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45화
“사비나, 이 아이를 방에 데려가게.”
“예, 전하.”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어머니께서 희생되셔야 한 겁니까. 신분이 비천하다 하더라도 당신이 사랑해서 거두어 드린 여자이지 않습니까!”
“왕자님. 그만 하시지요.”
루르시아 왕자의 저택 집사이자 그의 보호를 맡고 있는 사비나가 그를 말렸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악에 바친 얼굴이었다.
“왕? 권력? 이딴 것들은 모두 필요 없었단 말이야…… 난 그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콰앙!!
자포자기한 듯한 그의 목소리.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왕은 그의 말에 의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필요 없다?! 나약한 소리하지 마라, 루르시아 킹 더 안토르!! 남을 탓하기 전에 지금 네 자신을 알아라!”
안토르왕은 루르시아에게 말했다.
“네 어미가 죽은 것도 네가 힘이 없어서이다. 카마틴 왕국의 전통이 무엇이냐!!”
“……힘이 곧 법이다.”
안토르 왕은 손가락으로 루르시아를 가리켰다. 그의 곧은 손은 마치 창처럼 루르시아의 가슴에 꽂히는 기분이었다.
“그래! 네가 약했기에 파벌 싸움에서 진 것이다. 이제 와서 너의 잘못을 다른 이에게 넘기려는 거냐!! 카마틴 왕국의 왕은 시련 속에서 강해지는 법이다! 그 정도 시련도 이기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왕자라 칭하느냐!!”
안토르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까지 네가 일구어낸 것이 무엇이냐. 네가 입고 있는 옷, 네가 먹고 있는 음식. 무엇하나 네가 이루어 낸 것이 없지 않느냐. 모두 나라는 이름 아래에서 얻어 쓴 것 일뿐이잖느냐!”
“그렇다고…… 그렇다고 당신의 아내가 죽도록 내버려 둔 건가. 그건 더러운 핑계에 불과해!”
루르시아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왕비도 왕자도 왕녀도 모두 나라를 위한다면 난 그들을 당연히 2순위라 말할 수 있다. 왕인 나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와 왕으로서의 위엄이다!”
“카라일, 틴타겔, 카마틴. 당신이 말하는 그 잘난 전통이 있어서 겨우 소국가로 머물고 있는 건가? 연합하지 못하면 힘도 쓰지 못하는 소왕국 주제에 잘난 척하지 말란 말이야!!”
“뭐, 뭐라고! 무례한 녀석!!”
짝!!
안토르 왕의 손이 뒤로 젖혀지는 듯하더니 그대로 루르시아의 뺨을 후려쳤다.
“나약함이야말로 죄악이다!!”
그의 말은 마지막 쐐기가 되어 루르시아의 가슴에 박혔다. 그의 한마디에 루르시아는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바로 했다.
“와, 왕자님.”
사비나는 뺨을 맞는 그를 슬프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루르시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안토르 왕을 바라보더니 몸을 돌렸다. 꽉 쥔 그의 손엔 피가 맺혀 있었다.
“나약하기에 죄악이라고? 그래서 어머니를 그렇게 죽도록 놔둔 건가? 단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버텨 낼 용기도 없으면 차라리 거두질 말았어야지…….”
루르시아는 마지막 선포를 했다.
“당신에게 받은 이것들…… 오늘부로 모두 버린다. 오직 내 이름 루르시아. 나의 어머니께 받은 이름만 가져가겠다.”
홀 안에 있는 신하들은 침묵했다. 루르시아 제5왕자는 이제 사라지니까 잠시나마 그의 편에 섰던 대신들은 이제 다시 섬길 주군을 찾으려 머리를 굴리고 있으리라.
“여봐라.”
“네, 폐하!”
“왕자의 심기가 많이 불편하구나. 그를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가라!”
“알겠습니다!”
신하들은 루르시아의 팔을 붙잡았다. 여린 그의 팔이 사정없이 꺾이자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거 놔라! 이거 놓으란 말이야!!”
“나약한 자는 조용히 자중하고 있어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용히 그저 배우기만 해라.”
