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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레전드-7화 (7/122)

듀얼 레전드 7화

“제길!”

저기 멀리 빙그르르 도는 검을 보며 난 그만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자리에 앉으니 순식간에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었다. 제길, 아무리 처음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몇 번 휘두른 것으로 이렇게 지치다니.

“죽을 맛이로군.”

체력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힘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는 없었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좀 나아지긴 한 건가…….”

분명 능력치가 오르긴 오르고 있는 것 같긴 했다. 처음엔 10분도 채우지 못해 힘이 들어 놓은 목검이 이젠 30분은 족히 휘두를 수 있었으니까.

“그러면 뭐 해? 남들은 하루 만에 끝낼 것을 일주일이나 붙들고 있는데.”

그게 문제였다. 소비하는 시간에 비해 대가는 너무나도 미미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연, 정신 차려라.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고 했잖아. 고작 일주일 만에 포기할 마음을 가지다니. 나도 이제 다 됐군.”

난 스스로의 뺨을 두 손으로 세차게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랄까? 난 바닥에 떨어진 검을 다시 쥐었다.

“후우, 위에서 아래로! 정점에서 사선으로!”

앞으로 남은 교본의 내용은 절반 정도, 끝을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도련님, 오늘도 게임이십니까?”

“응? 아, 응. 그럴 거야.”

“요즘 너무 게임에만 몰두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건강 해칠까 봐 걱정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오늘만 하고 더 할지 안 할지 결정할 거니까.”

“네?”

듀얼-레전드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교본에 적힌 대로 그저 검을 휘두르기만 했을 뿐이다.

“그럼, 난 커넥터 안에 있을 테니까 웬만하면 부르지 말아 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장이다.

지지부진한 체력과 힘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한두 시간 정도는 검을 휘둘러도 될 정도랄까?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 왕국의 병사들 혹은 용병단의 검사들은 벌써부터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당신의 두 번째 세상, 듀얼-레전드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잠깐의 어지러움도 이젠 익숙해져 버렸다. 아니, 중독이 되어 버렸다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후우…….”

로그인을 하자 눈에 보이는 것은 당연히 아무도 쓰지 않는 연무장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몇몇의 유저를 보았지만, 이젠 소문이 나버려 검식 교본을 배우는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 꼴은 몬스터는커녕 개 한 마리도 못 잡겠군.”

지저분한 몰골은 장난이 아니었다. 무일푼이었던 나에게 배고픔과 갈증도 생각지 못한 장애물이었다. 그러는 나를 도와준 것은 처음 날 이곳으로 안내해 주었던 그 사람이었다.

“오늘도 일찍 오셨군요.”

너무 과한 스태미나 소비로 인해 쓰러져 있던 나에게 음식을 제공해 주었던 고마운 사람. NPC라 하더라도 고마운 감정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네, 항상 들어오는 시간이니까요.”

연무장을 정리하고 있었던 듯 그가 날 반기는 척 인사를 해 주었다. 여전히 깔끔한 복장. 왕궁에서 일하는 그는 연무장을 총괄하는 자였다.

“한 달 정도 되신 것 같은데 진전은 좀 있으신가요?”

“하하, 뭐 그렇죠. 그냥 믿고 연습할 뿐입니다.”

“그러세요? 이제 마지막 장이네요.”

“네, 오늘까지 연습하고도 아무런 진전이 없으면 그만 둘까 생각하고 왔습니다.”

“하하, 정말요? 괜찮으세요? 그동안 한 것이 아깝지 않나요?”

그는 내 말에 살짝 놀란 듯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한 달 동안 이곳에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뭐, 다짐은 그렇게 하고 왔지만…… 쉽지 않겠죠? 그러니 부디 뭔가 수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왕국의 검술 역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책 역시 엔도라스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검사가 만든 책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의 말이 딱히 위로가 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그가 떠나고 나자 난 다시 목검을 들었다.

“에후, 무거워라.”

항상 매일 똑같은 수련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날이 갈수록 목검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일까?

