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얼 레전드-11화 (11/122)

듀얼 레전드 11화

“흐아!”

나 역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이었다. 마법이라면 그에게 이길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검이 있었다.

“흐읍!”

빙루의 1단계 검술. 이제 막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유일한 나의 스킬이었다.

우웅!

빙결의 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미약하지만 검 안에 소드 오라가 응축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건방진!”

그 역시 나의 기술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 소드 오라가 모이려는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플레임 버스터!”

두 손에 마법의 불꽃을 모은 그가 박수를 치듯 손뼉을 마주 잡았다. 양손에 모여진 거대한 불꽃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간다!”

불꽃이 바로 앞까지 왔을 때 나 역시 격류된 소드 오라를 방출할 수 있었다.

“라멘타티온 스타르(Lamentation Star: 별의 애가(哀歌))!”

폭발적인 힘이 검에서 뿜어져 나오며 그를 향해 튕겨져 나가듯 뛰어올랐다.

콰아앙!

나를 향해 폭발하던 플레임 버스터를 두 갈래로 잘라 버린 난 그대로 그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블링크!”

쿵!

그러나 검이 그에게 닿기 바로 직전 그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제길!”

목표를 잃은 검이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강력한 검술이었지만 그 반발력도 그만큼 강했다.

“버스터 봄버!”

블링크로 순간 벌어졌던 거리를 다시 한번 좁힌 그는 한 손에 작은 구체를 만들었다.

“젠장!”

작은 그것은 내 몸에 닿자마자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콰앙!

“크윽!”

그대로 날아가 버린 난 담벼락에 부딪히고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쿨럭!”

충격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순간 내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쓰려오는 그런 기분.

“선생이라면서 학생을 이렇게 패도 되는 겁니까?”

“우린 마법사를 양성하는 것이지 첩자를 키우는 게 아니니까.”

“누가 첩자라는 겁니까?”

“그럼 뭐지?”

“말했잖습니까, 학생이라고. 마법을 배우러 온 학생. 그것도 모르십니까?”

“흥,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그는 내 말에 팔짱을 끼며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정말 사람 말 안 믿는군…….

“저에게 검을 가르쳐 주신 분은 검은 그저 수련의 도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법사들은 다른가 보죠?”

“그게 무슨 뜻이지?”

“저의 스승님은 한낱 세계를 돌아다니는 장사치셨고 저에게 검을 주신 분 역시 기사가 아닌 한낱 연무장을 관리하는 사람에 불과하죠. 그들은 검을 인생의 동료로 보지, 인생의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보십시오.”

“…….”

“당신은 그저 마법사라는 허울 아래에서 검을 싫어할 뿐이지 않습니까. 전 정말로 마법을 배우러 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이 선생으로 있다면 그다지 배울 것이 없어 보이는군요.”

내 말에 그가 인상을 구겼지만, 뭐라 반박할 말이 없는 듯 그저 이를 갈 뿐이었다.

“그래…… 정말 마법을 배우러 온 것이야?”

“물론입니다.”

“검성의 검술이라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는 거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것을 얻는 순간 그것 하나에 매진하는 것이 정상이잖아. 안 그래?”

그의 말에 난 슬쩍 웃어 주었다. 그가 모르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렇겠죠.”

“음?”

거참 정말 사람 말 못 알아먹네. 당연한 것을 또 물어보는 거야? 내 말의 의미는 바로,

“전 최고가 아니면 안 되니까. 마법이고 검이고 이런 걸 떠나서 그 누가 내 위에 있는 게 싫으니까요.”

“크, 크크…….”

갑자기 그가 어이없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크, 크하하하! 뭐라고?”

그러더니 배를 잡고 뒹굴며 웃는 그. 아주 웃겨 죽겠다는 듯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영 보기 좋지 않았다.

“뭡니까? 그 반응은.”

“크, 크하. 정말 어이없는 녀석이로군. 한마디로 말해 네 녀석은 검이든 마법이든 다 네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고 익힐 수 있는 것이라면 최고가 되지 못할 것도 없죠. 안 그래요?”

“넌 강해지고 싶지 않은 거냐? 사람들 앞에서 너의 그 강함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거냐고 묻는 거다.”

“강함을 보여 준다……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하네요. 하지만 말이죠. 하나만 잘해서 보여 주는 것보다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존재가 되어서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더 재밌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저 지루한 세상에서 재미있는 뭔가를 찾아내는 것. 그것만이 나에게 흥미를 주는 것. 고작 한 가지에 얽매인다면 그건 그저 평범한 유저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그런데 말이야. 그거 알고 있는가?”

“뭘 말입니까?”

“너의 지금 그 말은 검도 마법도 무시하는 말이라는 것.”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 아아. 알아. 두 개의 길은 지금까지 어떠한 학문보다도 가장 상반된 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그 둘을 정복하겠다고 나선 넌 지금은 그저 허울 좋은 녀석일 뿐이야. 결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말이지.”