“웃기지 마!!”
병사들에게 포박당해 끌려가는 왕자, 그것은 이미 명예로운 왕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거 놓아라. 놓으란 말이야!!”
루르시아의 말을 듣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회의를 시작하려 준비했다.
“왕자님을 뫼셔라.”
“네!”
어느새 성밖으로 끌려나간 그는 궁 안에 있는 자신의 저택까지 그렇게 끌려가게 될 것이었다.
“이거 놔!!”
“헉!!”
콰앙!!
루르시아를 붙잡고 있던 병사들이 나뒹굴어졌다. 소년의 강맹한 힘과 유연한 기술에 넘어가고 만 것이었다.
“너희들이 잡지 않아도 이제 내가 갈 것이다. 나의 이 두 발로.”
으득!
이를 갈며 루르시아가 안토르 왕을 바라보았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그의 두 눈빛이 순간 그를 잡아먹을 듯 보였다.
“기억하라, 안토르 왕이여! 내가 다시 돌아올 땐 너희 위에 군림할 때일 것이다.”
루르시아 킹 더 안토르(Rurutia King The Antor). 아니 이제 그는…….
“나의 이름은 이제 루르시아 피네스(Rurutia Pineth)다!”
“여봐라! 저자를 당장 끌어내라!!”
“임페노스 왕자님!”
“감히 누구의 앞에서 저런 망발을!! 엄연한 왕권 모독이도다!”
“하지만 루르시아 왕자님이십니다.”
왕에게 대들고 있다고는 하나 루르시아는 왕자였다. 임페노스의 명령에 대신들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아바마마, 저자는 반역을 꾀하고 있습니다. 왕이 될 자의 피는 왕으로부터 나오는 법. 그 피부터 더러운 저런 자는 거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으음…….”
“뭐, 뭐야? 저 녀석!”
임페노스의 이간질에 화가 난 바실리아가 당장이라도 덤빌 듯 앞으로 나섰지만, 난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카나틴 왕국 따위. 네가 가져라. 임페노스.”
“……뭐?”
“훗, 이따위 나라 난 관심 없으니까. 네가 가지란 말이야.”
너무나도 선뜻 허락하는 루르시아의 행동에 오히려 임페노스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등바등 살아봐. 난 더 높은 곳을 향하겠다. 그리고 언젠가 너의 그 잘난 무릎이 나를 향해 굽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하, 하하! 보셨습니까? 지금 그가 하는 말을? 저자는 완전히 미쳐 버렸습니다. 왕자로서의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아바마마! 그를 추방하시옵소서. 그것이 이 나라를 위하는 길입니다.”
“저희들 역시 그리 생각하옵니다. 전하.”
“크음!”
임페노스의 측근들이 그의 외침에 동참하듯 고개를 조아리며 왕에게 말했다.
“보고 있겠지? 위대한 검이여. 당신이 세운 이 나라의 왕이 고작 이 정도이다. 나 역시 이해할 수 있겠어. 저 정도 그릇의 왕에게 쥐어진다는 것은 오히려 수치.”
루르시아는 그 광경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임페노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뭘 하려는 거지? 이 상황에 결국 실성이라도 한 건가?”
“잠들어 있는 검이여. 지금이 너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 나의 이 목소리에 대답해 주소서!”
[건방진 녀석이로군. 누구보고 오라 가라 하는 거야? 네가 스스로 날 찾지 못할망정.]
“누, 누구냐!!”
“이 목소리는?”
[그래, 네 말대로다. 그 옛날 내가 나를 스스로 봉인했던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저런 아둔한 녀석의 손이 닿는 것이 싫어서였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들려오는 목소리는 원탁의 홀에 가득 퍼질 정도로 우렁차고 무게가 있었다.
[넌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그건 쥐어지고 난 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아? 나보고 그렇게 손해 보는 짓을 하라고? 어째서?]
“여기 이 멍청한 녀석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나은 삶이 되실 테니까요.”
[크, 크크……! 재미있는 녀석이야. 정말로!]
목소리는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 따라 루르시아의 얼굴에도 미약한 미소가 퍼졌다.
