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레전드 16화
“어서 오십시오.”
“잘 지내셨어요?”
“어이쿠,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여관 문을 열자, 근 두 달 만에 보는 주인의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였지만 그는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퀘스트 보상은 어떻게 받는 것인가요? 여관으로 가보라고 하던데.”
“아, 모든 퀘스트의 보상은 여관 앞에 있는 우체통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그 안에 편지에 동봉되어 있을 겁니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여관으로 가라고 한 것일까? 난 그의 말에 여관 앞에 놓인 허름한 우체통에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바스락.
작은 봉투 한 개가 내 손에 잡혔다. 흥, 보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것 같은데, 뭘까?
“이게 보상이에요?”
“응? 글쎄. 우선 그렇다는 것 같은데.”
“흐음, 그냥 편진가?”
스완 역시 예상과 다른 작은 편지 봉투 한 개를 조금은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축하합니다. 아스테온 님.
귀하는 【제한 조건 히든 퀘스트: 대마법사의 간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이에 따른 보상으로 아스테온 님은 지금부터 두 가지의 퀘스트 중 한 가지를 선택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현재 아스테온 님께서는 잊혀진 검성의 검술과 대마법사의 강력한 마법을 모두 이어받으신 유일한 분이시기에 이에 따른 퀘스트로서 ‘은(銀)의 왕국 라이라’ 와 ‘고대의 현자 그위드욘(Gwyddyon)’을 선택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 두 개의 퀘스트 역시 히든 퀘스트로서 난이도 또한 높으며 긴 여정이 되실 것입니다. 당신의 여행에 가장 큰 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신중히 선택해 주시기 바라며, 아스테온 님의 여행을 위한 작은 보상이 수도 은행에 맡겨져 있으므로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그대의 앞길에 신왕(神王) 크로니온의 은총이 함께하길 기원하겠습니다.
긴 편지를 읽고 난 뒤 내 앞에 하나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흐음…….”
“우아, 히든 퀘스트인 거예요?”
“응, 그런 것 같아.”
함께 편지를 읽은 스완 역시 조금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두 번째 걸 보니 현자라는 말이 나온 걸 봐선 아무래도 마법에 연관된 것 같아요. 그럼 첫 번째 건 검에 관한 것일까요?”
“흐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검과 마법,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퀘스트를 이어 가라는 것일까?
“어떤 걸 하실 거예요?”
“뭐, 이미 정해져 있잖아?”
“네?”
“나 역시 이 두 개의 퀘스트가 하나는 검에, 하나는 마법에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당연히 검에 관련된 퀘스트를 해야 하지 않겠어?”
“어째서요?”
궁금해하는 스완에게 난 웃으며 말했다.
“바보. 우리한텐 유능한 마법사가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내가 마법에 손을 댈 필요가 있겠어?”
“헤, 맞다. 레릭이 있었죠.”
“응.”
난 레릭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엘파이온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던 것 역시 마법사에 관련된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즉, 레릭은 이미 대마법사에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퀘스트: 은(銀)의 왕국 라이라를 선택하셨습니다.》
가볍게 메시지 창의 선택을 하고 난 뒤 난 공중에 떠 있는 여러 개의 창들을 모두 지워 버렸다. 퀘스트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요소이긴 하지만 인위적인 요소가 왠지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은행으로 가요!”
“응, 그래.”
생각했던 대로 붙임성이 좋은 스완은 제논스테인 학교를 나와 버린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듯 오히려 먼저 광장 안에 있는 은행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맡긴 물건을 찾고 싶은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아스테온입니다.”
“네, 허가증은 가지고 오셨나요?”
“허가증이요?”
“아마 우편으로 동봉된 편지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 소지하고 계신가요?”
“혹시 이건가요?”
은행 안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간신히 창구가 비었을 때 들어간 난 은행원에게 조금 전에 받았던 편지지를 건네주었다.
“네, 맞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은행원은 내가 건네준 편지를 잠시 훑어보고는 손으로 그것을 잡았다.
우웅……!
황금빛의 물결이 순간 그의 손에서 흘러나왔고, 그저 종이로 된 편지라고 생각되었던 물건이 작은 열쇠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우아!”
