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얼 레전드-66화 (66/122)

듀얼 레전드 66화

“성공인가?”

“이, 이겼잖아?”

“하, 하하. 정말 드레이크를 잡았어. 이거 대단하잖아?”

“와아아아!!”

사람들은 모두 다 일어나 우리들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레이드 던전을 클리어하는 팀은 아직 그리 많지 않았다. 이렇게 거대한 몬스터를 경험해 본 사람은 이 콜로세움의 관객들 중에서도 많지 않을지 몰랐다.

“힐링(Healing)!”

나를 감싸는 황금빛의 기운이 몰아치는 피로를 사라지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괜찮아?”

“응, 고마워.”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 주는 슈가비는 다가오는 병사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쉬고 있어.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까.”

“뭐?”

“감히 누구 마음대로 아스테온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거야? 건방진 왕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겠어.”

슈가비는 정말 왕국의 병사들과 싸울 기세였다. 스완도 어느새 다시 윈드 포스를 재정비하는 것 같았다.

“덤빌 테면 덤벼 보시지. 너희들 따위 두렵지 않으니까!”

스완의 윈드 포스가 다시 빛을 발했다. 조금 전 그의 위력을 보았던 병사들은 섣불리 우리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이…… 이……!!”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드레이크는 쓰러졌지만 여전히 콜로세움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보호트, 미안하지만 당신의 뜻대로 되진 않았다. 피의 의식은 치러지지 않았지만 그 대신 인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비록 나 혼자의 힘이 아닌 나의 동료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더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군, 아스테온. 설마 드레이크를 쓰러뜨릴 수 있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아니, 그 이전에 비등하게 싸운 것조차도 대단한 것이었지.”

콜로세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보호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피의 의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야. 그저 형식적인 것일 뿐. 진짜는 바로 이제부터지.”

콜로세움의 문이 열렸다. 곳곳에 닫혀 있던 거대한 철문이 위로 올라가며 그곳에 있던 대기자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결투를 보러 온 선택 받은 관객들이여. 크게 박수 치거라! 드레이크를 물리친 저 영웅에게, 그리고 그보다 더 뛰어난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혈투의 전장의 시작을!!”

하나둘 걸어 나오는 혈투의 전장의 전사들 모습이 보였다.

와아아!!

사람들은 다시 한번 열광하기 시작했다.

“하, 하하. 나란 존재는 정말 들러리가 된 건가? 정말 뭐 같은 기분인걸?”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들이 아닌 도전자들에게 향했다.

“그래도 이걸로 된 거 아니겠어? 이렇게 우린 살아남았고 또 이제 모든 게 끝났잖아.”

“맞아요. 조금 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어요.”

기분 나쁜 결말일지도 모르지만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결말일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우리에게서 멀어졌고 원래대로 혈투의 전장이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우린 이제 퇴장해 주면 되는 건가?”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지만 말이야.”

“응, 가자. 여기서 더 있고 싶진 않아.”

좋은 추억은 하나도 가지지 못했던 코노트 왕국의 여행이었다. 아니,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 서로간의 믿음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가장 값진 것을 얻은 걸지도.

“아, 아스테온…….”

“네?”

“아무래도 조금 더 여기에 머물러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떠나려는 우리들의 어깨를 잡은 것은 바실리아였다.

“저길 봐…….”

바실리아가 가리키는 그곳을 따라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그대로 움직였다.

“에엑?!”

스완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슈가비의 반응.

“어째서?”

마지막으로 나는 내 두 눈을 믿을 수 없어 다시 한번 문지르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하, 하하…….”

그저 허황된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토록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우리들과 달리 그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콜로세움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미치겠군…….”

그곳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소년이 서 있었다.

“루르시아…… 네가 어째서 여기 있는 거니?”

그러나 나의 목소리는 그만 관객들의 환호성에 묻혀 그에게 닿지 않는 듯 보였다.

7장. 검투사의 명예와 혈투사로서의 자부심

콜로세움의 모든 도전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 안엔 미셀도 보였고 도리언도 보였다. 그리고 부족의 전사들과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세이드와 루르시아까지.

“피의 의식이 깨어진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드레이크를 물리친 용사가 탄생했다. 피의 의식을 물리친 용사여, 그대에게 묻노라. 위대한 검투사의 혈전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하아?”

보호트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걸 노린 건가? 보호트?”

“후훗, 글쎄.”

여유 있는 그의 말에 나 역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놀아난 기분이로군.”

죽어도 상관없고 살더라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묻는 것까지 그의 계산에 있었던 것일까?

“정말 화가 날 정도로 정교한 프로그램이군.”

듀얼-레전드를 관장하는 WBCN인 레이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것이기에 이리도 완벽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대사막 건너편에 있는 전사들은 실력은 있으나 겁쟁이인가 보군. 비록 혼자의 힘은 아니더라도 분명 드레이크와의 혈전에서 보여 준 실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옳소!”

“그런 실력을 가진 자가 혈투의 전장을 피하다니…… 정말 실망이로군.”

보호트는 나를 도발했다. 바보 같은 군중은 그의 말에 소리쳤다.

“혈투의 전장에 참가하라!”

“엔도라스 왕국의 힘을 보여 줘! 코노트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란 말이야!”

코노트 왕국으로 이어 주는 사막 전차를 타고 구경을 온 사람들이 나를 향해서 소리쳤다.

