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30화
“크윽……!!”
키기깃거리는 마찰음이 소름 돋게 울렸다. 녀석의 이빨과 나의 검이 순간 불꽃을 튀겼다.
“제길……! 동굴만 아니었더라면 다 쓸어 버리는 건데!!”
바실리아는 독수리로 변하여 날아다니면서 화가 난 듯 소리쳤다.
‘다른 공간?’
순간 그의 외침에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좋아, 시험해 볼 가치는 있겠어!!
“흥, 가소로운 녀석들! 한 방에 끝내 주겠어!!”
“혀, 형! 설마?”
빙결의 검을 한바퀴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떼어낸 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우우웅……!
내 검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새하얀 서리가 뿜어져 나왔다.
“월하천빙(月下天氷)!!”
가슴으로 바짝 잡아당긴 이 자세는 빙루의 첫 번째 자세, 아래로 검을 늘어뜨리며 내려 잡는 것은 빙루의 두 번째 자세.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내는 나의 검이 서서히 조금 더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루나틱 세이버(Lunatic Saver)!!”
콰앙!!
새하얀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빙결의 검에 갇혀 있던 격류된 소드 오라의 새하얀 폭발.
“아, 아스테온 형! 위험해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이어지는 폭발에 스완은 좁은 동굴임을 알리려는 듯 나에게 소리쳤다.
“실드(Shield)!!”
그 순간 난 녀석의 몸뚱이에 검을 꽂아 넣으며 마법을 펼쳤다. 나와 거대한 몬스터를 감싸는 또 다른 보호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쿠아아아앙……!!
“크윽!!”
지면이 흔들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스완이 우려하던 그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어, 어떻게?”
쿵!
새하얗게 얼어붙은 박쥐의 시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정확히 검에 갈린 녀석의 시체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버렸다.
“흥, 예상대로군.”
“네?”
“요는 동굴과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마법은 중첩되지 않는다는 것을 중점으로 내 몸은 신성 마법인 홀리 실드로, 그리고 나와 저 녀석의 주위엔 마법인 실드를. 보호 마법이란 대미지를 흡수하는 능력을 가진 마법이니까 그 주위를 감싸 버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
“그, 그렇지만 그건 엄청 위험한 일이었다고요!”
스완은 두 손을 꽉 쥐며 소리쳤다. 그런 그의 머리를 한 번 쓱 문지르며 말했다.
“그저 생각한 대로 따른 것뿐이었어. 위험 요소는 없었다.”
“으…….”
억울한 듯 보이는 스완이었지만, 난 그런 그에게 그저 피식 웃어 줄 뿐이었다.
“여기 보세요!”
“음?”
슈가비가 거대한 박쥐의 시체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소리쳤다.
“아이템인가?”
대부분의 보스 몬스터에게서 떨어지는 아이템은 희귀성만큼이나 성능도 좋았기에 우리는 기대감을 품고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이건?”
“엥?”
“박쥐의 송곳니!”
“…….”
슈가비가 자랑스럽게 꺼내든 그것은 거대한 송곳니였다. 아무래도 녀석의 이빨이 부러지면서 나온 것 같은데…….
“잡템이로군.”
“으음.”
“동감.”
“윽!”
냉정한 우리의 반응에 그녀의 입술이 삐쭉 앞으로 튀어나왔다.
“아이템 설명을 보니 ‘거대 박쥐의 송곳니’. 이름도 그렇고 색깔도 회색인 걸 봐선 완벽하게 잡템인 것 같네.”
바실리아는 뭐 그런 걸 들고 있냐는 듯한 얼굴로 슈가비를 바라보았다.
“흥, 나도 안다고!”
어째 그녀의 목소리에 바실리아가 순간 움찔하는 듯 보였지만, 어쨌든 그녀는 커다란 송곳니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만 앞으로 가자.”
“네.”
“헤헤, 그럼 이건 제가…….”
머쓱하게 웃으며 스완이 슈가비가 떨어뜨린 송곳니를 주어 주머니에 넣었다.
“음? 그건 왜?”
“그냥요. 기념으로 가져가려고요. 또 이런 것도 팔면 돈이 되잖아요.”
“별걸 다 가져가는구나?”
바실리아의 말에 스완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뭐, 상관없죠. 더 들어가 보죠.”
“네.”
“알겠습니다.”
