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얼 레전드-53화 (53/122)

듀얼 레전드 53화

2장. 프라이너

시작됩니다.

당신의 세상이.

이 모든 것이…… 펼쳐지는 이곳은

듀얼-레전드.

게임의 시작은 변함이 없었다.

눈을 떴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밝은 태양이 나의 눈을 따갑게 만들고 있었다.

“끄응…….”

침대 위에서 일어나자 여전히 무거운 머리는 그리 좋은 컨디션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찌뿌듯한 몸은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게임이라지만 너무 세밀한 것도 좋지 않네. 아직도 울렁거리는 기분이네.”

겨우겨우 침대에서 일어선 나는 핑 도는 듯한 기분에 잠시 옆에 있던 탁자를 잡았다.

“으…….”

“일어나셨어요?”

“아, 네.”

우드득…….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 허리를 꺾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허리가 나가는 그런 기분이랄까?

“아아…… 최악이야.”

“뼈는 모두 붙었지만…… 아직 움직이시는 데 많이 불편하실 거예요.”

힘겹게 몸을 일으킨 나는 부담스러운 시녀들의 부축을 뿌리치며 말했다.

“제 동료들은 어디 있나요?”

“아직 주무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깨어나신 분들은 지금 정원에서 바람을 쐬고 계십니다.”

“그래요?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지나자 작열하는 태양에도 불구하고 푸르른 풀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스테온!”

“형! 오셨어요?”

“으응, 다들 무사했구나.”

정원의 입구를 통과하자 의자에 앉아 있던 스완과 슈가비가 나를 반겨 주었다.

“바실리아는?”

“오빠도 깨어났어. 단지 오늘 일이 있어서 접속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으음, 다행이네.”

“연락처라도 미리 알아 두는 거였는데. 갑자기 로그아웃이 되어버리니…… 걱정했어요.”

“응, 그러게. 미리 알아 두는 거였는데. 실수했어.”

답답한 마음은 모두 같았는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안도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루르시아는?”

“루르시아는…….”

나의 물음에 스완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그는 이곳에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다시금 묻는 나였지만 로그아웃이 되기 전 꿈꾸듯 들렸던 그 말이 떠올랐다.

“이곳에 왔던 사람은 모두 4명이었다고…….”

“그래, 모래 폭풍에 같이 휘말렸지만 아무래도 다른 곳이 떨어진 것 같아.”

“찾아봤어?”

“응?”

“찾으러 가야지! 동료잖아.”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 상태로 움직이는 것도 겨우 할 수 있잖아.”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였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치는 순간 화면이 흔들리듯 시야가 흐트러졌다.

“괜찮아?”

“으응…… 미안.”

슈가비의 부축에 나는 머리를 잡으며 말했다.

“라엔이 우리가 먹은 약은 최소한 3일은 지속된대. 그 정도로 지독한 부상이었는지…….”

“제길, 소드 오러에 마법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이 고작 모래폭풍에.”

“결국은 인간이란 것일지도 모르지.”

날고 긴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의 범주 안이라는 것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다.

“다음에 만나면 갈라 버리고 말겠어.”

“응?”

“그따위 바람……!”

루르시아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지금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믿고 따라오라고 말했던 것이 언제던가? 강인한 아이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렸다. 그는 왕자였고,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모든 것이 어려운 아이였다.

“모두 여기 계셨군요. 몸은 어떠십니까?”

정원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자 순간 우리들의 뒤에 서 있던 시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훤칠한 키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그는 사막의 사람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잘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하하. 편히들 계십시오. 괜히 제가 와서 불편하게 해 드렸나 보군요.”

슈가비와 스완은 그와 안면이 있는 듯 인사를 하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호기롭게 웃었다.

“……누구?”

“코노트 왕국의 국왕, 보호트 님이셔.”

“그, 그래?”

그녀의 말에 난 조금은 당황한 모습으로 허둥지둥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아스테온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스테온. 두 분께 말씀은 들었습니다. 실력있는 검사라지요?”

“네?”

“하하, 그렇게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사막 너머지만 저희들에게도 검성 알테가르의 이야기는 충분히 귀가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으니까요.”

“……스완.”

내가 검성 알테가르의 검술을 익혔다는 것은 오로지 스완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코노트의 왕이 이것을 안다는 것은 분명 스완이 이야기했다는 것.

“윽, 어쩔 수 없었어요. 폐하께서 자꾸 물어보셔서.”

“하하. 제가 조금 집요하게 물어봤습니다. 스완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니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목숨까지 구해주신 분께 화를 낼 이유는 없지요. 오히려 고마울 따름입니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는 것이기에 상관없었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대사막을 휘젓는 샤벨리거의 포효에도 살아남으신 분은 정말 드뭅니다. 그의 으르렁거림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양호한 편이니까요.”

“그런가요?”

여기저기 쑤시는 몸이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는 이 정도에서 그쳐 다행이라 말하고 있었다.

“뼈를 굳게 만드는 데 효과가 좋은 약이지만 무척이나 독해서 아마 며칠간은 불편하실 것입니다. 그동안 편히 이곳에서 머물도록 하시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네?”

“그곳에 또 다른 소년은 없었나요? 저희 동료 중에 한 명이 보이지 않습니다.”

