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64화
《경고: 마법진이 실행됩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 위로 거대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언제 있었는지 모를 콜로세움 지붕 위의 7명의 마법사가 각자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거대한 떨림과 함께 콜로세움 한가운데엔 보랏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혈투의 전장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 서 있는 광대와 같은 한 사내가 소리쳤다.
“와아아!!”
엄청난 함성……!
“저, 저건!!”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야?”
“이거 재밌겠는데? 우앗!!”
죽음을 부르는 보랏빛의 마법진 위로 그 괴물의 모습이 나타났다.
“크아아아!!”
대지를 흔들 것 같은 거대하나 외침이 모든 이들로 하여금 쿵쾅거리는 가슴의 떨림을 일으켰다.
“드, 드레이크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은 창살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몬스터의 위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철컹…….
그리고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코노트 왕국의 병사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나를 불렀다.
“나오시지요.”
“알겠습니다.”
“뭐,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부족의 전사들은 NPC답지 않은 반응으로 무척이나 놀란 듯 나와 병사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그대들이여, 샤벨리거의 포효를 아는가.”
“물론입니다!!”
“죽음을 부르는 대사막의 거대한 모래 폭풍. 전설의 맹수 샤벨리거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가는 듯한 상처를 남기는 그 거대한 모래 폭풍에서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게 누구지?”
“어떻게 거기서 살아남을 수가 있는 거지?”
객석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샤벨리거의 포효라는 모래 폭풍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게 누굽니까!! 알려 주십시오!!”
우연히 한 관객의 외침이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을 뚫고 들려왔다.
“샤벨리거는 승리의 상징. 그 포효 속에서 우리에게로 온 그 존재는 우리들의 승리를 위한 신의 선물이오. 그리고 나는 그 존재를 저 위대한 포식자 드레이크의 제물로 바칠 것이다. 문을 열어라!!”
콜로세움 맞은편의 문이 열렸다. 아직 마법진에 갇혀 있는 드레이크의 모습이 바로 나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쾅! 쾅! 쾅!!
실드로 보호되어 있는 마법진을 부수기라도 하려는 듯 드레이크는 자신의 머리로 그것을 계속 들이받았다.
“위대한 태양과 강렬한 전쟁을 수호하는 전신(戰神) 아르여. 코노트 왕국의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대를 위한 전투의 의식을 지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열린 문을 향해 걸어 나왔다. 보호트 왕과 로지나 여왕이 서 있는 그곳으로 걸어 나오자 보호트는 나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마법진을 해제하라!! 혈투의 의식을 거행하겠노라!!”
“와아아아아!!!”
붉은 피보다 더 원초적으로 사람의 광기를 끌어내는 것도 없으리라.
“아스테온…… 빨리!”
로지나가 나에게 눈짓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마음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보다 나의 허리에 있는 빙결의 검을 잡고 마음을 다질 뿐이었다.
“로지나, 이만 우리는 들어가지.”
“아스테온!”
“그는 도망가지 않을 거야. 그런 조건으로 그의 동료들을 풀어 준 것이니까.”
“바보야, 시아크와 세드릭이……!”
“그가 이곳에 남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추격도 하지 않는 거야. 로지나, 내가 당신에게 그 어떤 것이든 해 줄 수 있지만 왕궁의 일만큼은 양보하지 못하네.”
“이런…… 바보 같은!”
“로지나, 당신의 호의는 고마워요. 그때는 조금 화가 나서 말하지 못했었지만 충분히 고맙습니다. 하지만 보호트의 말처럼 전 도망가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나의 의지만큼은 보여 주어야죠.”
“의지라니, 죽으면 모든 게 끝이란 말이야.”
“결코 만들어진 퍼즐처럼 되진 않을 거라는 것을!!”
마지막 한 조각이 사라진다면 퍼즐의 그림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비록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NPC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퀘스트의 그저 그런 소모품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내가,
“이 내가 만들겠어!”
카앙!!
