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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레전드-40화 (40/122)

듀얼 레전드 40화

“이쪽이지? 아스테온?”

“으음, 내가 보기에도 여기선 오른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어째서!”

으음, 묘하게 사소한 거에 집착하네.

“저기.”

난 매섭게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살짝 돌려주었다. 쪼르르 돌아가는 그녀의 얼굴이 멈춘 순간 그녀의 눈동자도 커졌다.

“표지판이 있거든. 이 길이 카마틴 왕국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써 있는걸.”

“……그러네.”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난 뒤 다시 방향을 틀어서 외길을 따라 마차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 지루해.”

“응, 엉덩이도 아프구.”

“한 벌써 5시간이나 달렸으니까요.”

“그래도 한 번만 이렇게 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봐.”

스완과 슈가비는 좁은 마차 안에서 서로의 허리를 두들겨 주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가상현실이란 것도 좋지만은 않구나.”

“가상이라도 현실은 현실이니까.”

“으응~.”

지루한 듯 마차의 창문에 턱을 괴고 바깥의 풍경을 보며 슈가비가 콧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도와주세요!!”

“음?”

“얼레?!”

“…….”

날카로운 비명 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을 밝히며 자리에서 일어난 슈가비와 스완이었다.

“저기. 생각보다 마차가 높지 않거든.”

쿵! 쿠웅!

“아앗!”

“아얏, 내 머리!”

“…….”

동시에 일어선 두 사람은 정확히 동시에 마차의 지붕에 머리를 박고는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보다 비명 소리!”

“저기인 것 같은데.”

스완의 외침에 난 턱을 살짝 들어 밖을 가리켰다.

“아앗!”

한적한 숲의 외길을 따라가던 우리와 달리 다리가 부러져 주저앉은 말의 뒤에 숨은 한 소녀가 숲 안에서 다급한 듯 소리치고 있었다.

“오빠, 멈춰 봐!”

“으응. 그래.”

바실리아가 마차를 세우자 슈가비와 스완이 자신의 무기를 챙겨 들고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흐응, 귀찮지만.”

괜한 일에 휘말리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보고서 넘어가는 것 또한 내 성미에 맞지 않은 일이었다.

“무슨 짓들이야!”

“도, 도와주세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당찬 슈가비의 외침으로 우리의 일은 시작되었다.

“뭐야, 너희들은?”

“지나자는 사람인데?”

“하앙? 그런 지나갈 것이지 왜 관섭이야?”

“하고 볼 사나워서 지나가다 못해 참견하게 됐다. 왜?”

“이런 건방진!”

한마디도 지지 않는 슈가비 덕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듯 소녀를 둘러싸고 있던 그들의 무기가 소녀에서 우리에게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자자, 진정들 하시고.”

애초에 악화될 상황도 없었지만 바실리아는 못마땅한 듯 슈가비를 말리며 그들의 앞에 다가섰다.

“누더기 넌 빠져!!”

…… 빠직!

“누, 누더기라니!! 이건 던 포레스트에서도 최고의 드루이드에게만 주는 고급 아이템이란 말이야! 눈은 장식으로 달고 있는 거냐!! 이게 어딜 봐서 누더기란 말이야!”

어째 엉뚱한 곳에서 화를 내는 바실리아였지만 어쨌든 덕분에 상황은 더 악화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가만 둘 수 없는 녀석들이로군.”

“으응, 동감!”

이런 때에는 또 죽이 잘 맞는 남매가 아닐 수 없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가, 감사합니다.”

서로가 으르렁 거리고 있던 와중에 스완이 쓰러져 있던 소녀를 데리고 나왔다.

“감사할 건 없지. 왜냐면 어차피 다 죽여 버릴 테니까!”

차아앙!

검은 옷에 검은 머리띠. 딱 보아도 좋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녀석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수가 만만치 않았다.

“보이는 녀석들만 일곱이라.”

“나무 위에 두 명. 풀숲에 세 명. 그리고…… 은신 하고 있는 녀석이 넷?”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어요?”

“훗, 어차피 녀석들이 올라가 있는 나무도 밟고 있는 대지도 숨어 있는 바람도 모두 자연의 일부인걸.”

