 유저들까지 구경을 오게 하면 안 되었죠. 그리고 붉은머리 부족의 퀘스트를 시작해서도 안 되었죠.”

“그거야 저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알고 있어요. 레이가 한 것이란 것. 하지만 레이 역시 서버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으로서 만들어진 퀘스트 이외의 것을 손대진 않아요. 처음 개발할 때부터 이미 만들어진 것이죠. 그리고 그건 바로 우리가 만든 것이기도 하구요.”

“듀얼-레전드의 퀘스트를 만든 건…….”

이산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산 팀장님, 팀장님은 당신이에요. 그것을 명심하세요.”

“……알겠습니다.”

김윤하 실장의 말에 이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장님의 말씀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코노트 왕국 유저들의 반발이 심할 것 같긴 하지만…….”

그만큼의 대가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코노트 왕국의 유저 수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침을 세운다면 그것은 그들을 제외한 더 많은 유저들의 원성을 사는 일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후우…….”

결정이 떨어진 순간 운영진의 모든 이들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모두 모니터를 바라볼 뿐이었다.

“급보를 알려드립니다. 혈투의 전장 세 번째 경기였던 루르시아 선수와 도리언 선수의 경기는 도리언 선수의 기권으로 인하여 루르시아의 승리로 알려드립니다.”

연무장 한가운데로 나온 사회자는 관객들을 한 차례 둘러본 뒤에 그와 같이 보고를 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도리언이 기권을 하다니?”

“말도 안 돼! 사막전갈이 싸움을 뒤로 하고 도망이라도 쳤단 말이야? 믿을 수 없어!”

운영진이 예상했던 것과 같은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원성을 멎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다름 아닌 보호트 왕이었다.

“그대들이여, 진정하고 나의 말을 듣도록 하라.”

그의 등장에 관객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나 역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보고 받고 나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유능한 사막의 전사인 도리언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짐 또한 의문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콰직!!

보호트 왕은 자신의 검을 뽑아 바닥에 꽂았다. 날카로운 검은 매끈한 대리석의 바닥을 가르며 깊게 박혀 들어갔다.

“그러나 더더욱 짐을 놀라게 한 것은 사라진 도리언은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습격?!”

“감히 누가 코노트 왕국의 전장에서 그런 짓을!!”

사람들은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보호트 왕은 그런 그들을 향해 손짓하며 말하였다.

“짐은 이번 일을 소상히 조사할 것이다. 누구의 짓인지, 그리고 어떠한 연유에서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불순한 의도가 다분했다면…… 전쟁마저도 서슴지 아니할 것이다!!”

“밝혀라!! 도리언을 죽인 암살자를 밝혀라!!”

“전쟁이다……!”

“누구지? 어디서 보낸 녀석이지? 코발 왕국? 아니야, 이건 사막 너머 녀석들의 짓일지 몰라!”

사람들은 ‘전쟁’ 이란 말 한마디에 광분하듯 소리쳤다. 피를 부르는 혈투의 전장에서 그들에게 전쟁이란 더 많은 피를, 그리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이벤트일지도 몰랐다.

“혈투의 전장은 계속될 것이다. 비록, 코노트 왕국의 대표는 사라졌지만 이곳은 사막의 검투사를 뽑는 신성한 장소. 그대들이여, 사막의 민족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어져 온 이 성스러운 전장을 끝까지 지켜보도록 하여라!”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코노트 왕국 대다수의 유저들은 기대와는 다른 마지막 경기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는 과연 범인이 누굴까,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될 전쟁에 대한 묘한 기대감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듯 보였다.

“이거…… 정말 이렇게 해도 될까요?”

“이것 역시 모두 프로그램 되어 있던 거야. 하, 하하…… 보호트 왕이 전쟁을 선포하다니.”

모니터를 보던 석민은 화면을 가리키며 이산에게 말하였다. 그 역시 난감한 듯 의자를 뒤로 젖히며 모니터를 볼 뿐이었다.

“모든 게 다 시나리오대로 흐르는 것이겠지…… 녀석과 함께 이 게임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내가 모르는 것.”

이산은 눈을 감으며 조용히 그때의 일을 떠올리듯했다.

‘1년이라고 했지…… 이제 시작한 지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큰일을 터뜨리다니. 나보고 이런 녀석을 혼자서 반년 넘게 더 맡으란 거냐. 훈, 너는 도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거냐.’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듀얼-레전드의 시나리오. 그리고 그것을 조건으로 영입된 훈. 그만큼 실력이 있고 뛰어난 디렉터임이 분명했기에 파격적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영입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반하여 이산의 카드라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아스테온, 바로 ‘이연’ 일 것이다.

‘관객석에 있던 플레이어는 분명 배트였어. 뭔가 꾸미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연아, 부디 널 믿는다. 퍼즐의 한 조각이 되지 마라. 부디 그 퍼즐을 풀어내는 사람이 되기를.’

이산은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모니터를 유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거, 이거. 끝까지 들러리가 된 기분이잖아? 하아, 천하의 이연을 이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연무장에 나서자 관객들의 무관심이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나마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대사막을 건너서 온 엔도라스 왕국의 유저들일 것이었다.

“오랜만인걸? 루르시아.”

“…….”

연무장에 선 루르시아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팔에 묶여 있는 붉은 띠를 바라볼 뿐이었다.

“양 선수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준비됐습니다.”

나와 루르시아의 사인을 받은 심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 소리로 외치며 호각을 불었다.

“혈투의 전장 마지막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늘엔 예의 ‘Fight’ 문구가 불꽃으로 만들어졌다.

“봐드리지 않아요, 아스테온.”

“훗, 나 역시.”

루르시아는 블리츠 브링거를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빙결의 검을 뽑아 소드 오러를 뿜어내었다.

“처음이잖아? 이렇게 너와 싸워 보는 건.”

“싸울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렇지. 동료니까.”

나의 말에 그는 살짝 동요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검을 쥐었다.

“승부는 승부니까. 나 역시 최선을 다할 거야. 뭐, 저들은 관심 없어 보이지만 말이야.”

그저 카멜롯 팀의 아더와 이단심판관 카린만이 우리들의 승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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