나의 손목을 죄어 오던 강철의 수갑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으로 튕겨져 나갔다. 도망 따윈 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에게 고작 이런 수갑 따윈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촤앙!!
빙결의 검이 뽑혔다. 차가운 검집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받으며 새하얀 냉기를 피우고 있었다.
《경고:마법진이 해제됩니다.》
《콜로세움 경기장 안 대마법 결계가 형성됩니다.》
보랏빛의 마법진이 풀렸다. 머리로 실드를 들이받던 드레이크는 자신을 구속하던 제약이 사라지자 미친 듯 큰 소리로 소리 질렀다.
“크아아!!”
“귀청 떨어지겠군.”
갈색의 단단한 가죽으로 온몸을 두른 그 거대한 몬스터는 노란색의 뱀의 그것과도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정말 저 녀석이 드레이크와 싸우는 거야?”
“그냥 밟혀 죽는 거 아니야?”
“에이, 그래도 샤벨리거의 포효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잖아. 뭔가 다르지 않겠어?”
“흐음, 이거 흥미로운데?”
사람들은 저마다 나의 전투를 마치 재미있는 놀이인 듯 바라보았다. 자신의 죽음도 아닌 다른 이의 죽음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가볍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덤벼라, 이 멍청한 도마뱀아. 난 광대 따위가 될 생각은 없다고!!”
“크아아!!”
드래곤에 비등하는 힘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드레이크와 드래곤은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고대의 높은 지능을 가진 드래곤은 현명함과 강함을 두루 갖춘 명실상부 최고의 몬스터라면, 드레이크는 그저 브레스조차 쓰지 못하는, 육체적인 힘만을 가진 거대 몬스터에 불과한 것이었다.
콰앙!!
드레이크의 이빨이 전장의 바닥에 박혔다. 모래로 이루어진 바닥은 너무나도 쉽게 그의 이빨에 부서지듯 가루를 흩날렸다.
“후우읍…….”
시간을 끌어 봐야 내가 유리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세를 바로 잡았다. 가슴으로 검을 끌어들이는 첫 번째 자세, 아래로 검을 늘어뜨리며 내려 잡는 것은 빙루의 두 번째 자세.
“월하천빙(月下天氷)!!”
휘몰아치듯 검날에 소드 오러의 폭풍이 만들어졌다.
“루나틱 세이버(Lunatic Saver)!”
온 힘을 다해 내지른 빙루의 비기가 내 몸속의 모든 기를 발산하듯 새하얀 빛이 검을 통해 빠져나가는 순간 내 몸의 힘도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콰아앙!!
바닥에 얼굴을 내리깔고 있던 드레이크의 안면에 정통으로 검기가 쏟아졌다.
“오오오!!”
“엄청난데?”
“저, 저게 뭐지? 저런 검술도 있었나?”
“저 사람 도대체 누구지?”
루나틱 세이버의 위용에 관객들은 또 한 번 동요하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빙루의 검술은 분명 그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었다.
“하아, 하아…….”
그 어떤 때보다도 많은 힘을 쏟아부은 기술이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기분이 아무래도 단 한 번의 스킬에 너무 많은 기력을 쏟아부었나 보다.
“잡았을까?”
약간의 기대. 조금은 허무할지 모르지만 확실히 들어간 공격에 나는 먼지가 걷히길 기도하고 있었다.
“크르르…….”
“제기랄!”
그러나 그 기대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역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죽을 몬스터가 아니었다.
“위, 위험해!!”
관객들 중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몸을 피했다. 자욱한 모래먼지 사이로 드레이크의 이빨이 내가 있었던 바로 그 자리를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후우…….”
한숨을 돌리며 나는 다시 검을 고쳐 쥐었다. 바닥에 얼굴을 묻은 드레이크의 머리를 밟고 뛰어올랐다.
“흐아아!!”
나의 몸과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촤아악!!