“정말 힘이 붙긴 붙는 건가?”

그래도 검을 휘두르는 것에 몰두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그 무게도 잊기 마련이었다. 분명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하압!”

타악! 탁!

경쾌한 목각 인형의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물론, 이 소리가 1시간, 2시간이 흘러 저녁이 될 때면 결코 즐겁지 않게 되겠지만…….

“어머, 저 사람 아직도 하고 있네?”

“아! 나 저 사람 봤어. 홈페이지에도 있던데?”

“정말?”

“응, 뭐라더라? 검도하는 사람이라 그랬나? 그 있잖아.”

또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한 주위의 사람들. 저녁 시간 즈음이 되면서 접속자들이 늘어나면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아, 이미지 트레이닝?”

“그렇지! 그런 거라던데.”

…… 절대 아니거든요. 게다가 이젠 어처구니없는 직업까지 만들어 주시기까지 하시다니!

“와아, 멋지다!”

“그러게, 게임으로 트레이닝을 할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뭔가 오해가 오해를 불러낸 결과인 듯 보였지만,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난 그냥 묵묵히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마지막이다.’

“하압!”

목각 인형이 탁하는 소리와 함께 검과 부딪혔다. 그러나 여지없이 힘이 다해 목검은 내 손을 이탈해 버렸다.

“앗!”

“조심해!”

하필이면 그 검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아갈 게 뭐람. 빙그르르 허공을 돌며 날아간 검을 피하며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

잠깐의 정적. 그 눈들은 도대체 뭐냐…… 실망과 속았다는 듯 바라보는 그들의 눈!

“야야, 실력은 형편없나 보다.”

“그러게. 하긴, 그러니까 게임에서까지 연습을 하지.”

“가자, 가자. 여기 있다가 다치겠다.”

사람들이 저마다 중얼거리면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 이봐! 중얼거릴 거면 들리지 않게 하란 말이야!

“쳇, 뭐야. 자기들끼리 오해하고는…….”

이상하게 화가 나는 기분이었지만 차라리 모두가 가버리고 나자 마음은 편한 것 같았다.

“이게 마지막인데…….”

이제 더 이상 책의 페이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익혔단 말이었다. 하나 내게 배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제길, 한 달이나 시간 낭비를 한 건가?”

“허허. 시간 낭비치고는 꽤 열심히 하더군.”

“음?”

멀리 날아가 버린 목검을 들고 누군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누구시죠?”

“그냥 구경꾼들 중에 하나일세.”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남자였다. 새하얀 수염이 턱을 덮고 있었지만 지저분하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뭐랄까? 오히려 중후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자네 거지?”

“아, 감사합니다.”

목검을 건네주며 그가 내 곁에 앉았다.

“어때? 검을 배워 본 소감은?”

“글쎄요, 배웠다고 해야 할지…… 그냥 교본에 있는 대로 했을 뿐이죠. 음…… 글쎄요, 왕국 검술을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나쁘진 않았어요.”

“그래?”

“네.”

확실히 무언가에 이렇게 집중해 본 적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30일이란 긴 시간을 투자해서 얻으려 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검이란 말이지, 순간순간의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네.”

그가 내 목검을 쥐었다.

“검이란 지키고자 만들어진 것이지만 분명 살인을 위한 도구일세. 다른 이의 목숨을 가져가는 것은 자신의 목숨 역시 내놓아야 하는 일.”

솨악!

허공을 가르는 그의 검이 무척이나 상쾌한 파공음을 만들어 냈다.

“아무리 화려하고 현란한 검술을 펼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할 순간의 찰나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무의미한 일. 검이란 연습하고 연습해서 자신의 것으로 우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네. 자, 받게.”

“네, 네!”

얼떨결에 날아오는 검을 받은 난 그를 바라보았다.

“교본도 모두 익혔는데 어떤가? 나랑 한번 대련을 해 보는 게.”

“제가 상대가 되겠습니까?”