“으응.”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동굴 속을 밝혀 주는 것은 고작 두 개의 빛나는 구체뿐이었다. 아직 던전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3장. 곡해의 동굴
“보고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곡해의 동굴을 향하는 일행이 확인되었습니다.”
“……?”
잠행의 옷을 입은 검은 사내의 보고에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습니다.”
“하, 하하.”
그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저희 카멜롯 팀에서 점찍은 던전입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말끔한 외모에 빛나는 황금색 갑옷. 누가 보더라도 그는 최고의 기사임이 분명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명단엔 없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아더는 그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시온 대륙은 넓습니다. 수많은 고수들이 나올 수 있는 곳이죠. 언제나 주의를 잊지 않는 그대의 보고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더 님.”
“실마릴리, 거기 있는가.”
“네, 아더 님.”
“현재 수도에 있는 카멜롯 팀원이 몇 명이지?”
그의 옆에 서 있던 실마릴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번 곡해의 동굴을 탐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카멜롯 팀원은 저를 포함하여 총 세 명입니다.”
“으음.”
“카멜롯 팀 열두 명의 기사들 중 미쉐일 팀은 현재 코발 왕국으로 가는 길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하르의 팀은 엘라시온 대륙의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미탐색 지역을 조사하고 있기에 현재로서 더 이상의 기사 충원은 힘들 것 같습니다.”
“수도에 있는 인원이 자네와 하진, 그리고 사비오르인가?”
“네. 마법사인 아셈이 오지 못했기에 마검사 사비오르, 그리고 근접 딜러인 쌍검의 하진을 데리고 왔습니다.”
“음, 궁수인 자네까지 포함하면 각 클래스별로 잘 갖추어져 있군. 잘했네.”
“감사합니다.”
카멜롯 팀에서 아더의 비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그녀였기에, 인원 배분과 같은 총괄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인원 충원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다지 특출나 보이는 사람은 없었기에 주로 방패를 사용하는 근접 딜러들을 뽑았습니다.”
“그렇군.”
방어력이 높은 그들을 앞장세워 말 그대로 인간 방패로 사용하겠다는 그녀의 결정이 현실적이지만 참으로 냉정해 보였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겠군. 카멜롯 팀이 점찍은 던전에 덤비다니, 이건 곧 우리 카멜롯에 대항하는 뜻과 같다. 실마릴리.”
“네, 아더 님.”
“지금 당장 기사들을 소집하라. 최대한 준비를 서두르라 하라.”
“알겠습니다.”
그녀는 아더의 명령에 허리를 숙여 대답하고는 빠르게 방을 빠져나왔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엔도라스 왕국 최강의 길드에 대적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노라!”
자신을 향해 이를 갈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스테온 일행은 그저 곡해의 동굴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하아…….”
“제길!!”
“이거 장난이 아닌데!!”
“위험해!!”
“홀리 실드(Holly Shield)!!”
쾅! 쾅! 콰앙!!
강렬한 빛이 슈가비가 만들어 낸 보호 마법에 부딪히며 전류를 뿜어냈다.
“이렇게 막고만 있다가는 오래 버티지 못해!”
“어떻게 하죠?”
“크윽……!”
상황은 좋지 못했다.
박쥐들의 소굴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 앞에 보이는 저 녀석은…….
“멍청하지만 그래도 나름 녀석을 이기고 들어왔을 텐데…… 흥, 너무 쉽잖아?”
“크!”
“하긴, 지능도 낮은 그런 덩치만 큰 박쥐 녀석을 잡아 봐야 아무런 명예가 되진 못하지.”
우아한 깃털을 흔들거리며 마치 우리를 조롱하듯 바라보는 그녀는 하피들의 여왕, 데너레스였다.
“나의 자매들이여, 저 아둔한 인간들에게 날카로움의 정의를 보여 주거라.”
“키아약!!”
그녀 말고도 이 거대한 동굴 안엔 네 마리의 하피가 더 있었다. 형형색색의 날개를 가진 그녀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포스 애로우(Force Arrow)!!”
스완의 윈드 포스의 끝에서 기가 일렁이는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슈웅!!
활을 떠난 은빛 화살이 네 마리의 하피들 중 한 마리를 향해 날아갔지만…….
“흥, 가소롭구나.”
