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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레전드-63화 (63/122)

듀얼 레전드 63화

“오늘 낮 1시에 전 세계로 생중계될 듀얼-레전드 첫 투기장 대회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라…….”

공지사항에 올라온 그 문구에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노트 왕국의 혈투의 전장을 기점으로 각 왕국을 대표할 거대한 투기대회가 준비될 것입니다. 많은 유저들은 실력을 갈고닦아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들에겐 하나의 축제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결코 즐거울 리가 없었다.

“벌써 삼 일이 지나가 버린 건가…….”

흐트러지는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서 연무장에 보낸 삼 일이었지만, 그것이 전체적으로 나의 신체에 많은 힘을 부가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1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뒤척이다 새벽에 잠든 내가 다시 시계를 보았을 때가 이미 11시가 넘었었으니까.

“들어가 볼까. 음?”

커넥터를 열던 나는 무심코 손잡이를 잡았던 내 손을 바라보았다.

“하, 하하…….”

그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에도 이렇게 떨지 않았던 내 손바닥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그만큼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똑, 똑, 똑.

“도련님, 접니다.”

“응, 들어오세요.”

마침 커넥터에 접속을 하려던 순간 조심스럽게 집사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미셀 크라스 님의 전화입니다.”

“미셀이?”

“네, 꼭 바꾸어 달라고 하셔서…….”

“응, 이리 줘.”

전화기를 건네받은 나는 통화선 너머로 들리는 미셀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휴우, 요즘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전화기를 쓰는 집은 진짜 너희뿐일 거다.

“크크, 이건 아버지가 좋아하는 물건이라서 말이야. 바꿀 수가 없어.”

―그러면 도대체 핸디(Handy)는 왜 꺼둔 거야?“

“아아, 조금 심란해서 말이지.”

그 말에 나는 책상 위에 놓아둔 핸디의 폴더를 올려 전원을 넣었다. ‘미셀’ 이란 이름으로 온 전화만 다섯 통이 넘는 것 같았다.

“미안, 미안. 전화했었구나. 그보다 웬일이야? 네가 나한테 전화를 이렇게나 열심히 하고 말이야.”

―웬일은 무슨…… 들리는 소문이 사실이야? 너 정말 나가려는 거야?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야?”

―당연하지! 내가 말했었잖아. 너 상대가 뭔지나 알고 덤비려는 거야? 내가 알아본 바로…….

“이런 거 이야기해 주면 재미가 반감되는데, 너만 알고 있어, 미셀.”

―뭐?

“드레이크라고 알지? 가이드에 나와 있는 필드 몬스터. 그 녀석하고 싸울 것 같단 말이지.”

―젠장, 알고 있었잖아?

걱정 어린 그의 목소리는 나의 한마디에 신경질적으로 변해 버렸다.

“당연하지. 나 이연이 내가 싸워야 할 상대도 모르고 있을까 봐서?”

―장난하자는 게 아니잖아.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드레이크 같은 몬스터는 적어도 레이드 급 몬스터야. 그런 녀석을 혼자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네가 도와주면 되겠네.”

―제길, 여차 하면 정말 뛰어들 테다. 대신 이 빚은 꼭 갚아라.

“크크,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같다. 고마워, 미셀.”

―난 정말 장난이 아니라구. 넌 나한테 져야지, 그따위 빌어먹을 파충류한테 지는 걸 보고 있는 건 나 역시 용납 못 해.

“어이쿠? 언제부터 네가 날 이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야? 이거 불순한데?”

―쳇,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장난 섞인 그와의 대화 덕분에 나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

“고맙다, 미셀. 덕분에 조금 편해졌어.”

―그냥 접속하지 마라.

“으그, 바보 같은 소리. 끊는다.”

―이연!

어차피 조금 있으면 만날 사람이었다. 미셀 역시 혈투의 전장의 투기장의 전사로서 도리언과 함께 뽑힌 것이었다.

“어휴, 괜히 녀석한테 이야기했나?”

미셀에게 내가 그 전장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자 출전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가 이렇게 대회에 참가하고 만 것이었다.

“코노트 왕국에선 총 세 명이 나가는 건가?”

