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얼 레전드-69화 (69/122)

듀얼 레전드 69화

“이 자식…….”

“검투사, 혈투사. 이따위의 명예가 그렇게도 중요한가? 코노트 최강의 검이라는 뜻의 검투사만이 최고가 아니야. 도리언 넌 혈투사의 뜻이 뭐라고 생각하지?”

미셀의 말에도 불구하고 도리언은 잡힌 자신의 오른팔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꽉 잡은 미셀의 주먹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피를 뿌리는 혈투의 전장에서 혈투사라는 이름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최고의 무기로 삼는 자가 검투사라면, 자신의 몸으로 그 어떤 것도 참아 내는 자가 바로 혈투사이다. 도리언…… 넌 뭔가 잘못 알고 있었어.”

“닥쳐!!”

미셀의 상태는 분명 좋지 않았다. 그의 에너지엔 분명 적신호가 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언의 팔을 잡은 그의 힘은 처음과 다름없었다.

“혈투사 로스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기술이다. 맞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며 내 몸 하나를 진정으로 방패로 삼는 혈투사들만의 기술을 너 따위가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지.”

미셀은 싱겁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온몸의 상처가 뜨겁게 변하는 순간 상황은 달려졌다.

“저, 저게 뭐지?”

관객들은 미셀의 변화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저런 스킬을 보여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자신의 체력이 2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을 때만 사용 가능하게 되는 이 스킬은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혈투사의 것이다. 도리언, 이것으로 로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

그의 붉은 피는 마치 끓어오르는 물처럼 증발하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증기가 그의 온몸에서 솟구쳐 오르자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惡鬼)와 같은 형상이었다.

“불카누스의 격노(Vulcanus’s Wrath)!!”

끓어오르던 피가 모두 증발해 버리자 미셀의 몸집이 조금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크아아아!!”

광폭보다도 더 강렬한 거의 외침이 콜로세움을 가득 채웠다.

콰아앙!!

라쟈스라의 이빨로 만든 그의 너클이 도리언을 향해 쏘아졌다. 그 어떤 스킬도 없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공격이었찌만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공격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미셀…… 크라스!!”

그리고 그의 공격을 받으며 도리언의 악에 받친 외침이 미셀의 괴성에 대항하듯 들려왔다.

“크아아!!”

“으아아!!”

두 명의 사내의 외침과 굉음이 연달아서 콜로세움에 피어올랐다. 부서지는 대리석과 함께 피어오르는 먼지는 우리들의 눈을 가렸다.

쿠웅……!!

쌓인 먼지 속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승부의 결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웅성거리는 관객들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콜로세움을 스치며 지나갔다.

“누군가 서 있어!!”

“누구지?”

“설마……!!”

거구의 사내가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서 있었다. 단 한 명. 그 속에서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미셀.”

난 그것이 미셀임을 알 수 있었다. 우뚝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산처럼 거대해 보였다.

“혈투사의 승리인가!!”

“미셀!!“

“미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뜨거운 환호성과 함께 그들은 새로운 승자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녀석.”

코끝이 살짝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토록 어려운 싸움을 이겨낸 그가 자랑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셀!”

“미셀!!”

…… 털썩.

그러나 마치 관객들의 환호성은 그저 자신과 상관없는 소음이라 생각하는 듯 그의 몸이 서서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를 향했던 환호는 어느새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미셀?!”

거대한 산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뒤에 나타나는 승자의 모습에 관객들은 그 어떠한 환호도 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다, 미셀. 다만 내 독이 조금 더 강했던 것 같군.”

‘퉤!’ 하는 소리와 함께 도리언은 붉은 살점을 뱉어 내었다. 미셀의 목덜미라도 물어뜯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악귀를 무너뜨린 지독한 독과 같은 그의 모습은 영광스러운 승리보다 잔인함만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심판, 결과는 난 것 같은데.”

“아, 네, 네! 스, 승자는! 사막전갈(Dune Scorpion) 도리언(Dorian)!”

그러나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리고 도리언 역시 그러한 환호는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묵묵히 결투장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지독하리만큼 잔인한 전장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결투는 그저 그것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을 뿐.

8장. 마리오네트

“도리언이 코노트 최강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셀이 지는 모습을 보니 실감이 안 나는걸.”

“그러게. 어휴, 도리언한텐 걸리지 말아야겠다. 봤지? 완전 살인귀 같았다니까.”

첫 경기가 끝나고 콜로세움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10분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관객들은 저마다 첫 경기의 여운을 아직 잊지 못한 듯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혈투의 전장 두 번째 결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연무장 위로 사회자가 나타났다. 자칫 가라앉을지도 모르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인지 그는 조금 더 격양된 목소리로 말해였다.

“이번 도전자들은 무척이나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베일에 싸인 두 사람의 대결이기 때문이지요!”

사회자의 오른손이 움직이자 콜로세움 한쪽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또다시 반대편 방향을 가리키자 맞은편의 문이 열렸다.

“혈투의 전장의 유일한 부족 생존자라 할 수 있겠군요. 붉은머리 부족의 전사, 루르시아!”

오른쪽 팔에 붉은색의 띠를 두른 루르시아가 등장하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용히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우우우!!”

그러나 미셀 때처럼 환호성은 없었다. 또한 도리언 때처럼 공포에 눌린 두려움도 없었다. 코노트 왕국의 관객들은 그가 들어섬과 동시에 야유를 퍼부었다.