“저 역시 그저 장난으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 있는 거냐?”

“자신도 없이 하진 않았겠지요.”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긴, 검성의 검술까지 얻어낸 녀석이라면 뭔가 다를지도 모르지. 좋아. 그렇다면 나도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네?”

“미아크 녀석은 검술을 가르쳐 줄 만큼의 실력은 아직 안 될 테고…… 너에게 검을 가르쳐 준 사람은 아마도 시드겠지?”

“그분을 아십니까?”

“흥, 물론이지.”

아무리 봐도 연배로는 시드가 더 많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시드를 마치 동년배의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이 모두 진실은 아니지. 그게 마법의 오묘함이기도 하고.”

그 말을 하는 순간 그의 모습이 살짝 뭔가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듯했다. 뭐였지……? 내가 잘 못 본 것일까?

“나 역시 시드 녀석에게 볼일이 있었지만…… 그 녀석이 교묘하게 항상 빠져나가서 말이야. 그 녀석에게 검을 배운 너라도 대신 그 일을 해 줘야겠어.”

“그게 무슨 말이죠?”

“최고의 검과 최고의 마법. 그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지 네가 결정을 해달라는 거지.”

그에 말에 난 피식 웃었다.

“검성이란 사람은 대륙에서도 최강자였다고 알려져 있죠. 최강자의 검술이니 최고라 칭할 수 있겠지만…… 당신의 마법이 최고라고 어떻게 증명할 거죠? 비교 대상이 같아야 뭘 하든지 하죠. 안 그래요?”

순간 그가 내 말에 멍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호탕하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크하하! 정말 날 모르는 녀석이었군! 이 녀석아. 똑똑히 봐둬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대륙 역사상 가장 위대했다고 일컬어지는 대마법사 그위드욘의 마법서를 통독한 유일한 마법사이자 제논스테인을 세운 엘파이온님이시다!”

“……거짓말.”

“뭐?”

“당신이 교장이라고요? 이렇게 젊은데?”

“바보 녀석!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겉모습 따위에 현혹되다니. 지금 너란 녀석은 그 정도란 말이다. 내 진짜 모습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얄팍한 지식의 마법사!”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고 내 실력이 지금은 한참 모자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왠지 그냥 듣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요? 뭘 원하는데요?”

나 역시 퉁명스럽게 그에게 대답했다.

“시드의 제자 녀석에게 마법이 더 훌륭하다는 것을 받아내는 것. 그거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겠지. 검성의 검술을 받은 녀석이 마법을 배울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 얻기 힘든 기회거든.”

【제한 조건 히든 퀘스트: 대마법사의 간계】

조건 1.

검성 알테가르의 검술을 익혔을 경우

조건 2.

위 검술을 익힌 자가 제논스테인의 학생이 되었을 경우.

조건 3.

조건1, 조건2를 만족시키며 엘파이온을 만났을 경우.

마법이 최고라 생각하는 대마법사 엘파이온. 그는 언제나 검술에 대한 질투를 가지고 있다. 언제나 마법이 최고라 칭하는 그가 주는 시험. 과연 그의 생각이 옳은 것일까?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동의를 묻는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응, 어떠냐?”

마치 내 수락을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그가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후후, 좋아. 오는 싸움을 거부할 이유는 없지.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 보자고!

“좋아요. 배워 보죠. 과연 얼마나 대단한 마법을 알려줄지 말이에요. 하지만 전 검성의 검술을 익힌 사람이라고요. 그저 평범한 마법으론 제 눈에 차지 않다는 것. 알고 계시죠?”

“크하하! 물론이지! 물론이야!”

내 수락에 그는 뛸 듯이 기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만든 마법들을 배우고 난다면 너 역시 검이 마법보다 뛰어나단 소리는 못할걸? 크크크, 시드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구먼!”

제논스테인 마법학교를 설립한 사람이라면 그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대마법사일지도 몰랐다. 그런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고작 이런 시기 어린 간사한 꾀라니.

‘좋아, 보기 좋게 넘어가 주지. 하지만 웃는 건 나다.’

“그럼 내일부터 밤이 되면 항상 이곳으로 나와라.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크크, 그럼 그때 보자고! 하하, 기대되는군!”

엘파이온의 주위를 새하얀 연기가 감쌌다. 연기가 걷힐 때가 되었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의 웃음소리만이 여운을 남길 뿐이었다.

“그래, 학교를 그만뒀다고?”

“네. 아버지.”

“그럼 요즘은 뭘 하고 지내고 있니.”

늦은 저녁이 되어서 로그아웃을 했을 때 난 오랜만에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요즘은 게임 때문에 대충 때우는 일이 많았으니까.