예선전이 끝난 뒤 혈투의 전장의 총출전자가 정해졌다. 미셀과 도리언,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세이드란 사람이었다. 특이한 것은 미셀, 도리언과 달리 이 세이드란 사람은 코노트 왕국의 유저들에게서조차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코노트 왕국 주변 부족의 대표로 나오는 전사들이 총 다섯 명이라.”

아마도 그들은 NPC일 가능성이 높았다. 평균적으로는 NPC들의 능력치는 유저들에 비해서 낮다고 볼 수 있으니 확실히 이 경기는 코노트 왕국의 최강자를 가리는 경기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좋아…… 가볼까?”

피이익…….

커넥터의 문이 열리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트와 컨트롤러가 눈에 보였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다른 그런 기분. 그런 마음으로 나는 커넥터의 안으로 몸을 눕혔다.

“와아아아!!”

“자, 맛있는 과자와 음료가 있습니다!”

“코노트 왕국의 꼬치를 먹어 보지 못하면 사막에 온 이유가 없지요!”

“후아, 덥네? 정말 사막에 세워진 왕국이 있구나.”

“으…… 갑옷은 못 입고 있겠다. 어휴, 이 땀 봐봐.”

광장 안은 엄청난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왕성 안에서까지 밖의 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난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뭐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예요?”

감았던 눈을 뜨는 순간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던 나는 내 뒤에 서 있던 바실리아를 보며 물었다.

“아스테온, 왔구나.”

“으응, 네. 조금 늦었어요.”

혈투의 전장의 시작이 어느새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슈가비와 스완, 그리고 바실리아는 모두 접속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형! 오늘이 코노트 왕국의 혈투의 전장이란 이벤트를 하는 날이래요! 형, 우리 이거만 보고 가요. 네?”

스완은 그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무척이나 고양된 목소리로 나에게 다가왔다.

“운영진에서 아직 개발 중이라서 테스트용으로도 공개하지 않았던 사막 전차(Desert Train)까지 운행한대요.”

“사막 전차?”

“응, 대사막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전차인데 사실 이건 과학이 발달된 코발 왕국에서 개발하는 것으로 시나리오상의 이야기라던데 오늘 하루만 특별하게 연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 거야.”

“그래요?”

그래서 광장의 분수대 근처에는 저렇게 코노트 왕국에선 보기 힘든 판금의 갑옷을 입은 유저들이 많아 보였던 것인가 보다. 뜨거운 사막에서 쉽게 달구어지는 금속 갑옷을 입는 바보짓을 왕국의 사람들이 할 리가 없었으니까.

“어마어마한 일이 돼 버렸는걸요?”

“그러게. 운영자들도 아마도 처음 있는 왕국 공식대회니까 조금 더 사람들의 주목을 끌려고 하는 것 같아.”

“으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래도 우리가 이곳에 머물며 느긋하게 결투를 관람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드레이크와 싸워야 하는 내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이고 싶지가 않았으니까.

“스완, 미안하지만 오늘 떠나야 해. 더 이상 미뤄지면 퀘스트에도 차질이 있을 거야.”

“으…… 하지만 처음이잖아요. 이런 큰 대회는.”

“다음에 우리 왕국에서 하는 것을 보자. 그땐 레릭과 같이 보는 거야. 아니, 우리가 나가는 것도 좋겠지. 안 그래?”

나는 스완의 머리를 쓰윽 문지르며 말했다.

“아스테온 님, 저희는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녀에게 제 말을 전했습니까?”

“물론입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작전은 처음 그대로 할 것이다……라고 하시더군요.”

“그것뿐인가요?”

테라스에 모여 있던 우리에게 다가온 세드릭에게 내가 되물었다. 그는 용병치고는 무척이나 사람 좋은 얼굴로 잘 웃는 그런 사람이었다.

“‘왕의 협박 따위는 개나 줘 버려!’라고 한마디 덧붙이시기는 했습니다. 하, 하하.”

“그렇군요.”

어색하게 웃는 그에게 나 역시 살짝 웃으며 말했다.

“바실리아, 제가 이야기했던 대로 해 주세요.”

“그래, 알겠다.”