“하하, 너무 자신을 그렇게 낮추지 말게나. 누가 뭐라고 해도 자넨 검성의 교본을 익힌 사람이지 않은가.”

검성의 교본치고는 무척이나 허술한 게 문제이긴 하지만…….

“좋아요. 한번 해 보죠.”

딱히 할 것도 없었던 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젊은 내가 뺀다는 것은 보기도 좋지 않았으니까.

“자, 갑세!”

그의 목검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으악!”

다른 사람의 검이란 것이 이런 건가? 바람을 가르며 나를 향해 내질러지는 검의 위압감이란 장난이 아니었다.

“위에서 아래로!”

“하압!”

그의 목검이 하늘을 가르며 떨어졌다. 난 두 손으로 검을 쥐고는 비스듬히 그것을 막아 냈다.

“크윽!”

아무런 기술도 아닌데 도대체 뭐지? 검을 타고 내려오는 충격에 난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정점에서 사선으로!”

내 검을 타고 내려와 그의 검이 내 목을 노렸다.

“검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응용이지. 언제 어느 순간에 검술을 펼치느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배워도 몰라.”

“…….”

난 내 목에 살짝 닿은 목검을 바라보았다.

“치, 그런 건 저처럼 아무런 기술도 없는 사람한테나 통하는 것이라고요.”

말도 안 되는 변명임을 알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성의 교본은 그런 문제점을 잘 가르쳐 주는 것이란다. 왕국의 검술은 확실히 패기 넘치고 강하지만 너무 기술적인 면에만 연연해 있지. 그런 검술은 몬스터에겐 통할지 몰라도 검사와 검사의 싸움에선 오히려 해가 되지.”

“하지만 왕국의 검술을 익힌 사람들은 벌써 검기까지 쓰는걸요.”

마법처럼 검을 쓰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날카로운 검기, 그것을 가리켜 소드 오라라고 했다. 그 단계에 오른 사람은 아직 극소수이지만 벌써 기사의 등급까지 오른 이들이 있었기에 이미 동영상을 통하여 그 힘이 입증되어 있었다.

“그래, 검기라면 모든 것을 벨 수 있지. 자네도 어디서 보았나 보군.”

“네, 검기를 날려 몬스터를 죽이고 바위도 부수고…… 하여튼 대단했어요.”

물론 그것이 동영상이라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하지만 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수고스러운 짓은 하지 않아. 소드 오라란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검 안에 담아 두는 것이니까.”

“헤, 뭔가 잘 아시나 봐요?”

“그럼! 그리고 그것은 검성의 교본에도 잘 나와 있단다.”

“은근히 검성의 편을 드시네요?”

“물론. 난 그와 꽤 인연이 있거든.”

혹시 그가 검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검성은 오래전의 인물이었다.

“자넨 화려한 기술들이 좋은가? 하지만 검사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보다 그 어떤 순간에도 몸과 검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연함이라네.”

“그렇게 말해도 전 모른다고요.”

“음?”

내가 그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말을 해 본 적은 처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잘 아시면 가르쳐 주세요. 검성이 말하고자 하는 검이 어떤 것인지. 전 멍청해서 아무리 봐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꼭 알아내고 말 거니까.”

“크크, 그래? 좋아. 알겠네.”

그는 검지를 들어 살짝 흔들었다.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검이란 역시 서로 맞부딪혀야 알아 가는 것. 자, 가봅세. 자네가 원하고자 하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나 그 끝에 닿을 수 있도록 말이야.”

“좋습니다!”

그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난 검을 들었다. 처음 『검식 교본』을 펼쳤을 때 보였던 그 수많은 그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어떤 계기와도 같았다.

탁! 탁! 탁!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강하게!”

그의 호령에 맞춰 나는 검을 흔들었다. 목각 인형을 두들기던 그 순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할 나위 없이 빠져들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정점에서 사선으로!

“흐…… 흐흣!”

지금 내 표정을 본다면 얼마나 바보 같을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와 검을 맞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입 끝은 자꾸만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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