“삼촌께서 만든…… 게임을 하고 있어요.”

“게임?”

“네. VR-MMORPG라고 세계에서 몇 개 안 되는 게임인가 봐요.”

“아아, 산이 녀석 요즘 통 바쁘다더니 그런 걸 만들고 있었군. 그래, 할 만은 하더냐?”

게임을 한다는 말에 싫어하실 줄 알았던 아버지였는데, 의외의 반응에 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네.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감도 있고 정교하고 기대 이상이었어요.”

“흐음, 그래야지.”

“네?”

아버지께서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웃으며 말했다.

“VR-MMORPG라면 아마도 가상현실을 구축하기 위한 메인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겠니. 그것도 전 세계를 통합할 정도로 거대한 것이 말이야.”

“그렇죠.”

“산이가 다니는 회사도 적지 않은 규모지만 그런 것을 만들 정도는 아니지.”

“그러면…… 혹시?”

“응, 맞다. 이 애비가 만들어 주었지. 갑자기 부탁해서 뭔가 싶었는데 게임에 쓸 줄이야. 허허.”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일렉트로닉 스트림(Electronic Stream)은 전 세계에서 내로라할 정도로 대단히 거대한 회사였다. 생활용품부터 전시용품까지 모든 전자업을 통괄하는 초국가 기업이기도 했다.

“엑? 그럼 지금 듀얼-레전드가 삼촌네 회사의 테크나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란 말인가요?”

“게임 이름이 듀얼-레전드니? 흐음, 어쨌든 테크나노 역시 대용량 시스템이지만 확실히 역부족이지. 지금 산이네에서 쓰고 있는 것은 얼마 전 내가 만들어 준 것이란다.”

아버지는 식사를 끝내셨는지 젓가락을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세계 광대역 통합 네트워크 구축망(WBCN). 우리 사이에선 이렇게 불린단다. 통칭, 레이(Ray).”

“레이……?”

“그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이지. 현존하는 그 어떤 마더 보드보다 가장 논리적이고 가장 뛰어나며 가장 인간다운 그런 시스템이 될 것이란다.”

“컴퓨터에게 인간적인 면이라…… 재밌네요.”

“응, 그게 여타의 구축망과는 다른 점이지.”

아버지의 말에 잠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있었다. 마치 만화처럼 듀얼-레전드의 작은 세계를 어떤 여성이 들고 있는 그런 모습. 레이라는 한 여신의 모습이 말이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WBCN 개발은 2년 전에 중단하지 않았나요?”

“그래, 맞아. 그땐 개발진에 너도 있었겠구나.”

“네, 잠깐 참여했었죠.”

난 2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분명 그때도 수익성이 나오지 않아서 그만둔 것 같은데…… 가격이 문제이지 않았어요? 삼촌네 회사에서 어떻게 구입한거죠?”

“구입이라니? 그걸 구입할 수 있을 만한 회사가 아니잖니. 내가 그냥 만들어 주었다.”

“네?”

“그때야 2년 전이지 않겠지. 우리 회사도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고. 이래 봬도 산이 녀석도 우리 가문의 아인데 그 정도도 못해주겠니.”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셨다.

“할아버지는 항상 손해 보는 장사를 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만 난 조금 다르단다. 너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게 조금 미안하다만 동생이란 존재는 항상 보살펴 주고 싶은 그런 존재란다. 그러다 지금처럼 훌쩍 커 버려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데…… 어찌 형이 도와주지 못하겠니?”

어째서 난 그 말에 울음을 터뜨렸던 레릭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 가녀린 소년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그런데 아버지.”

“응?”

“제가 게임을 하는데 괜찮으세요? 할아버지께서 아시면 아마 무척이나 화를 내실 텐데.”

“후훗, 네 할아버지야 그렇겠지만…… 네가 재미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핏줄이란 게 참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 없듯이 네 아비 역시 너처럼 같은 경험을 했었기에 잘 안단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도 지루하지 않느냐. 아무리 만들고 아무리 바꿔도 결국은 그걸로 끝이니까.”

천재의 비운이랄까……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일 것이다. 나조차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존재. 그러나 그런 아버지 역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연아. 이건 명심해야 한다.”

“네?”

“평범한 것도 좋고. 흥미를 가지는 것도 좋지만.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뒤처지진 말아라.”

“훗, 알겠어요.”

순간 떠오르는…… 배트란 녀석의 얼굴. 잊힐 법도 한데 너무나도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잡혀 있었다.

“휴우, 애비는 좀 쉬어야겠구나. 오랜만에 집에 왔더니 늘어지네.”

“네, 그러세요.”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 역시 오랜만에 마음 편히 침대에 누워보는 기분이었다. 내일이 되면 또 새로운 일들이 있겠지. 너무나도 똑같았던 일상과는 다른…… 매일 매일이 기대되는 그런 세계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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