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59화
“뭐, 뭐야? 마법?”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주점 안을 가득 채웠다.
“뭐지? 어째 힘이 더 강해진 기분인걸?”
그 차가운 냉기에 오히려 놀란 쪽은 나 자신이었다. 더운 사막이라서 냉기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도, 도리언! 도와줘!!”
“으악!!”
나를 붙잡고 있던 그들의 두 팔과 다리가 그 냉기에 얼어붙었다.
“이 자식!!”
도리언은 그들의 외침을 들으며 자신의 무기를 꺼내었다. 사막전갈이라는 별명처럼 그의 양손에는 날카로운 독갈퀴가 장착되어 있었다.
“크아아!”
스치기만 해도 위험해 보일 정도로 도리언의 갈퀴엔 녹색의 선명한 독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우악!”
“크어헉!”
도리언이 나에게로 뛰어드는 순간 나는 나를 붙잡고 있던 두 사내를 밀었다. 그들을 옭아매고 있던 얼음이 부서지며 작은 알갱이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타아앙!
“이건 내가 거는 싸움이 아니야. 당신이 먼저 시작한 거라구.”
“여기에 들어온 것부터가 나에게 대한 도전이다.”
으르렁거리며 도리언이 갈퀴를 나의 검에 겹쳐 걸며 비틀었다.
“쉽게 되지 않을걸?”
그의 갈퀴에 묻은 독이 나의 검에 닿는 순간 차가운 증가가 솟구쳤다.
“흐아압!”
도리언의 무기를 검으로 쳐 내며 나는 그의 빈틈을 노렸다.
“라멘타티온 스타르!”
별을 노래하는 그 검술이 펼쳐지는 순간 검에서 흩날리는 굳은 서리의 알갱이들이 도리언의 눈을 어지럽혔다.
“강한 스킬도 사용하려면 안정된 자세가 필요하지. 다만 이렇게 바닥이 미끄러울 땐 조심해야 한다구.”
처음 나의 소드 오러가 차가운 냉기를 만들어 두 사람을 붙잡았을 때 나의 발밑엔 옅은 얼음이 생겨나 있었다.
“제기랄!”
살짝 발을 건 것만으로도 도리언의 중심이 무너졌다.
“크윽!”
뒷걸음치는 그에게 더욱 가까이 붙은 나는 빙결의 검을 옆으로 꺾어 그의 목에 갖다 대었다.
코노트 왕국 최고의 실력자라는 명성이 조금 아까운데?“
“더러운 수작을 부리다니.”
“더럽다니, 이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현상인걸.”
“이 자식이!!”
“도리언!!”
그가 넘어지자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달려들려 했다.
“멈춰!!”
그러나 목에 닿은 검을 보며 도리언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꽤나 실력있는 녀석이군?”
“그렇지 않고서는 이곳에 오지 못했겠지.”
“흥, 모르긴 몰라도 이곳에 혼자 온 것에 대한 배짱만큼은 인정해주지.”
도리언은 나의 검이 바로 자신을 향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것 좀 치워 주시지? 목이 다 시려운데.”
“훗, 이게 내 마지막 보루인데 너무 쉽게 치워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럼 내가 치우지!!”
퍼억!!
“허억……!”
순간 도리언의 손바닥이 나의 배를 밀어내었다. 소드 오러와 같은 기가 정통으로 나를 꿰뚫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제길…….”
그의 두 손이 무기라는 것을 잠시나마 잊은 것이 실수였다. 순간 시야가 흔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대미지를 제대로 입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꽤 흔들리지? 코노트 전사들만 가지는 ‘극지파열(極止破裂)’. 어줍잖은 사막 너머의 녀석들의 체술과는 차원이 다르지!”
도리언의 움직임이 사라졌다.
“쿨타임이 긴 스킬이라서 한 번 쓰면 오래 걸리지만 제대로 들어가면 꽤 효과가 있거든. 머리에 정통으로 맞지 앉아서 아쉽지만 한동안 중심 잡기도 힘들걸.”
그는 너무 즐거워 주체를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꾸만 웃었다.
‘젠장, 지속 시간이 오래 가는데? 머리에 맞은 것도 아닌데……!’
불만을 품어도 소용없었다. 어느새 도리언은 나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내가 왜 사막전갈이란 별명을 가졌는지 설명한 적이 있었나? 이 너클에 발라진 독 때문이 아니야.”