스완 역시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듯 탄성을 지었다.
“음? 처음 보시나 봐요?”
“네? 아, 네. 마법학교에 있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후후, 앞으로 퀘스트를 하시고 나시면 많이 보실 겁니다.”
“유저신가요?”
“네.”
가볍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이곳 은행원은 돈도 괜찮게 벌리기도 하지만 저처럼 인챈터(Enchanter: 마법 부여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거든요. 편지 속에 숨겨진 마법으로 열쇠로 바꾸어 보상을 주는 일은 오직 인챈터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호오. 그렇군요.”
“숙련도 올리고 돈도 벌 겸 의외로 유저들이 많이 이 일을 하고 있답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마법도 이런 식으로 숙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에 나 역시 새삼 놀라게 되는 일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황금색 열쇠를 열어 금고에서 가져온 상자를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뭐가 들었어요? 빨리 열어 봐요.”
“으응. 그래.”
스완 녀석이 오히려 더 들뜬 목소리로 재촉하기 시작했다. 난 우선 그것은 안전한 여관에 가지고 나서야 열어보도록 했다.
딸깍!
자물쇠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난 뒤 상자의 문이 열렸다.
“음?”
그 안엔 낡은 지도 한 장과 약간의 돈이 든 주머니 그리고 작은 단검이 들어 있었다.
“흐음.”
낡은 지도는 이미 색이 바랜 지 오래였지만 다행히도 지도의 그림은 지워지지 않았다.
“라이라 왕국의 위치를 표시해 둔 지도일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낡은 이 지도에 문제점은 온통 알 수 없는 문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 아마도 이 지도를 만든 이는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의 왕국이라…… 어딜까.”
“이것 보세요. 이 지도도 완성된 게 아닌 것 같아요. 여기 이 부분을 보면 잘려 나간 것 같지 않아요?”
“으흠. 정말 그렇구나.”
마치 반도처럼 표시되어 있는 지도. 그러나 뭔가 모자란 부분이 확실히 보였다.
“윗부분이 잘려 나간 것을 봐서는 최소 두 개의 지도. 그리고 여기 앞부분도 원래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네 개로 되어 있는 지도일지도 몰라요.”
스완은 지도를 보자마자 분석에 들어간 듯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번에 형이 보여 줬던 검도 라이라 왕국에서 만들어진 검이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응? 아, 맞아. 그랬었지.”
나조차 잊고 있었던 것을 스완이 기억하고 있었다. 기특한 스완 덕분에 난 검에 쓰여 있던 설명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래, 라이라 왕국은 얼음의 왕국이라고 한다고 하더라. 여기 퀘스트에 있는 은(銀)의 왕국 이란 것도 새하얀 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흐음, 그렇다면 아마도 북쪽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 지도에는 북쪽 어디에도 눈이 덮인 곳은 없어요. 그걸로 봐선 아마도 불완전한 지도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낡은 지도는 지명 곳곳에 색이 칠해져 있었다. 초원과 산맥 들판에 따라 색이 다른 것을 봐선 눈으로 덮인 라이라 왕국에도 뭔가 표시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선은 이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인가?”
“이 단검은 뭐예요?”
“으음. 한번 보자.”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단검을 꺼내어 보았다. 그것은 차갑고 새하얀 짧은 단검이었다.
【서리단검(Frozen dagger)】
등급: A 공격력: B 희귀도: A⁺ 내구도: 100/100
검성 알테가르가 처음 라이라 왕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한 소년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였다. 그 소년의 이름은 시드. 이 소년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매 라이라 왕국의 여왕 라이라 (Lyra)Ⅲ세께서 친히 그에게 하사한 단검.
장식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나 영구적인 마법으로 어느 정도의 공격력을 가진 호신용 단검으로 이것은 라이라 왕국의 귀빈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하는 물건이기도 하기에 이 단검을 보유하고 있는 자라면 누구든 비밀의 왕국, 라이라 왕국을 방문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시드?”
난 단검의 설명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검술을 가르쳐준 스승 역시 시드였다. 그렇다면 그가 알테가르와 함께했던 소년 시드라는 말일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검성이 활동했던 시기와 지금은 이미 수백 년이 지났잖아.”