데너레스의 거대한 날개가 강렬한 바람을 만들어 내면서 너무나도 허무하게 화살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제길, 저 날개 때문에 화살이 닿지 않아요.”
“게다가 바람 마법에 면역이라서 독수리의 날개를 쓸 수도 없고 말이야.”
“보일 수 있는 건 다 보인 건가? 그렇다면 이제 죽을 시간이로구나, 우매한 인간들이여.”
데너레스는 우리를 보며 살짝 입맛을 다시듯 웃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무척이나 매혹적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저 붉은 피와 같아 보일 뿐이었다.
“싸워라, 나의 자매들이여! 녀석들의 심장을 나에게 바쳐라!!”
“크아아아!!”
“스완.”
“네?”
“하피들이 바람 마법에 면역이란 것은 순수하게 바람이란 속성에 대미지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냐?”
“네, 조금 전에도 보셨듯이 바실리아님의 공격이 먹히지 않았으니까요.”
“요는 바람이란 말이로군.”
“네?”
네 마리의 하피들이 날아오는 순간이었다. 난 빙결의 검을 뽑아 스완에게 소리쳤다.
“스완! 바람 마법을 준비해라. 네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으로!”
“하지만 녀석들은…….”
“바실리아님도 가장 강력한 바람을 준비해 주세요.”
“음?”
“스완! 너의 목표는 바로 저기!”
빙결의 검이 향한 곳은 데너레스의 머리 위였다.
“그리고 바실리아님은 이 아래로.”
그리고 또 한 번 검이 가리킨 곳은 데너레스의 발 아래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우리의 공격을 막는 것도, 그들에게 공격을 입히지 못하는 것도 바람이라면 바람을 없애 버려야지.”
“네……?”
“시작해!!”
“네, 넵!”
나의 호령에 스완이 두 손을 모아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바실리아 역시 구슬을 꺼내어 독수리의 모습으로 변했다.
“흐아아! 윈드 슬래셔(Wind Slasher)!!”
스완의 두 손에서 강렬한 바람이 뭉치기 시작했다. 5클래스의 풍계 마법인 윈드 슬래셔는 여러 개의 바람 칼날로 적을 공격하는 마법이었다.
“질풍(疾風)!!”
그리고 독수리로 변한 바실리아가 자신의 몸을 회전시키며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가소로운 녀석들! 그런 공격이 우리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했느냐!!”
데너레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바람을 보며 비웃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와 하피들의 날개가 움직였다.
“지금이다.”
콰앙!
빙결의 검을 바닥에 꽃아 넣은 난 두 손으로 각기 다른 수인을 맺었다.
“필라 오브 파이어!!”
바닥을 짚으며 발산된 세 줄기의 불길이 그대로 데너레스를 향해 쏘아졌다.
“프로스트 다이버!!”
그리고 나의 오른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냉기의 얼음이 스완이 만들어 낸 윈드 슬래셔와 뒤엉키기 시작했다.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놀라는 바실리아의 얼굴이 상상이 되었지만, 지금 한가롭게 그의 얼굴을 볼 때가 아니었다.
“이 녀석!!”
아래를 타고 흐르는 강렬한 불꽃의 바람과 위에서 흐르는 차가운 냉기의 바람, 그 사이를 하피들이 만들어 낸 바람이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슈가비! 가장 강력한 보호 마법을!!”
“네? 아, 네!!”
콰앙……!!
“신들의 왕 신왕(神王) 크로니온이여, 그대의 소중한 아이에게 가장 강력하고 가장 신성한 방패를!! 디바인 실드(Divine Shield)!!”
엄청난 폭발이 우리를 덮쳤다. 그러나 그 순간 슈가비의 신성한 마법의 방패가 우리 앞을 막아 주었다.
“크……!”
“나이스 타이밍이었어요.”
“우…… 미리 미리 말해 주시라고요.”
사제의 지팡이를 두 손으로 꽉 쥐며 슈가비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훗, 미안. 데너레스가 알아차릴지도 몰라서 말이야.”
“끝난 건가요?”
“우리가 이긴 거?”
스완과 바실리아는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살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던 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염과 냉기가 지나쳐 간 자리에 남은 것은 정적뿐이었지만…….
“끝나 가는군.”
“네?”
“슈가비, 힘들겠지만 마법을 계속 유지해 줘. 빨려 들어갈지도 모르니까.”
“예?”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녀의 물음이 마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동굴의 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