“세드릭, 이들을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저희 역시 새벽의 고원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그녀가 말했던 의뢰는 잘 수행할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약속 장소까지는 시아크가 안내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죠. 아스테온 님은 로지나 님께서 안내할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혈투의 전장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앞에 두고 마치 두 왕과 왕비의 부부 싸움에라도 낀 기분이 참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었지만 그 싸움에 나의 생사가 걸려 있다는 것이 더더욱 우스울 뿐이었다.

6장. 드레이크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혈투의 전장! 사막 속에서 피어나는 피의 꽃이 작열하는 태양을 더 뜨겁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콜로세움 바로 앞에서 호객꾼은 큰 소리로 군중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티켓을 구한 사람들은 속속들이 그 안으로 들어갔고 그러지 못한 이들도 콜로세움 공중에 만들어진 거대한 영상 스크린으로 전투를 구경할 것이었다.

“여기 맥주 하나!”

“아저씨, 여기요! 여기!!”

광장 안은 마치 축제의 현장 같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시원한 음료와 술로 긴장되는 목을 달래며 혈투의 전장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대사막을 건너오신 손님들, 혹은 이곳의 나의 소중한 백성들, 그리고 왕국의 주변에 사는 용맹한 부족들의 사람들까지. 모두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아아!!”

거대한 콜로세움 한가운데에 보호트 왕이 섰다. 탄탄한 근육을 뽐내며 사자가 그려진 망토를 걸친 그는 관객들을 보며 외쳤다.

“그대들이여!! 새로운 전사의 탄생을 원하는가!!”

보호트의 외침에 관객들은 환호성으로 답했다. 귀를 찢을 듯한 환호성은 대기실에 앉아 있던 나에게까지도 마치 바로 앞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히 들려왔다.

“이봐, 넌 어디 부족에서 온 거지?”

‘음?’

대기실에 나 혼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코노트 왕국 근처에 사는 부족들의 전사인 듯 보이는 두 명의 사내들이 나와 같은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허여멀건한 것이…… 회색깃털 부족의 대푠가?”

“에이. 거기선 붐바크가 나오기로 했다면서?”

“아아, 그런가.”

그들은 나를 보며 저마다 추측을 하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난 그 어떤 부족의 대표도 아니니까 상관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런데 왜 대기실에 있는 거지?”

“조금 있으면 알 테니까 신경 끄시죠.”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그만 호의로써 나에게 말을 건 그에게 쏘아붙이듯 말하고 있었다.

“허허, 까칠한 친구로군. 그러고 보니 선수들 중에서도 허여멀건한 녀석이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붐바크보다 더 하얗지 않았어?”

“으응, 맞아. 그런 녀석이 한 명 있긴 했었지. 어디 대표였더라?”

“글세. 뭐, 딱 보기에도 허약해 보이던데?”

“하긴, 크크크.”

서로 실실 쪼개는 바보들을 뒤로하고 나는 대기실 창살 밖으로 보이는 보호트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의 옆에는 전에 말했던 것처럼 로지나가 함께 있었다.

“이 자리는 위대한 사막의 전사를 뽑는 신성한 피의 장소. 오늘 8명의 참가자 중에서 대사막의 검투사가 탄생할 것이다!”

“와아아아아!!”

“얼래…… 너? 그 팔은 뭐냐?”

“신경 끄라고 했잖소.”

사람들의 환성 소리에 반쯤 묻혀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한 사내의 질문이 들렸지만 난 그의 물음을 묵살해 버렸다.

“그럼! 혈투의 전장의 개막을 알립니다. 대지를 적실 붉은 피의 향연을 느껴 보십시오!!”

“시작이다!!”

“가자!!”

관객석에서 수많은 꽃들이 콜로세움 결투장 안으로 떨어졌다. 마치 축제를 알리는 신호처럼 그들은 즐거움이 가득했다.

“콰아아아!!”

“우악?!”

“뭐, 뭐야?”

“무슨 소리지?”

콜로세움이 떨릴 정도의 거대한 외침이 들려왔다. 함성 소리도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그대들이여, 들리는가! 혈투의 전장을 알리는 소리이다! 피의 결투는 피로써 알려야 하는 법. 위대한 검투사의 탄생을 위한 신성한 피의 의식이 그대들의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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