“편리한걸요.”

바닥에 손을 집고 감았던 눈을 뜨며 바실리아가 숨어 있던 녀석들까지 모두 찾아냈다.

“16명이라. 한 명당 4명씩. 간단한데요?”

“어머, 난 사제인데?”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였지만 처음 보았을 때 그녀에게 밟혔던 바실리아가 우리 뇌리엔 여전히 성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걱정 마. 아마도 우리 중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면 슈가비 너일 테니까.”

“응?”

“으음…… 극히 동감이다.”

바실리아가 나의 말에 심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 자식들!! 장난치고 있어!! 모두 죽여버려!!”

“넵!!”

그런 우리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검은 옷의 사내들이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꺼내어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처리해!”

“흐압!”

척 봐도 어쌔신의 직업을 가진 집단들이었다. 얼마나 지명도가 있는 길드인지는 모르지만,

“실력은 한참 바닥인 것 같군.”

“크아악!!”

바닥에 은신해 있던 녀석에게 가볍게 검을 찔러 넣어 주고는 내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이 녀석!”

“스완.”

“네!”

“트리플 스플래쉬(Triple Splash).”

“에? 그건 아직 연습도 못 해봤는데요.”

“실전이 곧 연습, 연습이 곧 실전인 거지. 저기 저렇게 훤히 보이는 과녁만큼 좋은 게 또 어디 있겠어?”

며칠 전 곡해의 동굴에서 새로운 액티브 스킬을 만들어 낸 스완은 그와 동시에 윈드 포스의 스킬 몇 가지를 더 습득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트리플 스플래쉬였다.

“흐음!”

활시위를 당긴 스완의 앞에 세 줄기의 빛이 솟아났다. 윈드 포스에서 만들어진 세 개의 화살은 다중의 적들을 상대할 때 용이한 멀티 샷과도 같은 것이었다.

“간다!!”

촤아앙!!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적들에게로 쏘아졌다. 윈드 포스의 멀티 샷이 다른 궁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람을 조종하는 윈드 포스의 화살은 결코 타겟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으악!!”

“크으윽!!”

어깨와 다리 이곳저곳에 화살이 꽂히며 그들의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간단한걸?”

마무리는 역시 나의 검. 빙결의 검이 그들의 몸에 닿는 순간 바닥엔 하나 둘 그들의 무구가 떨어질 것이었다.

“스타르 써클(Star Circle)!!”

어쌔신 무리의 사이에 파고든 내가 빙결의 검을 바닥에 꽂았다.

콰아앙!!

“우앗!”

“으어엇?!”

“반응 좋고.”

순간 커다란 원이 퍼져 나가듯 지축의 흔들림이 그들의 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실렌세 피오스(Silence Pious: 경의의 침묵)!”

빙루의 제 2검술이자 주위의 모든 적을 쓰러뜨리는 빙루의 광역기였다.

“크악!!”

“한 명.”

“이 자식이!!”

“두 명!”

“제기랄!!”

그 어떠한 외침도 빙결의 검 앞에선 무의미할 뿐이었다. 스완의 활과 나의 검의 연계기에 하나 둘 적은 쓰러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제길……!”

어느새 십여 명의 어쌔신들이 쓰러진 것을 보며 그들의 우두머리는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철수다!”

“넵!”

부상당한 자신들의 동료를 챙기며 부하가 사라질 때까지 날 노려보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이름은?”

“아스테온.”

“기억하고 있겠다.”

“훗, 그러시던지.”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어쌔신이라니, 은신도 제대로 못 하는 녀석들의 실력은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까 말이야.

“아아, 내가 나설 틈도 안 주고 끝나 버리다니 시시한데.”

“으그, 오빠가 안 나섰으니 이렇게 빨리 끝났지.”

“너무해…….”

울상인 바실리아를 뒤로하고 주저앉아 있던 소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흐아앙!”

“에엑?!”

여긴 울상이 아니라 아예 울음을 터뜨려 버리다니. 갑자기 웬 울음바다라고는 하지만 긴장이 풀려 버린 소녀의 눈물은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진정하세요.”

“흐응…….”

간신히 슈가비가 그녀를 달래고 나서야 다시금 숲의 고요함이 찾아오는 듯 보였다.