“크흑!!”
“단 한번만 물면 그 뒤는 없기 때문이야. 전갈의 독침은 단 한번만 쓸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 알겠나, 먼 나라의 도련님?”
“크크크!”
사방에서 쏟아지는 그의 두 주먹을 막기에도 급급했다. 여전히 시야는 흔들렸고 그 어지러움에 이제는 속까지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죽여 주마!!”
도리언은 마지막을 마무리하려는 듯 온 힘을 실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위험했는걸.”
“이걸 피하다니, 아직 정신이 완전히 나간 건 아니군?”
“하, 하하. 솜방망이 주먹에 정신을 잃을 정도까진 아니지. 안 그래?”
“크, 크크.”
도리언의 주먹이 주점의 바닥을 갈랐다. 흔들리는 시야에 결국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순간 운이 좋게도 그의 주먹을 피한 것이었다.
“조금 전 상황과 역전이 된 것 같은데. 이래서 인상은 재미있는 것이란 말이야.”
아래에 엎어진 나를 보며 도리언은 바닥에 주먹을 꽂은 채로 다시금 그 특유의 혀를 내밀며 웃었다.
“그래, 하지만 그건 인생이 재미있는 게 아니라 이 게임이 재미있는 거지. 요즘 들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음?”
“왜냐면 현실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거든.”
흔들리던 시야는 다시 돌아왔다. 아직 어지러움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중심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파지직……!!
“도, 도리언!”
“조심해!”
순간 녹았던 바닥을 다시 한번 차가운 냉기가 흩뿌려지듯 지나갔다.
“한번 놀아 보자고. 전갈 씨.”
“하, 하하. 이 자식!”
그의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처럼 들려 올라갔다. 그의 두 주먹을 검의 옆면으로 막은 나는 미끄러지듯 검을 흘렸다.
“현실에서 검을 배운 모양이지? 다른 어중이떠중이랑은 검을 다루는 게 달라!”
“여긴 듀얼-레전드다. 현실의 내가 논의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지. 게다가 난 검 따윈 쥐어 본 적이 없어. 이 게임 속의 내가 노력한 결과일 뿐이지!”
타앙!!
너석의 팔과 나의 검이 하늘을 향해 솟아 올랐다. 강력한 두 힘이 부딪치는 순간 반사적으로 두 힘이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크아아!!”
만세를 하듯 올라간 두 손을 그대로 깍지 껴 쥔 도리언이 공중에서 몸을 띄워 나를 향해 내리쳤다.
콰앙!!
“크윽……!”
오른팔을 들어 검에 기대어 그의 두 주먹을 막았지만 육중한 그의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나의 무릎도 흔들렸다.
“잘 버티는데?”
“하, 하하. 엘라시온 대륙에서 이런 막싸움을 하는 것도 처음이로군. 색다른데?”
“크크, 어줍잖은 스킬 몇 개 배웠다고 날려대는 어중이떠중이 녀석들과 나를 똑같이 취급하면 안 되지.”
“응, 맞아. 나 역시 그런 녀석들하고 똑같이 취급하면 안 되지!”
흔들렸던 무릎을 그대로 바닥에 꿇으며 나는 그의 다리를 노렸다. 빙결의 검이 도리언의 무릎을 향해 베어 들어가는 순간 도리언이 빠른 스텝으로 뒷걸음질 쳤다.
“크, 크크.”
“어딜!”
물러서는 도리언을 이번엔 내가 따라붙었다. 좁은 주점 안이라 큰 기술을 쓸 수 없는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나는 빙루의 세 번째 검식을 펼쳤다.
“루나 튠(Luna Tune, 달의 곡조)!”
우선 오른쪽 어깨, 그리고 왼쪽 어깨. 그 짧은 순간 다섯 번의 베기가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도리언은 나의 검을 모두 막아 내었다.
“아직이다!”
완벽하게 붙어 그의 얼굴이 나의 바로 눈앞에 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을 때, 나는 오히려 그를 밀친 다음 뒤로 물러서며 소드 오러를 쏟았다.
콰아앙!!
“이봐, 이봐. 남의 주점을 다 망가뜨릴 셈이야?”
“당신 목이 떨어지는 것보단 낫지 않아?”