그렇다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나에게 검을 가르쳐 준 그가 먼 옛날 시드의 후손일 가능성.
“이름이야 대를 물려 이어받는 경우가 빈번하니까. 그렇다면 그를 찾는 것이 급선무인 건가?”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나신 거예요?”
“응, 약간은. 100% 확신을 할 순 없지만 가능성이 보이네. 가봐야 할 곳이 생긴 것 같아.”
“헤헷, 넵!”
“자 이거.”
“엑?”
난 상자에 들어 있던 서리단검을 스완에게 건네어 주었다.
“무기도 없이 나왔잖아. 호신용으로는 쓸 만할 것 같으니까 네가 가지고 있어. 속성 마법도 걸린 것 같고.”
“괜찮아요? 이건 퀘스트에 중요한 물건이잖아요.”
“믿으라고 묻는 거야? 아니면 믿지 말라고 묻는 거야. 나와 함께하기로 했으면 난 널 믿을 거다. 이 단검은 과거 검성과 함께했던 소년이 썼던거래. 나 역시 검성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고 넌 그런 나와 함께 하고 있으니까. 네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
“헤에…… 형.”
스완은 나의 말에 코끝을 살짝 만지며 서리단검을 받았다.
“하지만 잃어버리거나 하면 알아서 해.…… 죽는다.”
“윽, 역시 뒤끝이 있으셔.”
“후후, 농담이다.”
난 웃으며 스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여관을 나섰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주머니엔 꽤 많은 돈이 있었다.
‘이걸 보니 잊고 있었던 게 한 가지 더 생각나는군.’
처음 시작했을 때 받았던 작은 돈주머니. 그리고 웃으면서 날 죽였던 녀석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언젠가 너희를 만날 날이 올 테니까.’
아직은 아니었다. 지금은 힘을 길러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조금은 더 이런 즐거운 기분을 간직하고 싶었기도 했으니까.
“후우…….”
수도를 모두 돌아봤지만 생각보다 시드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미아크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연무장엔 미아크가 없는 바람에 나는 조금 쉴 겸 로그아웃을 했다.
“끝나셨습니까?”
“으응.”
헤드셋을 벗고 엔트리 커넥터에 나오자 집사 아저씨가 차가운 물을 가져다주었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조금 부끄럽군.
“후우, 고마워요.”
“그럼 쉬십시오.”
그가 가져다 준 물을 들이켠 난 조금 뻣뻣한 몸을 이리저리 만지고는 침대 위에 누웠다.
“후우, 오랜만에 홈페이지나 들어가 볼까?”
침대 위에 누운 난 3D용 액정 셋을 쓰고는 포인터 글러브를 꼈다. 오랜만에 보는 인터넷의 브라우저가 조금은 낯선 기분까지 들었다.
“흐음, 뭐 새로운 소식이 없나?”
홈페이지는 특별히 눈에 띄는 기사는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게시판에 올라온 한 가지의 글이 나의 눈에 띄었다.
‘듀얼 레전드 엘라시온 대륙의 정보’
포인터를 이동하여 글을 클릭했을 때 이미 그 밑에 리플들은 수십 개가 넘게 달려 있었다.
“호오?”
내용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꽤 장문의 글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각 대륙 간의 서버. 그리고 각 서버마다의 나라가 다르다. 현재 내가 조사한 바로는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2개 서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총 6개의 대륙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직 모든 곳을 가보지 못하여 완성할 수 없었으나 각 대륙마다 자신이 접속한 현실의 대륙에 따라 시작점도 달라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종합하여 보면 듀얼-레전드의 대륙 역시 거대한 대륙이 이어져 있는 어마어마한 넓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을 올린 유저는 이러한 글과 함께 자신의 친구들이 찍어 준 스크린샷을 함께 올린다 했다. 포함이 되어 있는 파일을 열어보자 그 안엔 몇 장의 사진들이 있었다.
“호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의 부족이 그려져 있는 모습. 그리고 어두컴컴한 늪지대에 신비한 왕국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 띄는 사진은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