콰아앙!!
원탁의 홀에 가득 빛이 차올랐다. 우리는 그 눈부신 빛에 그만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잡아 봐라. 애송아.]
“저, 저건!!”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군. 저 검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 될 수 있을지 시험해 볼 테니 말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에 혼란스러워 하는 그 순간, 검의 외침이 들려왔다.
[날 잡아라!!]
콰악……!!
유려한 은빛의 검신이 신비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은빛의 검은 루르시아의 검은 눈동자와 묘하게 매치가 되었다.
[애송아, 나의 이름을 불러라. 내가 누구더냐!]
루르시아의 손이 검에 닿는 순간 은빛의 검신이 더욱 화려한 빛을 뿜어냈다.
“블리츠 브링거(Blitz blinger).”
[그렇다. 내가 바로 노래하는 심검(心劍), 블리츠 브링거(Blitz blinger)다!!]
“감히! 너 따위가!!”
그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임페노스가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 검은 카마틴 왕국의 것이다. 아니, 왕의 것이야! 그것이야말로 나의 것이란 말이다!!”
“흐아압!!”
임페노스의 검이 블리츠 브링거와 만나는 순간, 그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강철로 만들어진 그 검이 두부 잘리듯 너무나도 조용히 두 동강이 나 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 이상 넘어온다면 반역이라 생각하겠다. 임페노스.”
“뭐, 뭐라고?!”
“말하지 않았나? 너희 위에 군림하겠노라고.”
“닥쳐!!”
임페노스는 분노에 찬 일갈을 루르시아에게 퍼부었다.
“왕은 왕의 피를 이어받은 자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너 따위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넌 그저 나를 위한 발판이란 말이다!!”
[크하하하!!]
그의 외침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블리츠 브링거의 웃음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그래, 정말 그의 아들다운 말이다. 그렇기에 이 나라를 너에게 주는 것이다. 임페노스!! 네가 원했던 네 삶의 목적. 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게 허락해 주는 것이지 않느냐.”
“허락? 이건 내가 스스로 일구어낸 것이다. 너 따위에게 받을 허락 따윈 없어!!”
우우웅…… 콰앙!!!
블리츠 브링거의 빛이 임페노스를 밀어냈다.
그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혈통? 그딴 게 도대체 뭔데? 멍청한 네 녀석들이 서 있는 이 나라를 세운 건국 왕이 왕가의 피라도 이어받은 줄 아느냐? 그는 그저 나의 주인일 뿐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안토르 왕의 믿을 수 없다는 외침. 그리고 대신들 역시 그의 말에 얼굴이 구겨졌다.
[왕이 인정하지 않으면 스스로 왕이 되면 된다. 왜냐면 왕의 피보다 더 진실한 왕의 힘이 바로 나이니까!]
“비켜라!!”
콰앙!!
블리츠 브링거의 검기가 스친 순간, 원탁의 홀의 문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임페노스. 너의 퀘스트가 이 나라의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 나의 퀘스트는 왕들의 왕이 되는 것이다.”
루르시아의 말에 임페노스는 주저앉고 말았다. 절대적인 힘 앞에 무너지는 자존심이랄까? 허무함이랄까?
“난 이제 왕의 이름을 버렸으니 그의 아들도 그의 왕자도 아니다. 안토르 왕이여, 이제 그대에게 동등한 위치로 말하겠노라.”
“뭐라고?”
“왕이시여! 나 이제 그대의 이름을 버리고 나 스스로 돌아갈 터이다. 이제 내가 다시 이곳에 왔을 때, 그대는 그대의 아들과 함께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의 어머니에게도 사죄하게 될 것이다.”
“우, 웃기지 마라. 루르시아! 블리츠 브링거를 얻었다고 자만에 빠지지 마라. 오늘의 수모는 이 내가 갚고 말겠다!!”
“수모? 수모라고 말했나. 임페노스?”
“크윽!!”
루르시아의 주먹이 임페노스의 멱살을 쥐었다. 그대로 그를 일으킨 힘에 임페노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