“빌어먹을 붉은머리 부족 따위가 여기까지 살아 있다니! 어서 죽어 버려!”

“벌레마냥 끈질긴 녀석들! 여기까지 기어 올라오다니!”

관객들의 그러한 야유도 루르시아는 묵살하며 조용히 걸어 올라왔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도전자! 그 어떠한 정보도 없는 진정으로 숨겨진 전사! 세이드!”

검은 로브로 머리까지 덮은 그는 고개를 숙이며 걸어 올라왔다. 팔짱을 낀 두 팔은 여전히 풀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의 보이지 않는 공격은 종전의 결투에서도 보았듯이 아주 무시무시하지요! 자, 과연 이번에 두 사람이 어떤 승부를 보여줄지!!”

“붉은머리 부족의 대표 루르시아.…… 맞나?”

루르시아의 앞에 선 세이드가 그를 보며 물었다. 루르시아는 그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어째서 당신이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정말 귀찮은 일을 시킨다니까.”

“……?”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세이드는 살짝 한 걸음 물러섰다. 어느새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와 함께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되었다.

“붉은머리 부족 따윈 죽여 버려!”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려!”

“훗, 꽤나 미움을 받는 부족인가 보군. 루르시아.”

“…….”

관객들의 욕지거리에도 루르시아는 무심히 블리츠 브링거를 들 뿐이었다.

“하압!”

단말마의 기합 소리와 함께 블리츠 브링거의 검날에 옅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콰앙!!

방금 전까지 세이드가 서 있던 자리가 루르시아의 검에 의해서 부서져 나갔다.

“흐음, 작은 체구에 비해서 꽤나 힘이 좋은걸. 정말 수련을 해서 얻은 힘인지, 아니면 브링거의 옵션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겠지.”

세이드는 루르시아의 동작 하나하나를 마치 관찰하듯 말하였다.

“힘은 합격점인데. 이제 다른 걸 한번 볼까?”

촤아악……!!

순간 세이드의 로브가 펄럭였다. 그것은 그저 스쳐 가는 바람이 아닌 그의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의한 것이었다.

“치잇!”

황급히 루르시아가 블리츠 브링거를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늦었어!”

그러나 그 순간 세이드의 로브 안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나왔다.

타당! 타다당!!

블리츠 브링거의 검날에 번쩍거리는 빛이 튀기며 루르시아가 뒤로 밀려났다.

“인비저블 블레이드(Invisible Blade)!!”

순간 빛나는 태양 속에서 세이드의 그 ‘무언가’ 가 반짝이는 빛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크윽!!”

오른쪽 허리를 블리츠 브링거를 세워 모두 막은 루르시아였지만 그는 순간의 고통에 그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는 힘은 가지고 있지만, 역시 그 커다란 성검은 네가 쓰기엔 조금 무거워 보이는군. 그만큼 민첩성도 떨어지겠지.”

세이드는 가볍게 몸을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게다가 내 검은 보이지 않거든.”

“…….”

오른쪽 허리를 스쳐 지나간 두 줄기의 혈흔을 보며 루르시아는 묵묵히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을 가린 녀석 치곤 말이 너무 많아.”

우우웅……!!

블리츠 브링거의 떨림이 느껴졌다. 옅은 소드 오러로 둘러싸인 블리츠 브링거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크크…… 난 원래 조용한 건 딱 질색이라서 말이지.”

루르시아의 말에도 세이드는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끝이다!”

그런 그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루르시아가 블리츠 브링거를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그으며 세이드를 압박해 들어갔다.

“어린 친구가 너무 성급하군.”

루르시아의 검을 피하며 세이드가 그의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크윽!”

다시 한번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루르시아의 뺨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루르시아, 조심하는 게 좋겠다.

“알고 있어요.”

브링거가 루르시아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였다.

“싸움 중에 잡담이라니!”

순간의 빈틈을 놓칠 세이드가 아니었다. 루르시아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 보였던 그가 자신의 두 팔을 한 번 교차했다.

“제길……!”

블리츠 브링거를 들어 올린 루르시아였지만 무언가의 힘에 밀려 그는 세이드의 팔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미끄러지듯 넘어지고 말았다.

“크크, 재밌지?”

“…….”

넘어진 루르시아를 보며 세이드가 웃었다.

“보이지 않는 실인가. 귀찮게 됐군.”

블리츠 브링거를 묶어서 넘어뜨린 것을 보며 루르시아는 어느 정도 확신을 세우는 것 같았다.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두 팔에 달려 있는 실.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은 결국 검의 궤도와 크게 차이나지 않아!”

루르시아가 연무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크크, 용기는 가상하지만…… 과연 그럴까?”

촤아악!!

세이드가 손을 뻗는 순간 루르시아는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쐐기와 같이 날카로운 수십 개의 보이지 않는 그것들이 루르시아를 향해 쏘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실이라……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구. 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수십 가닥, 아니 수백 가닥이 달려 있어도 이상할 것 없지 않겠어?”

세이드는 마치 도발을 하듯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태양 빛에 반사되는 무언가가 그의 팔을 감싸고 있음은 분명하였다.

“하나하나는 나의 검과 같고, 나의 팔과 같지. 루르시아, 넌 수백 명의 나를 상대해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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