“크크, 당돌하군!”
나의 도발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노력한 사막의 전사임에 틀림없는 그는 오히려 나의 도발을 농담처럼 웃어 넘겼다.
“네 목처럼 부러뜨려 주지!”
나의 목을 낚아채려는 듯 그가 손을 뻗었지만 재빠르게 몸을 숙여 그의 주먹을 피했다.
“흐아압!!”
그는 여전히 특별한 스킬을 쓰지 않은 채 기본에 충실한 공격이었다. 평범한 유저였다면 그것이 먹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평범한 유저가 아니었다. 그리고 또한 그가 가진 한 가지의 착각.
“어느 정도 싸움에 자신이 있나 본데, 도리언. 하지만 여긴 엘라시온 대륙. 듀얼-레전드 속이란 것을 잊은 모양이로군.”
“뭐?”
확실히 노력이란 중요한 것이었다. 나 역시 ‘빙루’를 배우기 위해서 수천 번의 목검을 휘둘렀으니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검술은 단순히 스킬만 써 대는 그들의 기술을 미연에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게임은 게임에 충실해야 하는 법칙을 무시하면 안 되지!”
제아무리 검을 휘두르는 기술이 뛰어나고,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그 어떠한 힘도 들어가 있지 않은 검으로 거대한 몬스터를 잡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도리언의 빠른 주먹도 그가 쓴 ‘극지파열’ 의 기술이 아닌, 또 그의 무기에 발라져 있는 독이 없다면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다.
“흐아아!!”
나의 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소드 오러가 새하얀 눈꽃으로 변하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블링크!”
“뭐, 뭐야?!”
새하얀 서리 사이로 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도리언은 예상하지 못한 나의 마법에 놀란 듯 외쳤다.
“뜨거운 것 좋아하나?”
그의 등 뒤로 나타난 나는 왼손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플레임 버스터!!”
등 뒤로 터지는 화염의 폭발에 밀려 그가 앞으로 떠밀렸다.
“크윽……!!”
검에 그슬린 등을 문지르며 도리언은 나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뭣들 하는 거야!! 녀석을 찾아!!”
“네, 네!”
“알겠어!”
차가운 나의 검기가 주점을 가득 채운 순간 플레임 버스터가 터지자 그 안은 뿌연 안개로 자욱했다.
“죽여 버려!”
“뜨거운 게 싫은가 본데. 그럼 차갑게 해 주지.”
그의 앞에 나타난 순간 도리언은 기다렸다는 듯 주먹을 내질렀다.
“건방진 녀석, 모가지를 비틀어 주겠어!”
도리언의 너클에서 마치 살아 있는 짐승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이빨과도 같은 송곳이 튀어나왔다.
“절망의 폐허의 네임드 몬스터(Named Monster) 스콜피하스를 잡아서 얻은 무기다. 붉은머리 부족의 녀석들을 상대해 주기 위해서 구한 거지만 우선 너부터 죽여 주마.”
무기의 이름처럼, 그리고 그의 별명처럼 그의 두 손은 전갈의 가시처럼 날카로운 두 개의 송곳이 나를 노리며 다가왔다.
“프로스트 다이버!!”
검을 바닥에 꽂으며 마법을 시전하자 빙결의 검을 시작으로 날카로운 얼음의 파도가 그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어림없어!!”
4클래스의 마법을 단 한 방으로 부서뜨린 도리언의 괴력에 놀랄 사이도 없이 그의 주먹을 막기 위해 나는 바닥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스콜 퓨리!”
빙결의 검으로 그의 두 주먹을 막아내자 그가 몸을 비틀어 왼손을 찔러 넣었다. 날카로운 송곳이 나의 얼굴 바로 앞까지 오는 것을 보며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콰앙!!
“우아악! 도리언, 주점이 다 무너지겠어.”
“닥쳐! 이 머저리!!”
그의 주먹이 목표인 나를 벗어나 보르크가 주저앉아 있던 바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버렸다.
“모두 붙으란 말이야! 뭣들 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으아아!!”
“간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도리언은 신경질적으로 그들에게 소리쳤다.
“우아아!!”
“죽어라!”
수십 개의 무기가 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비좁은 주점 안에서 이 많은 인원이 제각기의 스킬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콰아앙!!
“이게 게임의 묘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