드레이크의 눈동자에 검이 박히며 그의 눈을 채우고 있던 유리체가 터져 마치 깨어진 그릇 속의 물처럼 나를 향해 쏟아졌다.
“퀘에에에!!”
고통에 찬 괴성을 지르며 드레이크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오오오……!!”
사람들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나의 공격에 탄성을 자아내었다.
“블링크!!”
흔들리는 드레이크의 머리에서 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즉시 시전을 할 수 있는 블링크 마법으로 나는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마법?!”
“마법까지 쓸 수 있는 거야? 마검사란 말인가?”
관객들은 저마다 나에 대한 의문을 뿜어내었지만 일일이 그들에게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스타 써클(Star Circle)!!”
빙루의 마지막 검술이자 검을 지면에 박아 소드 오르의 충격으로 공격하는 이 검술은 아마도 드레이크의 몸에서도 효과가 있을 것이었다.
“머리를 날려 주마!!”
우우웅!!
“뭐, 뭐야?!”
콰앙!
그러나 소드 오러를 뿜어내는 검이 드레이크의 머리에 박히려는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이 빙결의 검을 막았다.
“제길!!”
그와 동시에 가시가 박힌 거대한 드레이크의 꼬리가 나를 밀쳤다.
“크윽……!!”
가까스로 중심을 잡아 바닥에 나뒹굴지 않게 된 나는 검을 경기장에 박아서 더 이상 밀려나는 것을 막았다.
“항마법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고위 마법 몬스터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항마법 능력은 몬스터의 레벨에 따라서 막아 낼 수 있는 클래스의 마법이 나뉘어졌다.
“브레스도 쓰지 못하는 주제에! 가질 건 다 가졌군!”
드레이크는 지능이 낮은 몬스터였지만 그의 피부만큼은 드래곤의 것과 비교해도 모자라는 것이 없었다.
“마법이 안 되면 검으로……! 이겨 주겠어! 블링크!!”
마법의 공격이 되지 않더라도 그의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 효과 정도는 충분했다.
“블링크! 블링크!!”
공중에서 이어지는 마법 시전에 나는 마치 사라지듯 계속 드레이크의 머리 위를 이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워터 볼(Water Ball)!!”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펼쳐 푸른색의 마법의 구를 만들었다.
슈우웅!!
하늘에서 쏘아진 세 개의 물의 구가 드레이크의 얼굴에 부딪치며 터졌다.
촤아악……!!
조금 전 드레이크의 눈이 부서질 때처럼 그의 얼굴에서 세 개의 수구(水球)가 터지면서 마치 폭포수의 물처럼 그의 얼굴을 적셨다.
“크르르……!”
물을 털어 내려는 듯 얼굴을 세차게 흔들며 드레이크가 바닥의 모래에 머리를 비볐다.
“프로스트 다이버(Frost Diver)!!”
바닥에 내린 나는 그대로 두 손으로 검을 쥐어 마법을 펼쳤다. 검을 매개체로 한 나의 프로스트 다이버는 마치 검기(劍氣)처럼 검을 타고 차가운 얼음을 발산했다.
카앙……! 카가가각!!
파도처럼 밀려가며 검기가 뿜어져 나간 길을 따라 얼음이 솟아올랐다.
콰가강……!!
거대한 드레이크의 두 다리를 프로스트 다이버가 얼려 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였기에 완벽하게 얼려 버릴 수는 없었지만,
“이것으로 충분해.”
“쿠아아아!!”
물을 떨어뜨려 내려고 머리를 숙였던 이 바보스러운 도마뱀은 그와 동시에 자신의 다리가 얼어붙자 그대로 꼬꾸라지고 만 것이었다.
“제발…… 끝나라.”
눈을 감았다. 마나가 줄어드는 것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소모를 끌어내고 있는 내 몸에 나 역시도 놀라울 정도였다. 히든 피스(Hidden Piece)라는 것은 단순히 재능을 뜻하는 것일까? 죽음의 문턱에서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는 이 순간도 그런 작은 조각의 한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