“으음, 그건 슈가비 양에게도 들었기에 저희들이 다시 한번 조사를 해 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시간도 시간이니만큼 지난 지 꽤 오래되어서 아마도 찾기 힘들 겁니다.”

그의 말에 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루르시아는 유저였기에 죽었다 하더라도 부활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과는 다르게 이곳의 현실을 중요시하는 그에게 죽음이란 또 다르게 다가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었다.

“편하게 지내시면서 호전되실 때까지 언제든 계셔도 됩니다. 제가 있어서 오히려 불편하실지도 모르니 필요한 것들은 저기 시녀들에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호의롭게 웃음을 짓는 보호트 왕을 보며 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폐하,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어째서 저희들에게 이리 친절을 베푸시는 것입니까?”

“아스테온! 그건 예의가 아니잖아.”

나의 행동에 슈가비가 옆구리를 찌르며 나무랐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하하, 별 뜻은 없습니다. 그저…… 샤벨리거에게서 살아온 사람들은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네?”

“그것뿐입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정원을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다.

“승리를 부른다고……? 도대체 무슨 의미야?”

“글쎄요…….”

슈가비도 스완도 이해하지 못한 듯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도대체 그가 바라는 것이 뭐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빨리 몸을 완쾌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것이 루르시아를 찾는 일에도, 우리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에도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긴……?”

―깨어났느냐.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던 거죠?”

―글쎄, 족히 두어 시간은 될 것 같은데.

“오래도 기절해 있었네요.”

―그래, 그래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구나.

“벌써 죽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무겁게 느껴지는 머리를 흔들어 어지러움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루르시아는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에요?”

―어디긴, 몬스터의 배 속이지.

“에엑?”

―잡아먹힌 거야. 루르시아, 넌.

“하, 하하. 여기가 모래지치의 배 속이라고요?”

―그래.

루르시아는 믿기지 않는 듯 인상을 썼지만 주위 가득 둘러싸고 있는 물컹거리는 듯한 살덩어리들은 분명 살아 있는 생물체의 그것이었다.

“뚫고 나갈까요?”

―글쎄…… 모래지치는 음식을 먹으면 땅속에 잠든다고 하는데…… 잘못하면 모래에 파묻혀 버릴지도 몰라.

“끄응…… 그럼 어쩌죠?”

―선택은 너가 해야 하는 것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난 그저 상황을 알려 줄 뿐.

“냉정하시네요.”

―그 정도도 못하면 내 주인이 될 자격도 없지.

쿠르륵…….

브링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르시아의 주변이 움직였다. 살아 있는 근육들이 움직이듯 요동치자 루르시아는 중심조차 잡기 힘들었다.

“우악!!”

쿨렁거리는 바닥에 이리저리 구르던 루르시아는 간신히 벽을 잡으며 설 수 있었다.

치이익!!

“뭐, 뭐야?!”

벽을 잡는 순간 타들어 갈 것 같은 쓰라림에 루르시아는 소리치며 손을 떼 버렸다.

―제길! 녀석이 널 음식으로는 생각하기는 하나 보구나.

“네?”

―조심해라. 이런 커다란 녀석의 위액은 정말 널 녹여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거 정말 달갑지 않은 소린데요. 으으!!”

루르시아의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를 향해 무언가의 바람이 밀려들었다.

―피해!!

“이미 늦었어요, 브링거. 젠장, 모두 태워 버리겠어요!”

―할 수 있겠느냐?

“죽기 아니면 살기겠죠, 뭐.”

악을 쓰며 블리츠 브링거를 잡은 루르시아의 두 손이 떨려왔다. 처음 시작한 모험이 괴물의 배 속이라니. 정말 제대로 된 모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울려 퍼져라! 프라이너!!”

화르륵!

블리츠 브링거의 양날에 화염이 휩싸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강렬한 불꽃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위액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불타고 있었다.

“크아아아!!”

밀어닥치는 파도와 같은 그것을 향해 두 갈래로 검을 가르는 루르시아의 블리츠 브링거가 몬스터의 위액과 만나는 순간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앙!!

“취, 치에엑!”

모래지치의 고통스러워하는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꽃잎과 같은 잎사귀 속에 숨어 있던 그 거대한 몸이 몸부림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아, 하아…….”

―괜찮으냐? 루르시아?

“죽진 않은 것 같은데요.”

―내 눈엔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구나.

“하, 하하. 그러게요.”

옷은 여기저기 불에 그슬린 것인지 위액에 녹아 버린 것인지 뜯겨져 나가 있었다. 뜨거운 화상을 입은 듯 벌겋게 물든 몸뚱이를 겨우겨우 브링거에 의지한 채 서 있는 그에게 잠시나마의 여유도 모래지치는 주지 않았다.

“치이익!! 치익!!”

“이 자식, 좀 조용히 있으란 말이야!!”

위액은 모두 증발해 버렸지만 그 고통을 맛본 모래지치의 몸부림은 오히려 루르시아를 힘들게 만들었다.

“우악!!”

평평했던 바닥이 급격하게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것이 아마도 모래지치가 사막의 모래 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 같았다.

―루르시아! 지금이다!!

“하아, 쉴 시간을 주지 않는군요.”

―여기서 벗어나야 쉴 수 있는 거다.

“네, 네. 알겠습니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바닥에 미끄러지듯 발판을 밟은 루르시아는 직각으로 튀어 올라 자신의 머리 위의 벽에 검을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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