“카마틴 왕국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네?”

“꼭 가야 해요.”

“그건 어렵지 않지만…….”

울먹이는 눈동자로 슈가비의 로브를 부여잡은 소녀는 마치 들어주지 않으면 죽어 버리기라도 할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자, 그렇게 죽을 듯한 표정 짓지 말고. 마침 우리도 카마틴 왕국으로 가는 길이니까 함께 가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왜 가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난 조금 전 습격을 받았던 흔적들을 가리키며 이유를 대신하였다.

“어떤 이유로 그곳에 가는지 그리고 조금 전 당신을 습격했던 사람들은 누군지. 적어도 카마틴 왕국까지 안내하는 입장으로서 그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왜냐하면 저희의 안전도 이 일에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전…….”

그녀는 마음을 다잡은 듯 나를 보며 말했다.

“틴타겔 왕국 황녀 유피아, 유피아 소린테입니다.”

“네?”

“컥!”

“에엑?!”

“…….”

각자 저마다의 반응이 있었지만, 난 그런 그들에게 살짝 눈치를 주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카마틴 왕국으로 가는 이유는?”

“루루…… 아니, 루르시아를 만나야 해요!”

“루르시아?”

“카마틴 왕국 제 5황태자. 그리고…… 제 약혼자랍니다.”

울먹이듯 말하는 여린 소녀였지만, 그녀에게선 꼭 그곳에 가야 한다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이 황녀의 피일지는 모르겠지만.

“오오, 사랑을 향한 도피인가?”

“크으…… 멋진데요?”

“헛소리는.”

“아얏!”

바실리아와 흐뭇하게 웃는 스완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려 주면서 난 먼저 걸음을 옮겼다.

“가자.”

“네? 데, 데려가 주시는 건가요?”

“어차피 우리도 가야 할 곳이었으니까. 어째서 가야 하고 왜 습격 받았는지까지는 묻지 않을게. 또 온다면 지켜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황녀란 소녀가 고개를 숙이며 꾸벅 인사를 했다. 너무나도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말한 내가 머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가, 가자고.”

“하하, 오케이!”

“쑥스러워 하기는요.”

“쑥, 쑥스러워 하다니?!”

쳇, 하여간 너무 잘 안다니까.

난 괜히 미안한 마음에 마차에 먼저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8장. 틴타겔의 왕녀님

“앗!”

“와아!!”

“저거 봐요!”

“꺄아!”

“둘이 아주 그냥 신이 났군.”

그렇게 이틀을 더 걸려 겨우 도착한 카마틴 왕국이었다. 수비병의 관문을 무사히 끝내고 난 뒤 우리는 광장 안으로 마차를 몰았다.

“틴타겔 왕국의 왕녀라면서? 그런데 어째서 비밀로 해달라는 거지? 카마틴 왕국과 틴타겔은 연합 아니었나?”

“그렇긴 하지만…… 제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리면 안 되거든요.”

“음?”

“임페노스 오빠에게 알려지면 안 돼요. 그는 루르시아를 무척이나 싫어하니까요.”

철부지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였지만, 그녀에게도 분명 사정이란 것이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확 기분 좋아졌다가 불쑥 우울해졌다가 하면 너도 피곤할걸. 그럴 바에는 우울한 생각은 그냥 하지 마라. 그게 서로에게도 좋을 테니까.”

“네에!”

칭얼거리는 아이의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찮은 듯 창밖을 보며 말했지만, 어느새 유피아는 맑은 목소리로 바뀌었다.

“하아, 퀘스트라도 이어지는 것일까요?”

“음?”

“유피아를 습격했던 사람들은 분명 플레이어였을 거예요. 그런 그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왕족을 습격할 리는 없고…….”

“그런 그들과 왕녀 사이의 퀘스트에 우리가 난입했다 이건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와는 다른 왕가에 관련된 문제였다.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깊게 연관된다고 좋을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제 카마틴 왕국에 도착했는데. 어쩔 거지? 왕궁으로 갈 거야?”

“아니요! 안 돼요! 그럼 안 돼요!”

“음?”

나의 물음에 유피아는 정색하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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