“하하, 엔도라스 왕국의 실력자들은 모두 겁쟁이인가? 코노트 왕국의 전사들을 보고 겁에 질린 표정이로군.”

“그 말, 곧이 곧대로 듣고 넘어가기 힘들군.”

“……!!”

객석에서 한 사내게 움직였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청중을 휘어잡는 위엄이 섞인 목소리였다.

“아스테온, 오랜만이로군.”

“아더!!”

갈색 머리에 평범해 보이는 중년의 기사. 하지만 그의 카멜롯 팀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더니 이렇게 먼 곳까지 와 있었군. 후훗, 정말 자네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로군.”

“그러게요. 오랜만에 보네요.”

“엔도라스 왕국의 유저들이 겁쟁이라니. 적어도 근육으로 똘똘 뭉쳐진 코노트의 바보들보단 훨씬 더 강할 것 같군요.”

“……자넨 누군가?”

“위대한 혈투의 전장이 거행된다고 하여 용맹한 전사들을 보기 위해 엔도라스 왕국에서 온 카멜롯 팀의 아더라고 합니다.”

아더는 보기 좋게 보호트 왕에게 인사를 했다.

“저 아스테온은 엔도라스 왕국에서도 뛰어난 검사입니다. 방금 보호트 폐하께서 하신 말씀은 엔도라스 왕국의 사람인 저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일이로군요.”

“호오? 그래서?”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스테온은 이 혈투의 전장에 참가할 것입니다. 다만, 그의 체력이 많이 고갈된 상태이오니 참가의 순서만큼은 조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참가자가 더 늘수록 시합은 흥미진진해지는 법이지.”

어떻게 해서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거지? 당사자인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들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고 있었다.

“아더, 저는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드레이크와 싸울 때 정말 그대들의 힘만으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네?”

“저기 위에 보이는 저들이 누군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걸세.”

아더는 엄지손가락을 펴 살짝 뒤를 찔렀다.

“아……!”

저 낯익은 얼굴을 여기서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애송아! 남자라면 이 가슴으로 보여 주란 말이야.”

“하, 하하.”

“지루한 싸움을 하면 널 이단으로 간주해 버리겠어.”

이 뜨거운 태양과 어울리는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미소녀. 인형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이 작은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참으로 거칠었다.

“내가 널 살려 줬으니 이번엔 네가 보답해야 할 차례지.”

“누, 누가 살려 줬다는 거예요?”

“흐응…… 반항하는 거야? 그건 그렇고 곡해의 동굴에선 잘도 날 속였겠다?”

뜨끔!

팔짱을 끼며 나를 노려보는 카린의 매서운 눈빛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였다.

“하하하, 아스테온. 난 그래서 언제나 카린과는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네.”

고소하다는 듯 놀리는 아더가 더 얄밉지 않을 수 없었다.

“성기사만이 쓸 수 있는 심판의 철퇴, 그리고 그녀의 뇌진(雷震) 유피테르(Jupiter)를 보지 못했다고는 하지 않겠지?”

드레이크를 잡을 때 쏟아졌던 그 황금빛과 번개가 바로 그들이 쓴 것이었다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다른 건 몰라도 참가하지 않으면 카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깐 말이야. 난 그저 그걸 이야기해 주려고 나왔다네.”

아더가 나의 어깨를 툭툭 쳐 주며 위로해 주었다. 카린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목에다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가로로 그었다.

“크윽!”

무언의 제스쳐였지만 정말 하지 않으면 죽일 듯한 그녀의 기세였다.

“아아…… 하긴, 저도 조금 더 남아야 할 일이 생겼으니까요. 굳이 참가하고 싶진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가까이에서 만나려면 나가는 게 더 낫겠군요.”

“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낸 싸움이었다. 대기실의 사람들 역시 창살 너머로 분명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르시아가 그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고 그저 멍하니 있다는 것은 뭔가 그에게 일이 생긴 것일 거다.

“보호트,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됩니까?”

“그게 뭐지?”

“저기 저 검은 머리의 소년. 왕국의 대표는 아니니 부족에서 나온 것일 텐데…… 어디 부족의 사람입니까?”

“아아, 역시. 자네도 저 소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역시 보는 눈이 있군.”

보호트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기 팔에 메고 있는 붉은 끈이 보이지? 저 소년은 붉은머리 부족의 대표로 나왔다네. 사실 이렇게 대회를 크게 만든 것도 다 저 부족 때문이지.”

“붉은머리 부족?”

코노트 왕국에서 종종 들었던 부족의 이름이었다. 도리언도 그렇고, 보호트도 그렇고, 코노트 왕국과 붉은머리 부족과는 뭔가 일이 있는 듯 싶었다.

“저 빌어먹을 부족을 눌러 줘야 하지. 하지만 저런 어린 소년을 대표로 내세우다니. 녀석들도 다했나 보군. 이번 차에 확실히 코노트 왕국과 그들의 차이를 보여 줘야겠어.”

보호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루르시아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달랐다.

“시작하죠. 질질 끌어 봐야 관객들은 지루해 할 뿐입니다.”

“후훗, 시원시원해서 좋군.”

“아스테온, 당신이 이렇게 일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줄은 몰랐는걸.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드레이크를 잡으라고 의뢰를 했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걸요.”

로지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하려고 했던 내 잘못도 큰걸. 그래도 그…….”

“네, 부탁한 것은 확실히 하겠어요. 걱정 마세요.”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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